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호

“wishful thinking에 젖은 정보 실패가 천안함 폭침 불렀다”

천안함 폭침사건의 불편한 진실

  • 이정훈 기자│hoon@donga.com

    입력2012-11-21 1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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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청해전 승리한 2함대 칭찬커녕 합참 검열 받아
    • 북한은 聖戰 위협하는데 남한은 남북정상회담에 몰두
    • 정보부대, 연어급은 ‘건조의장 중’ ‘시운전 중’으로만 판단
    • 3월 25일 기지서 연어급 잠수함 사라진 뒤 천안함 폭침
    • 미군 첩보위성 北소행 추정자료 보고 정보당국 “아뿔싸”
    “wishful thinking에 젖은 정보 실패가 천안함 폭침 불렀다”

    2010년 3월 26일 북한 연어급 잠수정에서 쏜 어뢰를 맞고 격침된 천안함. 오른쪽은 이란에 수출된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

    2010년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해 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암초에 충돌해 두 동강 났다, 피로 파괴로 부서졌다, 미국 잠수함에 들이받혀 절단됐다, 배 안에 있던 연료나 엔진·탑재무기가 터져 일어났다, 한국군의 자작극이다, 과거 한국군이 백령도 주변에 설치한 MK-6 폭뢰가 폭발했다…. 그러나 이런 ‘설(說)’ 들은 과학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암초 충돌설은 해도를 작성하는 국립해양조사원과 주민이 현장에는 배가 부딪힐 암초가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해줌으로써, 미국 잠수함 충돌설은 미국 잠수함은 전부 핵추진으로 덩치가 커 수심이 얕은 현장에는 접근할 수도 없다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피로 파괴설은 폭발이 없어야 하는데 사고 시각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지진파를 포착하고 백령도 초병이 폭발음을 듣고 물기둥을 목격했다고 진술함으로써, 내부 폭발은 천안함에 탑재한 어뢰와 미사일·탄약·연료통·엔진 등이 폭발하지 않고 인양됨으로써, 자작극과 MK-6 폭뢰 폭발설은 북한제 CHT-02D 어뢰의 잔해가 수거됨으로써 모두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진짜 미스터리는 이것이 아니다. 이 사건에서 의문을 품었어야 할 부분은 ‘왜 기습을 허용했느냐’는 점이다. 천안함 사건에는 ‘정보의 실패’ 가 숨어 있다. 정보의 실패가 ‘경계의 실패’와 ‘작전의 실패’를 낳았다. 그러나 이 사건을 조사한 국제민군합동조사단과 감사원은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경계와 작전의 실패는 현상으로 드러나지만 정보의 실패는 현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생략된 ‘정보의 실패’조사

    북한 관련 사건이 발생하면 기무사령부, 정보사령부, 국가정보원, 경찰(보안)은 합동심문조를 구성해 철저히 조사한다. 이들은 정보기관인지라 정보의 실패가 없었는지부터 조사한다. 그리고 합동참모본부의 전비태세검열실이 정보와 작전을 연결한 전비태세에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본다. 천안함 사건 후 정보기관들은 이러한 점을 조사하지 않았다. ‘왜 기습을 허용했는가’에 대한 조사가 생략된 것이다.



    정보의 세계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고,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라(Think the unthinkable, Imagine the unimaginable)’는 말이 회자된다. 천안함 사건은 우리 군 정보기관이 이 격언의 교훈을 무시한 결과가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한국군 정보기관이 당면한 또 하나의 문제점은 ‘정치 시녀화’ 현상이다. 객관적으로 정보를 생산 판단해주는 게 아니라 상부가 원하는 정보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상부가 ‘이러한 쪽으로 정보 판단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은, 정보기관에 압박으로 작용한다. 이른바 ‘wishful thinking(희망적 사고)’이다. 정보기관이 이에 동조해 그러한 쪽으로 정보 판단을 해주면, 정보세계에서는 금기(禁忌)인‘gro-up think(집단사고)’ 현상이 일어난다. 천안함 사건에는 wishful thinking과 group think 현상이 숨어 있다.

    신동아는 천안함 사건 속에 숨어 있는 ‘불편한 진실’을 지적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천안함 46용사가 국가를 위해 헌신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왔다. 그리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다음은 그의 설명을 토대로 재구성한 천안함 사건의 전말이다.

    천안함 사건 발생 4개월 보름 전인 2009년 11월 10일 대청해전이 벌어졌다. 일부 언론은 대청해전을 등산곶의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선제 사격하자 우리 함정이 다수로 대응해 대파시킨 사건으로 보도했다. 교전한 함정 수로만 따지면 1대 4의 함정 싸움이 벌어진 것이 맞다. 그러나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면 4대 4의 싸움이 될 수도 있었다. 우리가 전광석화처럼 해치웠기에 인근에 있던 북한 함정 3척은 뛰어들지 못했다.

    서해에서 긴장이 높아지는 것은 북한 경비정이 교대할 때다. 북한 해군은 매주 한 번씩 해주기지에서 5척의 경비정을 출동시킨다. 그리고 기린도 월래도 등산곶 등 다섯 군데를 지나며 한 척씩 떨어뜨리고, 작전을 해온 경비정은 합세시켜 이동한다. 교대가 끝나면 임무를 마친 5척이 함께 해주기지로 귀환하다. 경비교대를 할 때 북한 함정 세력은 일시적으로 커지는 것이다. 잘만 기동하면 특정 수역에서 10척이 모여 기습할 수도 있다.

    “wishful thinking에 젖은 정보 실패가 천안함 폭침 불렀다”


    칭찬도 기념비도 없는 대청해전

    이 때문에 우리 해군 2함대도 많은 함정을 출동시켜 같이 경비 교대를 하며 대응한다. 2009년 11월 10일은 북한이 경비 교대를 하는 날이었다. 2함대도 여러 척의 함정을 출동시켜 경비 교대를 했다. 그런데 등산곶에서 경비를 마친 북한 경비정이 NLL을 넘어왔다. 2함대는 출동시킨 대형 함정들을 대청도 인근의 ‘음영(陰影)구역’에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음영구역이란 적 레이더파가 도달하지 못하는 섬 그늘 해역이다.

    우리 고속정이 달려 나가 막아서자 적은 사격을 가했다. 그 순간 우리 대형함들이 집중 사격해 등산곶 경비정을 대파시켰다. 인근에 있던 북한 함정 3척이 기동을 했으나 우리의 대응이 빨라 상황이 일찍 종료됐다. 그들은 대파된 경비정을 끌고 가는 역할만 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공격했다고 비난하는데 이는 헛소리다. 북한 측 등산곶 경비정도 NLL을 넘어와 2함대 함정을 정조준하고 사격했기에, 우리 고속정도 숭숭 구멍이 뚫렸다.

    해군은 이 싸움에 대해 제2 연평해전의 패배를 갚아준 것으로 보고 정식 해전(대청해전)으로 명명했다. 그런데 그 직후 2함대는 합참의 전비태세검열을 받았다. 전비태세검열은 최근의‘노크 귀순’처럼 문제가 생긴 부대를 조사하는 것인데…. 2함대는 우리 군 지휘부로부터 단 한 통의 격려 전화도 받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대청해전은 ‘찬밥’ 신세가 된 것이다. 1, 2차 연평해전과 아덴만 여명작전 등은 기념비를 세워 기념하지만 대청해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군 지휘부는 교전한 고속정 편대장 등에게만 훈장을 주고, 작전을 지휘한 2함대 지휘부에는 단 한 명도 표창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대청해전 후 북한군 동태가 심상치 않았다. 우리 함정을 향해 지대함미사일의 추적레이더를 쏘기 시작한 것이다(표 참조). 이 미사일은 고정 지상기지 발사형과 트레일러에 실려 있어 이동하면서 쏠 수 있는 TEL형 두 종류가 있다. 북한군은 황해도에 ○대의 TEL형을 배치했다. 유사시 고정 지상기지형 미사일은 공군기로 격파해버리면 되지만, TEL형은 어디에서 쏠지 모르니 신경이 쓰이게 된다.

    미사일은 표적을 향해 추적레이더를 쏜 후 발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초수평선 표적 획득’ 으로 번역되는 OHT-T(Over The Horizon Targeting)로 발사할 수도 있다. 표적을 추적레이더로 잡지 않고 다른 수상함이나 어선의 레이더로 잡아 미사일을 쏘는 것이다. 대형함에는 추적레이더파를 맞으면 경보가 울리는 장치가 있다. 그러나 다른 선박이 쏜 레이더를 맞으면 울리지 않기에 OHT-T로 미사일을 쏘면 당할 수밖에 없다. TEL형 SSN-4 지대함미사일의 최장 사거리는 300km이기 때문에 2함대는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황해도의 인민군 4군단이 240mm 방사포 ○문을 방열했다는 정보도 들어왔다. 이 방사포는 최장 60km까지 12발의 로켓탄을 연속으로 쏠 수 있어, 대형함에는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12월 21일 북한 해군 사령부는 서해 NLL 일대를 3월 말까지 해상사격구역과 통항금지구역으로 설정한다고 발표했다. 방사포를 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거듭된 위협, 안일한 판단

    통상적으로 대형함은 백령도 서방의 ○○구역에 배치하는데, 그곳은 적 레이더에 노출된다. 적 방사포나 지대함미사일의 공격을 받을 수 있으므로, 2함대는 북한군의 동태를 상부에 보고하고 음영구역으로 옮겨가게 했다.

    서해의 북한 잠수함정 기지는 다사리, 비파곶, 남포항 세 군데에 있다. 다사리에는 ○○연구소로 위장한 함정 건조시설과 잠수함정 수리소 등이 있다. 비파곶에는 북한 해군 11전대가 운용하는 ‘로미오급’과 ‘상어급’ 잠수함이 배치돼 있다. 로미오급은 거의 작전하지 않고 상어급 잠수함이 주로 활동한다. 남포항에는 대남침투를 전담하는 정찰총국이 운용하는 ‘문어급’과 ‘연어급’‘P-4급’ 잠수정이 배치돼 있다.

    우리 군 정보부대는 금강정찰기, 미군 정보부대는 U-2정찰기로 이 기지들을 감시한다. 그때 기지에서 잠수함정이 보이지 않으면 ‘○○급 몇 척 미식별’이라는 정보를 보낸다. 미식별 사례는 1년에 100회 이상 발생한다. 로미오급과 상어급이 미식별되면 ‘우리 함정을 공격할 수 있다’는 판단 의견이 따라 나오므로, 작전부대는 바로 대잠경계태세를 강화한다. 그러나 남포항에 있는 문어급 등은 공작원 침투용으로 판단해왔기에, 미식별돼도 정보부대는 ‘우리 함정을 공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보내지 않았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도.

    겨울철 북한 서해안은 얼어붙는다. 11월 중순에서 2월 초순 사이 이 기지들은 얼음으로 덮이는 것이다. 그간 북한 수상함 기지에서는 쇄빙선으로 얼음을 깨 2척의 수상함을 출동시켰고 이에 대응해, 2함대는 3척의 대형함을 출동시켜 경비했다. 그러나 그해 겨울에는 다르게 대응했다. 2함대가 보유한 대형함은 1차 구축함 ○척, 호위함 ○척, 초계함 ○척 등 도합 ○○척이다. 해군은 3척을 한 조로 한 3직제로 운영한다. 1척이 작전하면, 1척은 교육, 1척은 정비를 한다. 그러나 위험이 높아지면 교육담당 함정도 출동시킨다.

    대청해전 후 북한 해안이 얼어붙었지만 북한 위협이 심상치 않아 경계를 강화했다. 한국 전투함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이지스함이고 다음이 2차 구축함→1차 구축함→호위함→초계함 순이다. 이지스함과 2차 구축함은 해군작전사령부(해작사)가 운용한다. 대청해전 직후 해작사는 2차 구축함 ○척과 링스헬기 ○대를 보내주었다. 한겨울이 왔지만 2함대는 이들을 포함해 10척을 작전에 투입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2010년 1월 13일 합참이 ‘적 특이 동향 없고 침투 도발 징후 없다’며 경계태세 일부 해제 지시를 내리고, 해작사 지원 세력 복귀를 명령했다. 해작사 세력을 돌려보낸 2함대는 평시와 같은 3척의 대형함을 출동시켰다.

    그 이틀 뒤인 1월 15일, 북한 국방위원회는 문화일보가 북한 급변사태 대책인 ‘부흥’을 보도한 것을 문제 삼아 “남조선 본거지 날려버리기 위한 보복성전을 개시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우리 군 지휘부는 ‘북한군 이상 징후가 포착되지 않았다’며 경계태세 강화를 지시하지 않았다. 북한군의 위협은 현실화됐다. 1월 27일부터 30일 사이 나흘간 인민군 4군단 포병여단이 한 달 전에 해상사격구역과 통항금지구역으로 설정했다고 발표한 바다를 향해 300~400발의 포탄을 쏜 것이다.

    북한은 두 구역을 NLL 너머로까지 설정했는데, 일부 포탄은 NLL을 넘어온 것으로 판단됐다. 중대 도발을 한 것이다. 그러나 합참의 대응은 미적지근했다. 북한군 사격이 끝나고서 한참 뒤 해병대로 하여금 사거리가 아주 짧은 대공(對空) 벌컨포를 잠시 쏘게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특별한 도발 징후가 없었다’며 역시 경계강화를 지시하지 않았다.

    1월 28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영국 BBC 회견에서 “나는 김정일을 만날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고 말했다. 언론은 2009년 10월 중순 싱가포르에서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비밀리에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대청해전 직전과 직후 우리 통일부와 북한 통전부 대표가 개성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회담을 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연어급을 ‘건조의장 중’ 판단

    얼음이 녹는 2월 초순이 되자 북한 해군이 운용하는 비파곶의 잠수함들이 미식별됐다는 정보가 올라왔다. 그때마다 정보부대는 ‘비파곶에서 사라진 북한 잠수함이 우리 함정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한 정보를 보냈다. 2함대는 대잠경계태세를 강화했다. 그러다 식별됐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평시로 환원하는 작전을 반복했다.

    그러나 정찰총국이 관리하는 남포항의 작은 잠수정이 사라지면 정보부대는 ‘미식별’ 정보만 보낸다. 정보부대는 이 잠수정들은 정찰총국이 공작원을 침투시키는 데만 사용한다고 봤기에 ‘우리 함정을 공격할 수 있다’는 판단은 덧붙이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남포항의 잠수정이 미식별됐다는 정보가 올라와도 2함대는 대잠경계태세를 강화하지 않았다.

    남포항의 잠수정 3척 가운데 가장 많이 움직인 것은 연어급이다. 문어급과 P-4급은 거의 활동하지 않았다. 연어급은 2월 8일 나온 정보부대 보고에 ‘건조의장 중’이라고 처음 거명됐다. 정보부대는 연어급이 동해와 서해에 각 한 척씩 등장했다고 했다. 건조의장 중은 새로 건조해놓고 칠을 하거나 내부 장비를 탑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날 북한은 두 번째로 성전(聖戰)을 발표했다(표 참조).

    2월 8일부터 천안함 사건 사이 연어급은 3~4번 미식별됐는데, 그에 대해 정보부대는 시운전한 것으로 판단했다. 작전 배치를 하지 않은 잠수정도 장비점검을 위해 시운전할 수가 있다(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천안함 사건 후 정보부대는 북한의 잠수함정이 미식별되면 항상 그 사실을 통보해왔다고 주장해, 책임을 피해갔다. 그러나 정보부대는 연어급에 대해서는 미식별 정보만 주고 아군 함정을 공격할 수 있다는 판단은 전혀 해주지 않은 것이다).

    합참은 정보부대와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지만, 같은 판단을 이어갔다. 합참은 천안함 사건 발생 20일 뒤인 4월 17일 발간한 북한군 전투서열 목록에 연어급 잠수정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연어급 잠수정은 여전히 작전세력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북한이 설정한 해상사격기간이 한 달 반이 나 남아 있던 2월 18일, 합참이 모든 경계태세 해제 지시를 내렸다. 2함대는 완전한 평시 작전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3월 25일 연어급 미식별

    이 점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대청해전 이후 북한은 두 차례나 성전을 선언하며 위협과 도발을 반복했는데. 왜 합참은 모든 경계태세 해제를 지시했는가.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서해 충돌을 피하려고 한 것인가? 한미연합군이 키리졸브와 독수리연습을 준비하던 2월 25일, 북한군 총참모부는 ‘핵 억제력 등 강력한 대응수단으로 무자비하게 죽탕쳐버릴 것’ 이라고 발표했지만, 정보부대는 북한군이 특이 동향을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합참도 경계강화를 지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문제의 3월 23일이 다가왔다.

    그날 우리 군 정보부대는 연어급이 미식별됐다고 했다가 24일에는 식별됐다는 정보를 보내왔다.여전히 우리 함정을 공격할 수 있다는 판단은 없는 단순한 보고였다. 우리로서는 ‘연어급이 시운전하는가보다’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합참에서도 경계를 강화하라는 지시가 전혀 없었다. 25일 다시 미식별됐다는 정보가 왔다. 그리고 26일 저녁 천안함이 두 동강 나 침몰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졌다. 그때 천안함장이 얼떨결에 어뢰에 피격된 것 같다고 보고했지만. 2함대는 북한 잠수함정(상어급을 지칭함)에 의한 공격 징후 정보가 전혀 없었기에 이를 믿을 수 없었다.

    1977년 우리 군은 적 상륙을 막기 위해 MK-6 폭뢰 120여 발을 서해 5도 주변 수역에 깔아놓았다. 이 폭뢰는 연결된 도선으로 신호를 보내야 터진다. 그러나 서해 5도 주민들이 불안하다고 해서 도전선과 조종상자를 제거함으로써 불능화하고 10여 발만 직접 수거했다. 천안함이 큰 폭발 충격으로 침몰했다는 소식에, 일각에서는 이 폭뢰가 어떠한 이유론가 터진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공작원 침투용으로 시운전하고 있는 북한 연어급 함정이 어뢰를 쐈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미 첩보위성 사진으로 사실 확인

    이러한 판단은 5월 15일 국제민군합동조사단이 현장에서 북한제 CHT-02D 어뢰 잔해를 수거하면서 180도 바뀌었다. 그 후 모든 관심이 연어급에 쏠렸다. 미군은 KH-12와 라크로스 같은 초정밀 첩보위성을 운용한다. 그러나 첩보위성 사진은 잘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에 평시에는 금강이나 U-2정찰기가 찍은 사진만으로 정보 판단을 한다. 하지만 천안함은 워낙 큰 사건인지라 미군 첩보위성이 찍어온 모든 사진을 입수해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점이 발견됐다(이 부분은 기밀 중의 기밀이라 설명할 수 없다). 연어급이 어뢰를 쏜 것이 분명했다. 국제민군합동조사단은 이 자료를 보았다. 그러나 미국은 뒤늦게 조사에 참여한 러시아 측엔 이 자료를 제공할 수 없다고 했다. 러시아는 이 자료를 보지 못했기에 ‘CHT-02D 어뢰 잔해가 수거됐지만 과거 한국군이 설치한 MK-6 폭뢰가 폭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국제민군합동조사단의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천안함을 어뢰로 공격한 연어급은 어떠한 교신도 하지 않고 초저속으로 잠항해 다음 날 남포항에 귀항한 것으로 보인다. 긴급히 현장으로 출동한 속초함은 이를 알지 못한 채 북한으로 날아가는 새 떼가 레이더에 잡히자 북한의 반(半)잠수정이 천안함을 공격하고 초고속으로 도주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함포사격을 했다. 그러나 당시 현장을 찍은 열영상사진에는 반잠수정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에 사격을 중지시켰다.

    오후 10시 24분쯤부터 한국 언론들은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속보를 쏟아냈다. 소식을 기다리던 북한 수뇌부는, 아직도 바다 속에 있는 연어급이 아니라 한국 언론으로부터 전과(戰果)를 통보받은 것이다. 상대로부터 확실한 전과를 통보받은 그들은 얼마나 즐거워했을까. 대청해전 패배의 고통이 싹 잊혔을 것이다.

    천안함 사건 전, 우리 군은 북한의 수중 도발 정보를 전혀 포착하지 못한 것일까. 천안함 사건 때 기무사령관이었던 김종태 새누리당 의원은 “기무사는 천안함 사건 발생 며칠 전 북한군의 수중침투 관련 사전징후를 인지해 국방부와 합참에 보고했으나 합참은 대잠경계태세 강화 등 어떤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때 합참은 남북정상회담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정보부대와 함께 연어급은 침투용이고 시운전 중이라 우리 함정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판단만 보내게 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는 전형적인 wishful thinking과 group think의 덫에 걸린 꼴이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상상하지 않고, 늘 하던 대로, 위에서 바라는 대로 판단해주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것이다.

    9·11테러 후 미국은 정보의 실패 때문에 테러를 당했다고 보고, 16개 정보기관을 철저히 조사한 후 이들을 하나로 묶어 지휘하는 국가정보국(DNI)을 신설하는 등 대대적인 정보 개혁을 했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 후 우리는 전사한 장병에겐 무공훈장을 주고 큰 정신적 상처를 입고 살아남은 장병에겐 손가락질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 했다. 군 상부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엉뚱한 주장을 펼쳐 관심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 했다.

    “천안함 사건에 숨어 있는 정보의 실패를 분석해야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이 말을 온 국민께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

    제2 연평해전으로 본 정보의 실패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발생한 제2 연평해전은 정보의 실패 때문에 당한 사건이다. 감청부대는 북한군 교신을 감청한 결과 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함정을 공격하려고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국방장관 김모 씨의 지시로 작전부대에는 ‘단순침범’이라는 판단 정보가 가게 되었다.

    정보부대는 주로 영상정보(IMINT)를, 감청부대는 신호정보(SIGINT)를, 그리고 무관을 관리하는 ○○정보부는 인적정보(HUMINT)를 수집 분석한다. 이들이 생산한 정보는 국방정보본부의 정보융합실로 보내져 최종 정보판단의 자료가 된다. 제2 연평해전 직전 정보융합실은 감청부대의 판단에 따라 계속해서 NLL을 넘어오는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함정을 공격하려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정보융합실장의 보고를 받은 국방부 장관이 단순침범으로 바꾸라고 해, 작전부대에는 단순침범으로 판단된 정보보고가 전해졌다. 그 결과 2함대 고속정은 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을 향해 “돌아가라”는 방송을 거듭하다, 선제사격을 받아 침몰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감청부대장이었던 한철용 예비역 소장이 저서 등을 통해 공개함으로써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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