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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 캐비닛 들여앉혀 인수위를 ‘초대 내각’으로”

역대 대통령직인수위원들의 긴급 제언

“섀도 캐비닛 들여앉혀 인수위를 ‘초대 내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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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 캐비닛 들여앉혀 인수위를 ‘초대 내각’으로”

정원식(14대 인수위원장),이민섭(14대 인수위원 경제1분과),남재희(14대 인수위원 사회·문화분과)(왼쪽부터)

YS는 이처럼 인수위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했지만, 그 권위와 기능을 스스로 축소시킨 장본인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정작 인수위가 가동된 후에는 힘을 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혁 성향의 새 인물 대신 옛 여권 인사들을 철저한 지역안배 원칙에 따라 인수위원에 앉힌 것부터가 인수위에 대한 그의 시각을 드러냈다.

YS는 인수위에 정부 업무현황 파악과 정부 이양에 따른 조율, 취임식 준비 등 새 정부 출범 준비를 위한 보조적인 실무작업만 맡겼다. 새 정부 요직 인선과 안기부·대통령 비서실 인수, 핵심 정책 수립 등 정권의 골간을 이루는 일은 자신이 비선조직을 통해 직접 챙겼다. 전병민씨와 YS 차남 김현철씨가 이끈 ‘동숭동팀’ ‘임팩트코리아’ 등의 비선조직이 그것. 게다가 김종필 대표 등 민자당 지도부도 “인수위보다 당이 우위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인수위 활동에 제동을 걸었다.

14대 인수위원을 지낸 남재희 전의원은 “YS의 인수위는 본격적인 인수위라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권 인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기구를 원만하게 인수하는 것이다. 최고의 권력기구는 안기부인데, 14대 인수위에선 안기부가 인수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런 의미에서 DJ의 15대 인수위가 실질적인 인수위라고 본다. 15대 인수위원장 이종찬씨는 처음부터 안기부 인수를 책임지고 인수작업에 참여했다. 14대 정원식 위원장은 정권 인수보다는 취임 준비에 중점을 뒀다.”

인수위와 비선조직이 뚜렷한 역할분담 없이 함께 운영되다 보니 혼선은 불가피했다. 14대 인수위 경제1분과에서 활동한 이민섭 전의원은 금융실명제 논란을 그 예로 들었다.



“인수위에선 토론을 거듭한 끝에 ‘금융실명제의 취지는 좋지만 부작용이 클 것으로 예상돼 당장은 실시하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리고 정책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YS는 비선조직의 제안을 받아들여 1993년 8월 실명제를 전격 실시했다. 그 결과 시중자금의 4분의 1에 달하는 돈이 지하로 잠적하면서 우리 경제가 어려워졌고, 이게 결국 외환위기로 연결됐다고 본다. YS가 집권하기까지는 동숭동팀의 도움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집권한 뒤에는 공식적인 조직과 시스템이 전면에 나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다음 정권의 정책 방향을 정립하는 일은 인수위로 일원화했어야 한다.”

이에 대해 14대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정원식 전 국무총리는 “동숭동팀과 인수위는 성격이 다른 조직이라 충돌할 일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동숭동팀은 차기 정부에서 간판으로 내세울 만한 정책을 연구했고, 인수위는 정부 부처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으며 ‘재고 조사(inventory)’와 정책의 연속성 유지에 신경을 썼다. 동숭동팀이 만든 것을 우리가 채택한 경우도 있다”는 것. 또한 안기부 등 권력기관 인수에 참여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그것은 당선자의 고유 권한으로 봤기 때문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인수위냐, 국보위냐”

1997년 12월26일 발족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제15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위원장·이종찬)는 13, 14대 인수위에 비하면 명실공히 ‘실세(實勢) 인수위’였다. 위원은 14대 때보다 11명이 늘어난 26명이었고, 여기에다 전문위원과 행정관, 실무요원을 포함한 전체 인원은 117명이 늘어난 208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당시는 외환위기 상황이었던 만큼 DJ는 가능한 한 인수위를 빨리 출범할 수 있도록 설치령 통과를 서둘렀다. 그래서 15대 인수위는 활동기간도 두 달(1997.12.26∼1998.2. 26)을 꼭 채워 역대 인수위 중 가장 길었다.

15대 인수위는 6개 분과로 구성됐는데, 정책의 총괄·기획·입안 및 긴급현안 처리는 정책분과에 전담시켰다. 인수 대상으로는 정부 전 부처를 망라했다. 안기부(통일·외교·안보분과)와 대통령 비서실(정무분과)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상 첫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진 데다, 외환위기를 불러온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에 15대 인수위는 가위 패전국 정부를 접수하러 나선 ‘점령군’의 위세였다. 정부 관계자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선 호통과 고성이 끊이지 않아 국회 국정감사장을 방불케 했다. 공무원들 사이엔 “우리가 업무 인계하러 온 거냐, 조사받으러 나온 거냐”는 불만이 터지면서 인수위의 월권(越權) 시비가 일었고, 홍사덕 당시 정무1장관은 “인수위 활동이 1980년 전두환 장군이 이끌던 국보위를 연상시킨다”며 가시돋친 비난을 퍼부었다. 이 때문에 DJ는 “인수는 제대로 하되, 자세는 최대한 낮추라”고 인수위에 당부했지만, ‘간’을 맞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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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형삼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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