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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학교는 ‘촌지 왕국’

“다른 반 엄마들은 간식도 싸오던데… 이렇게 수준 낮은 반은 처음이에요”

대한민국 학교는 ‘촌지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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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첫아이가 입학한 뒤 소화불량에 걸릴 만큼 신경이 쓰였다. 아이가 소심한 구석이 있어서 불안감은 가중됐다. 고민 끝에 3월말 봉투를 내밀었다. 그후부터 다른 아이에 비해 ‘칭찬 스티커’ 붙는 속도가 빨랐다. 학부모가 참여하는 공개수업 때는 우리 아이를 특별히 지명해 발표를 하도록 했다. 그래서 스승의 날에 15만원대 외제 화장품을, 2학기 초엔 1학기 때와 마찬가지로 20만원을 또 건넸다.”

전씨는 “올해 스승의 날에는 선물이 아닌 현금으로 주겠다”면서 “교사가 주부라 실생활에서 선물보다 현금을 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백화점 상품권에 배추김치 한 통

촌지가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행동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촌지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내 아이만을 특별히 잘 봐주기’를 바라는 학부모와 이를 거절하지 않는 교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상당수 교사는 사명감을 갖고 참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촌지수수의 가장 큰 병폐는 교사가 알게 모르게 촌지를 건넨 학부모의 아이에 대해 ‘특별대우’를 한다는 데 있다. 학부모가 봉투를 준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촌지 액수는 학부모의 경제력뿐만 아니라 지역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수도권과 지방은 10만~20만원, 서울은 20만~30만원이 주를 이뤘다. 이 금액은 6년 전과 비교할 때 큰 차이가 없다.

서울 강남의 손모(41)씨는 “‘교육특별구’라 불리는 우리 동네 초등학교는 ‘망신당하지’ 않는 수준이 30만원”이라면서 “상당수 학부모가 습관처럼 촌지를 건넨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교육열이 가장 높기로 소문난 이곳은 촌지 액수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편이다. 학부모는 촌지를 아예 주지 않거나 ‘확실히’ 주는 쪽으로 양분된다. 전자는 소신이 뚜렷하거나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경우다. 남편의 월급으로 사교육비 대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반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업가와 전문직 종사자는 후자에 속한다. 아주 적게 하는 경우가 30만원이고 50만원이 보편적이다. 100만원을 건넨 학부모도 있다. 100만원을 받은 어떤 교사는 “아버님 사업이 잘 되기 바란다”는 답례 전화까지 했다고 한다. 촌지는 3월 신학기와 스승의 날, 2학기 초, 그리고 이듬해 설날 등 1년에 네 차례 하는 것이 ‘정석’이다.”

지난 3월 중순부터 4월 초에 걸쳐 만난 강남지역 초등학교 학부모 16명의 경험담도 손씨의 얘기와 비슷했다. ‘정석’대로 촌지를 건네는 게 부담스러우면 스승의 날과 2학기 초, 두 차례만 건넨다고 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손씨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인 김모(35)씨는 그 지역의 ‘적정금액’이 아닌 줄 알면서도 10만원권 백화점 상품권을 준비했다. 부족한 금액을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하던 김씨는 정성껏 담근 배추김치 1통을 함께 건넸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식을 학교에 보내는 부모로서 이 땅의 열악한 교육현실에 분노를 느끼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교사와 학부모의 인격적 만남을 가로막는 잘못된 교육풍토의 주범은 촌지다. 촌지는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학부모가 교사를 만나고 싶어도 경제적인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거나 양심에 거리껴 촌지를 준비하지 못하면 학교 방문을 꺼리게 된다. 이런 현상이 되풀이되다 보면 학부모와 교사의 의사소통은 단절되고 결국 그 피해는 학생에게 돌아간다.

“이번처럼 수준 낮은 반은 처음”

한국의 교사와 학부모는 평등관계가 아니다. 그들은 ‘강자’와 ‘약자’다. 촌지는 약자인 학부모가 강자인 교사에게 건넨다는 점에서 뇌물과 비슷한 성격을 띤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www.

hakbumo.or.kr·이하 참교육학부모회) 상담실에는 ‘약자’들의 고민이 수북이 쌓여 있다. 다음은 지난 3월25일 ‘4학년 학부모’라는 닉네임으로 올린 고민 중 일부다.

“하루는 아이의 귀가가 늦어 교실로 찾아갔더니 담임선생님이 ‘아이의 수업태도가 안 좋고 편식을 한다. 그래서 야단을 많이 쳤다. 이번처럼 수준이 낮은 반은 처음 봤다. 학부모들 호응도 없고. 다른 반은 엄마들이 화분도 사오고, (교사들을 위한) 간식도 돌리고 난리인데 우리 반에는 지금까지 화분을 사오거나 간식 사오는 엄마가 한 명도 없다’고 했다. (교사가) 간접적으로 뭘 바라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에 교실로 큰 화분을 보냈는데, 영 기분이 안 좋다. 혹시 아이가 교사에게 불이익을 당하거나 야단맞지 않을까 싶어 화분을 보냈지만 학부모 총회에 가는 것이 두렵고 솔직히 담임선생님과의 인사도 피하고 싶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이 학부모는 “초등학교 시절 교사의 칭찬 한 마디가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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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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