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재정을 안정시키고 빚을 줄일 CEO형 리더를 찾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향군의 친목단체적 성격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신상태 씨는 건국대 행정학과 야간 과정에 입학(70학번)해 1년을 다니고 3사에 들어가 소위로 임관했다. 그는 서울 근교에 있는 부대에서 근무했기에, 저녁에 학교를 다녀 졸업할 수 있었다. 의무 복무 후 대위로 전역한 그는 공구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사업가로 일어선 뒤에는 건국대 동문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고, 건국대에서 부동산학 석사와 경영학 박사 학위도 받았다. 지금은 환경 관련 사업과 빌딩 임대업, 유통업 등을 한다.
이러한 성공과 재력 덕분에 그는 3사 총동문회 회장을 맡게 됐다. 2008년 18대 총선이 다가오자 3사 졸업생 가운데 11명이 여당에 공천 신청을 하겠다고 했다. 3사의 설움을 절감한 그는 적극적으로 도왔으나 한 명도 공천받지 못했다. 그러자 1기 선배가 “우리의 모태는 군이니 향군이나 자유총연맹 같은 군 관련 단체에 들어가 활동해야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 선배의 주선으로 그는 박세직 회장을 만났는데, 박 회장은 그에게 서울시 향군회장 선거에 나가라고 종용했다. 그는 ‘군에 있을 때는 가진 게 없어 성공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다’라는 자신감으로 선거에 총력을 기울여 당선됐다. 그리고 박세직 씨 타계 후 후임자로 선출된 박세환 회장을 만났다.
향군은 전통적으로 육·해·공군과 해병대 출신을 부회장으로 임명해왔다. 당시의 향군은 안보운동과 함께 재정 건전화에도 주력해야 했으므로 ‘젊은 피’가 필요했다. 박 회장은 운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학군 35기(94학번) 출신으로 ‘와이드 뷰’라는 기업을 운영하는 신동권 씨를 청년부회장에, 그리고 신상태 씨를 특임부회장에 임명했다. 3사 출신도 향군 임원진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향군 특임부회장 겸 서울시 향군회장을 할 때 신상태 씨는 업적을 하나 만들었다. 향군은 향군법에 따라 설립된 법인이다. 이 법 16조 3항에는 ‘지자체는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향군 사업에 보조금을 줄 수 있다’라는 문구가 있다. 그는 이것을 근거로 서울시와 서울시 의회를 집요하게 설득해 22억 원의 보조금을 받아내고, 그 돈으로 서울시 향군회관을 리모델링해 임대 수익을 늘렸다. 이는 규정을 근거로 해낸 것이니 ‘별것 아니다’라고 할 수도 있다.
콜럼버스의 달걀
그러나 그가 실천할 때까지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콜럼버스의 달걀’이었다. ‘지자체도 형편이 좋지 않고 군사정부 시절도 끝났는데 감히 지역 향군을 지원하겠느냐’고 부정적으로 생각한 사람이 많았던 것. 그러나 그의 성공을 시기한 사람들은 “사업가는 흑백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좌파인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지원을 받아냈으니 좌파 아닌가”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박 시장과 그의 유착 정황을 보여주는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그 무렵 향군 지도부는 사업에 눈을 떴다. PF 사업이 줄줄이 실패하던 시절 향군은 한국토지공사가 주도한 경기도 동탄 신도시 사업에 참여해 모처럼 돈을 벌었다. 당시 토지공사 사장은 학군 2기 출신인 김진호 씨였다. 이어 향군은 서울 마천지구에 있는 육군 특전사를 지방으로 옮기고 그곳을 개발하는 위례신도시 개발사업에도 참여했다. 이 사업은 향군의 미래 재정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향군 회원의 여론은 “부동산 사업을 잘 아는 이를 회장으로 뽑아야 한다”는 쪽과 “향군은 안보단체이니 국방부 장관 등과 통할 수 있는 이를 뽑고, 따로 부동산 전문가를 뽑아 그 일을 맡겨야 한다”는 쪽으로 양분됐다. 어느 쪽이 우세한지는 35대 향군회장 선거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