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치는 북극성이 가만히 있는데도 주변의 많은 별이 그를 향하는 것과 같다.”
태풍의 눈
태풍은 여느 바람과는 성격이 다른 독특한 바람이다. 일진광풍과도 다르고 몰아치는 폭풍과도 다르다. 노자는 “아침 내내 몰아치는 회오리바람도 없고, 하루 종일 내리는 소낙비도 없다”(飄風不終朝,驟雨不終日)라고 했지만, 태풍만은 며칠을 두고 불고, 또 밤새도록 비를 쏟는다.
폭풍이 위에서 아래로 퍼붓는 바람이라면, 태풍은 아래서 위로 쳐올리는 바람이다. 또 폭풍이 고기압대에서 생긴다면, 태풍은 저기압대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폭풍이 물처럼 흐르는 바람이라면, 태풍은 꼿꼿이 서서 걷는다. 태풍을 세우는 힘은 그 한가운데 뻥 뚫린 ‘눈’에서 나온다. 눈이 없다면 태풍은 한낱 ‘열대성 폭풍’에 불과하다. 거대한 구름 회오리 한가운데 뻥하니 뚫린 태풍의 눈은 한밤중에 마주친 고양이 눈깔처럼 섬뜩하다.
태풍의 눈은 텅 비고, 고요하며, 기압은 낮다. 그러니까 폭풍이 남성적이라면 태풍은 여성적인 바람이라고 해야 하리라. 자기를 낮추고 고요하며 맑은 태풍의 중심이 가진 특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여성적이다(태풍에 여성의 이름을 붙이던 옛 관습은 나름대로 유래가 있다고 해야겠다).

정말 강한 힘은 자기를 낮출수록, 또한 중심을 텅 비우고 고요하게 유지할 적에야 터져 나온다는 ‘힘의 역설’을 태풍으로부터 배운다. 자연의 강한 힘에 그런 역설의 기운이 감돈다면, 인간사회에도 그런 신비한 힘이 있지 않을까.
두 가지 힘
춘추시대는 ‘폭풍의 시대’였다. 권력자가 위에서 아래로 내리누르는 폭정의 시대요, 힘센 자가 약자를 밀어붙이는 폭력의 세월이었다. 공자는 이 폭력의 시대에 맞서서 힘의 원리를 깊이 연구한 사람이다. 그는 결코 시대의 폭풍을 피해 자연 속으로 도피한 은둔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인간세상의 힘에는 폭력만이 아닌 또 다른 힘, 즉 타인의 몸과 마음을 끌어들이는 신비한 힘이 있음을 발견하고, 여기에 덕(德)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공자 말씀하시다. “천리마 기(驥)를 칭탄하는 까닭은 그 힘(力) 때문이 아니라, 그 덕(德) 때문이다.”(논어, 1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