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을 앞두고 은밀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오월회(五月會)’. 과연 그 정체는 무엇일까. ‘참석(예정)자 명단’에 포함된 이들은 대부분 친 이회창 성향의 사회지도층 인사들. 하지만 그들은 독도사랑을 위한 단순한 친목모임이라고 주장한다. 오월회는 그들의 주장처럼 단순 친목모임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새롭게 움직이는 이 후보의 사(私)조직 또는 친위(親衛)조직인 것일까.
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재 만리장성 3층 크리스탈룸에서 ‘오월회’ 회원들이 잔을 들고 건배를 외치고 있다. 이 모임은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 열린다.
각 후보들을 중심으로 한 사조직의 결성과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도 이를 알리는 신호다. 하지만 사조직 활동은 ‘극비’를 원칙으로 한다. 모임도 은밀하면서 조심스럽다. 행여 ‘적’에게 알려질세라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앞세워 실체를 숨기는 건 기본이다. 사조직은 이유를 불문하고 존재만으로도 현행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89조의2 ‘사조직 등을 이용한 선거운동의 금지’ 조항이 그 근거다. 1997년 11월14일 신설된 법 조항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선거에 있어서 후보자를 위해 연구소, 동우회, 향우회, 산악회, 조기축구회, 정당의 외곽단체 등 그 명칭이나 표방하는 목적여하를 불문하고 사조직 기타 단체를 설립하거나 설치할 수 없다’.(1항)
또 ‘누구든지 선거운동 이외의 목적으로 설립되거나 설립된 단체 기타의 조직이나 그 구성원에게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 금품·향응 기타의 이익을 제공하거나 이를 요구하거나 받을 수 없으며 당해 단체나 조직 또는 그 대표의 명의로 선거운동을 하거나 하게 할 수 없다’.(2항)
창, 사조직 소문만 무성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당선 취소사유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회창 후보는 1997년 대선 당시 “사조직은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그로부터 5년.
이 후보의 사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공식 후원조직인 ‘부국팀’이 유일하다. 이 후보는 ‘부국팀’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후원회 업무에만 국한하도록 특별지시를 내릴 정도로 신경을 써왔다.
때문인지 지금까지 언론에 노출된 이 후보의 사조직은 없다. ‘100인회’ ‘마포팀’ 등 소문만 무성했을 뿐이다. 과연 이 후보의 사조직은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새롭게 등장한 ‘오월회’는 어떤 조직일까.
‘오월회’가 조직된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2001년 9월24일 창립준비위원회를 거쳐 10월29일 발기(發起) 총회를 마치고 출범했다. 장소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재 중식당 만리장성. ‘오월회’라는 이름은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 만난다고 해서 정해졌다고 한다. 요일은 물론 만남 장소와 시간도 매번 동일하다.
대외적으로는 ‘독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통한다. 자체 사무실도 있다. 서울과 대구 두 곳이다. 100여 명에서 시작한 회원 수는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1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3000명 이상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9월 울릉도와 독도를 방문한 오월회 회원들이 ‘독도수호결의문’을 채택한 후 결의를 다지는 모습.
또 ‘신동아’ 취재팀이 입수한 창립준비위 ‘참석자 명단’에 오른 사람 대부분이 이 후보와 특별한 인연이 있거나 가까운 인물들이라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창립준비위 인원은 모두 104명.
명단에는 이 후보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이정락 변호사를 비롯, ‘4월회’ 전 회장 안동일 변호사, 이재후 변호사, 전 법제처장 황길수 변호사 등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이정락-안동일-이재후’ 변호사는 이 후보의 ‘법조 3인방’으로 알려져 있다.
1997년 ‘이회창 사조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가 자진 해산했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약칭 새미준)의 당시 공동회장 5인도 눈에 띈다.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와 엄규백 양정고 교장, 이인규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장주호 경희대 교수 등이 바로 그들. ‘오월회’의 대표인 이 회장은 ‘새미준’ 공동회장 겸 사무총장을 맡았었다.
명단에는 ‘새미준’과 관련된 인사들이 더 있다. 이원희 안건회계법인 부회장, 손용해 전 4월회 사무총장은 감사를, 유회국 예비역육군소장과 구종서 전 삼성경제연구소연구위원, 임응식 전 KBS 동경총국장 등은 중간간부였다.
사실상 ‘새미준’ 임원 대부분이 ‘오월회’ 명단에 올라있는 셈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오월회’를 ‘새미준’의 후신(後身)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 후보 아들 정연씨 병역비리 은폐대책회의 논란에 휩싸여 있는 김길부 전 병무청장과 서일성 ‘국가를 사랑하는 모임’(약칭 국사모) 전 회장은 특히 주목된다.
자칫 ‘이 후보와 김길부’ ‘이 후보와 국사모’간에 연결 고리로 오인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이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억측’이라는 반응이다. 이 회장은 모임과 관련, ‘이 후보와 무관함’을 강조하면서 “오월회는 독도사랑을 국민운동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만든 순수한 친목모임”이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와는 물론이고 정치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 회장의 설명이다.
“나는 1977년 자연보호중앙협의회가 설립될 당시부터 자연보호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다. 1981년부터는 해양소년단을 직접 이끌었다. 오월회는 그 연장선에서 만든 순수한 모임일 뿐이다. 그저 독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난 한나라당 당원도 아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후원회 차원에서 이 후보를 돕고 있기는 하지만 이 모임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 회장은 명단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문제의 명단은 ‘참석자 명단’이 아니라 ‘참석예정자 명단’에 불과하다.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을 내가 임의로 작성한 것이다. 실제로 참석한 사람들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게 이 회장의 설명.
이 회장은 김길부 전 병무청장과 서일성 국사모 전 회장이 명단에 포함된 것에 대해서도 “김 전 청장은 친한 친구이고, 서 전 회장은 중학교 동기동창”이라며 “개인적 친분 때문에 명단에 포함된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모임에 단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또 조만간 ‘오월회’를 사단법인으로 공식 등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독도사랑’을 범국민운동으로 확대시켜 나가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회장은 “다른 뜻이 있다면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겠느냐. 그만큼 순수한 모임이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명단에 포함된 인사들을 대상으로 확인 취재한 결과 이 회장의 주장은 일정 부분 사실에 부합했다.
안동일 변호사는 “자연보호중앙협의회 관계자 등 이수광씨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끼리 모인 친목단체로 알고 있다”며 “한 번도 (모임에) 간 적이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 요즘에는 후원회 사무실도 자주 못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는 “오월회라는 모임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서 “이수광씨는 개인적으로 가끔 만나기는 하지만 (그와) 무슨 모임을 갖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여름까지 모임에 참석했다”는 고승희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도 “평소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이 회장이 도와달라고 해서 시간 날 때 몇 번 참석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이어 “모임에 참석하는 이유는 회장을 도와주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주장처럼 ‘명단’은 실제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인사들도 포함돼 있어 ‘참석자 명단’이라기보다는 ‘참석예정자 명단’일 가능성이 높다. 또 이 회장의 개인적인 친분을 중심으로 모인 모임인 것도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취재과정에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점도 발견됐다. 일부 인사의 경우 명단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 자체에 지나칠 정도로 부담을 나타냈다.
한 인사는 “거론 자체를 원치 않는다”며 발끈했다. “첫 모임에 나갔을 뿐 그 후에는 가본 적이 없다. 지금 어떻게 움직이는지 전혀 모른다. 정치활동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 내 이름은 빼달라. 거론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
또 다른 한 인사는 “‘오월회’라는 이름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가 그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서둘러 말길을 돌렸다. 이 회장의 주장처럼 ‘오월회’가 ‘독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단순한 친목모임’이라면 전혀 의외의 반응들인 것이다.
‘오월회’는 대체적으로 2시간 남짓 행사를 진행한다. 오후 6시부터 시작해 초빙연사의 특강을 듣고 간단한 식사를 한다.
그 중간에 새로 참여한 인사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있다. 식비는 1인당 2만원씩 갹출하는 게 원칙이지만 더 내는 사람도 있고, 덜 내거나 안 내는 사람도 있다.
“매번 적게는 4~5명, 많게는 십 여명씩 새로 오는 아주머니들이 있다. 한 회원이 주변 친한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것이다. 그들은 공짜로 식사도 하고 특강도 듣고 간다”는 게 식당 관계자의 전언.
특강주제는 ‘독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독도국제법 무엇이 문제인가’ ‘독도안보 무엇이 문제인가’ ‘독도영유권 무엇이 문제인가’ ‘대한민국 정통성과 독도문제’ 등이다.
그런데 강사들의 성향이 거의 비슷하다. 김범주 한국행정법학회장, 김윤주 전 비상기획위원회부위원장, 이종구 전 국방부장관, 안응모 전 내무부장관, 곽상경 고려대국제대학원장,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 등 ‘보수주의’ 성향이 강한 인사들로만 짜여 있다.
이들은 대부분 친 이회창 성향이다. 특히 곽상경 대학원장, 안응모 전 장관 등은 아예 공개적으로 이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정체성 논란 불가피할 듯
그러니 강연내용은 당연히 현정부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 9월30일 모임에 강사로 나선 지만원 소장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으로 전해졌다.
모임을 지켜 본 한 관계자의 말이다. “지만원씨의 강의내용은 현정부 비판 일색이었다. 앞선 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관계자는 이어 “누가 봐도 단순한 친목모임은 아니다. 뭔가 정치적 목적이 분명히 있다. 최근에는 회원 수를 늘리려고 여러가지 방법을 모색하는 것 같다. 오는 대선에서 어떤 식으로든 한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9월7일부터 9일까지 2박3일 동안 이 모임 회원 100여 명은 ‘독도종합학술탐사단’이라는 명목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방문했다. 마지막 날 ‘독도수호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누가 봐도 ‘학술탐사단’ 같아 보이지 않았다. 조직원들의 단합대회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한 행사였다. 낮에는 관광차 사찰과 섬을 돌아보고, 밤에는 여흥을 즐겼다.
첫날 밤 여흥시간. 조별로 나눠 장기자랑을 시작할 무렵 이 회장이 회원들에게 남긴 인사말 겸 당부다.
“여러분, 우리는 12월19일 대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선단별(조별)로 대항해 승리한, 막강한 선단은 내일부터 선두가 될 것입니다.…대한민국은 원칙과 질서가 없는 나라가 돼 지금과 같이 엉망진창입니다. 앞으로는 법과 질서, 원칙이 바로서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독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순수한 모임이라는 주장과는 사뭇 동떨어진 언사다. ‘독도사랑’과 ‘대선’은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와 같은 의문이 명쾌하게 풀리지 않는 이상 이 후보 사조직 여부를 둘러싼 ‘오월회’의 정체성(正體性) 논란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