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권(58)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 전문가라 할 만하다. 노동부에서 어지간한 자리는 다 거친 베테랑이다. 1981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이듬해 노동부에 들어가 외길을 걸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차관을 지낸 후 한국교육기술대 총장을 지낸 것이 거의 유일한 ‘외도’다.
지난해 12월 말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노사 어느 쪽에서도 박수 받지 못했다. 노사정 대타협의 길이 순탄치 않음을 시사한 셈이다.
‘덕수’의 책임감과 소망
이 장관과의 인터뷰는 서울 을지로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진행됐다. 사전에 보낸 질의서에는 없는, 영화 ‘국제시장’ 얘기를 첫 질문으로 던졌다. 이 장관은 마치 ‘예상문제’로 준비라도 한 것처럼 침착하게 답변했다.
“우리 늦둥이와 둘이서 봤어요. 현대사 교육도 시킬 겸해서. 두 가지를 느꼈어요. 첫째는 책임감. 주인공 덕수가 흥남철수 때 여동생을 잃어버리잖아요. 그때 아버지가 여동생 찾으러 다시 하선(下船)하면서 덕수한테 말하죠. ‘앞으로 가족은 네가 책임져야 한다’고. 덕수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책임감으로 살아갑니다. 남동생이 대학 갈 돈이 없자 파독(派獨)광부가 되고, 여동생 시집보낼 돈이 필요하자 베트남전에 뛰어들죠. 그 시대 가장들의 이런 책임감이 모여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된 게 아닌가 생각해요.
둘째는 소망. 덕수가 주변의 반대에도 ‘꽃분이네 가게’를 끝까지 지키려 하잖아요. 관객이 보기에도 답답하죠. 그런데 덕수에게 그 가게는 헤어진 여동생과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거든요.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겁니다. 그 소망은 덕수의 삶을 지탱한 귀중한 가치인 거죠. 그런 책임의식과 희망이 대한민국 압축성장의 비결이라고 봐요. 우리 젊은이들이 지금 갈등하고 고민하는 것도 목표와 희망을 가졌기 때문 아닐까요. 그것이 우리 사회를 더 발전시킬 원동력이 될 거라 생각해요.”
‘꿈보다 해몽이 더 좋다’는 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까. 기자는 “매우 흥미롭고 의미 있는 영화평”이라고 화답했다.
그의 늦둥이는 중학교 3학년이다. 마흔 넘어 얻은 아들이다. 위로 딸 둘이 있다. 둘째딸과 아들은 12년 차이다. 그는 “아내도 나도 많이 힘들었다”며 “(아이가 놀자고 졸라) 새벽 2시에 한강 둔치에서 뛰어다녀야 했다”는 말로 늦둥이 아빠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힘들긴 하지만 재미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 ‘국제시장’의 아버지 세대와 요즘 젊은이들의 노동환경은 많이 다르죠?
“많이 바뀌었죠. 아버지 세대는 정말 매일같이 온종일 일했죠. 자기주장이라는 것도 없었고요. 지금은 일하는 시간도 많이 줄었고 자기주장 펴면서 대등하게 일하는 편이죠. 대한민국 성장의 원동력은 그런 보통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이라고 봐요. 아버지 세대나 요즘 젊은이 세대나 열심히 뭔가 이루려는 욕구는 일맥상통한다고 봅니다.”
▼ 젊은 세대는 아버지 세대보다 일하는 환경이 더 안 좋아지고 일자리 구하기가 더 힘들다고 하소연합니다.
“사실 그때는 많은 사람이 세끼를 다 챙길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고 대학 가기도 힘들었어요. 그러나 마음만은 지금보다 편했을 수도 있다고 봐요. 기회균등이라는 게 있었고,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비슷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으니까. 고도성장기인 만큼 일자리도 많았지요. 하지만 지금은 기회균등이 보장되지 않는 데다 지속적인 고학력화로 ‘괜찮은 일자리’ 찾기가 힘들어졌거든요. 그런 면에서 더 어려움을 느끼지 않나 싶어요.”
▼ 상대적 박탈감도 심해졌고요.
“그렇죠. 어떤 계층에게는 일자리나 집 구하기, 결혼이 수월한 반면 어떤 계층에겐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것이 불안감을 더 키우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