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6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기록문화전시회’에 선보인 구텐베르크 성경 원본.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양피지에 최초로 인쇄한 것이다. 원래 ‘성경(聖經)’, 즉 성인의 가르침은 ‘논어’였다. ‘Bible’은 ‘성경’이란 번역어를 통해 ‘논어’에 비유됨으로써 동아시아에서 대중성을 얻었다. 그리고 끝내 ‘논어’를 ‘성경’의 자리에서 밀어내고 안방을 차지했다.
맹자라는 고수
이렇게 붓을 모르는 학생들에게 연필이나 볼펜을 비유로 들었듯, 잘 모르는 사실이나 사물을 소개하는 데 설명을 해도 잘 모를 땐 비유(譬喩, 유비(類比), analogy)를 해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문장의 수사학뿐 아니라 학습방법으로 비유가 널리 쓰이고, 이는 역사 공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비유 하면 떠오르는 고수(高手)가 있다. 공자의 어록 ‘논어(論語)’ 다음으로 치는 고전인 ‘맹자(孟子)’의 주인공 맹자다. 맹자가 양(梁)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양혜왕이 물었다.
“저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내(河內) 지방에 흉년이 들면 그 백성을 하동(河東) 지방으로 이주시키고, 곡식을 하내 지방으로 옮겨 구제합니다. 하동 지방에 흉년이 들어도 그렇게 합니다. 이웃 나라의 정치를 살펴보건대, 저처럼 마음을 쓰는 자가 없는데도 이웃 나라 백성이 더 적어지지 않으며, 과인의 백성이 더 많아지지 않음은 어째서입니까.”
예나 지금이나 살기 좋은 곳으로 사람이 모이게 마련이다. 딴에는 열심히 정치를 하는데 왜 인구가 안 늘어나느냐는 질문이었다.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 전투를 좋아하시니, 전투 상황을 가지고 비유하겠습니다. 둥둥둥 북이 울리고 싸움이 벌어져 병기와 칼날이 부딪쳤습니다. 얼마 있다가 갑옷을 버리고 병기를 질질 끌고 패주하는 쪽이 있었지요. 어떤 사람은 백 보를 도망한 뒤에 멈추고, 어떤 사람은 오십 보를 도망한 뒤에 멈췄습니다. 이때 오십 보를 도망쳤다고 하여 백 보 패주한 자를 비웃으면 어떻겠습니까.
양혜왕은 말했다. “그건 말이 안 됩니다. 다만 백 보를 도망치지 않았을 뿐이지 이 또한 패주한 것입니다.” 그러자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 그걸 아신다면 이웃나라보다 백성이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시지요.”
이것이 유명한 ‘오십 보, 백 보’의 고사다. 전쟁이 빈발하던 때라 시대 명칭도 ‘싸우는 나라[戰國]의 시대’일 때 양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잦은 전쟁을 놔두고 백성을 구제하는 정책을 내놔봐야 실효가 있을 수 없었다. 백성을 들볶는 원인은 일차로 전쟁에 있었다. 그래서 맹자는 “사람들이 굶어 죽으면 ‘내가 그런 게 아니다. 올해 농사 때문이다’라고 하는데, 이건 사람을 찔러 죽이고 ‘내가 그런 게 아니다. 칼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반문했다.
이렇게 적재적소에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반론하는 맹자의 논법은 우리가 성선설(性善說)이라고 배운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에서도 효력을 발휘했다. 인간은 누구나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 그 방법이 곧 배움이다, 라는 공자 이래 유가(儒家)의 핵심 논지를 어떻게 설명했을까.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갑자기 어떤 어린아이가 우물로 빠지려는 것을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 ‘어이쿠! 어쩌면 좋아!’ 하는 마음을 가진다. 측은(惻隱)해하는 마음이다. 이는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으려고 해서도 아니며, 동네사람들과 친구들에게 칭찬을 들으려고 해서도 아니며, 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데도 구해주지 않는 잔인한 놈이라는 소문이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보아라, 누구나 이런 마음이 있지 않느냐! 이게 근거다, 라고 맹자는 말한다. 이 비유를 ‘유자입정(孺子入井·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짐)’의 고사라고 한다. 이어서 맹자는 우리가 도덕시간에 배운 사단(四端·4가지 단서)을 설명한다. 측은한 마음은 인(仁)의 단서이고, 수오(羞惡·부끄러움)의 마음은 의(義)의 단서이며, 사양(辭讓)의 마음은 예(禮)의 단서이고, 시비(是非)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의 단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