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호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

“서울대는 금강석 받아 돌멩이로 내보낸 우물 안 개구리”

  • 송홍근│동아일보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9-02-05 13: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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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가에 ‘경영대 전쟁’이 벌어졌다. ‘주먹’은 고려대 경영대가 먼저 날렸다. “하나 빼고 서울대보다 다 좋다”는 고려대 경영대의 신문광고가 명문 경영대 간 자존심 싸움으로 번졌다. 껍질 아닌 알맹이 다툼에선 자신 있다는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을 만났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
    그는 ‘쌈닭’이었다. 눈빛은 까칠했고, 목소리는 우렁찼다. 1998년 삼성전자 주주총회. 그는 13시간30분 동안 경영진을 몰아세웠다. 그의 이름 석자엔 ‘저격수’라는 단어가 따라붙었다. 경영투명성을 확보하라고, 정관을 바로잡으라고 고함쳤다.

    “참 아쉬워요, 내 인생을 돌아보면은. 훌륭한 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학자로서의 자존심, 박사로서의 자부심도 강했죠. 그런데 그 꿈이 산산조각났어요.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에서 교수로 일할 때 무릎이 아프도록 공부했습니다. 학위를 받을 때보다 3배쯤 더 학문에 천착했죠.”

    그의 이름은 장.하.성.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소액주주운동을 벌였다. 대기업의 곪은 곳을 후벼팠다.

    “한국에 돌아온 뒤 주어진 현실을 피할 수 없었어요. 시민운동에 앞장서 뛰어들었죠. 그런데 세상은 대학교수란 놈이 애들 가르치기나 잘할 것이지, 왜 남의 잘나가는 회사 바짓가랑이를 붙잡느냐고, 온갖 나쁜 놈 놓아두고 뭣하러 제일 잘하는 삼성에 시비를 거느냐고, 삼성에 무슨 원한을 가졌느냐고 손가락질했죠.”

    재벌 저격수



    그런 그가 ‘고려대 경영대학장’으로서 또 다른 ‘싸움’에 나섰다. 거침없으면서도 치밀했다. 도발은 통했고, 경쟁자는 움찔했다. 고려대 경영대를 2015년까지 ‘세계 50위’로 키워놓겠단다.

    “신문광고는 지난해 8월부터 준비했어요. 오랜 고민의 결과물이죠. 짧은 문구지만 마지막까지 자구 하나하나를 놓고 토론했어요.”

    고려대 경영대가 일간지에 실은 2009년 정시모집 광고는 파격이었다. 이 대학의 각종 성과와 장학제도를 담은 이른바 ‘하나 빼고’ 광고는 신문지면을 좌우로 나눠 학부모와 교수, 수험생과 재학생이 질문을 주고받는 틀로 제작했다.

    1편 : [교수님, 정말로 고대 경영이 서울대보다 더 좋습니까?] [어머님 하나 빼고 다 좋습니다]

    2편 : [선배님, 정말로 하나 빼고 다 좋아요] [당연히 고대 경영이 서울대보다 더 좋아요! ]

    “시리즈로 준비했다가 파장이 커서 중간에 접었어요. 수험생-재학생 다음에 또 다른 구도가 있었죠.”

    ▼ 광고를 두고 ‘품격 없다’ ‘경망스럽다’는 평가도 많습니다.

    “대학은 점잖으면서 상아탑답고, 학자연해야 한다는 거죠. 천박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건 당연해요. 그걸 생각 못 했다면 내가 바보고요. 학교에서도 평가가 엇갈립니다. 학문체계에서 경영학이 선 위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도 의견이 다릅니다. 경영학은 마이크로해요. 시장의 변화에 민감합니다. 이번 광고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대학은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어요. 고려대라는 브랜드가 가진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습니다. 내실없는 브랜딩은 의미가 없어요. 포장을 뜯어보니 맹탕이더라는 평가가 나올 실력이면 그런 광고를 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하고도 광고 내용을 가지고 논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진지하게 도전해온 학교가 단 한군데도 없더군요.”

    ‘고대 경영이 하나 빼고 서울대보다 낫다’는 카피는 그가 직접 만든 것이다. 라이벌 학교 연세대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서울대와 비교한 터라 서울대·연세대를 모두 자극했다. 한 언론매체는 서울대가 이 광고의 위법 여부를 공정거래위원회에 문의했다고 보도했다. 인터넷커뮤니티엔 커다란 독수리가 작은 호랑이 위로 비상하는, 고려대를 꼬집는 패러디도 등장했다. 서울대·연세대는 언론을 통해 대응했다.

    “어디가 더 좋은지에 대해 논쟁할 필요를 못 느낍니다. 두 군데 붙어 고려대로 가는 학생을 내가 본 기억이 없어요.”(곽수근 서울대 경영대학장)

    “네거티브 선전은 학부모에게 잘못된 정보를 줍니다. 뒤진 것을 조금이라도 뒤집고자 단기 효과를 노린 것 같은데, 장기적으로는 역효과가 날 겁니다.”(김태현 연세대 경영대학장)

    우물 안 개구리

    ▼ 광고 효과가 컸다고 보나요?

    “좋았다, 나빴다라곤 평가하기 싫어요. 어떤 틀을 깨는 성과는 거뒀다고 봐요.”

    ▼ 광고업계에 물어보니 고려대 경영대가 신문광고에 쓴 돈이 적어도 20억원은 된다고 하더군요.

    “그건 말 못해요. 공개해서도 안 되고. 그렇게 많이 쓰진 않았어요. 연세대는 우리보다 훨씬 덜 썼고.”

    ▼ 서울대는 “두 군데 붙어 고대 가는 학생 못 봤다”고 했고, 연세대는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다”고 대응했습니다.

    “서울대에서 나온 말은,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얘기죠. 크게 실망했어요. ‘서울대가 그것밖에 내세울 게 없나’ 깜짝 놀랐죠. ‘서울대 경영대는 이런 곳이다’라면서 성과와 비전을 드러냈어야죠. 연세대는 우리의 비교대상에 아예 안 들어갔어요. 광고도 연세대를 타깃으로 한 게 아니거든요. 잘못된 정보라고요? 광고에 사실과 다른 게 하나도 없어요. 우리는 광고를 내면서 연세대도 서울대에 도전하길 바랐어요. 그런데 실망스럽더군요. 실체적으로 우리나 연세대나 서울대에 뒤지는 게 ‘하나 빼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세 학교 모두 세계시장에선 ‘우물 안 개구리’ 아닙니까? 경쟁의 틀 자체를 세계시장으로 옮겨야 해요. 서울대는 더 이상 우리의 경쟁상대가 아닙니다.”

    고려대 경영대가 21세기에 접어든 뒤 약진했다는 점엔 이견이 별로 없다. 2006년 영국 ‘더 타임스’ 대학 평가에서 고려대 경영대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국내 1위, 세계 66위를 차지했다. 2006년 교육과학기술부 BK21사업단 평가에서 이 대학 MBA 과정이 2006년, 2007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아시아·호주 지역 53개 주요 대학이 15년간(1990~2004) 22개 유명 학술지에 게재한 경영학 분야 논문 수 평가에서도 고려대가 국내 1위다.

    졸업생의 품질

    “고려대, 서울대에 입학하는 학생의 수준은 세계 어느 대학과 비교해도 손색없어요. 교수들한테 이런 얘기를 해요. 한국 톱 대학들은 다이아몬드를 받는다고. 돌멩이를 받아서 금강석을 만드는 게 교육기관의 구실인데, 우리 대학들이 다이아몬드를 돌멩이로 만들어 내보내고 있다고. 학생들 자질을 보면 하버드, 옥스퍼드 신입생보다 조금도 뒤지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대학들이 스스로 자신감을 갖지를 못해요.

    제자들이 와튼스쿨에 교환학생 다녀와서 뭐라고 그러는 줄 알아요. ‘거기 친구들 똑똑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던데요’라고 해요. 한국에서 서울대·고려대·연세대 경영대는 고3 수험생 중 톱0.2%냐, 0.4%냐를 놓고 다퉈요. 서울대가 0.25%였는데 우리는 0.30%이고, 연세대가 0.31%였다는 식으로 따집니다. 참 한심한 일 아닙니까? 신입생의 능력이 아니라 졸업생의 실력으로 평가받아야 해요. 그런 면에서 우리는 자신 있습니다. 장학금 혜택 늘리고, 교수 숫자 늘리고, 교환학생 수 늘리는 게 서울대랑 한국에서 경쟁하자는 게 아니에요. 적어도 아시아 선두권인 싱가포르국립대, 홍콩과기대를 타깃으로 삼아야죠.”

    ▼ ‘in put(투입)’ 경쟁에서는 서울대에 뒤질지 몰라도 ‘out put(산출)’ 경쟁에선 우위에 서겠다는 이야기군요.

    “신입생의 성적이 아닌 4년 뒤 졸업생의 ‘품질’로 평가해야죠. 그런데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인풋 경쟁에 함몰됐어요. 그런 경쟁이 교육제도를 왜곡하고, 교육기관의 경쟁력을 떨어뜨립니다. 수능점수가 높으면 뭐합니까? 졸업한 뒤 사회·기업·정부에 가서 능력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죠. 아웃풋 중심 경쟁에선 누구한테도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 고법연상(高法延商·고려대는 법대를, 연세대는 상대를 알아준다)이라는 말이 1970년대에도 있었습니까?

    “내가 고려대 74학번입니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있었던 것 같아요. 법대가 워낙 아웃스탠딩했고, 내세울 만한 게 법대였죠. 그리고 ‘연상(延商)’은 경영학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었습니다. 경제학+경영학 개념이죠. 1970년대까지는 거시경제학이 경영학보다 한국에 더 필요했습니다. 시장이 발달하면서 경영학 시대가 열렸고요. 지금 한국의 ‘경제신문’은 ‘경영신문’ ‘산업신문’에 가깝습니다. 고려대 경영대는 뿌리가 깊어요. 우리 학교는 1905년 법과와 이재학과로 출발했습니다. 경영학이라는 단어로 ‘과’를 만든 것도 우리가 처음이고요.”

    전통적으로 ‘넘버 3’이던 이 대학이 혁신에 나서 성과를 거두면서 ‘고법연상’의 틀도 흐트러졌다. 청솔학원평가연구소가 2006학년도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정시 합격자 수능시험성적을 분석한 결과, 고려대 경영(538.9점)이 연세대 경영(537.3점)에 비해 수능표준점수가 1.6점 높았다. 2007학년도 메가스터디의 표본조사에서도 고려대 경영은 537.3점으로 서울대 경영(537.2점)과 연세대 경영(536.5점)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

    고려대 경영대

    몸에 맞지 않는 옷

    ▼ 왜 경영학을 공부했나요?

    “역사를 공부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권했어요. 고등학교 다닐 적 아버지 속을 썩인 일이 있어서 효도한다고 간 거였어요. 유학 갈 때 존경하는 지청(현 고려대 명예교수) 교수님께 내가 당돌하게 이랬대요. ‘경영학은 학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 가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겠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미시경제를 공부해보니 학부 때 재무과목에서 배운 내용이 다 들어 있더군요. 미국과 한국의 경제적 격차는 지금보다 훨씬 컸죠. 선진국에선 경영학이 학문적으로도 위상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경영학으로 전공을 다시 바꿨죠. 경영학자가 된 건 우연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 학장은 왜 맡았습니까?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2005년 8월 취임했습니다. 행정을 할 생각이 없었어요. 지금도 빨리 떠나고 싶어요. 공부할 때도 회의가 많았어요. ‘공부가 좋아서 하는 건가’ ‘학자가 될 자질은 있는가’ ‘세상을 보는 눈은 있는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학장으로 지명됐을 때 언론들도, 졸업생도 우려했습니다. ‘재벌 저격수’가 학장을 맡으면 대학이 올바르게 돌아가겠느냐, 우리 애들 회사에 취직이나 되겠느냐, 학교에 기부금은 들어오겠느냐, 그런 걱정이었죠. 질문이 뭐였더라. 아, 학장을 왜 맡았느냐고요? 내가 학장을 맡기 수년 전 당시 총장께서 경영대가 자체적으로 학장 후보 2명을 추천해보라고 한 적이 있어요. 보통은 학교가 임명하면 인준투표를 하는 방식입니다. 당시 교수들이 교황 선출 방식으로 투표를 했어요.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내고 나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후보가 2명으로 압축될 때까지 투표했는데 내가 뽑혔어요. 그런데 그 뒤 학장 임명 절차에 관여하는 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빨갱이가 어떻게 경영대학장을 맡느냐’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 거북했겠습니다.

    “몹시 거북했죠. 함께 추천받은 시니어 교수님이 학장을 맡았어야 했는데, 나에 대한 ‘안티 감정’ 때문에 절차 자체가 무효가 돼버렸어요. 학장을 어떻게 교수 추천으로 뽑느냐는 논리가 힘을 얻으면서 논의가 원점으로 되돌아갔죠. 2005년 6월 학장으로 뽑혔을 때 나는 한국에 없었어요. 휴직계를 내고 월드뱅크에서 일했는데 사표를 내고 급히 돌아왔죠. 남우세스럽지만 고마웠던 게 인준투표에서 압도적 다수가 가표를 던졌어요.

    “반골 기질이 창조의 근원”

    교수님들이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사립대에서, 나 같은 놈한테 학장 맡길 곳은 고려대밖에 없다, 그게 고려대의 힘이다’라고 많은 사람이 나한테 얘기했습니다. 저런 놈 시켜놓으면 또 이상한 짓거리 할 테고, 기부금도 안 모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시민단체 활동할 때도 재단이건 총장이건 교우회건 나한테 싫은 소리 한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학장을 맡은 뒤 내가 느끼는 부담, 책임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삼성이 학교에 많은 돈을 기부하고 그러는데 삼성이랑 싸우는 놈을 구석 부처의 장(長)도 아니고 경영대학장으로 임명한 건 고려대가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얘기죠. ‘고려대의 이런 문화를 키워나가는 데 일조하자, 그리고 학교에 충심으로 보답하자’는 마음이 절로 일더군요.”

    ▼ 지금도 참여연대 직함을 갖고 있나요.

    “아니요.”

    ▼ 1만원씩 내는 회비는요?

    “그건 당연히 내죠. 회원이니까. 지금은 나와 뜻이 달라졌어도 사회에 꼭 필요한 단체예요.”

    ▼ 요즘 학생들도 ‘재벌 저격수’ 이미지를 떠올리나요?

    “잘 모르지, 아이들은. 나도 말하지 않고요.”

    그가 도서관에 책을 찾으러 갔을 때 일이다. 한 학생이 그와 삼성의 대결을 다룬 책을 읽었다. 그가 물었다. “장하성이 누군 줄 알아요?” 학생이 답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다시 물었다. “내가 누군지는 알지요?” “모르겠는데요.” 언제부턴가 ‘재벌 저격수’ 이미지가 오버랩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주주자본주의를 강조하는데 세상은 그를 다르게 보는 것이다.

    “학생들은 옛날 얘기를 잘 몰라요. 대신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해줘요. 비판해야 한다고, 주어진 걸 다 옳다고 보면 안 된다고, 창조는 기존 것을 거부할 때 이뤄진다고. 주어진 걸 무조건 받아들이면 변화나 창조가 없어요. 비판의식은 대학이 갖는 최고의 기능이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이상하게도 그걸 ‘반골’이라고 깎아내리거나 나쁘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비판적으로 현상과 구조를 봐야 창조가 가능하다고요.”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

    명문대 간 자존심 싸움을 일으킨 고려대 경영대 신문광고.

    ▼ 경영학은 기능을 가르치는 학문 아닌가요?

    “기술(skill)과 지식(knowledge)을 가르치는 건 기본이죠. 덧붙여 학교는 지도자, 창조자를 길러야 합니다. ‘크리티컬 싱킹(비판적 사고)’을 해야 ‘크리에이티브 싱킹(창조적 사고)’이 가능하죠. 그게 무슨 얘기인가 하면 한국이 발전하려면 창업신화가 계속 나와야 해요.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창업신화가 몇 개 없어요. IT버블 때 2~3개 회사가 살아남았고, 전통산업에선 웅진, 팬택 정도가 있는데 팬택도 쓰러졌죠. 1980년대만 해도 졸업한 뒤 내 회사 해보겠다는 녀석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엔 무조건 삼성·LG·SK·현대 가겠다더군요. 안타까운 일이죠.”

    그는 매 학기 팬택 박병엽 부회장을 강사로 초빙한다. 경영대 학생들에게 박 부회장을 이렇게 소개한다고.

    “미친 사람이 있어야 세상이 변해. 틀을 깨야 해. 한국에서 삼성에 도전해서 이겨보겠다는 놈이 말이 돼? 삼성, LG를 상대로 동시에 맞짱을 뜨겠다는 놈이 제정신이냐고? 그것도 삼성, LG가 목숨 거는 휴대전화를 갖고 말이야. 그 미친 사람이 누군 거 같아? 정신 나간 짓해서 성공했는데 그걸 다 날리고도 웃고 다니는 이상한 놈, 바로 그런 사람 덕분에 사회가 발전하는 거야. 회사가 살아남든 그렇지 못하든 도전이 없으면 발전할 수 없어. 틀에 도전하는 회사가 5개, 10개 생겨서 2개, 3개가 살아남으면 그게 도약이야. 발전이고.”

    입 다문 者가 罪人

    ▼ 학장을 맡은 뒤 사회적 발언이 줄었습니다. 일부러 자제한 건가요?

    “의도적으로 그랬죠. 그건 학교와 교수님들에 대한 약속이에요.”

    그런 그가 이명박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한 적이 있다. 지난해 10월30일 서울 그랜드인터콘티넨털호텔에서 열린 ‘외국기업의 날’ 행사 때다. 그가 고문으로 일하는 라자드코리아자산운용(‘장하성 펀드’로 유명하다)은 이날 지식경제부가 주는 ‘외국인 투자유치 유공자 표창’을 받았다. 그는 수상 직후 기자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경제팀 안 바꾸면 국민소환이라도 해서 해임건의를 하고 싶어요. 강만수 장관이 잘못된 정책으로 3월부터 투기세력을 끌어들였습니다. 그 결과 환율 도박판이 만들어졌죠. 한국 경제가 심각합니다. 현 경제팀은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을 잘 몰라요. 전쟁 중에 장수를 어떻게 바꾸느냐고 하는데 장수가 불길로 가고 있어요.”

    ▼ 그날은 왜 그랬나요?

    “장말 화가 났어요. 속으론 갈등이 있었습니다. 말하는 게 두려웠던 건 아니고 한 사람한테 초점을 맞추는 게 부담스러웠죠.”

    ▼ 현 정부의 위기 대응능력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많이 미숙했죠. 안타깝습니다.”

    ▼ 어느 부분이 특히 안타깝습니까?

    “지금 내가 말 안 해도 1기 경제팀에 대한 평가는 나와 있습니다. 1997~98년 외환위기 때를 돌이켜보면 어마어마한 고통이 있었지만 그것이 많은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고, 그 후에 급속하게 발전했어요. 정책적 실수는 용인이 가능해요. 상황 판단을 잘못할 수 있죠. 그런데 지금의 고통, 지금의 암울함이 다음의 희망으로 사람들 눈에 보여야 하는데 거기에 이르지를 못해요. 좋다, 좋다 해서 희망이 나오는 게 아니에요. 창조는 앞서 말했듯 기존 것을 극복하면서 나옵니다.”

    ▼ 미네르바 글을 읽어봤습니까?

    “그분 주장은 틀린 말도 많고, 정확한 말도 있습니다. 틀린 부분은 그 사람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죠. 중요한 건 그의 말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는 점입니다. 나를 포함해서 실명 건 사람들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입을 다물었죠. 예측 못한 게 아니라 말을 안 한 거예요. 미네르바가 누구냐,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그 사람 말이 이렇게 파장을 일으켰느냐가 중요해요. 그건 말해야 할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죠. 미네르바가 칭찬받을 상황은 아니지만, 욕은 말 안 한 사람이 먹어야 해요.”

    ▼ 그렇다면 언제쯤 한국 경제가 나아지리라고 예측합니까?

    “올 하반기부터 좋아질 거다. 그렇게 얘기하면 좋겠지만, 난 고통이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고 봐요.”

    ▼ 일부에선 한국 경제가 일본자본에 휘둘릴 가능성도 제기하는데요.

    “그건 벌써 나타났죠. 지금 병원 의사가 환자 보는 게 아니라 환율 보고 앉았어요(개인병원 의사들이 ‘엔화대출’을 많이 받았다). 환자를 수없이 봐도 환율로 깨진 걸 만회 못 하죠. 경제팀에 화가 나는 건 환율이 이 지경이어선 아무것도 해결 안되기 때문이에요. 연말에 원화환율이 1달러당 1200원대로 떨어지니까 환율문제는 해결했다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해결하긴 뭘 해요. 1250원을 기준 삼아도 지난해 연초대비 환율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오른 국가군에 속해요.”

    ▼ 적정 환율을 어느 수준으로 보나요?

    “1300원도, 1400원도 좋습니다. 그런데 움직이는 범위가 안정적이어야죠. 환율이 출렁거리는데 기업이 계획을 짤 수 있겠습니까? 학교가 환율 덕분에 돈 번 얘기 하나 해줄게요. 원-달러 환율이 900원대일 때 한국에서 돈 번 외국인에게 100만달러만 고려대에 기부해달라고 부탁했어요. 흔쾌히 OK하더군요. 연말에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그분도 사정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e메일로 약속 유효 여부를 물었죠. 그랬더니 지금 곧바로 보낸다더군요. ‘9억6000만원이 13억원이 됐으니 너네한테는 지금이 유리하다’면서요. 그 돈을 환전하려는데 하루에 1억원이 왔다갔다하더군요. 결국 때를 기다리다가 14억원하고도 몇천만원을 받고 바꿨어요. 누구 말대로 하면 나도 투기꾼이죠. 각자가 손해 줄이고 이득 높이는 쪽으로 움직이는 건 자본주의 아닌 어느 사회에서도 합리적 행동입니다. 그런데 달러 쥐고 있는 사람을 투기꾼이라고 몰아세우면 안 되죠. 대통령이 하지 말랬다고 안 하는 사람도 없거니와 그 사람들은 투기꾼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정책을 쓰면 안 돼요.”

    “아시아 1위가 목표”

    ▼ 학교 얘기로 돌아가죠. ‘하나 빼고’는 도대체 뭘 말하는 건가요.

    “서울대보다 좋지 않은 한 가지는 상상에 맡길게요.”

    ▼ 경영대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MB)을 가리켰다는 우스갯소리도 나돌던데...

    “그 얘기 당연히 들었죠. 왜 못 들었겠어요. 교학과에 밤늦게 전화가 걸려왔답니다. 술값 내기를 했다면서 ‘하나만 빼고’가 도대체 뭐냐고 물었다더군요. 중국에서도 그게 뭐냐고 전화가 걸려왔고, 미국 교포사회에서도 논쟁거리가 됐다더군요. ‘등록금 빼고 다 좋다’ ‘일반의 인식 빼고 다 좋다’ 등 여러 해석이 나왔어요. 그런데 시중에 나도는 얘기가 모두 표피적입니다. 학교를 평가하는 구체적 무엇을 상상한 사람이 없어요.”

    고려대 경영본관과 LG-POSCO 경영관엔 ‘고려대 경영대 압도적 1위’라는 글귀가 쓰여진 입간판이 서 있다. ‘한경비즈니스’가 지난해 실시한 ‘2009 전국 경영대학 평가 설문조사’에서 고려대 경영대가 서울대 경영대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 설문조사는 200대 기업 인사담당 임원 및 팀장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 학장께서 ‘한경비즈니스’ 설문조사에 입김을 넣었다는 입방아가 있습니다.

    “나는 그 잡지에 실린 기사를 직접 읽을 때까지 그렇게까지 대단한 내용일 줄 몰랐어요. ‘한경비즈니스’에서 인터뷰하자기에 ‘인터뷰 안 하는 거 알지 않느냐’면서 거절했습니다. 그랬더니 고려대 경영대가 무슨 평가에서 1등을 했다면서 꼭 해야 한다고 그럽디다. 그 말 듣고도 성질을 냈어요. 결과만 내보내지 인터뷰는 뭣하러 하느냐고. 오후 6시30분에 수업이 끝났는데 기자가 찾아왔습니다. ‘나 밥도 못 먹었다’라고 역정을 냈어요. 억지로 인터뷰를 하고 우리가 1등을 했다기에 잡지를 좀 샀어요. 그런데 웬걸. 읽어보니 내용이 대단합디다. 당장 전화해서 팔리고 남은 잡지 모조리 우리한테 팔라고 했죠. 그런데 재고가 없다더군요.”

    ▼ 인사 담당자 설문조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를 뭐라고 보나요?

    “내부적으로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의 개혁이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것 같고요. 그리고 나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면요, 새로운 시대와 고려대 문화가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어요. 우리가 잘하고 못하고는 두 번째고요. 세계화를 통해 제자들 자신감 높여준 것도 호평받는 데 기여했다고 봐요. 우리가 1년에 교환학생을 130~140명씩 보내거든요. 많은 반대가 있음에도 영어강의 비중을 60%대로 늘렸습니다. 비행기표 주면서 외국에 학생 보내고 또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외국인 재학생이 경영대에만 300명이 넘어요. 학생 1명을 외국에 보내면 1명만 국제화하지만, 외국학생이 1명 오면 그 주변이 모두 국제화합니다. 인바운드 국제화가 아웃바운드 국제화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외국 학생을 유치하려면 우리 학교 강의 수준이 높아야 해요. 어렵게 외국인 교수를 모셔오고 교수 수를 늘리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 악착같이 학생들을 외국으로 보내는 까닭은 뭡니까?

    “학생들을 내보내는 것은 ‘큰 물’을 경험해보라는 뜻이 아닙니다. 외국서 강의 듣고, 생활해보면 한국에서 했던 것에 대해 자부심,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어떤 학생이 미국에 다녀와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 학교 교수님들 영어 강의가 엉터리라고 생각했어요. 미국 명문대 수업은 굉장히 수준 높을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특별한 게 없더군요.’ 그러면서 그 학생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왜 그 학교만큼 안 유명합니까?”

    “사람이 희망이다”

    ▼ 왜 그럴까요?

    “기술, 지식은 우리도 와튼, 하버드의 90% 수준은 채워줄 수 있어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서울대도 그래요. 학문적 갭은 굉장히 줄었습니다. 마지막 2%, 5%를 채우기가 어렵지만….”

    ▼ ‘아시아 1위’ 경영대학이 목표라면서요.

    “아시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비즈니스스쿨로는 싱가포르국립대, 홍콩과기대가 있어요. 그 두 학교 학생보다 우리 애들이 자질이 나았으면 나았지 결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서울대도 그렇고요. 구체적 목표는 2~3년 내 아시아 최고의 경영대로 자리 잡는 것입니다. 나아가 2015년까지 세계 50대 비즈니스스쿨로 키우는 것입니다.”

    ▼ 구호인가요? 실현가능한 목표인가요?

    “세계 10대 대학이 되겠다는 구호는 안 하자는 것과 똑 같죠. ‘세계 50대’ ‘아시아 3대’ 이런 건 우리가 충분히 이뤄낼 수 있습니다. 한국은 노동·자원·자본을 볼 때 자원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어요. 과거엔 자본도 없었고요. 한국의 경제적 성과는 사람, 인재가 이뤄낸 거예요. 우리가 길러낸 인재가 현대자동차·포스코·삼성전자 같은 세계적 기업을 일궜습니다. 그 기업들이 자본이 있었나요? 자원이 있었나요? 그런데 정작 인재를 키워낸 대학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못 갖췄습니다. 우리 제자들이 세상을 이 정도로 키워냈는데, 우리 스스로 대학을 못 바꿀 이유가 없죠. 우리 능력 됩니다. 아웃풋인 제자들이 한 일을 보십시오. 또 하나 여건이 좋은 것은 한국의 산업이 튼튼하다는 점입니다. 경영대는 산업기반을 볼 때 수요가 매우 많습니다. 고급인재를 미국이나 유럽에서 수입하는 구조를 깨뜨려 보이겠습니다.”

    ▼ 마지막 2%, 5%를 채우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앞서 언급했듯 교육은 리더, 창조자를 키워내는 겁니다. 공부를 접고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를 세우는 녀석도 있고, 구글 같은 회사를 꾸리는 녀석도 있어야 해요.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창조자를 키우는 교육에서 우리가 아직 약해요. 우선 학생들에게 글로벌 뷰를 심어줘야 합니다. 중심국에선 자기들이 보는 게 글로벌 뷰가 되지만 우리처럼 주변화한 나라에선 우리끼리만은 안 됩니다. 기업·정부·조직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으려면 한국에서만 잘해서는 비전이 없어요. 그런데 그걸 채우는 게 지독하게 어렵습니다.”

    껍질과 알맹이

    ▼ 중국의 부상도 경영대학에는 호재가 될 것 같습니다.

    “큰 기회예요. 우리는 절대빈곤에서 탈출해서 선진국을 향해 달려간 경험이 축적돼 있어요. 그것이 중국시장에 잘 맞아떨어집니다. 일본 기업들이 중국에서 한국 기업보다 도드라지지 못하는 이유가 일본은 개발 경험이 오래전 일이어서 그 세대가 현장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개발세대가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고요.”

    ▼ 일본 경영대학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뭡니까?

    “일본은 성공신화의 함정에 빠졌습니다. 일본식으로 성공했죠.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는 실패했습니다. 워낙 부자다보니 버티는 거죠. 일본 경영대학은 혁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국제화가 더딥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경영대학이 일본 방식에 함몰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겁니다. 애들을 일본에 보내고 싶어도 일본어를 못 하면 수업을 듣지 못해요. 그에 반해 우리는 아시아의 강자가 될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세계 400위 수준이던 고려대는 2006년 ‘더 타임스’ 평가에서 184위로 도약했다. 앞서 언급했듯 고려대 경영대는 당시 사회과학 분야에서 66위를 차지했다. 고려대의 이런 성과엔 정교한 홍보전략도 한몫을 했다. 효과적인 브랜딩으로 학교의 이미지를 고양한 것이다.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대학 순위를 매기는 영국 ‘더 타임스’의 평가기준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거기에 맞춰 준비했습니다. 배점이 특히 높은 항목은 외국 대학교수들의 평가인데, 고려대가 이 부문 성적이 좋았죠, 여기엔 고려대 100주년 기념식이 크게 작용했을 거예요. 그때 100개 대학 총장을 초청해 공항에서부터 VIP로 예우했습니다. 자기 대학 박사학위 졸업 가운을 입고 참석하게 하고 기념식수도 했고요. 기념식에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축사를 했고, 이명박 서울시장이 만찬을 열어줬습니다. 훌륭한 캠퍼스, 막강한 영향력, 빈틈없는 진행 등을 목격하고서 고려대를 대단한 대학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내실이 없는 홍보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홍보효과는 제품의 질이 우수해야 지속되지, 그렇지 못하면 비용만 날리고 몇 달이면 과거로 되돌아갑니다.”

    장 학장의 브랜딩 전략은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는 데는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러나 브랜딩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졸업생들의 ‘out put’, 즉 ‘껍질’이 아닌 ‘알맹이’가 결과를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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