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府’와 ‘섀도 캐비닛’으로 활동하는 국정원 국내파트
- 국정원의 국내정보 활동은 경찰청 정보국과 거의 중복
- 기능 상실된 정책 스크린에 과도하게 집중
- 경찰의 불만 “국정원은 1등 기관이고 우리는 2등 기관인가”
- 고영구 체제에서도 對共과 工作 파트는 회생할 기미가 없다
- 견제와 균형이 무시되는 국가정보체계
- ‘햇볕정책 친위부대’ 3차장 산하를 2차장 산하와 통합하라
- 국정원 기조실의 파행 운영
- 국정원 직원 윤리헌장 무시한 국정원 간부들
- 감찰파트를 ‘국정원 내의 국정원’으로 만들라
국회는 노대통령에게 반대하는 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어쨌든 민의(民意)를 대변하는 기관이다. 이러한 국회는 노무현 대통령이 고영구(高泳耉·66)씨와 서동만(徐東晩·47)씨를 국정원장과 국정원 기조실장에 임명하려 했을 때 반대했다. 야당은 물론이고 일부 여당 의원들도 반대의 목소리를 냈는데, 노대통령은 두 사람의 임명을 감행했다.
여기서 ‘눈 밝은’ 사람들은 서동구(徐東九·66) KBS 사장 해임과 비교하며 “이상하다”고 지적한다. 서동구씨는 노무현 후보의 언론특보를 지낸 사람으로 노무현 정부 출범 후 KBS 사장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KBS 노조가 서씨의 KBS 사장 취임에 반대했다. 노조의 반대가 거세지자 노무현 정부는 슬그머니 서씨로부터 사표를 받고 대신 정연주(鄭淵珠·57)씨를 추천해 후임 사장에 임명했다.
여기서 ‘눈 밝은’ 사람들은 “노대통령은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가 반대하는 사람은 ‘기어코’ 임명하고, 노조가 반대하는 사람은 해임했다. 왜 노대통령은 국회의 결정은 외면하고 노조의 의견은 수용하는가? 민주주의 원칙에서 본다면 노대통령은 참으로 이상한 결정을 내렸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 사정에 보다 밝은 소식통들은 이러한 의견을 배제했다. 이들은 “서동구 사장과 고영구 원장 건을 바로 비교하는 것은 넌센스다. 그러한 비난 속에는 고원장이 갖고 있는 진보성향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지금 국정원은 손댈 곳이 너무 많은 조직이다. 국정원에는 ‘고통스런’ 개혁을 거부하려는 세력이 적지 않은데, 이들은 부지불식간에 고원장 체제에 반대하는 의견을 전파하고 있다. 고원장이 국정원장으로 적절한지는 그가 국정원을 어떻게 개혁하는지 지켜본 후 판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고영구 국정원 체제가 출범한 것은 지난 5월1일이었다. 그리고 한 달 이상이 지나자 신중한 의견을 내놓았던 이들은 “고영구 체제에서 국정원 개혁은 기대하기 힘들다. 고영구 원장은 진보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대신 국정원을 개혁하지 않는 쪽으로 타협한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국정원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기에, 이들이 고영구 시대의 국정원 개혁은 물 건너갔다고 말하는 것일까.
기자는 익명을 전제로 국정원 사정에 밝은 전문가를 만나 국정원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취재하였다. 이러한 취재에서 나온 것 중에서 공통된 것을 추려 정리한다. 그러나 국정원은 최고의 국가 정보기관인 만큼 기밀을 요하는 것은 상세히 밝히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대통령府, 섀도 캐비닛
국가정보원은 2차장(朴丁三)이 이끄는 국내파트와, 1차장(廉燉載)이 지휘하는 해외파트, 그리고 3차장(金保鉉)을 사령탑으로 하는 대북파트로 나뉘어진다. 그리고 이 세 개 파트를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기조실(실장·서동만)이 있다. 먼저 국내를 무대로 활동하는 국내파트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국정원 사정에 밝은 사람들은 국정원 국내파트를 ‘대통령부(府)’나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으로 표현한다. 대통령부라고 하는 것은 국정원법 제2조가 국정원을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규정한 데서 나왔다.
청와대는 모든 행정부처를 지휘하는 최고 기관이지만 ‘머리’만 집중돼 있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줄 ‘발’이 없다. 물론 청와대가 요청하면 행정부처는 성심성의껏 지시사항을 이행한다. 그러나 이들은 원하는 시간 내에 지시 사항을 마무리짓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청와대가 궁금해하는 것에는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많다. 그런데 행정부처를 통해 지시하면 대개 ‘업무 협조전’을 만들어야 하므로 기밀 유지가 되지 않는다. 청와대가 듣고 싶은 것은 반대의 목소리인데, 행정부처 공무원들은 ‘예스맨’ 기질이 강해 제대로 민심을 전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 동원하는 것이 국정원 국내파트다. 국정원 국내파트는 행정·사법·입법의 모든 국가기관에 정보관을 출입시키고 있다. 대기업체와 대형 병원·언론사 등 주요 기관에도 출입시킨다. 지방에는 광역 시·도 단위로 지부가 있어 지방 사정도 한 눈에 알아볼 수가 있다.
더구나 국정원은 일반 행정은 집행하지 않으므로 각 기관이 하는 일에 이해(利害) 관계가 걸려 있지 않다. 그러니 비교적 객관적인 자리에서 보고가 가능하다.
정보관과 분석관은 정보의 객관성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받은 사람들이다. 더구나 국정원은 기밀 유지에 있어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잘 훈련된 조직이다. 따라서 청와대가 뭔가를 신속·정확하고 은밀하게 알아보려고 할 때 제격이다. 이런 이유로 국정원 국내파트는 대통령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섀도 캐비닛은 원래 의원 내각제를 하는 나라에서 야당이 집권을 대비해 미리 만들어둔 내각을 뜻한다. 그러나 국정원의 별명으로 쓰이는 섀도 캐비닛은 다른 뉘앙스를 갖고 있다.
섀도(Shadow)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실물을 따라다니는 ‘그림자’이다. 국정원 국내파트는 국무총리가 이끄는 진짜 캐비닛(내각)을 24시간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며 스크린 하기 때문에 ‘섀도 캐비닛’으로 불리고 있다.
분단이 가져온 정책 스크린 기능
내각을 출입하는 국정원 정보관은 크게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첫째는 분석관과 함께 그 부처에서 결정한 정책이 올바른지를 검토하는 ‘정책 스크린’ 기능이다. 둘째는 그 부처에서 다루는 기밀이 누출되지 않는가를 체크하는 ‘보안(保安)’ 기능이다.
전문가들은 남북대치라는 분단 현실 때문에 국정원 국내파트가 각 부처에서 다루는 정책을 스크린하는 것이생겨났다고 한다.
국정원은 1961년 6월10일 ‘중앙정보부(중정)’라는 이름으로 창설됐는데 이때 한국은 보안이 엉망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은 때라 곳곳에 북한 공작원이 박혀 있었다. 기무사의 전신인 육군 CIC의 대공수사관 명부가 통째로 북한에 넘어가고, 육군 사단장의 부인이 북한 공작 조직에 포섭되기도 했다. 따라서 중정을 창설했을 때는 국가 정보가 북한에 넘어가는 것을 차단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때문에 중정은 각 부처에서 하는 일을 ‘보안’과 ‘안보’라는 측면에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각 부처에서 내놓은 정책이 안보 면에서 허점은 없는지, 또는 밖으로 누설되지 않는지 감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무게 중심이 실린 것은 안보 측면에서 각 부서의 정책을 스크린하는 것이었다.
이 일은 주로 분석관이 담당했는데 분석관의 정책 분석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분석은 자유롭게 하되 비판을 할 때는 반드시 대안(代案)을 함께 내놓아야 했다. 그리고 그 대안은 예산 증액을 전제로 하지 말아야 했다. 예산을 증액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할 수 있다. 중정의 분석관은 예산 증액 없이 허점을 보완하는 방안을 찾아야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이 시기 분석관의 최대 영예는 그가 작성한 보고서가 대통령에게 보고돼 ‘중정의 대안대로 정책을 바꿔라’는 지시가 행정부처로 내려가는 것이다. 분석관 세계에서는 이를 ‘홈런’으로 표현했다. 홈런을 자주 치는 분석관일수록 유능하다고 인정받았으니 정책 스크린은 ‘대통령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업무중의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다.
비리혐의로 구속되는 김은성 2차장(왼쪽)과 김형윤 경제단장, 임동원 원장이 북한문제에 전력하는 바람에 국내파트에서 기업체와의 ‘유착비리’가 발생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돈과 정보에는 언제나 왜곡이 일어난다. 왜곡을 줄이기 위해서는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DJ의 국정원은 반대로 통합을 했다. 이러니 기조실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나올 수 없고 위에서 ‘현대그룹의 대북송금에 협조해주라’고 지시하면 그냥 따르는 구조가 되었다”라고 지적한다.
국정원 기조실이 퇴직한 사람들의 노후를 위해 운영하고 있는 ‘양우공제회’도 문제를 안고 있다. 국정원 기조실은 전직 직원으로 하여금 양우공제회를 대신 운영케 하고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현직 직원이 양우공제회 일에 관여하고 있다.
양우공제회는 법적 근거 없이 운영되는 조직이다. 때문에 국정원 내에서도 빨리 근거법을 만들자는 주장이 많다.
국정원 문제를 다룰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감찰 파트이다. 감찰은 국정원 직원들을 감찰하는 ‘국정원 내의 국정원’이다.
국가정보는 정부부처뿐만 아니라 모든 정보가 모여드는 국정원에서 유출될 수도 있다. 또 현실적으로 국정원의 파워가 막강한 만큼 국정원 직원이 금품을 수수하거나 권력을 남용할 가능성도 있다. 국정원 직원이 저지른 비리를 찾아내 척결하는 곳이 감찰 파트다.
DJ 정부 말기 국내파트를 담당하는 김은성(金銀星) 2차장과 국내 경제정보를 총괄하는 김형윤(金亨允) 경제단장은 정현준 게이트와 이용호 게이트 등에 관여한 사실이 밝혀져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그러나 검찰이 이 사실을 포착해 수사할 때까지 국정원 감찰 파트는 아무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국정원 국내 파트의 간부들이 각종 게이트에 연루된 것은 임동원 원장이 3차장을 이끌고 북한 문제에만 전념했기 때문. 이에 따라 2차장은 상부를 의식치 않고 국내정보를 전횡하다 기업인과 유착하는 실수를 빚었다.
국정원이 한쪽으로 쏠리는 동안 감찰 파트는 그에 대한 ‘경보’를 울리지 못했던 것이다.
임동원(林東源)씨와 신건(辛建)씨는 국정원장 재임중 자신의 판공비에서 3500만원을 떼어내 DJ의 차남인 김홍업(金弘業)에게 명절 떡값과 휴가비·용돈 명목으로 제공했다. 임동원씨의 전임인 천용택(千容宅) 의원은 평화방송에 출연해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연말이나 명절 때 100만∼200만원을 떡값으로 주었다”고 밝혔다.
국정원장이 왜 국회 정보위원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가. 또 업무상 직접 연관이 없는 대통령의 차남에게 용돈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정원 감찰실은 관행처럼 이뤄지는 이러한 행태에 전혀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
홍업씨에게 떡값 준 국정원장
이와 대비되는 것이 2001년 7월 화이트로 한국에 나와 있던 미국 CIA 요원을 만나고 그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면당한 ㅇ과장 사건이다. 감찰은 하급직에는 ‘서릿발’이고 상급자에게는 ‘눈먼 봉사’였다.
국정원은 DJ 정부 초기인 1998년 6월10일 ‘우리는 개인의 명예를 잃는 것이 전체의 명예를 잃는 것임을 자각한다’는 문구를 담고 있는 직원윤리헌장을 제정했다. 그럼에도 DJ 정부의 국정원장들은 판공비를 대통령 아들에게 건네 자신과 조직의 명예를 깎아내렸다.
DJ 정부의 국정원이 제 손으로 제정한 윤리헌장에 충실했더라면, 그리고 감찰 파트만 옳게 가동시켰더라면 지금과 같은 위기는 맞지 않았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정원(혹은 안기부)은 군사정부에도 충성했고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에도 충성했다. 이런 점에서 국정원은 ‘권력의 시녀’다. 권력의 시녀인 국정원을 순수 국가정보기관으로 바꾸는 것이 진정한 국정원 개혁이다”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개혁은 경찰개혁과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영구 원장은 이러한 개혁을 시도할 수 있을까.
그러나 개발독재 시대가 끝나고 민주화 시대가 열리자 홈런을 치는 분석관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한국 사회의 넘쳐나는 맨 파워 때문이었다.
행정부처에서 ‘똑똑한’ 행정고시 출신이 다수를 점하고 이중 상당수가 자기 분야의 공부를 심화해 석·박사 학위를 따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문화한 관료들이 보다 세련된 정책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행정부처는 대개 산하에 전문 연구기관을 거느리고 있다. 가령 외교통상부에는 외교안보연구원이 있고 국방부에는 국방연구원이 있다. 전문성이 강해진 관료들은 산하 연구기관으로 하여금 정책을 검증케 하고, 때로는 외부 연구기관에 재검증을 맡기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국정원 국내파트에서 정책을 스크린 하는 분석관의 영역이 줄어들었다.
실제로 상당수의 분석관들은 “재경부에서 새로운 금융대책을 내놓거나, 건교부에서 부동산 투기 억제대책을 내놓을 때 국정원이 사전에 허점을 발견해 브레이크를 거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다. 이제는 행정부처 쪽의 전문성이 더 강해졌다”라고 말하고 있다.
경제·교육·일반행정·사회복지 분야에 이어 국방·외교·치안에서도 국정원 국내파트 정책 분석관들의 경쟁력은 상실돼 갔다.
국정원의 분석관이 줄곧 우위를 점한 것은 대북 분야였는데, 이는 대북 정보를 독점할 수 있었던 것이 큰 이유가 됐다.
그러나 통일부도 통일연구원이라는 산하 연구기관을 두고, 내부에는 대북정보를 종합 분석하는 ‘정보분석국’을 만들었다. 정보분석국은 휘하에 정치군사·사회문화·경제과학·정보자료담당관실을 두고, 북한의 정치·외교·군사·경제·사회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오고 있다.
이렇게 되자 국정원의 국내파트가 각 부처의 전문 정책을 스크린 하는 것은 ‘비용 대 효과 면에서 비경제적’이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국정원이 국정 전반을 스크린하는 것은 옥상옥이다.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에도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민정(民情)’ 조직이 있는데, 왜 이 조직은 놀리면서 국정원을 활용하는가? 국정원은 고유의 업무로 돌아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들이 말하는 국정원 고유 업무는 국정원법 제 3조 1항에 규정돼 있는 다섯 가지 직무(職務)를 가리킨다. 그것은 ①국외정보나 대공·대전복(對顚覆: 쿠데타를 막는 것)·방첩·대(對)테러·국제범죄 같은 국내보안정보의 수집과 작성 ②국가기밀에 속하는 문서와 자재·시설·지역에 대한 보안(保安)업무 ③내란(內亂)과 외환(外患)·군사반란죄와 암호를 부정하게 사용한 것, 그리고 군사기밀보호법과 국가보안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죄에 대한 수사 ④국정원 직원의 직무와 관련된 범죄 수사 ⑤정보와 보안 업무를 기획하고 조정하는 업무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국정원은 ①번의 국내보안정보 수집과 분석 ②번의 보안업무 규정에 근거해 정책을 스크린 해왔다. 그러나 보안을 넘어서 정책을 스크린하는 것은 법 조항을 확대 해석한 것이다”라며 “국정원은 국가 기밀이 새나가는 지를 지켜보는 보안 업무에 전념해야 한다. 보안을 이유로 정책 스크린을 계속하면 결국 사찰(査察)시비와 함께 직권남용 시비를 불러올 수가 있다”고 경고한다.
국정원 국내파트만 대통령부나 섀도 캐비닛으로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경찰청 정보국도 정보 경찰관으로 하여금 부처를 출입하며 정책정보를 수집·분석해 매일 같이 청와대에 올리고 있다.
경찰과 중복되는 국정원 국내업무
여기서 전문가들은 “동일 임무를 두 기관에서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각 부처의 전문성이 상당히 제고됐고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민정(民情) 기능도 있는데 국정원 국내파트와 경찰청 정보국까지 나서서 정책을 스크린하는 것은 행정 슬림화에 역행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은 행정자치부에 경찰을 두는 ‘전국경찰’제를 유지해 왔다. 이런 점에서 한국 경찰은 미국의 FBI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주한미국대사관에 파견 나와 있는 FBI 지부장은 주로 한국 경찰과 접촉한다. 주미 한국대사관에 파견나가는 한국 경찰관도 주로 FBI와 업무협조를 한다.
DJ정부 시절 유야무야 된 대통령 공약(公約) 중의 하나가 경찰을 국가경찰과 지방경찰로 2원화한다는 것이었다. 경찰 2원화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계속 추진되는 사업인데, 특히 김두관(金斗官) 행정자치부 장관이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경찰 2원화가 확정돼 국가경찰이 만들어진다면 국가경찰의 성격은 FBI와 더욱 유사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국가경찰의 정보 파트와 국정원 국내파트의 업무영역 구분은 더욱 불명확해진다. 한 경찰전문가의 지적이다.
“보통 국정원을 CIA와 FBI를 합쳐 놓은 조직이라고 하는데, 한국에는 이미 FBI 기능을 하는 경찰이 있다. 더구나 경찰을 국가-지방경찰로 나눈다면, 한국은 비슷한 일을 하는 두 개의 국내 정보기관(국정원 국내파트와 국가경찰의 정보국)을 갖게 된다. 같은 일을 하는 두 개의 국내정보기관이 필요한가.
더구나 국정원은 국정원법 3조 1항 ⑤호를 근거로 경찰청의 정보를 가져갈 수 있다. 국정원 국내파트의 정보중 상당수가 경찰 정보인 것이다. 이러한 체제를 유지할 바엔 국정원 국내파트와 국가경찰의 정보체계를 통합하는 것이 ‘비용 대 효과’ 면에서 나을 수 있다.”
국정원 국내파트가 정책스크린을 포기하고 보안 업무에 전념하려면 수사권(사법경찰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행 국정원법은 내란과 외환·군사반란·군사기밀 유출·암호부정 사용 등 특수한 분야의 죄를 제외하면 국정원은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에 대해서만 수사권을 행사하도록 한정하고 있다.
군사기밀 누출이 아니면 국정원은 보안 유출을 수사할 법적 근거가 미약한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보편적인 수사권을 갖고 있어 이러한 ‘장애’가 없다.
때문에 국정원 국내파트는 보안 유출을 포착하면 이를 경찰에 알려 수사케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업무이첩도 왜 같은 일을 하는 두 개의 정보기관을 운용하느냐란 주장을 낳고 있다.
노무현의 “공산당 허용” 발언
업무중복은 다른 분야에서도 발견된다. 국정원 국내파트의 외사(外事)와 대공, 경찰청의 외사관리관실과 보안국이 그런 경우다.
외사는 한국에 있는 외교기관과 외국기업체·외국언론사 등을 상대로 국내 정보가 누출되는지 등을 살펴보는 분야이고, 대공은 국내로 침투한 간첩과 자생적(自生的)인 좌익사범을 추적하는 분야다. 외국기관과 좌익으로 영역이 전문화하긴 했지만 핵심은 정보 수집이라 넓은 의미로 볼 때 대공과 외사는 정보에 포함된다.
국정원의 외사와 대공 분야는 국정원법 3조 1항의 ②호와 ③호 등에 따라 수사권을 갖는다. 경찰 또한 이 분야에 대해서는 당연히 사법경찰권을 행사한다.
국정원 국내파트의 일반적인 정보활동은 축소 지향을 해야 하지만 외사와 대공은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특히 대공은 DJ 정부 5년간 지나치게 위축되었으므로 그 기능을 정상화하는 쪽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 절대 다수 의견이다.
그러나 대공은 이념을 다루는 분야라 종종 정치적인 충돌을 일으킨다. 그로 인해 ‘본의 아닌’ 위기를 맞곤 하는데, 이러한 위기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6월9일 일본을 방문중이던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 공산당의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위원장에게 “한국은 현재 공산당 활동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는) 민주국가로서는 문제”라며 “내가 일본 공산당을 받아들이는 첫 한국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전문가들은 노대통령의 이러한 인식은 김대중 정권에 이어 또다시 국정원 대공 파트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DJ 시절 국정원 대공 파트는 단 한 건의 간첩 사건을 발표했다. 북한 정권 창립일인 1999년 9월9일 엄익준(嚴翼駿) 2차장이 발표한 민혁당 사건이 그것이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면서 국정원의 대공분야는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대공 업무를 해야 하는가’란 근본적인 의문은 미국과 일본의 정보기관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통해 답을 찾아볼 수가 있다. 미국에서는 공산조직이나 좌익 조직이 거의 없는데, 그마나 명목만 있는 조직을 FBI가 24시간 밀착 감시한다. 일본에서는 경찰청 경비국의 공안과와 도쿄도 경시청 공안부가 역시 공산당을 24시간 감시한다.
전문가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유지하는 하는 나라에서는 ‘사상의 자유’ 때문에 공산당을 허용하는 경우는 있어도, 공산당이 그 뜻을 피는 경우만큼은 철저히 차단한다. 공산주의가 전파되면 시장경제 체제가 부정되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민주주의가 발달한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유민주국가의 정보기관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공산주의 사상과는 함께 갈 수가 없다”라고 말한다.
이들은 “따라서 노대통령이 말한 공산당 허용은 일본 공산당에게 말한 의례적인 발언으로 끝나야 한다. 북한 공산당과 대치하는 현실에서 일본 공산당 기관지인 ‘아카하타(赤旗)’의 서울 지국 개설을 허용하면 북한 공산당은 물론이고 국내의 자생적 공산주의자들도 ‘한국 공산당의 개설은 왜 허가하지 않는가’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그에 따라 국정원과 경찰·기무사의 대공 파트가 강력히 반발하거나 반대로 세 기관의 대공 분야가 몰락하는 사태가 일어나면 국가적으로 위기가 온다. 한국은 공산정권과 현실적으로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공산당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한다.
국정원 대공수사국을 살리는 문제는 남한에 북한의 공작 조직이 있느냐는 문제와 연결시켜 생각해 봐야 한다.
남한으로 침투한 과거의 북한 공작원은 북한과 송신하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무전기를 켜놓고 있었다. 무전기를 켜놓고 있으면 계속해서 전파가 ‘발신’되므로, 대공수사기관은 발신지가 어디인지 추적해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공작원은 압축송신 무전기를 사용한다. 송신할 내용을 무전기에 쳐 넣고 이를 압축해 일시에 송신하는 신형 무전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파 발신은 딱 한번 일어난다. 발신 시간이 너무 짧아 대공 수사당국은 ‘대략 어느 지역에서 전파가 날아갔다’는 것만 알뿐 어디에서 발신이 이뤄졌는지 특정(特定)해 낼 수가 없다.
대공 분야의 소식통들에 따르면 지금도 남한에서는 북한 공작조직이 사용하는 주파수대로 압축 정보를 발신하는 것이 많이 포착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자고로 정책은 사실을 토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을 하겠다는 목표를 정해놓고 그에 맞는 정보를 원했다. 때문에 햇볕정책과 맞지 않는 대공 정보는 사장되었고 국정원 대공수사국은 개점휴업상태가 되었다. 지금도 남한에서 압축 무선송신이 나타난다는 것은 북한 공작원이 암약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고원장의 국정원은 대공 분야를 재생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국정원 대공 파트의 재건과 함께 깊이 고려하여야 할 것이 있다. 첫째는 대공 분야를 어디까지로 제한할 것인가란 문제이다.
북한 공작조작은 학생운동권과 노동단체·종교단체에 그들의 동조세력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그곳을 주 침투 대상으로 삼았다. 반면 국정원 대공수사국은 국가보안법에 근거해 학생운동권과 노동단체·종교단체를 살피는 것으로 ‘방어’에 나섰다.
학생중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운동권에 참여한 사람이 많았다. 국정원 대공수사국이 이들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시키는 과정에서 ‘과잉’ 시비가 일어났고 ‘인권’ 문제가 발생했다. 그 결과 불고지죄 등이 사라지는 쪽으로 국가보안법이 개정되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이 나오게 되었다. 여기서 전문가들은 국정원 대공수사국의 기능을 재건하되 활동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두 번째는 경찰청 보안국과의 관계이다. 같은 대공을 하는 기무사의 방첩처(3처)는 ‘군 내부’로 활동 영역이 한정돼 있다. 하지만 경찰청 보안국은 모든 영역을 수사하기 때문에 국정원 대공수사국과 활동영역이 오버랩된다.
국정원 국내 정보와 경찰청 정보국의 영역이 중복되듯이, 국정원 대공수사국과 경찰청 보안국도 영역이 중첩되는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국정원이 자기 예산을 타 부처 예산에 편승시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타 부처 예산에 편승돼 있는 국정원 예산 중 일부는 그 부서에서 집행된다. 국정원은 이러한 방법으로 그 부처에 예산 지원을 하고 대신 그 부처에서 확보한 정보를 제공받는다. 노동부에 예산 지원을 해주고 노동계 정보를 확보하는 식인 것이다.
경찰은 국정원의 예산 지원을 받는 대표적인 곳이다. 당연히 경찰청 보안국도 국정원의 예산 지원을 받는다. 그리고 국정원이 요구하면 이들이 확보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경찰청 보안국이 넘긴 정보는 국정원 대공수사국의 ‘작품’으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많다.
정보 상납하는 경찰청 보안국
1999년 9월9일 국정원의 엄익준 차장이 발표한 민혁당 사건이 좋은 사례다. 이 사건 수사는 1993년 부산경찰청 보안국이 민혁당의 지방조직인 울산위원회의 존재를 포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부산경찰청 보안국은 이 조직이 민혁당 울산위원회인지는 모르고 ‘수상한 것이 있다’는 것만 포착했다. 그러나 실체는 잡지 못하였다.
그런데 1997년 7월 북한 노동당 대외연락부가 자생적 좌익단체인 민혁당과 선을 잇기 위해 부부간첩인 최정남과 강연정(검거된 후 자살)을 남파했다. ‘선’을 찾아 헤매던 이 부부는 15대 대선을 앞둔 1997년 10월 울산위 멤버인 ㅈ씨에게 “북에서 왔다”며 접근했다.
ㅈ씨는 이들을 ‘15대 대선을 앞두고 안기부가 공안사건을 꾸미기 위해 보낸 끄나풀’로 판단하고 안기부에 간첩 출현을 신고했다. 그리고 안기부가 공안사건을 만들지 못하도록 기자회견을 열어 간첩 출현 사실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때까지 안기부 대공수사국은 간첩이 남파된 사실은 물론이고 민혁당과 울산위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부산경찰청 보안국은 이 신고와 기자회견 덕분에 울산위의 존재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15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인 1998년 7월, 부산경찰청 보안국은 울산위 멤버를 검거함으로써 어렴풋이 민혁당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러자 국정원 대공수사국은 국정원법 제3조 1항 ⑤호 ‘국정원은 정보와 보안 업무를 조정한다’에 의거해 이 자료를 댕겨갔다. 경찰이 확보한 대공정보가 안기부로 넘어간 것이다.
1999년 12월17일 북한의 반잠수정이 전남 여수 해안에 상륙해 진운방이라는 화교 이름을 사용하며 민혁당을 지도해오던 북한 공작원을 태우고 도주하다 해군 함정에 적발돼 다음날 새벽 격침되었다.
해군이 이 반잠수정을 인양한 것은 1999년 3월17일이었는데 배 안에 있던 진운방의 시신에서 조직원 명단이 적힌 수첩을 찾아냈다. 이러한 자료를 확보한 국정원 대공수사국은 민혁당 조직을 검거하게 되었다.
(그러나 울산위 관련자들은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유는 경찰이 울산위에서 압수한 디스켓을 수사과정에서 출력하려다 일부 편집한 사실이 밝혀져 증거 능력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시기 민혁당은, 민혁당을 이끌었던 김영환씨가 자발적으로 전향해 동료들을 전향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이유로 민혁당 사건은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공들여 추적해온 사건을 국정원에 뺏기기 때문에 경찰청 보안국은 국정원 대공수사국에 대해 상당한 불만이 있다.
1995년 10월25일 부여에서 검거된 ‘부여간첩’ 김동식 사건도 원래는 서울경찰청 보안국이 수사해온 것이었다. 서울경찰청 보안국 요원들은 간첩을 잡으러 갔다가 놓쳐 총격전을 벌였고 총격전의 연장선에서 김동식이 검거되었다. 그런데 김동식 검거 이후 이 사건은 국정원 대공수사국 ‘작품’으로 변모하였다.
경찰청 보안국 관계자들은 “일선에서 권총을 뽑아들고 간첩을 덮치고, 고정간첩을 포섭해 오랫동안 역공작을 하는 것은 우리인데 언제나 공(功)은 국정원이 가져간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대공분야에서도 국정원과 경찰 사이에 업무 중복과 차별대우 문제가 발견되는 것이다.
고영구와 對共 수사국
‘국정원 대공수사국의 기능을 활성화하고 동시에 국정원 대공수사국의 수사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란 문제는 국정원 내부 개혁의 성패를 결정짓는 바로미터다. 이 문제는 간첩 확정판결을 받은 김낙중 석방운동을 한 고원장과 국가정보원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부분이기도 하다.
고원장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스텝을 밟을 것인가. 고영구 원장 취임 후 근 한 달이 지났건만 이 부분의 변화는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여기서 전문가들은 “고원장은 임동원-신건 원장의 전철을 답습하고 있다. 전임자가 이미 소외시켜 놓은 대공파트를 그대로 내버려둠으로써 자연고사케 하는 정책을 택한 것 같다. 대신 국정원은 개혁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현상유지 정책을 택한 것 같다. 이는 고영구 원장과 국정원이 서로를 인정하는 선에서 무언의 타협을 한 증거다”라며 고영구 체제의 국정원은 물 건너 갔다’라고 말하고 있다.
대공이 ‘전통적인’ 정보기관의 영역이었다면 외사는 최근 들어 확대되고 있는 신흥 영역이다. 외사는 대공 사건이상으로 국외와 연결된 경우가 많다. 즉 사건 발생지는 국내지만 사건의 다른 한쪽은 국경 밖으로 나가 있는 경우가 많다.
외사 사건에는 국내 정보가 외국 기관에 넘어가는 보안 사건도 있지만, 마약이나 위폐·무기거래 같은 국제범죄도 적지 않다. 이렇게 국외로 연결돼 있는 외사 사건을 효과적으로 다루려면 다른 나라 정보기관과 협조할 수 있는 ‘해외 선(線)’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선 확보에 가장 열심인 기관은 미국의 FBI다. FBI는 CIA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해외 ‘선’을 구축해 45개국에 지부를 설치해놓고 있다. 한국은 FBI 지부가 설치된 44번째 나라이고 그 다음이 중국이다. FBI의 정원은 9·11테러 이후 2000명 정도 늘어나 1만1000여명인데, 이중 1% 정도인 103명이 45개 해외 지부에 나가 있다.
국정원은 우리와 수교한 거의 모든 나라에 외교관 신분으로 위장한 해외파트 요원을 파견해놓고 있다. 국정원의 이러한 모습은 미국의 CIA 등 선진국의 국외정보기관을 모방한 것이다.
국정원이 해외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외사파트를 발전시킬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이런 점에서 국정원 외사파트는 경찰청 외사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
분단국가인 한국은 북한과의 대결에 총력을 기울이는 ‘총력안보’ 체제를 채택했기에 국내와 국외를 망라하는 종합정보기관으로 국정원을 만들었다.
그러나 국내 정보기관으로서의 국정원은 전 분야에서 경찰청과 업무가 중복된다. 그로 인해 국정원은 공개되지 않은 1등 정보·수사기관이고 경찰청은 공개된 2등 정보·수사기관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 전문가들은 국정원 개혁은 국정원 차원이 아니라 국가정보체계 전체를 놓고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그 시작을 경찰 개혁에서 찾는다.
김대중 정부에서 유야무야된 국가경찰-지방경찰의 2원화 체계를 다시 추진해 국가경찰 체제를 만든 후, 국가경찰 체제와 국정원 국내파트를 합병하자는 것이 이들이 생각하는 국정원 개혁이다. 이때 대우가 좋은 쪽은 국정원이라 통합조직의 대우(봉급이나 직급)는 국정원에 준하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미국의 CIA(해외)-FBI(국내)처럼, 해외와 북한을 담당하는 NIS(National Intelligence Service·국가정보원)와 국내를 담당하는 NPA(National Police Agency·국가경찰) 체제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지방경찰은 광역자치단체장의 통제를 받으며 담당 지역을 상대로 방범·교통·수사·정보 업무를 수행한다. 이러한 지방경찰은 NPA와 NIS에 요원을 제공하는 ‘학교’ 노릇을 한다.
미국의 CIA와 FBI는 공채를 통해 대졸자를 바로 직원으로 뽑기도 하지만 군이나 지방경찰에서 경력을 쌓은 사람을 특채하는 경우가 많다. 대졸자에서 바로 직원으로 선발되는 사람들은 대개 변호사나·회계사 등 전문 자격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보와 수사 같은 분야는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지방경찰이나 군대에서 그 분야의 경험을 쌓은 사람을 주로 선발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정보기관도 대졸자에서만 직원을 선발하지 말고 타 기관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도 선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염돈재 차장 임명은 긍정적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1차장이 지휘하는 국정원 해외파트다. 전문가들은 국정원의 고위직 인사 중에서 가장 잘한 케이스로 염돈재(廉燉載·60)씨를 1차장에 임명한 것을 꼽는다. 염차장은 1968년 공채로 중앙정보부에 들어와 30여년 간 해외와 북한 파트에서 근무해온 이 분야의 베테랑.
6공 시절 그는 박철언(朴哲彦)씨가 주도한 대북 사업에 실무자로 깊이 참여하였다. 그 바람에 월계수회로 낙인 찍혀 YS 시절 한직을 전전하다 국장을 하지 못하고 퇴직해 국정원 산하 연구기관인 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과 연구위원을 지냈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권에서 1차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것.
YS 시절까지 국정원은 해외와 북한파트가 하나로 묶여 있었다. 전문가들은 국정원이 외국을 상대로 정보활동을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북한을 봉쇄하기 위한 것이므로 해외와 북한을 나눌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뒤에서 보다 자세히 다루겠지만 북한을 다루는 3차장은 햇볕정책을 추진한 김대중 대통령의 친위부대적 성격이 강하므로 이를 원대복귀시키라는 지적이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국정원은 파워와 권위를 인정받는다. 따라서 국내 파트의 정보관은 부처와 기관을 무시로 출입할 수 있다. 그러나 해외에 나가 있는 국정원 직원은 이런 권한은 누릴 수 없다. 주재국 정보기관의 외사 파트가 감시하기 때문에 그의 정보활동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뚫고 들어가 첩보를 뽑아내는 게 진짜 정보관이다. 국정원은 신분과 안전이 보장되는 국내정보활동은 국가경찰에 넘기고 보다 어려운 해외정보활동에 전념해야 한다. 그것이 명실상부한 국가정보기관이 되는 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파트 정보관도 출입처를 갖고 있다. 그 나라 정보기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해외파트 정보관은 대개 외교관 신분으로 위장해 나가는데, 주미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정보관은 미국 CIA의 한반도 문제 담당자를 만나 필요한 첩보를 수집한다. 반대로 외교관 신분으로 위장해 한국에 나와 있는 미국 CIA 정보관은 국정원에서 미국을 담당하는 직원을 만나 필요한 첩보를 수집한다.
따라서 해외파트의 정보관은 외교관 신분으로 위장하고 있더라도 그 나라 정보기관에는 자신의 신분을 솔직히 통보한다. 이러한 정보요원을 세칭 ‘화이트(white)’라고 한다.
정보기관이 화이트 교류를 하는 것은 ‘윈-윈’을 위해서다. 나는 정확한 것을 주지 않고 상대로부터만 정확한 정보를 받으려고 하면 정보교류는 끊어져, 결국 중요한 정보 지원국 하나만 잃어버리고 만다.
따라서 윈-윈 구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윈-윈 구도는 공동의 적을 상대하는 동맹국 사이에서 잘 이루어진다. 윈-윈 구도는 특히 ‘기브 앤드 테이크’가 원활히 작동할 때 잘 형성된다. 한미동맹이 원활하면 북핵문제에 관한 정보교환이 그만큼 수월해지는 것이다.
유능한 해외파트의 정보관이 되려면 첫째로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정통해야 한다. 둘째로는 상당한 정보비를 뿌릴 수 있어야 한다. 거듭된 식사와 작은 선물이라도 건네야 상대로부터 하나라도 더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외파트 정보원은 점잖고 품위 있는 사람이 적격이다. 외교관보다도 더 외교관적인 사람인 경우가 많다.
해외파트의 정보관은 때론 외교관 역할도 한다. 한미관계가 경색돼 있어 정상회담을 통해 활로를 뚫으려 할 때 최일선에 뛰는 것이 정보관이다. 정보관이 어느 정도 이면(裏面) 거래를 완료시켜 놓으면 그후 문제는 외교관이 일사천리로 진행시킨다.
실제로 대통령 순방 같은 큰 행사가 있으면 외교부가 움직이기 전에, 방문국에 주재하는 국정원의 정보관이 그 나라 정보기관의 관계자를 만나 먼저 이야기를 하고, 이어 1차장이 방문해 거의 모든 것을 마무리한다. 대사를 중심으로 한 외교 관계자가 움직이는 것은 마지막 세레머니에 해당한다.
이러한 일을 하기 때문에 해외파트의 정보관은 세련되고 설득력 있으며 돈 잘 쓰는 전형적인 외교관이 되어야 한다. 유능한 정보관은 주재국 정보기관 외사파트를 의식해가며 주재국의 언론인과 정치인, 학자를 만나며 보다 심화된 정보활동을 한다.
DJ 집권 초기 국정원은 해외 경제정보 수집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가 안팎으로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대사관에는 주재국의 경제정보를 전문으로 수집하는 상무관(산자부 소속)이 파견돼 있다. 따라서 국정원이 경제정보 수집에 전력하면 상무관과 업무영역 다툼이 일어난다.
동맹국이 국정원과 정보교류를 하는 것은 안보 때문이지 경제 때문은 아니다. 경제는 동맹국 사이에서도 경쟁한다. 따라서 경제 정보 수집으로 갈등이 일어나면 동맹국과의 정보교류가 축소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가 있다.
실제로 DJ 정부 시절의 국정원은 해외경제정보 수집에 전력하겠다고 밝혔다가 오히려 정보 협조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고영구 원장은 취임 후 국내파트에서 뛰던 요원들을 해외경제정보 수집에 투입한다고 밝혔다. 외국어에도 서툴고 경제분야에 서툰 국내파 요원들이 소속이 바뀌었다고 해서 당장 해외경제를 수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전문가들은 “해외경제정보 수집에 투입하겠다고 한 요원들은 해외경제 수집에 투입될 수 없으므로, 결국 ‘잉여인력’으로 남게 될 것이다. 국정원장은 이들을 놀릴 수 없으므로 원장이 아쉬워하는 국내분야에 투입하는 예비대로 활용할 것이다. 해외경제 수집이라는 고원장의 국정원 개혁은 결국은 원위치로 돌아오는, ‘무늬만 개혁’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1998년 러시아 주재 조성우 참사관 추방 사건처럼 화이트가 주재국 법률에서 금하는 행동을 하면 외교마찰이 일어난다. 그러나 정보활동 중에는 주재국의 법을 어기며 해야 할 부분이 있다. 주재국이 주고 싶지 않은 첩보를 구해야 하고 주재국이 원치 않은 방향으로 주재국의 여론을 몰아야 할 때가 있으면 이른바 블랙(black)을 파견해 공작을 한다.
해외파트의 정보관은 정기적으로 주재국에서 일어난 일을 적은 보고서를 외교행낭으로 본부에 보낸다. 이러한 첩보 보고는 정보관 경험을 가진 분석관들의 분석을 거쳐 ‘정보’로 생산된다. 이 정보는 정보관에게 새로운 지침을 내리는 기초가 되고 때로는 블랙 투입을 결정하는 단초가 된다.
국정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정원에서는 국내파트는 1등 부서이고 해외파트는 2등 부서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고 한다. 야심을 가진 직원은 대개 국내파트에 몰리는데, 이는 국정원이 대통령부로 기능하는 면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보기관은 국익을 위해 창설된 기관이다. 국방력과 행정력이 도저히 미칠 수 없는 외국에서 비합법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국익을 극대화하겠다는 목표로 만든 것이 정보기관이다. 따라서 국정원은 CIA처럼 해외정보 기관으로 재편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차장은 ‘햇볕정책’ 친위대장
DJ 정부 때 국정원을 ‘개악’시킨 또 하나의 사례로 거론되는 것이 해외파트에서 북한을 떼어내 북한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3차장제를 신설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해외와 북한은 한 덩어리로 다뤄야 할 주제인데 분리시킴으로써, 북한파트는 햇볕정책을 펼친 DJ의 친위대가 되었고 해외파트는 그 힘을 잃었다”고 지적한다.
현실적으로 북한은 위협을 주는 세력이자 통일 대상이다. 군사적인 위협을 축소하고 통일의 단초를 열기 위해서는 김정일 체제를 내부로부터 무너뜨리는 공작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그러나 북한에는 외교기관을 설치할 수 없으므로 정보관을 화이트로 투입할 수가 없다. 결국 북한과 가까운 제3국을 전진기지로 삼아 대북공작을 하거나 비밀리에 공작원을 투입하는 적지(敵地)공작을 펼쳐야 한다.
DJ시절의 국정원이 현대그룹의 대북 비밀송금에 협조해준 것을 조사받기 위해 특검에 출두한 최규백 전 기조실장.
대북공작은 김정일 세력과 북한 주민을 분리시키는 것을 1차 목표로 한다. 김정일 세력과는 적대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북한 주민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DJ 시절의 국정원은 오히려 반대로 갔다. 3차장이 이끄는 북한파트는 김정일 정권과의 대화 루트를 개척하는데 온 힘을 투입해, 결과적으로 김정일 체제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판단이다.
전문가들은 DJ 시절의 국정원은 3차장제를 신설했지만 2차장 산하의 3차장이 담당하는 대북공작 파트는 대공수사 파트와 함께 현저하게 그 기능을 상실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이런 점에서 3차장 신설은 무의미했다. 3차장제 신설은 햇볕정책을 위한 친위부대였다”라고 혹평한다.
이들은 DJ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도 3차장제가 유지되고 김보현(金保鉉) 차장을 유임시킨 것은 잘못이라며 해외와 북한 파트를 합칠 것을 요구한다.
국정원이 대북공작을 중단한 사이 탈북자를 데려오고 북한에 민주화 바람을 불어넣은 것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단체들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의 CIA가 뛰어들어 이 종교단체들을 지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원장은 철저하게 DJ 시절의 국정원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DJ정부와 궤를 같이 한다. 이러한 그는 DJ정부에서 발생한 국정원의 모순을 바로 잡을 수 없다”고 말한다.
서동만의 기조실 개혁은 불가능
서동만(徐東晩)씨 임명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기조실 영역도 개혁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기조실은 예산을 만지기 때문에 금융권과 거래가 많다.
기조실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요원들에게 정보비와 공작비를 지급하고 있다. 이러한 공직비는 안전하게 그리고 가급적이면 주재국의 정보기관 모르게 보내야 한다.
이러한 기조실은 ‘돈’과 관련해 두번 불명예를 뒤집어 쓴 적이 있었다. 첫째는 YS의 측근인 김기섭(金己燮)씨가 기조실장(당시는 행정차장으로 불렸다)을 하던 시절 신한국당에 선거자금조로 1200억원을 제공한 것. 이로써 안기부가 수천억원대의 비자금을 운영하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또한 김기섭씨의 기조실은 YS의 차남인 김현철(金賢哲)씨가 이끌던 나라사랑운동본부(나사본)가 쓰고 남긴 대선 잔금을 금융실명제를 피할 수 있는 안기부 계좌에 숨겨주기도 했다.
소식통들은 안기부 기조실이 비자금을 마련한 방법은 두 가지였다고 지적한다. 첫째는 실제로는 정원을 채우지 못한 부서인데도 정원을 다 채운 것으로 서류를 꾸며 예산을 신청한 후 ‘사람이 없는 부서’의 예산을 빼내는 것이다.
국정원은 감사원으로부터 회계감사를 받지 않기 때문에 정원 조작을 통해 간단히 비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기조실 사정에 정통한 사람들의 지적이다.
두 번째는 대통령 선거 등을 앞두고 안기부 실력자들이 재벌을 만나 선거자금을 거두는 것. 이러한 ‘수금’은 특히 군사정권 시절 비일비재했는데, 안기부는 이 돈으로 여당을 위한 여론조사를 하고 여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정치공작을 펼쳤다.
‘양심적인 안기부 간부’는 이러한 돈 중에서 쓰고 남은 것을 ‘착복’하지 않고 기조실에 넘겨주었는데 이것이 쌓여 비자금이 되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서동만 기조실장에게 주어진 임무 중 하나는 기조실 계좌에 또다른 비자금이 숨어 있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국정원 왜곡은 부정한 돈의 축적에서 비롯되므로 서실장은 국정원에 비자금이 모이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개혁할 것을 주문한다.
국정원 기조실이 제 얼굴에 먹칠을 한 또 하나의 사건은 DJ 정부 시절 현대그룹의 대북비밀 송금에 협조해준 것이다. 이 사건은 대통령 직속의 안보기관인 국정원이 왜 사기업 일에 관여했느냐는 시비와 함께 ‘적’인 북한에 돈을 보내는데 관여했다는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대북비밀 송금에 관여한 국정원 인사는 최규백(崔奎伯) 당시 기조실장과 김모 예산관이었다.
현대그룹 대북비밀 송금에 국정원 기조실의 김모 예산관이 관여된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군사정권은 물론이고 YS시절까지 안기부에는 예산관(2급)과 지출관(2급)이 따로 있었다.
예산관은 국정원 각 부서에서 예산을 신청하면 이를 심사해 허가하는 자리이고 지출관은 돈을 내주는 자리이다. 예산관과 지출관을 따로 둔 것은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였다(그런데도 김기섭씨가 이끌던 안기부 기조실은 신한국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