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프리-펜데믹 백신을 개발중인 녹십자 목암생명공학연구소(왼쪽)와 개발 연구 책임자인 박만훈 박사.
더구나 2008~2010년은 많은 과학자가 인플루엔자 팬데믹의 도래를 예고하는 시기다. 20세기 들어 인플루엔자 팬데믹은 1918년(4000만~1억명 사망), 1957년(200만명 사망), 1968년(70만명 사망) 등 3번 발생했다. 2008년은 마지막으로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찾아온 1968년부터 정확히 40년이 되는 해다.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대변이가 일어나는 기간이 대략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발생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앞으로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닥쳐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얼마나 빨리, 어느 곳에서 발생할지 아무도 모를 뿐”이라고 덧붙였다.
만약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오면 얼마나 큰 희생이 발생할까. 20세기 최악의 인플루엔자 팬데믹 피해가 발생한 1918년 사망자 수(4000만~1억명)를 오늘날의 인구에 대입시켜 보면 최대 3억2500만명이 인플루엔자 팬데믹의 희생양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인구의 5%에 해당하는 숫자다.
2004년 12월, WHO의 오미 시게루 박사는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 피해를 상기시키며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찾아온다면) 사망자가 적어도 700만명은 될 것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1억명이 죽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미 박사는 차기 WHO 사무총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이다.
김우주 교수는 “1918년과 2008년을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것은 AI를 치료할 수 있는 약, AI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 이 두 가지가 존재한다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라며 “만약 이 두 가지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인플루엔자 팬데믹 피해는 1918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산 백신, 2년 안에 나온다
현재 한국 정부는 AI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를 전 국민의 2%가 복용할 수 있는 100만명분을 비축해놓고 있다.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인구 10~20% 이상이 복용할 수 있는 양을 비축하라고 권고한 것에 비춰보면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미국은 전 국민의 25%가 복용할 수 있는 7500만명분을 비축한 상태다.
사실 타미플루보다 더 효과적으로 인플루엔자 팬데믹에 대응하는 방법은 예방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 존재하지 않은 인플루엔자 팬데믹의 백신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인플루엔자 팬데믹 바이러스로 변이할 가능성이 큰 현재의 H5N1을 염두에 두고 백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백신이 가능한 것은 이른바 ‘교차 방어(cross-protection)’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베트남에서 발생한 H5N1을 묽게 희석해 접종받은 쥐는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H5N1에도 면역이 생기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H5N1 변종의 차이가 크지 않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교차 방어를 염두에 두면 일단 2004년에 발생한 H5N1으로 만든 백신을 접종받은 사람은 웬만한 H5N1의 변종에 면역이 생긴다. H5N1이 극단적인 돌연변이를 하지 않는다면 기존의 H5N1 백신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목적으로 만드는 백신을 ‘프리-팬데믹 백신’이라고 한다.
현재 세계 각국은 제약업체와 함께 AI 프리-팬데믹 백신을 연구, 개발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나라는 미국이다. 지난 4월,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은 사노피-파스퇴르가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공동으로 개발한 AI 프리-팬데믹 백신을 세계에서 최초로 승인했다.
유럽 최대의 다국적 제약업체 글락소 스미스클라인(GSK)도 AI 백신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GSK는 교차 방어 효과를 극대화한 AI 프리-팬데믹 백신 개발을 완료하고 2008년 3월까지 유럽연합(EU), 오스트레일리아 등으로부터 허가를 받을 예정이다. GSK는 이 백신을 WHO에 무상 공급하는 것과 별도로 미국, 영국, 스위스 등에 판매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