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11기에서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외에도 이기백, 정호용, 이상훈 씨가 대장에 진급했다. 이들은 젊은 나이에 4성 장군이 됐기에 전역 후에도 국방부 장관(이기백-24대, 정호용-25대, 이상훈-27대)을 하는 등 할 일이 많았다. 전-노 대통령 시절엔 향군을 쳐다보지도 않은 것. 김영삼 정부에서 장태완 씨가 선거로 회장에 당선되자 비로소 향군 쪽으로 눈을 돌렸다.
장씨가 연임하고 물러난 후 치른 29대 선거(2000년)에 11기 이상훈 씨가 출마해 정규 육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당선됐다. 이씨의 후임자는 12기 박세직 씨(31~32대)다. 대졸 육사 출신의 영예는 거기까지였다. ‘정예’라는 자부심을 가진 그들은 ‘소수’의 한계에 직면했다.
선거에서는 ‘수’가 매우 중요하다. 배출 장교가 가장 많은 집단은 17여만 명의 학군이다. 다음이 학사(4만7000여 명), 3사(4만2000여 명) 순이다. 역사가 가장 길고 ‘별’을 가장 많이 배출한 육사 졸업생은 2만여 명뿐이다.
사정이 이렇기에 수가 많은 쪽에서 지휘권을 가지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젊은 향군이냐, 원로 향군이냐

2014년 10월 8일 62회 ‘향군의 날’을 맞아 박근혜 대통령이 박세환 회장(박 대통령 왼쪽) 등 향군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그때 박세환 씨가 출마해 군으로 보면 대선배인 육사 출신의 민경배(14기, 대장), 조남풍(15기, 대장) 씨를 누르고 당선됐다. 향군이 젊어진 것이다. 실제로 박세환 씨의 캐치프레이즈가 ‘젊은 향군’이었다.
연임을 한 박세환 씨의 임기가 끝나가 35대 회장을 뽑으려는 지금 3사-대위 출신인 신상태 씨가 등장해 바람을 일으킨다. 이러한 파격에 대해 사관학교는 물론이고 별을 단 학군 출신도 상당수가 못마땅해한다. “향군회장은 국방부 장관은 물론이고 국가안보실장, 대통령과도 대화해야 하고, 외국 장성도 만나야 하는데 어찌 대위 출신에게 맡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위계질서를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1972년 3사 6기로 임관한 신씨는 육사 28기, 학군 10기와 임관 동기다. 그러나 3사 6기는 18개월 교육 후 소위가 됐기 때문에 입학 연도로 따지면 2년을 더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신씨는 육사 30기, 학군 12기와 입교 동기가 된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육사 31기, 최윤희 합참의장이 해사 31기(육사로 치면 33기), 김요한 육군 총장이 육사 34기다. 신씨는 향군회장 출마 예상자 가운데 가장 젊다(마지막 쪽 표 참고).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향군회장은 국방부 장관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 박세환 씨가 예외적으로 젊었다고 할 정도로 원로를 선출해왔다. 3사에서 회장이 나오려면 1기 에서 먼저 나오는 게 옳다. 아무리 민주화했다지만 군을 상대하는 조직이 향군인데 위계질서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주장한다.
신씨의 등장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향군의 어려운 재정(財政)에 있다. 향군은 스스로를 친목·애국·명예단체로 규정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한 김대중 정부는 대북 유화정책을 추진했다. 2002년 제2 연평해전이 일어나 참수리 고속정이 격침되고, 북한이 우라늄을 농축해 핵무기를 만들겠다고 해도 기조를 바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