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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풀자 갱단도, FBI도 □을 주목했다

알 카포네와 금주법

술을 풀자 갱단도, FBI도 □을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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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금주법 시행으로 주류 밀매가 폭력조직의 커다란 수입원으로 자리 잡자 새로운 조직원의 충원이 필요했다. 시카고에서 알 카포네가 아일랜드계 갱단인 벅스 모런 파와 주도권 다툼을 벌인 것처럼 뉴욕에서도 이탈리아계 갱단은 앞서 터를 잡고 있던 아일랜드 및 유대인 갱과 주도권 전쟁을 치러야 했다.

주류 밀매권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은 ‘카스텔라마레스 전쟁’이라고 불리는 일대 격돌로 일단락된다. 1931년 유력한 경쟁 세력 보스가 암살되자 살바토레 마란자노가 뉴욕 암흑가를 접수한다. 마란자노는 곧 뉴욕 시를 5개의 패밀리로 나누고 행동 강령과 패밀리의 세부조직을 완성한다. 그러고는 스스로 ‘보스 중의 보스(Boss of All Bosses)’라고 일컬으며 모든 마피아 패밀리의 충성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역시 암흑가를 접수한 지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암살되고 만다.

알 카포네 같은 갱이 활개를 치면서 엄청난 돈을 긁어모은 결정적 계기가 금주법 제정이다. 미국 의회는 헌법을 고쳐가며 술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수정헌법 18조는 미국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고 만들어졌다. 헌법을 중시하지 않는 국가는 없지만, 미국에서 헌법의 의미는 남다르다. 미국은 한마디로 헌법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헌법을 통해 미국 정신의 토대를 다졌다. 오랜 기간 한 영토에서 숙성된 역사와 전통, 문화를 공유하지 못했기에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그게 헌법이었다.

“술은 惡의 원천”

그래서 궁금증이 더해진다. 국교(國敎)와도 같은 존재인 헌법을 뜯어고칠 정도로 금주가 절실하게 필요했던가. 법으로 술을 만들지 못하게 한 게 미국이 처음은 아니다. 여러 나라가 이런저런 사정을 들어 금주법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여러 차례 금주령을 내려 술을 못 만들게 했다. 조선시대 영조가 3차례에 걸쳐 금주법을 시행한 게 대표적이다. 모두 흉년이 들었을 때다. 곡식이 없어 끼니 잇기도 힘든 판국에 곡식을 빚어 만든 술을 마시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이유로 금주령을 내렸다. 지금도 상당수 이슬람 국가에서 금주법이 시행되고 있다. 얼마 전 파키스탄에서는 금주법 규정을 기독교인에게까지 적용해 논란이 됐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이해하려면 당시 미국의 상황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19세기 말 산업자본주의가 정점에 치달으면서 돈이면 뭐든지 다 된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지방정부 관리는 물론이고 연방정부 관료에 이르기까지 비리가 만연했다. 지각 있는 사회 지도층을 중심으로 혁신운동(progressivism)이 일어났다. 미국의 초심(初心)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렬하게 울려 퍼진 것. 목숨을 걸고 종교와 정치적 자유를 찾아 만든 나라가 타락의 나락으로 빠지는 꼴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주지하듯,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초기 영국 청교도 이민자를 중심으로 토착 인디언을 몰아내고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이후 네덜란드, 독일 등에서 주로 신교도가 정치·종교적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왔다. 이들은 나름대로 교육 수준과 경제력을 갖췄기에 신대륙에 정착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에 대기근(Great Famine)이 닥쳐 아일랜드인이 미국으로 대거 몰려오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는 당시 국민의 3분의 1이 굶어죽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끔찍한 기근에 시달렸다. 그들은 살기 위해 고국을 떠났다. 바로 옆 영국으로 들어가는 항로가 막히자 궁여지책으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했다. 배라고 생긴 것은 모두 타고 바다를 건넜다고 할 만큼 절박했다. 운 좋게 미국에 건너와도 손에 쥔 게 없었다. 교육 수준도 높지 않았고 가져온 돈이나 귀중품도 많지 않았다. 당장 생계를 해결하려면 대기근 이전 미국에 정착한 동포들이 사는 곳 주변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뉴욕의 ‘파이브 포인츠(Five Points)’와 같은 악명 높은 슬럼가가 만들어졌다. 마땅한 직업이 없던 이들에게 범죄는 일상이 됐다. 더욱이 아일랜드 출신은 거의 대부분 가톨릭, 즉 구교도였다. 술에 관대한 문화 탓에 이들 중엔 알코올 중독자가 많았다. 이들의 술주정과 행패 탓에 주변 지역은 엉망으로 변했다. 엄격한 생활윤리를 강조하는 프로테스탄트들이 건설한 미국의 원래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19세기 말부터는 동유럽과 남유럽 사람들이 자유와 부를 찾아 미국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들 역시 대부분 가톨릭 신자였다. 엄격한 생활윤리보다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정(情)과 와인이 없으면 안 되는 이들이었다.

미국 근대 조직범죄 역사를 보면 1세대는 아일랜드 갱, 2세대는 유대인 갱, 3세대는 이탈리아 갱, 4세대는 중국 갱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이후엔 베트남 갱과 러시아 마피아를 비롯한 동유럽 갱 등 미국 이민의 순서대로 새로운 갱 문화가 등장했다. 미국의 조직범죄 역사는 이민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는 셈이다. 주류 세력과 문화에 동화하지 못한 아웃사이더들이 그들 나름의 생존전략으로 만든 것이 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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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무│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형사사법학 jbalance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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