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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정 주식시장 사람들

“자본금? 필요 없어! 여기는 배포 하나로 일확천금 하는 데야”

명치정 주식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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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에는 신문을 만들고 낮에는 단기 주식투자에 열중했던 문학평론가 김기진, 주식으로 날린 돈을 채워 넣으려다 인생을 망친 전도유망한 은행원, 배포 큰 투자와 빠른 판단으로 거부(巨富)를 일군 유일한 조선인 조준호. 1930~40년대 경성의 주식시장 ‘조선취인소’에서 벌어진 초기 금융자본주의의 난투극을 들여다보자.
명치정 주식시장 사람들

1922년 명치정에 건립된 경성주식현물취인시장. 1932년 인천미두취인소와 합병돼 조선취인소로 이름이 바뀐다. 큰 사진은 조선취인소 주변풍경을 묘사한 ‘삼천리’ 1938년 8월호 ‘황금이 끓는 전시하 명치정 주식가’ 기사.

1933년, 문학평론가 김기진은 가혹한 한 해를 보냈다. ‘조선일보’ 사회부장으로 근무하던 김기진은 그해 1월, 극심한 경영난을 겪던 ‘조선일보’가 금광 재벌 방응모에게 인수되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1924년 ‘매일신보’ 기자를 시작으로 ‘시대일보’ 기자, ‘중외일보’와 ‘조선일보’ 사회부장을 역임한 10년 경력의 중견 언론인이었지만, 김기진의 나이 이제 고작 서른하나였다. 젊은 혈기에 사표는 던졌으나 뾰족한 호구지책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1933년 한 해 동안 김기진이 만진 돈이래야 ‘동아일보’와 ‘신동아’에 평론을 기고해 받은 원고료 기십원이 전부였다.

이듬해 1월 ‘ML(마르크스 레닌)당 사건’으로 7년형을 선고받은 형 김복진이 만기 출소했다. 김기진에게 조각가 김복진은 형이기 이전에 도쿄 유학 시절부터 프롤레타리아트 예술운동을 함께한 동지였다. 미술계와 문학계에서 막중한 영향력을 가진 형제였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초라한 ‘전과자’와 ‘실업자’ 신세일 뿐이었다. 한 달 후, 근 1년간 집에 눌러앉아 빈둥거리던 김기진에게 ‘조선일보’ 서무부장으로 있다가 지난해 그와 함께 퇴사한 김웅권이 찾아왔다.

“이보게 팔봉(김기진의 아호), 3년 전 우리가 총독부 광산과에 출원한 평남 안주의 금광이 허가되었네. 출자할 친구도 한 사람 구해놓았으니 허구한 날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을 게 아니라 안주로 내려가서 금광이나 하세. 그깟 신문 같은 것에 미련을 갖고 서울에 있느니보다 산골에 가서 노루 피나 먹는 것이 낫지 않겠나.”

김웅권의 동업 제의를 받은 김기진은 주저없이 승낙했다. 1934년 4월16일, 김기진과 김웅권 두 사람은 서울을 떠나 평남 안주의 궁벽한 산골로 떠났다. 금광으로 떠나는 찻간에서 김기진은 장차 산에서 큰 재수가 터지면 돈 백만원 움켜쥐고 보란 듯이 신문사를 하나 차리겠다는 행복한 꿈을 꾸었다.

금광에서 주식시장까지



일확천금의 꿈을 품고 금광으로 달려간 김기진은 낮이면 광부들과 어울려 금을 찾고 밤이면 소설 ‘청년 김옥균’을 써서 ‘동아일보’에 연재하는 고단한 일과를 보냈다. 조선에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소개한 작가가 금광을 하러 떠났다는 소식은 문단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일찍이 김기진씨는 ‘개벽’지에 시대적 고뇌상을 담은 여러 편의 수필을 실어 독자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붉은 쥐’‘젊은 이상주의자의 사’ 등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담은 소설을 발표하고, 날카로운 필봉으로 문예월평을 쓰면서 문단의 중요한 평론가로서 대우받는 동시에 필자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또 문학청년으로서 김기진 씨를 만나고 싶던 차에 김기진 씨를 논하게 되니 외람된 생각도 나거니와, 그때 그와 같은 정열을 가지고 나섰던 선배가 금광으로 일확천금의 이상을 안고 출발하였다니 세사와 인심의변천에 새삼스럽게 무상함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민병휘, ‘김기진론’, ‘삼천리’ 193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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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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