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 열린 2차협상이 끝난 뒤 ‘반대’ 여론이 ‘찬성’을 앞질렀다지만, 국민 대다수는 아직 한미 FTA에 대해서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 집단도 마찬가지다. 한 전문가는 한미 FTA 관련 기사로 지면을 도배한 모 주간지에 쓴 칼럼에서 “아직도 나는 내가 찬성 입장인지 반대 입장인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국면에서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한미 FTA 협상이 좌초할 위기에 처한 것. 7월10일부터 14일까지 닷새 동안 서울에서 열린 2차협상 마지막 날, 미국측은 보건복지부가 5월3일 내놓은 새로운 약값 결정방식을 문제 삼으며 일방적으로 협상장에서 철수했다. 웬디 커틀러 한미 FTA 미국측 수석대표는 협상장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무너지는 건강보험 재정
“한국의 ‘새로운 약값 결정방식’은 한미 FTA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에 앞선 6월15일, 서울 중구 웨스턴조선호텔에서는 세간의 이목을 끄는 기자회견이 마련됐다. 국내에 진출한 26개 다국적 제약사의 이익단체인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가 개최한 이날 회견에서 KRPIA는 “보건복지부의 새로운 약값 결정방식은 ‘혁신적 신약’을 환자들에게 제공하려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며 복지부를 성토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복지부의 ‘새로운 약값 결정방식’이란 과연 무엇일까. 언론과 관련 전문가들이 이를 설명하려고 갖은 노력을 하고 있으나 지금도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국민은 드물다. 환자들이 처방받은 약을 구매하면 보통 약값의 20%(중환자는 10%)만 본인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책임진다. 현재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약은 2만2000여 종.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약이 이처럼 많은 것은 지금의 약값 결정방식이 ‘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즉 미용·성형 등의 목적으로 쓰이는 일부 약을 제외하고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의 허가를 받기만 하면 거의 예외 없이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는 것이다.
복지부는 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선별 등재 방식)’으로 바꾸려 한다. 식약청의 허가를 받은 약을 평가해서 효과는 우수하면서 가격은 상대적으로 싼 약에만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한 것. 이렇게 되면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약은 지금의 2만2000여 종에서 1만여 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복지부는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기만 한다면 전반적으로 약값이 내려가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복지부가 이처럼 수십년간 지속된 약가(藥價)제도를 바꾸려고 나선 데에는 약값 선정 시스템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건강보험 재정이 파산 상태에 이르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건강보험 진료비에서 약값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23.5%에서 2002년 25.2%, 2005년 29.2%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이 지급하는 약값은 2001년 4조1804억원에서 2005년 7조2289억원으로 73%나 늘어났다. 2002년을 기준으로 각 나라의 진료비 중 약값 비중은 미국 12.9%, 독일 14.6%, 일본 18.4%, 프랑스 20.9%로, 한국(25.2%)보다 훨씬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