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호

허만섭 기자의 ‘아규먼트’

文정권의 일사불란한 ‘의혹 잠재우기’

지령하면 떼방어하고 융단폭격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9-02-2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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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기자회견을 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광우병 촛불시위대에 쫓기다시피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불렀다. 그럼에도 세월호와 광우병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전(前) 정권은 아무리 노력해도 불리한 의혹을 잠재우지 못했다. 반면, 문재인 정권은 손쉽게 잠재운다. 문 정권의 이런 ‘신통방통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문재인 대통령. [동아DB]

    문재인 대통령. [동아DB]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1월 30일 대선 여론조작 공범으로 인정돼 구속되자 재판장(성창호 부장판사)을 일갈했다. “재판장이 양승태와 특수관계라는 점이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주변에서 우려했는데 재판 결과를 통해 현실로 드러났다.”

    사법농단으로 구속된 양승태와 성창호의 ‘특수관계’는 양 대법원장 시절의 비서실에 성창호가 근무한 정도였다. 성창호는 지난해 7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8년을 선고해 여권에서 찬사를 들은 그 판사였다.


    ‘양승태’ ‘미꾸라지’ ‘재신임’ 언급하자…

    ‘문재인 복심’ 김경수의 ‘양승태’ 메시지는 이러한 빈약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여권 전체에 하달된 ‘지령’이 된 것으로 보인다. 기다렸다는 듯 “양승태 적폐 사단의 조직적 보복”(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김경수의 메시지를 일사불란하게 추종하는 목소리가 연달아 나왔다. 이후 드루킹 사건은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에 대한 수사로 옮겨붙을 메카톤급 이슈임에도 진정이 됐다. 이러한 ‘지령→떼방어-융단폭격’ 패턴은 문 대통령 측에 불리한 의혹이 나올 때면 자주 등장했다.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했을 때 윤영찬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권은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홍영표) “범죄혐의자고 피라미에 불과하다”(최민희 민주당 남양주시병 지역위원장)면서 ‘김태우 죽이기’에 달려들었다. 청와대 적자국채발행 개입 의혹을 제기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에 대해서도 몇몇 여당 의원은 “양아치 짓”이라며 이지메에 나섰다. 당연히 법적대응도 병행됐다. 이렇게 여권은 내부고발자를 공격하면서 양념처럼 ‘가짜뉴스 근절 캠페인’도 벌였다.

    ‘조국 결사옹위’

    특감반 사태로 ‘조국(민정수석) 경질론’이 폭주했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조국 자진사퇴를 주문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일 “믿어주시기 바란다”는 페이스북 글로 ‘조국 재신임’을 선포했다. 이 메세지에 대한 여권의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야당의 조국 수석 경질 요구는 정치적 행위”(이해찬 민주당 대표), “이겨내고 개혁의 꽃을 피워달라”(민병두 의원), “국민의 명령만 기억하라”(박광온 의원), “조국 책임론은 대통령 흔들기”(김한정 의원), “문 대통령과 마지막까지 함께할 단 한 분의 동반자”(손혜원 의원)라는 ‘조국 결사옹위’가 이어졌다. 안민석 의원의 “조국은 촛불정권의 상징” 발언은 그 백미였다. ‘1600만 촛불’은 조국의 ‘방패막이’가 됐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조국 경질론이 쑥 들어갔다.



    ‘손혜원 타운’ 사건 때도 ‘지령→떼방어’ 패턴이 반복됐다. 영부인과 고교 동기인 국회의원 손혜원의 친인척·측근은 목포라는 지방도시 구시가지에 부동산 10여 곳을 집중 매입했다. 손 의원은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문화재거리로 지정될 필요가 있다고 해당 기관에 말했고 실제로 지정됐다. 야당의 ‘초(超)권력형 비리’ 주장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초현실적 상상력”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청와대는 스탠스를 정했고, 여당은 스크럼을 짰다. 당은 투기가 아니라는 손혜원의 의견을 받아들여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초선’ 손혜원이 해명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원내사령탑’ 홍영표는 옆에 호위무사처럼 서 있었다. 끝난 뒤 손혜원이 홍영표의 어깨를 토닥였다. 손혜원은 투기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와 정치인들을 “배신의 아이콘” 등으로 맹공했다. 전임 정권 때라면 못 견뎠을지 모르지만, 손 의원은 지금 건재하다.

    ‘여성을 성추행한 바바리맨의 형량을 깎아달라고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청탁했다’는 서영교 민주당 의원 관련 사건은 청탁으로 볼만한 증거가 상당히 있는 사법농단 의혹이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당직 사퇴라는 솜방망이 징계에 그쳤다. “개혁을 걷어차고 적폐를 향한 역주행을 하고 있다”(정호진 정의당 대변인)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여당은 요지부동 버텼다. 이 사안도 점점 뉴스에서 사라지고 있다.


    ‘어젠다 커팅’에 유능

    정권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겐 의혹 띄우기인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만큼 의혹 잠재우기인 ‘어젠다 커팅(agenda cutting)’도 중요할 것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문재인 정권은 권력형 비리 의혹을 잘 잠재우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부분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의혹의 내용이 늘 ‘가짜뉴스’여서 잠재운 것은 아니었다. “우리 정부 들어 과거처럼 크게 비난받는 권력형 비리나 정권유착 비리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문 대통령은 말했다. 적지 않은 사람은 이 말을 믿지 않는다. “비록 1심이지만 최측근의 대선 여론 조작 혐의가 유죄로 판결났는데도?”라고 반박한다.

    권력형 비리의혹의 진위와 무관하게 여권은 일사불란한 지령과 떼방어-융단폭격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비친다. 이러한 대응 방법은 ‘수구보수적폐세력의 회귀를 막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선 정권의 안정을 잡아줘야 한다’는 진영논리로 합리화된다.

    여기서 ‘수구보수적폐세력’을 ‘지배계급’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사회주의적 사회’로 바꾸면 바로 마르크스-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론이다. 여권의 주요 인사들은 이 이론에서 파생한 1980년대 운동권 논리에 익숙하다. 여권은 2017년 대선 때 이미 ‘수구보수’를 “괴멸시켜야 할 대상”(이해찬)으로 규정했고, 집권 후엔 수구보수의 범위를 제1야당을 비롯한 ‘보수 일반’으로 확대하는 듯하다. 수구보수가 아닌 보수 일반을 없애겠다는 의도로 풀이되기도 한다.


    ‘사회주의 독재’에 대한 성찰

    서유럽의 몇몇 좌파진영은 ‘진보적 방식의 적폐청산이 사회주의 독재로 이어져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오히려 억압하기 쉽다’는 점을 스스로 경계했다. 여권에선 이러한 성찰이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 

    완벽한 방어가 능사는 아니다. 지금 으름장을 놓으며 눌러놓은 것은 언젠가 더 커져서 나타날지 모른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정권의 지속가능성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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