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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주의적 애국’에서 해답 찾아라

박근혜 정부의 국민통합 방법론

‘공화주의적 애국’에서 해답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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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다. 2004년 교과부는 “2009년까지 358개 대학 중 87곳을 없애겠다”고 발표했으나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다. 시혜성 복지혜택을 늘리기는 쉬워도 감축하긴 어려운 것처럼, 대학·대학원 정원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래도 해야 한다. 이 시한폭탄의 뇌관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학부 정원은 지금보다 30% 이상, 석사과정은 40% 이상, 박사과정은 50% 이상 줄이는 게 적정하다.

고도성장 시대에는 치솟는 기대 수준을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고도성장이 끝난 오늘날에는 무한상승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서 오는 허탈감과 박탈감이 세대갈등과 계층갈등의 주원인이 된다.

청년실업으로 인한 분노엔 기성세대가 책임져야 할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면에는 청년층의 기대 수준 폭발이 도사리고 있다. 세계 최고 부국(富國)의 하나인 독일의 대학 진학률은 39%다. 한국은 무려 80%가 넘는다. 그러니 어떤 정권과 체제도 이런 사회를 만족시킬 수 없다. 이제는 사회 전체가 저성장시대에 맞게 사고(思考)를 전환해야 한다.

‘헝그리 사회’ → ‘앵그리 사회’

대책 없이 대학 진학률을 높여놓은 과거 교육정책의 처절한 실패는 기성세대가 책임져야 한다. 기성세대는 열심히 일하고 돈 벌기에 바빴기에 자녀교육을 소홀히 했다. 버릇없이 자란 아이들은 사회에 나와서도 버릇없이 행동한다. 격변의 사회가 가져온 후유증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보통신기술(IT) 환경의 발달이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과도한 인터넷 사용은 인지(認知)를 담당하고 충동을 절제하는 뇌의 전두엽 및 전(前)전두엽 기능을 약화시킨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 능력을 떨어뜨려 괴담과 선동에 취약하게 만든다. 오늘날의 인터넷 공간을 보라. 그곳은 언제나 분노와 증오로 넘쳐난다. 다른 나라에서도 유사한 경향을 보이지만 유독 한국이 심하다.

정신의학자들에 따르면 분노는 어린 시절에 겪은 심리적 상처와 좌절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기 정체성에 문제가 생기면 분노가 분출하고 흑백논리적으로 사고하기 쉽다.

한국 사회는 치열한 경쟁 사회다. 경쟁은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승자와 패자를 확연히 갈라놓는다는 문제가 있다. 많은 사람이 청춘을 바쳐 덤빈 공부에서 극소수만 ‘승자’가 될 수 있었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한국인의 생활여건은 크게 향상됐지만, 상대적 박탈감과 패배의식도 극심해졌다. 전상인 서울대 교수는 한국 사회가 ‘헝그리 사회’에서 유례없는 ‘앵그리(angry) 사회’로 변환됐다고 설명한다.

한국 사회는 정신적, 시간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러다가 정보화 시대를 맞았다. 가상공간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공간이 창출되자, 그곳에 증오의 에너지를 분출시켰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해방공간’을 마음껏 누린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성숙한 행동을 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판치는 불신과 증오는 역대 정부가 국민을 호도한 업보이기도 하다. 여기에 다른 요소들이 가세하면서 한국은 정신적 무정부 상태를 맞게 됐다. 가상공간에서 배태된 이런 분위기가 실제 사회인 오프라인으로 전이(轉移)되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사회통합 없이 한국 사회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가상공간에는 대한민국 국민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온라인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대처해야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천방지축으로 행동하는 일부 청년들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한다. 저명한 IT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가 얘기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출현한 것 같다. 중우(衆愚)정치의 전형적 현상이다. 정치권은 이러한 청년들을 옳은 방향으로 인도하긴커녕 오히려 비위를 맞추는 데 급급하다.

어느 나라에나 지역감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의 지역감정은 도를 넘은 형태로 분출되고 있다. 지역감정이 표면화한 것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다. 1963년 5대 대선에서 박정희는 호남의 지지에 힘입어 15만 표 차이로 윤보선 후보를 힘겹게 따돌렸으면서도 이후 노골적인 영남 우대 정책을 펴나갔다. 집권세력 강화와 경제개발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해도 지나쳤다.

지역감정 해소에 총력을

특히 군부 인사에서 영남 편중이 심했다. 1975년 장성 진급자 22명 중 영남 출신은 17명이었다. 호남 출신은 전남과 전북 출신을 한 해 걸러 한 명씩 진급시키는 구조였다. 박정희 정부는 강력한 군부를 통제하기 위해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수뇌부를 구성했다.

박 정권은 군부 요직을 차지하고 있던 이북세력을 숙청하고 그 자리를 영남 군맥으로 채웠다. 군 최고위층 통제를 위해 영남 출신의 2~3류 인사들로 채우는 용인술을 구사했다. 그 결과는 심각했다. 비대해진 영남 군벌은 갈등을 제어할 줄 몰랐다. 그 결과 박정희 정권은 10·26이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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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규형 |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gkahng@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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