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한중관계는 광복 70년 역사에서 가장 우호적인 시기로 평가받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가미래전략, 통일전략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중국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이 한중관계와 관련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합니다.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중관계가 과연 우호적인가요? 중국은 북한을 두둔합니다. 후견인 노릇을 자처하면서 북한 정권이 지탱하도록 도와줍니다. 세계 무대에서 평양을 옹호하고요. 남북 간의 사생결단이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외적 환경입니다. 북한을 두둔하는 나라는 우리와 우호적일 수 없습니다. 중국이 강해지는 데다 경제적 의존이 커지니 친화적으로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중국이 북한을 돕는 적국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한중관계가 우호적이라는 것은 물결 같은 것일 뿐입니다. 바다는 그대로 있는데 물결 하나가 친다는 얘기예요.
박근혜 정부의 결정적 실책은 중국을 챙기느라 한미관계에는 소홀한 것 아니냐는 인상을 준 점입니다. 미국은 노무현 정권의 반미 정책에 충격을 받은 바 있습니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은 공식적으로 발표한 글에서 한국을 베트남보다 아래에 뒀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관계를 복구해놓았는데, 현 정부가 중국에 편향된 태도를 보인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실수입니다. 중국 인사들에게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은 미국이라고 얘기하지 않은 것도 실책입니다. 미국이 섭섭하게 여겼겠으나 미국과의 관계는 괜찮습니다. 6·25전쟁 때 수많은 미군이 전사했습니다. 실책이 있더라도 혈맹을 강조하면서 대화하면 풀리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한일관계예요. 한국 대통령이 취임한 후 해외 방문 순서가 전통적으로 미-일-중-러였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덜컥 일본보다 중국에 먼저 갔습니다. 외교는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일본은 기분이 몹시 상했을 겁니다. 일본 덕분에 우리나라가 살아남았습니다. 6·25전쟁 때 일본의 역할이 없었다면 북한에 점령돼 지금껏 김일성 왕조 지배를 받았을 수도 있어요. 당시 일본 물자를 공급받아서 북한과 싸운 겁니다. 지금도 일본의 중요성은 여전합니다.
차기 대통령은 일본에 먼저 갈까요, 중국에 먼저 갈까요. 일본을 먼저 방문하면 중국이 불쾌해할 공산이 큽니다. 중국인 관광객만 덜 와도 GDP(국내총생산)가 줄어드는 게 현실입니다. 서울 제주도뿐 아니라 상당수 지방도시의 소매업이 중국 관광객에 의존합니다. 또 중국을 먼저 방문한다? 일본은 ‘한국이 우리를 격하하기로 결심했구나’ 여기겠죠. 딜레마입니다. 대책이 없어요. 박근혜 정부가 중요한 일을 섣부르게 결정해버린 겁니다. 내가 사석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대놓고 맹비난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더라도 우리 대통령은 미국-일본-중국 순서로 방문하는 게 맞습니다. 중국 쪽에서 ‘베이징에 먼저 와달라’고 부탁하게 해야 합니다. 강국과 작은 나라 관계는 한번 미끄러지면 다시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건, 한국 정부가 중국에 스스로 진상한 꼴이에요. 외교장관이 한심한 행동을 한 겁니다. 외교관들에게 물어봤더니 윤병세 장관이 ‘디테일 제왕’이라고 해요. 시시콜콜한 거 잘한다는 거예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에서 국빈으로 환대받는 등 겉모습은 좋았죠. 박 대통령도 디테일에 강한 분 아닙니까. 약점은 큰 것을 보는 데 약하다는 것이고요.”
한국과 베트남의 ‘다른 역사’
▼ 미국은 한국이 친(親)중국으로 갈 것을 우려하는 듯합니다. 안보관계 신뢰도에서 베트남보다 한국을 낮게 보는 듯한 징후가 최근에도 구체적으로 확인됩니다.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원자력과 핵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워싱턴은 2014년 초 체결한 미국-베트남 간 원자력협정에서 베트남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암묵적으로 인정했습니다. 한미 간 협상도 진행 중인데 베트남과 비교해 재처리 조건을 더 까다롭게 해서 허용하는 쪽으로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질문은 우리의 국가 미래와 관련해 아주 중요합니다. 미국은 한국과 베트남의 차이를 잘 압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실패한 이유를 살펴보면서 역사 공부를 제대로 했습니다. 베트남은 3000년 동안 중국과 싸워온 민족입니다. (중국에 대한) 경계심과 적개심이 하늘을 찌릅니다.”

복거일 씨는 도덕이 허물어지면 아무것도 새로 세울 수 없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