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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경제관리개선조치 1년, ‘북한식 개혁’ 현주소

자본주의와 ‘제한적 동거’로 주체사회주의 실리 모색

7·1경제관리개선조치 1년, ‘북한식 개혁’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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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은 지난해 7·1 경제관리개선조치와 경제특구 지정 등을 통해 자본주의와의 ‘동거 실험’에 들어선 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7·1 경제관리개선조치 1년을 맞아 북한의 경제실상과 개혁정책의 속셈을 알아본다.
7·1경제관리개선조치 1년, ‘북한식 개혁’ 현주소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뤄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북한식 개방·개혁 정책 추진을 예고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으로 한반도 평화에 먹구름이 끼인 지 오래다. 비록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전제로 핵개발 포기 의사를 밝혔지만, 제네바합의 이후 북한에 대해 불신하고 있는 미국이 체제보장을 해줄지는 불확실하다.

한국은 북·미·중 3자회담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적 틀이 마련되기를 기대했지만, 껄끄러운 남북관계나 한미관계 때문에 답답할 뿐이다. 현재 진행중인 6·15 남북정상회담의 뒷거래에 대한 특검의 수사결과에 따라서는 남북관계가 더욱 혼돈에 빠질 우려가 높다.

세계적인 반전 분위기에도 미국은 이라크전에서 승리했고 미국의 다음 공격목표가 자국일 수 있다는 판단이 북한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핵무기 개발 위협을 통해 한국, 미국, 일본에 대해 유리한 협상고지를 차지하려고 한 ‘벼랑 끝 전략(brinkmanship strategy)’이 오히려 북한에 역풍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은 보수동맹체제를 이전보다 더욱 견고하게 굳히고 있고, 이를 견제해주리라고 본 노무현 정권은 부시의 벽을 넘기는커녕 생존을 위해 미국에 매달려 있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예전의 북한이 아니다. 물론 북한은 워낙 폐쇄된 사회라 변화가 일어나도 그 내막을 적확히 알기 어렵다. 그러나 바깥세계로부터의 고립과 단절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보이지 않는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다. 이 변화는 1990년대 식량부족과 대량아사를 통해 극명하게 표출된 북한의 경제위기가 낳은 ‘개혁과 개방’ 정책에 기인한다. 특히 2002년 7월1일 추진한 경제관리개선조치는 이미 북한에 사회경제적 전환을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변화를 시장경제로의 진전이라고 평가할 것인가 아니면 계획경제로의 복귀를 목적으로 한 포석으로 해석할 것인가. 이에 대한 평가는 그간 북한이 보여준 일련의 개방·개혁 노선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 기초할 때만 가능하다. 이 글의 잠정적인 가설은 북한이 7·1 경제관리개선조치(이하 7·1조치)를 통해 계획경제의 복구를 위한 시장적 요소를 도입했으나, 실제로는 자본주의와의 제한적 동거를 통해 주체사회주의의 실리를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폐 기능 강화, 임금·물가 현실화

2002년 7월1일 북한은 물가와 임금을 대폭 인상했다. 또 가격개혁을 단행해 국가지정 가격을 농민시장의 가격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조정했다. 이 조치로 인해 쌀값은 8전에서 44원으로 550배 인상됐고, 전반적인 물가도 적게는 5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까지 인상됐다. 아울러 노동자들의 임금도 인상돼 그간 100~200원 하던 임금이 2000~6000원으로 올랐다. 이와 동시에 환율도 달러당 2.2원 수준이던 것을 150원 수준으로 높였다. 일부 배급제도 폐지했고, 국가가 제공했던 사회적 서비스도 쌀과 주택을 제외하고 대폭 축소했다.

임금과 물가를 동시 인상한 정책의 목표는 사회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전개되던 무상교육, 무상치료, 무상보험 등 가부장적 사회복지체제를 일정 정도 완화하고, 물가를 실제 시장가격에 상응하게 조정하려는 것이다. 이는 화폐의 기능을 강화해 임금과 물가를 현실화하겠다는 의도이다. 결국 노동자들에게 일한 만큼의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이자, 수요와 공급의 기능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시장’을 도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조치는 세 가지 목적을 갖는다. 첫째, 국가 유통체계의 정상화다. 북한은 1994년 이후부터 식량과 물자의 공급 부족에 시달려 그 결과 정상적인 배급체계가 붕괴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품은 국가 유통체계를 이탈해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농민시장을 통해 공급되었다. 농민시장은 개인 텃밭이나 부업에서 나온 물건을 제한적으로 판매하던 데서 벗어나, 일부 공산품까지 거래되는 등 사실상의 ‘자연시장’으로 기능했다. 이는 계획경제 체제인 북한 경제가 사실상 붕괴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1998년 이후 국가체제를 재정비하고 계획경제체제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농민시장을 통제하고 정상적인 공급망을 복구시켜야만 했다.

둘째, 노동의욕의 상실과 직장이탈 등을 단속하고 동시에 ‘놀고 먹는 현상’, 즉 장사를 통해 불법적 수익을 올리는 비(非)사회주의적 행태를 타파하는 것이다. 1994년 이후 북한의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주는 적은 임금으로만 생활하기 어려워졌다. 또 공장이 자주 조업을 중단하자 부업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불가피하게 ‘놀고 먹는 현상’이 나타났고 다시 공장조업 악화와 노동의욕 상실의 악순환을 가져왔다.

셋째, 계층분리 현상의 방지이다. 1990년 초반 이래 지속된 경제 위기는 비사회주의적인 영리활동을 통해 이익을 얻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을 만들어냈다. 전자가 주로 당 및 국가의 상층부, 유통이나 무역에 종사하는 계층 등이라면 후자는 사무원, 도시노동자, 열성당원 등이다. 당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사람 역시 후자에 속한다. 7·1조치는 전자에 대해서 더 이상 비사회주의적인 개인 부업이나 부정행위를 통한 이익을 얻을 수 없게 하고, 후자에 대해서 열심히 일하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결국 7·1조치는 상층부 계층과 비사회주의적 영리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대대적 단속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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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현진 서울대 교수·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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