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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정신질환 ‘애견사망 증후군’

우울증, 거식증, 알코올 중독, 자살… 겪지 않고는 모르는 ‘죽음보다 깊은 슬픔’

신종 정신질환 ‘애견사망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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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정신질환 ‘애견사망 증후군’

요즘 ‘애견’은 사람보다 낫다. 건강 정기검진을 받는 팔자좋은 애견.

김씨의 상황은 최근 들어 더 심각해졌다. 음식을 거부하고 술만 먹은 결과 간에 이상이 생긴 것. 알코올성 간염이 급속하게 진행돼 그녀의 간을 좀먹어들어갔다. 마침내 내려진 진단명은 ‘회생 불능성 간경변’. 그녀는 입원해 있던 대학병원으로부터 퇴원 조치를 받고 집에 돌아와 대책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애도증후군이라고도 하는 애도반응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부모, 배우자, 자식 등 가까운 사람의 죽음 후에 찾아오는 슬픔과 식욕부진, 음식물 거부, 불면증, 우울증 등 심신에 생기는 총체적인 증상을 이르는 것으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나아진다. 사망 후 2개월 이내에 나타나는 애도반응은 정상으로 간주되지만, 3~6개월이 지나도 증상이 좋아지지 않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악화되었다면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적응장애로 본다.

어른도 아이도, 부모도 자식도…

요즘에는 오랜 기간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온 애완견의 죽음에 극심한 애도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는데, 이 경우에는 애도증후군과 구별해 ‘애견사망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애견인들 사이에서 사용되던 은유적 표현이 어느새 의료 신조어가 된 셈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은 “애견사망 증후군을 치료하려면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해결하기 위한 항우울제나 수면제 처방 등을 기본으로 하되, 마음 깊은 곳의 상처와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한 상담치료를 병행해 심리상태를 안정시키고 슬픔을 극복하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처녀 때부터 키우던 애견이 죽은 뒤부터 아랫배가 딱딱하게 뭉치는 증상을 보여 결국 임신 8개월 만에 제왕절개로 아이를 조산한 산모, 죽은 강아지가 다시 살아 돌아올 수도 있다는 말에 현혹돼 휴학하고 집을 나가 사이비 종교단체에서 2년간 합숙했다는 대학생의 사연도 있다.



애견의 죽음은 어린이에게도 커다란 상처를 안긴다. 초등학교 6학년 외아들을 둔 최영희(40)씨는 애완견의 죽음 이후 아들이 겪은 혼란과 후유증 때문에 애완견을 키운 자체를 후회하고 있다. 최씨가 집에서 키우던 골든리트리버가 노환으로 죽은 것은 아들이 여섯 살 때. 그날 하필이면 제일 일찍 일어나 개의 죽음을 확인한 이가 아들이었다. 며칠간 식사를 거부하며 울기만 하던 최군은 그때부터 야뇨증이 시작돼 약 3년간 거의 매일 이부자리에 오줌을 쌌고, 말수가 적어지면서 친구들과도 거리를 두며 학습거부 반응을 보였다. 아들은 2년 전부터 조금씩 나아져 지금은 큰 문제없이 학교생활을 해나가고 있지만, TV나 책에서 강아지가 죽는 장면이 나오거나 길에서 골든리트리버를 보면 눈물을 흘리는 등 아직 충격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다른 애완동물과는 달리 애견의 죽음은 이토록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는 것일까. 우성동물병원 이지연 원장은 “개는 주인에 대해 절대적인 복종과 신뢰를 포함한 애착관계를 형성한다. 젖먹이 아기와 엄마의 관계에 비유할 수도 있는데, 이 과정에서 주인 역시 애견에 대한 정서적 동일화를 이루면서 정신적으로 긴밀한 유대를 형성한다. 이런 상태에서 애견의 죽음이라는 극단적 형태의 이별을 맞게 되면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개는 돌고래, 오랑우탄, 돼지 등에 이어 높은 지능을 갖고 있으며 학습능력이 가장 뛰어난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사람과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인간에 대한 친화력이 어떤 동물보다 강하다.

인터넷 애견카페에서 스스로를 애견사망 증후군 환자였다고 밝힌 한지원(36·가명)씨도 9년간 동고동락한 애완견 ‘뚜비’가 죽은 후 2년이 넘도록 일상생활에 복귀하지 못한 채 우울증에 시달렸다. 명문 여대 비서학과를 졸업하고 다국적 기업의 사장직속 비서로 재직하던 한씨는 어느 날 본국으로 떠나는 동료직원에게서 뚜비를 넘겨받아 기르게 됐다. 그 무렵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가벼운 우울증을 앓았지만 뚜비를 키우면서 다시금 생활에 활력을 찾을 수 있었다.

애완견을 키우면서부터 한씨의 생활 전반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퇴근 후 곧바로 집으로 향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자주 만나던 친구들과 조금씩 거리가 생겼다. 대학에 들어간 뒤로 멀게만 느껴지던 부모와의 사이는 뚜비 덕분에 오히려 좋아졌다. 저녁식사 후 거실에 모여 다 함께 뚜비의 재롱을 보거나 뚜비의 일상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등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 정년퇴직 후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한씨의 부모도 늦둥이를 본 듯 예뻐하면서 뚜비에게 정성을 쏟았다. 하지만 동화 속 장면 같던 ‘스위트 홈’은 뚜비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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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이윤진 자유기고가 nestr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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