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비행기를 폭파해서 많은 사람을 죽였다네요. 예전에 마유미라는 일본 이름을 사용했고…. 그리고 북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정확한 게 아니라고 하는군요.”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지식검색’ 코너에 올라 있는 대화이다. ‘김현희’를 치면 첫 화면에서 이런 글들을 접하게 된다. KAL 858기 폭파사건이 일어난 것은 1987년 11월29일. 지금 대학 1학년생에게만 해도 막 태어났을 때의 일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대화 내용이 황당하다.
그럴 듯해 보이는 팩트(fact)와 의견들이 섞여 ‘진실’로 둔갑할 여지가 많은 인터넷 공간에서 KAL기 폭파사건은 명백한 실체적 진실조차 ‘의문’과 ‘의혹’으로 뒤덮인 지 오래다. 2, 3년 전부터 유족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불거지면서 다양한 의문과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8월1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가 내놓은 ‘KAL 858기 폭파사건 중간발표’ 자료는 눈여겨볼 만하다. KAL 858기 가족회 등 유족단체가 제기한 의혹은 처음엔 30여 가지에 불과했으나, 최근 수년간 시민단체와 각종 매체 등에서 제기한 의혹을 합치면 무려 350가지에 달했다. 이 중에는 1987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대통령선거를 겨냥해 KAL기를 일부러 폭발시켰다는, 소설 같은 음모론적 의혹도 들어 있다. 진실위는 이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조사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언론은 국정원의 이날 중간발표를 큰 기사로 다루지 않았다.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만한 새로운 사실도 없을뿐더러, 마침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이에 따른 외교적 여진이 워낙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을 출발, 서울로 향하던 KAL 858기가 북한 공작원 김현희, 김승일의 폭탄 테러에 의해 폭파돼 승객과 승무원 115명이 전원 사망한 사건’이라는 뼈대는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고 보도했고, 진보 성향의 몇몇 매체는 “당시 정권이 KAL기 사건을 대선 국면에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부분 정도를 비중 있게 다뤘을 뿐이다.
국정원 진실위의 자료를 중심으로, 그간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세간의 의혹과 그에 대한 조사결과를 재구성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