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보다 질서, 변화보다 안정 찾는 영미식 보수주의
경쟁 선호하는 한국인, 보수보다 진보·개혁적 성향
한국식 보수주의도 ‘새마을운동’ 등 개혁·진취적으로 발전
공동체끼리 경쟁해 협동 강화한 새마을운동
실업급여·민생지원금 뿌려 성장 동기 뺏는 李 정부
이재명식 호통 정치, 보수주의 정서와 일부 닮아
진취성·경쟁 실종된 정책 방향, 국가경쟁력 없애는 처사

2월 1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에 줄을 선 이용객의 모습. 이들 중에는 출국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는 사람도 종종 보인다. 뉴스1
이러한 모습에는 공통된 특성이 있다.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은 뭐든 빨리 처리하고 싶어 한다. 단순히 빨리만 하는 게 아니라 ‘최적화’를 원한다. 입시제도를 수차례 개편해도 만점이 계속 나오는 건 한국인이 시험에 맞춰 ‘최적화 대비’를 하기 때문이다. 영어 실력 자체를 키워서 토익 점수를 잘 받는 게 아니라, ‘토익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딱 필요한 것만 공부하겠다’는 이런 사고방식이 한국인에게는 낯설지 않다는 소리다.
최적화라는 특성 덕에 한국은 인류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경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경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부상할 수 있었다. 한때는 ‘냄비 근성’이라고 스스로 비하하고 욕했던 ‘한국인스러움’을, 특히 젊은 세대는 하나의 밈처럼 소비하면서, 심지어 자부심까지 드러내고 있다.
최적화의 나라 한국에서 보수주의는 어떤 의미일까. 한국 보수주의에 대한 논의는 특정 국가의 정치인, 특정 인종이나 계층의 이미지, 혹은 몇 개의 인용구로 환원되는 경향이 강했다. ‘레이건식 보수주의’니 ‘대처의 리더십을 본받아야 한다’느니 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는 보수주의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이성보다는 질서 기반’ 점진적 변화 모색하는 보수주의
보수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보수주의가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500㎖ 물병을 떠올려 보자. 병을 제외하고 그 속에 담긴 물의 중량은 500g이다. 왜 숫자가 같을까. 일부러 그렇게 설정했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은 계몽주의자들의 작품이다. 지구 자오선의 길이를 측정하고 그것을 나눠 미터라는 단위를 만들었다. 물이 어는 온도를 0℃, 끓는 온도를 100℃로 설정하고, 4℃의 물이 가로 1m, 세로 1m, 높이 1m일 때 1t이 된다고 정했다.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표준 도량형’이다.
18세기 영국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에드먼드 버크의 저서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1790). 위키피디아
보수주의란 “미터법이 아니라 야드 인치법을 쓰는 게 좋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익숙하니까”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세계관이다. 이성을 통해 ‘합리적’으로 도출된 결론 대신 익숙한 관습을 더 존중하고, 그것을 삶의 기준으로 삼자고 주장하는 정치적 입장이다. 프랑스혁명의 열풍을 보며 “영국도 프랑스처럼 저렇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만들자”라고 외치던 영국의 친불파를 보며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에드먼드 버크가 제시한 관점이 바로 보수주의다. 그의 저서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1790)’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이 계몽된 시대에 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교화되지 않은 감정의 소유자라고 대담하게 고백한다. 우리의 옛 편견을 소중히 여기며, 부끄럼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편견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소중히 한다고 고백한다. (중략) 편견이라는 코트를 버려 알몸의 이성만을 남겨놓는 대신, 이성이 포함된 대로 편견을 지속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성을 지닌 편견은, 행동에 이성을 부여하는 동력을 보유하며, 행동에 영속성을 부여하는 애정을 지니기 때문이다.”
버크가 말한 ‘편견’은 부정적 의미의 편견과 다르다. 그것은 비이성이나 맹목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된 경험과 판단의 응축물이다. 개인의 이성은 언제나 제한적이며, 인간 사회는 개인의 합리성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 보수주의란 바로 이 점을 인정하는 정치적 태도이며, 이미 존재하는 삶의 질서와 감각을 출발점으로 삼아 점진적 변화를 모색하는 사고방식이다.
한국인은 최적화를 사랑하며, 뭐든지 경쟁하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속성은 굳이 분류하자면 ‘보수’보다 ‘진보’에, ‘안정’보다 ‘개혁’에 더 잘 맞는다. 한국에서 한국인의 성격에 맞는 보수주의를 하려면, 오히려 진보적이고 개혁적이며 진취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한국식 보수주의’
이 전통의 기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로 그는 잠들어 있던 한국인의 정신을 깨웠다. 저 말은 돈을 많이 벌자는 그런 뻔한 소리가 아니다. 핵심은 ‘우리도’ 중에서도 ‘도’라는 부사에 있다. ‘네가 하는 건 나도 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경쟁심, 그러면서도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 잘살면 좋겠다’는 공동체주의의 감성을 직격한 것이다.이것을 한두 명의 영웅적 지도자나 경영자의 성공 사례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산업화의 기적은 한국인 전체가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인의 성격에 딱 맞는 한국식 보수주의,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혁신적인 그 역설적 보수주의가 이뤄낸 세계사의 기적이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영미권의 보수주의와는 다르다. 영미권의 보수주의는 지방자치와 분권을 선호하지만, 한국은 고려시대 이후로 중앙집권을 택해 왔다. 점진적이고 완만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영미권 보수주의라면, 한국인은 빠른 결과를 원한다. 한국 보수주의 최고의 성공 사례인 새마을운동이 바로 그렇다. 해충이 득실거리는 초가집을 지키는 온정적 태도는 한국 보수주의와 맞지 않았다. 신작로를 닦고, 다리를 놓고 개발하면 그 성과에 따라 더 많은 시멘트를 줬다. 공동체가 경쟁하고 더 잘살기 위해 노력하는 관점이 한국의 보수정당을 수십 년간 반석 위에 올려놓았던 한국식 보수주의에 가깝다.
작금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60% 이하로 내려오지 않은 지 오래다. 여당의 상황이 좋다고 볼 수는 없다. 사법개혁 논란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친명과 반명이 서로 대립한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견고하다. 대통령 지지율이 이렇게 높으니 6·3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의 패배 가능성은 높다.
보수정당 지지자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이 대통령의 ‘호통 정치’는 한국인의 성향에 잘 맞는다. 최고지도자가 사람을 들들 볶아서 빠른 결과를 내는 모습을 즐기는, 속도에 민감한 한국식 보수주의의 정서를 이 대통령이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공무원들을 상대로 호통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한국인은 ‘윗사람이 호통치고 아랫사람이 일해서 내가 편하게 되는’ 이 구조를 아주 좋아한다. 그런 대중 정서를 이 대통령은 정확히 공략하고 있고, 반대로 보수정당은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니고만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보수주의 과제 ‘일하는 보람 있는 사회’
이 대통령의 행보가 궁극적으로 한국에 도움이 된다면 굳이 그를 비판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 대통령은 한국식 보수주의의 탈을 쓰고 한국식 보수주의의 기반을 파괴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더 열심히 살자고, 경쟁하자고, 그래서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 하던 그 정신의 토양을 망가뜨리고 있다.
1972년 경기 김포시(당시 김포군)의 한 마을에서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주민들이 모여 농로 확장에 나선 모습. 동아DB
영국의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저서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1897)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등장한다. 비숍은 1894년에서 1897년 사이에 조선을 네 차례 여행했는데, 조선 본토의 조선인들이 가난하고 비참한 삶 속에서도 게을러 보이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러나 이후 시베리아의 연해주나 만주 지역에 이주해 정착한 한인 마을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조선인들이 매우 부지런하고 유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왜 같은 조선인인데 이렇게 다를까. 비숍은 조선인의 ‘게으름’은 민족적 천성이 아니라, 당시 조선 관리들의 심각한 부패, 착취, 무능한 국가 체제와 같은 환경 요인에서 비롯된 것임을 통찰했다. 노력의 결실을 착취당하지 않고 온전히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면 조선인이라도 성실하게 일해 부를 일구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조선이 국가체제만 일신하면 발전할 수 있다고 예언했다.
그 예언은 현실이 됐다. 한반도의 야간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똑같은 ‘민족’인데 한쪽은 세계 최고의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에 살고, 다른 한쪽은 세계 최악의 빈곤국에 살고 있다. 인간의 기질 자체가 정해진 게 아니다. 그 또한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제도나 분위기 등에 영향을 받고, 그렇게 만들어진 외적 요소가 인간의 기질을 만들며, 그런 기질의 인간들이 다시 제도를 만든다.
여기서 한국 보수정당의 과제를 발견할 수 있다. 고생하는 사회, 야근으로 쓰러져 죽는 세상을 만들자고 대중을 설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하는 보람이 있는 사회, 내가 원하는 만큼 일해서 내 성취를 가져갈 수 있는 사회, 비숍 여사가 바라보았던 ‘조선’이 아니라 ‘연해주’에 가까운 사회, 그것을 만들자고 국민에게 제안할 수는 있다.
이 대통령은 계속 새마을운동 흉내를 내면서 국민에게 현금을 살포하고 청년에게 실업급여를 먹이려 할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없애는 처사다. 이런 식으로 학습과 훈련이 거듭되면 우리가 아는 ‘한국인다운 한국인’의 모습도 지키기 어렵다. 한국 보수정당의 목표는 그런 면에서 ‘한국 사람 되찾기’가 돼야 할지도 모르겠다.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칩 워’ ‘인간의 본질’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