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복씨가 보낸 편지 내용과 복지부의 ‘황당한’ 답변들.
전신마비 환자가 눈으로 말한다? 잘 이해되지 않았다.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받아쓴다’는 말로 미뤄 호킹 박사처럼 첨단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이씨가 전에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며 언제부터 어떻게 아팠는지 물었다.
“남편 허락을 받아야 해요.”
전신마비 상태지만 가장으로서 이씨의 위엄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았다. 그의 글에서도 카리스마가 묻어나온다. 자신의 신병과 관계된 내용은 ‘59세의 전신마비 루게릭 환자이고 눈으로 글을 쓴다’는 것뿐. 나머지는 잘못된 제도와 복지부 공무원의 태도를 나무라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자기 신세를 한탄하면서 넋두리를 늘어놓은 대목은 어디에도 없었다. 글에 비친 그는 강인했다.
‘인간승리’의 편지
이씨를 만나게 해달라고 하자 부인은 “그 편지면 족하지 않나. 꼭 봐야 하느냐”고 했다. 사진촬영도 반대해 간신히 설득한 끝에 허락을 받았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아파트. 그곳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공간이 이씨의 방으로, 흡사 병원 중환자실을 옮겨놓은 것 같았다. 침대에는 몸을 고정하는 여러 가지 장치와 호흡기, 가래와 농을 씻어내는 석션(suction) 기계가 부착돼 있었다. 그리고 침대 머리 쪽 양편에 한글의 자음과 모음, 숫자가 씌어 있는 문자판과 이런저런 생활용어가 적힌 종이가 코팅되어 붙어 있었다. 무슨 암호문 같았다.
이씨는 이것을 이용해 가족과 간병인에게 눈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가령 ‘최’라고 말하려면 부인이나 간병인이 이씨에게 문자판의 자음과 모음을 눈으로 선택하게 한 후 자음을 ‘ㄱ’부터 순서대로 읽어 나가다 ‘ㅊ’에 이르면 이씨의 눈이 깜박인다. 그 다음엔 모음을 순서대로 읽어나가다 ‘ㅗ’에 이르면 눈을 움직인다. 이어 또 한 번 자음과 모음을 선택하게 한 후 모음을 순서대로 읽으면 ‘ㅣ’에서 눈에 변화가 온다. 이씨의 부인은 “30분간 60자 정도를 받아쓰는데, 그 정도만 해도 남편의 등에서 땀이 흥건히 배어난다”고 했다. 글을 쓴다는 게 이씨에게 얼마나 고단한 작업인지 짐작할 수 있다. 군말 없이 쉬지 않고 자음과 모음을 읽어내는 가족과 간병인의 인내도 놀랍다.
이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정보도 꿰고 있다. 이씨의 노트북 컴퓨터 모니터에는 바둑판처럼 번호가 붙어 있는데 가족이나 간병인이 번호를 하나씩 부르면 선택하고 싶은 곳에서 눈이 깜박이고 그런 절차를 하나씩 거쳐 필요한 내용을 찾아 들어간다. 일반인이 단 몇 초 만에 할 수 있는 일도 그에겐 땀을 뻘뻘 흘리며 해야 하는 고역이다.
자음과 모음 문자판에는 ‘전심신호등’이라고 쓰인 부분이 있다. 뭔가 불편한 게 있거나 원하는 게 있을 때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이씨가 문자판의 ‘전심신호등’에서 눈을 깜박이면 부인과 간병인은 생활용어 문자판을 꺼내 다시 거기에 씌어 있는 수십 가지 요구사항을 쭉 읽고, 그의 눈이 원하는 것을 해준다. 자음과 모음이 쓰인 문자판에는 ‘이심(以心)’, 생활용어 문자판에는 ‘전심(傳心)’이란 제목이 붙어 있었다. 눈만 보아도 이심전심으로 다 통한다는 뜻. 부인에게 이씨가 무슨 일을 했으며 언제부터 병을 앓았는지 다시 물었다. 부인은 이씨에게 “말해도 되느냐”고 물었고 그는 눈을 한 번 깜박였다. 한 번 깜박임은 긍정, 두 번 깜박임은 부정이다.
“1999년까지 증권감독원에서 일하다 그 이듬해 증권선물거래소 이사로 옮겼는데, 2002년 9월 초쯤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툭’ 꺾이는 증세가 있어 병원을 찾았죠. 그때 루게릭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2004년 8월까진 그럭저럭 일상생활을 했습니다. 이후 급속하게 몸이 나빠졌어요. 이 문자판도 남편이 직접 고안한 겁니다. 말을 잃어버리기 전에 미리 준비해둔 거죠.”
이씨는 부인과 대화를 나누는 기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싱긋 웃어 보였다. 얼굴의 코 위쪽 근육은 아직 살아 있었다. 용기를 내 이씨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다. 부인이 이씨에게 “말을 할 거냐”고 물었고 이씨가 눈을 한 번 깜박였다. 하나의 질문에 답변을 하는 데 짧은 것은 15분, 긴 것은 30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