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패한 이유를 차근차근 따져보죠. 18대 국회는 원 구성에서부터 여야 간 대립으로 한 치도 못 나아갔습니다. 이 때문에 무려 83일간 허송세월을 했는데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죠.
“미국이나 유럽 의회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국회의장의 실질적 권한이 별로 없어요. 원 구성과 관련해선 특히 그래요. 여야가 서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구성하겠다, 좋은 자리 더 차지하겠다고 싸워도 이를 중재할 수단이 별로 없는 거죠. 의장이 협박을 해도, 아무런 무기도 없는 협박을 누가 무서워할까요. 결국 나는 언론에 호소해 여론의 압력으로 싸움을 멈추게 하는 방법밖에는 없었죠. 그때 언론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 예전 국회의 원 구성과 비교한다면.
“나는 5선 의원으로 제법 오래 국회에 있었는데, 이번처럼 여야가 ‘지엽말단적인 일’로 싸움하는 건 본 적이 없어요. 얼마나 싸웠으면 국회 문 여는 데만 83일이나 걸렸겠어요?”
▼ 정쟁(政爭)이 더 심화되는 쪽으로 국회가 ‘퇴행’한 이유는 뭔가요.
“10년 만의 ‘자리바꿈’이어서 여야 모두 새로운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집권당이었다가 소수 야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은 자신에게 닥친 변화를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한 것 같고, ‘반DJ 반노’의 야당에서 집권 여당으로 바뀐 한나라당은 여전히 투쟁적인 듯했어요. 또한 지난 총선 공천 과정에서 여야의 중진-원로그룹 상당수가 소멸했어요. 이것이 예전 국회의 여야 간에 존재했던 다양한 대화채널의 상실로 이어졌죠. 여기에다 원 구성이 늦어지면서 국회 일정이 상당히 쫓기게 되어 여야간에 서로 얼굴 익힐 시간도 없었습니다. 여야 협상을 중재하면서 ‘여야 간에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이 이렇게 없는가’라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어요. 한나라당 내부적으로는 친박계는 당내에서 소외되었다고 보고 적극 나서지 않으니 타당과의 관계에는 더 나서지 않게 되죠. 민주당 내부도 복잡하긴 마찬가지고요. 서로 적(敵)도 아니고 원수도 아니고 의견의 차이일 뿐인데, 앞으로는 같은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잘 조율해 나아갔으면 해요. 이런 분석은 아마 내가 처음일 겁니다.(웃음)”
“헌법이 문제다”
김 의장은 ‘예산안 처리 과정과 결과’에 대해선 “경제위기를 감안했을 때 12월12일 경 예산안을 통과시킨 건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이 때 김 의장은 예산안을 직권상정해 통과시켰으나 야당 측은 연말연시 여야의 쟁점법안 충돌 때와는 달리 직권상정에 대한 반발이 크지 않았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선 예산을 빨리 집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정세균 민주당 대표에게 12월12일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예산안을 처리한다고 누누이 못 박아 두었기 때문에 야당도 예산안 합의를 서둘렀고 직권상정을 막지는 못한 거죠.”
▼ 언론은 이번에도 국회가 헌법이 정한 예산안 처리 시한을 넘겼다고 비판했는데요.
“의원들이 더 분발해야겠지만 근본적으로는 1987년 체제의 현행 헌법 자체의 문제입니다. 개헌이 필요해요.”
▼ 헌법의 어떤 점이 현실과 맞지 않나요.
“정부가 10월2일 다음해 정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는 60일간 심의한 뒤 12월2일까지 처리해야 해요. 정부가 다음해 1월1일부터 바로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실행계획을 12월 한 달간 마련하라는 취지죠. 그런데 헌법이 정한 60일 심의기간 자체가 너무 부족해요. 헌법이 개정된 1987년 무렵 20조원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정부예산 규모에선 60일이면 충분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정부의 살림규모가 300조원까지 불어났기 때문에 60일 만에 제대로 검토하기가 어려워요. 더구나 9월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 대(對)정부질의 등 다른 국회 일정으로 예산 심의 기간은 실제로는 30~45일 정도로 줄어드는 게 다반사예요. 그러니 매년 부실 심의, 늑장 통과가 반복되는 거죠. 개헌을 해서 국회가 4월부터 예산 심의에 착수해 90일 이상 정부 예산을 꼼꼼히 처리하도록 해야 합니다.”
▼ 예산 심의와 함께 국정감사는 국회의 중요 기능인데, 2008년 국감은 어떻게 평가하나요.
“별로 잘된 건 없지 않나요? 국감에서 눈에 띌 만한 게 있었나요?”
▼ 쌀 직불금 문제….
“국감이 갈수록 형식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구조적으로 문제점이 있는 것이, 20일 동안 500개 피감기관을 상대로 몰아치기를 하니까 폭로와 호통이 난무할 뿐 내실 있는 국감이 되기가 쉽지 않은 거죠.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개선도 필요합니다.”
“필요하다면서 준비는 소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청와대-정부-국회의 관계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자주 나오고 있다. 야당에선 “국회가 청와대와 정부에 지나치게 종속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집권층 내부에선 “정부와 국회의 손발이 안 맞는다. 국회의 무능과 비협조로 정부의 정책집행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 의장은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정답은 아니다. 정부와 국회는 한통속이면서 동시에 딴 통속이 되는 게 가장 좋은 관계”라고 말했다.
“정부가 일하는 방식과 국회가 일하는 방식은 달라야 합니다. 정부는 합목적적으로 실행 위주로 일해야 해요. 국회는 절차적 합리성을 더 따져야 합니다. 또한 집행에 따른 불이익이나 소외를 최소화하는 데 주목해야 하죠. 세계 어느 나라든 정부와 국회 간에는 그러한 역할 분담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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