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여성론 논의를 좇다보면 생활정치, 미시정치적인 관점이 배어나고 있음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이른바 정치생태학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생태여성론의 특성은 문순홍의 이력을 살펴보면 쉽게 고개 끄덕이게 되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당초 성균관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문순홍은 박사후 과정으로 여성학을 공부했다. 때문에 정치학과 여성학을 섭렵한 문순홍이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1980년 대학 졸업 후 문순홍은 외교안보연구원 유럽 관련부서에 근무했다. 당시 그곳의 신문들은 반전평화운동, 녹색당, 학생들의 빈집 점령운동 등을 보도하고 있었는데, 이는 당시 한국사회의 기본 물음이 노동과 반독재였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문순홍은 혼돈스러웠다고 회고한다.
이는 석사과정 지도교수로 사실상 생태사상의 한국적 원조라 할 수 있는 임효선 교수를 만났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임교수는 문순홍에게 정치사상의 기초로서의 ‘자연관’에 대한 질문을 던졌으며, 문순홍은 근대 서구철학의 자연관과 동양적 자연관의 차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년간의 독일 유학에서 얻은 자기성찰은 내가 나의 것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귀국 후 문순홍은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 연장선 위에서 서구철학의 자기반성(?), 일명 철학의 종언 혹은 포스트모던 논쟁판을 기웃거리게 됐다.
여성 환경활동가 300여명 심층 인터뷰
문순홍의 관심 분야는 환경문제가 아니라 생태패러다임과 이와 관련된 사회적 물음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패러다임 변동에 관심이 있었던 문순홍은 변동의 방향이 생태적인 방향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변동을 일으키는 생태 위기는 분할된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의 자기 목소리 내기, 추상화된 보편성과 이 보편성에 기반한 체제억압성에서 구체적 개인들(개체들)의 살아 숨쉬는 능력 복원하기의 문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동시에 이 안에 여성과 자연의 자기 목소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문순홍은 말한다. “내가 연구해야 할 곳은 아카데미에 갇힌 연구실만이 아니었다. 동시에 현장이었다. 1987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사람들은 생태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내 작업은 이 생태란 단어를 이해시키는 데 집중돼 있었다. 동시에 내 관심은 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시각 형성에, 현장에 참여하는 건강한 시민 형성에 있었다.”
5월31일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는 종교인들의 삼보일배(三步一拜) 행사가 서울 광화문 앞에서 대장정을 마감했다. 생태여성론의 입장에서 문순홍은 그 행사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생태여성론은 지역과 관련하여 물리적이고 추상적인 공간 개념보다는 구체적 삶이 진행되는 장소 개념을 선호한다. 이 장소는 행정적·정치적·경제적 목적의 구획 속에 닫힌 것이 아니다. 물론 이 장소는 강, 산맥, 동식물대에 의해 분리되기도 하지만(닫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를 넘어서는 영성에 의해 열리기도 한다.
한국의 환경운동에서 동강 영월댐 건설 반대운동은 그런 운동방식에서 한 획을 그었다. 그것은 영월·정선·평창으로 닫힌 영성(동강과 자신의 삶과의 관련성에 대한 인식)을 한반도 전역으로 열어놓았던 것이다. TV 화면에 펼쳐지는, 또 현장방문에서 확인한 동강의 아름다움은 전국민의 생태적 감수성을 흔들어놓았고 동강이 그곳에 그대로 있어야 할 이유를 이해시켰다.
이에 비해 새만금 간척사업은 동강의 사례와는 달라 새만금에 대한 생태 감수성을 지역에서 전국으로 열어놓을 기제를 발견하지 못했고, 새만금이란 지역을 행정적·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에 가두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번 삼보일배 행사는 이 기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삼보일배 행군은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바로 내 안의 자기-타자-긍정성을 탐진치의 억압에서 풀게 한다는 의미에서, 이를 통해 인간과 지역 이해관계에 갇혀 있는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시각을 한반도, 동북아, 세계로 그리고 현재에서 미래로 열어준다는 의미에서, 운동을 넘어 자기혁명의 수행이고 이 수행을 통해 나와 타자가 해방된다는 의미에서 생명축제의 전조다.
문순홍은 당분간 강의와 외부 활동을 쉬고 있는 상태지만 최근 문순홍에게 강의를 들었던 사람들이 만든 에코페미니스트 모임 ‘꿈꾸는 지렁이들의 모임(www.ecofeminist.org)’은 ‘꿈꾸는 지렁이들’(환경과생명) 같은 책을 출판하며 여성 환경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