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욕망의 사회에서 살림의 사회로 비정규직 줄이고 직업윤리 회복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의 행로

  • 정리=김유림 기자 | rim@donga.com

    입력2014-08-20 1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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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참사는 신뢰를 앗아갔다. 이웃이 저마다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할 것이고, 국가는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굳건하게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참사 이후 깊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던 사회 구성원들은 이제 슬픔을 딛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한다.
    • 강지원 변호사, 김재옥 소비자시민모임 회장, 최열 환경재단 대표 등 시민 99인이 모여 지난 6월 발족한 ‘생명을 살리는 안전사회포럼’은 7월 29일 국회에서 1차 월례회의를 열고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았다. 이날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국가와 개인이 이중 혁신을 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국가위기관리학회장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직업철학의 관점에서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찾았다.
    욕망의 사회에서 살림의 사회로 비정규직 줄이고 직업윤리 회복
    ■ 국가와 개인의 이중 혁신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세월호 참사의 원인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제시됐다. 침몰이 청해진해운의 잘못이라면, 참사는 정부의 잘못이라는 지적에 공감한다. 특히 침몰 직후 제대로 구조활동을 펼치지 못한 해경을 포함한 정부의 대처는 참사의 일차적 원인이라 볼 수 있다.

    세월호 참사에는 여러 요인이 중첩돼있다.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역사적 시간을 ‘사건사적 시간’과 ‘국면사적 시간’‘구조사적 시간’으로 나눈 바 있다. 세월호 참사에도 이 시간이 공존한다. 사건사적 시간에는 사전 예방을 못한 청해진해운, 초동 대처에 더없이 미숙했던 해경 등이 포함되지만, 국면사적 시간에서는 규제 완화, 비정규직 증대 등 경제·사회구조를 신자유주의로 재편해온 ‘97년 체제’가 문제 될 수 있다. 나아가 구조사적 시간에서 보면 성장지상주의에 매진한 결과로 나타난 ‘이중적 위험사회’를 주목해야 한다.

    이중적 위험사회



    물론 모든 문제의 원인을 신자유주의에 귀속시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신자유주의의 확산이 세월호 참사의 배경적 요인 중 하나였던 것은 분명하다. 세월호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세월호 선박직 직원 15명 중 9명이 비정규직이었고 선장도 1년 계약으로 고용돼 있었다. 승객을 구조하지 않은 세월호 선장과 선박직 승무원이 법적·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들의 비도덕적 책임 윤리가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상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고용이 안정돼 있고 임금 수준이 높다고 해서 선박직 승무원들이 승객의 안전을 언제나 우선시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다만 안전을 담당해야 할 사람들의 불안한 고용 상태는 승객의 안전보다 자신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 당시 국토해양부가 선박의 운항 수명을 20년에서 30년으로 완화한 것을 이번 사고 원인으로 꼽는다. 규제 완화를 모두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규제 완화의 목표가 안전을 도외시한 이윤 추구에만 있다면 그런 규제 완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신자유주의의 그늘이다. 97년 체제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신자유주의는 ‘경쟁을 위한, 경쟁에 의한, 경쟁의 체제’다. 무한경쟁,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이 체제는 미국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이 말한 ‘인간성의 부식’, 즉 책임 윤리의 실종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원인으로는 정부의 재난 대처 시스템을 지적할 수 있다. 그간 압축적 발전 과정에서 대형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문제는 대형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고 사후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 범(汎)정부 차원에서 만든 재난 대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원인은 관료주의 탓에 매뉴얼이 사문화되고 현장성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시스템 자체가 전문성이 부족하고 부처 간 조정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안전은 정권적 과제가 아닌 국가적 과제이지만, 안전에 대한 빈번한 조직 개편으로 지속가능한 재난 대처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risk society)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위험이 사회의 중심적 현상이 되는 사회로, 그 특징은 측정 가능한 위험과 측정 불가능한 불확실성 간의 경계, 객관적 위험 분석과 사회적 위험 인식 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는 데 있다.

    그의 논리를 우리 사회에 적용하면, 한국 사회는 압축적 발전 초기부터 위험사회였다. 산업화한 국가를 추격하기 위해 성장에 모든 것을 걸었고 성장지상주의에 따라 정치적 민주주의, 사회적 안전, 문화적 신뢰 등 가치를 소홀하게 여겼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런 ‘오래된 위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벡이 말하는 현대성이 가져온 결과로서의 위험, 즉 생태 위기 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위험’이 공존한다. 즉 오래된 위험과 새로운 위험이 존재하는 ‘이중적 위험사회’가 우리 사회의 현주소인 것이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목격된 것은 국가라는 제도의 침몰과 책임의식이라는 윤리의 침몰이다. 제도와 윤리라는 이중의 침몰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이런 침몰은 우리가 일궈온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를 무색하게 한다.

    “대한민국에 태어나고 싶지 않다”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의 현실이 다수 국민이 소망하지 않는 모습이라는 점이다.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7%가 “다시 태어난다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답해 “다시 태어나고 싶다”(43%)고 한 응답자보다 많았다. 그 이유로 과도한 경쟁, 치열한 입시 등이 꼽혔다.

    진정 안타까운 것은 공동체가 이런 이중의 위기에 직면했다면, 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정부의 일차적 역할이 가장 중요함에도 정부가 믿음과 신뢰를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 다수는 ‘국민 없는 국가, 국가 없는 국민’이라고 느낀다.

    세월호 참사는 1997년 경제위기에 비견될 수 있는 사회 위기다. 세월호 참사를 보고 ‘하인리히 법칙’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인리히 법칙이란 한 번의 큰 재난이 일어나기 이전에 29번의 작은 재난이 발생하고, 그전에 300번의 사소한 징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세월호 참사가 ‘1대 29대 300’ 중 1이 아니라 29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낱낱이 드러난 대한민국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즉각적이며 심원한 해법이 필요하다. 앞으로 이런 위기가 발생하지 않게 예방조치가 당장 취해져야 할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산업화와 민주화 모델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을 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가치, 정부, 언론, 교육, 역사, 미래, 그리고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국민적 결심은, 설령 시간 속에서 서서히 풍화될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의 기본구조에 대한 성찰적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며, 이런 흐름은 향후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남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반성적 현대화’다. 지난 50여 년간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산업화와 민주화가 가져온 현실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기 인식이 더없이 중요하다. 반성적 현대화는 사건과 국면, 구조에 대한 다층적 성찰과 대안 모색을 요청한다.

    먼저 사건사적 측면에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재난 대처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해야 하고, 국면사적 측면에서 규제 완화와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해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폐해를 극복하고 시장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구조사적 측면에서 사회통합을 위한 공동체의 재구성이 매우 중요하다. 공동체로서 우리 사회는 지속 불가능한 지점에 도달했다. 사회 양극화라는 제도적 조건은 물론, 생명 경시라는 문화적 현실은 우리 사회를 아주 낯설고 두려운 사회로 만들었다.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로서 거듭나기 위해 생명, 정의, 노동, 복지, 그리고 국민의 가치를 사회 발전의 중심에 놓고, 정부-시장-시민사회의 새로운 판짜기를 모색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해경 해체를 포함한 정부 조직 개편과 공직 사회 혁신을 내걸었지만, 이런 해법은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생명경시, 정경유착, 부정부패, 감시사회, 그리고 결과중심주의는 돌진적 근대화의 그늘이며, 이를 제대로 극복하지 않고서는 인간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열어갈 수 없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던진 과제는 작게는 새로운 재난 대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사후 대처뿐 아니라 사전 예방에 주력하고, 범정부적 차원에서 신속하고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재난 컨트롤타워를 신설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정부와 시민사회의 거버넌스가 활성화돼야 한다. 위험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위험관리의 외주화’를 제도적으로 금지해야 하며 안전을 경제적 비용으로 계산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삶의 기본 조건으로 인식하는 ‘안전의 시민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욕망의 사회에서 살림의 사회로 비정규직 줄이고 직업윤리 회복

    지난해 5월 1일, 제123주년 세계 노동절 기념대회에 참가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철폐” “산업재해 사망 처벌 강화”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대적 개인주의

    세월호 참사를 통해 주어진 광의의 과제는 바로 ‘국가와 개인의 이중 혁신’이다. 현 사회가 ‘욕망의 사회’라면 ‘살림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이때 살림이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국민 다수의 가계 및 생활 문제를 해결해주며, 분열과 해체가 아닌 통합을 추구하는 것이다. 살림의 사회를 위해 ▲생명 없는 물질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고 ▲경제민주화를 통해 정의 없는 기업의 지배를 막고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노동 없는 경제성장을 지양하며 ▲복지국가를 구축하고 ▲국민 없는 정부가 아닌 시민민주주의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개혁을 위해서는 정치 세력과 시민의 정체성 변화가 필수적이다. 정체성이란 마음이다. 마음이 변화해야 행동으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법이다. 물신주의, 경쟁력과 학벌주의, 이기적 개인주의 등을 버리고 인간주의, 공공성과 패자부활전, 연대적 개인주의를 지향하는 정체성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래서 세월호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간과 사회, 그리고 어떤 삶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답변을 구해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대면하고 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하며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과정이다.

    무엇보다 참여해야 한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며,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체성의 정치’를 일구고 ‘제도의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 국가 위기관리와 직업철학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는 ‘완벽한’ 국가 위기관리 체계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은 원인을 특정 조직 구성원들의 오랜 잘못된 관행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정경유착, 대기업 특혜와 관피아 문제, 전관예우 관행 등이 국가 개조의 도마에 오르는데, 국가개조론에는 이 비리들만 제거한다면 안전한 국가 건설이 가능하다는 ‘인지적 허상’이 자리 잡고 있다.

    정부의 규제 완화 조치가 기업윤리 약화와 어떻게 연계되는지는 세월호 참사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이전 정부부터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적극적인 규제 완화를 단행한 것은, 기업들로 하여금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도 좋다”는 신호로 전달됐다. 그 결과 시장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해운사들은 명백한 자기이익 추구 외에는 어떤 규칙도 따르지 않았다.

    기업윤리 부재가 세월호 참사 같은, 언제 어디서든 터질 수 있는 공적 위험으로 이어졌다. 불안정한 고용은 비정규직인 세월호 선장과 선원에서 보듯, 직무에 대한 책임감과 구속력을 떨어뜨렸으며 안전교육과 훈련을 겉돌게 했다. 기업이 위험관리 업무를 외주화하는 것은 인건비 절감보다는 산업 현장에서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산업재해 희생자가 주로 비정규직에 집중되는 것은 그 방증이다.

    “무조건 돈만 벌면 된다”

    사고 발생 이후 왜 해운사와 선원은 승객을 구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나. 왜 구조에 나선 해경은 ‘해상 수색구조 매뉴얼’ 등을 따르지 않았나. 이밖에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등 공직자들과 왜곡된 속보 경쟁에 뛰어든 언론사들의 추태 모두 직업집단의 직업윤리 결여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들 직업집단은 자기 직업에 종사하는 가운데 본인의 욕구를 통제할 수 있는 어떤 도덕적 규율도 고려하지 않았다.

    직업윤리의 결여는 권위주의 국가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50년간 수많은 직업군이 새롭게 등장했지만, 이들은 자신의 무제한적인 욕구와 기대에 그대로 노출됐고 결국 본인의 직업활동이 미치는 사회적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개별화돼 본인의 이익, 본인 집단의 이익만을 우선적으로 추구하게 됐다. 대기업은 노동자에게 회사를 위해 비윤리적 행동을 마다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고, 기업의 지시에 대한 불응이나 내부고발은 당사자만 희생되는 자기파괴적인 행동으로 간주됐다. “직장은 밥을 먹여주지만 윤리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는 적나라한 반윤리적 의식이, 기업가와 노동자를 모두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탐욕의 괴물로 만들었다.

    특히 IMF 관리 체제를 기점으로 정부가 시장의 경쟁 원리를 사회 모든 영역에 정책적으로 강요하면서, 노동자도 고용 불안정과 취업난 속에 극대화된 불안에 빠지게 됐고 결국 연대의식을 잃고 점차 개별화했다. 재계, 정계, 관료계, 법조계, 교육계, 언론계 등 가릴 것 없이 직업인들은 직업 활동과 관련된 결정의 위험에 처해, 자기 이익과 과도한 출세 기대에 대한 자기 절제를 잃었다.

    만연화한 직업윤리 결여

    각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똑같은 직업윤리가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선장, 선원의 의무는 기업가의 의무와 다르며 이는 또한 정치가의 의무와 다르다. 대부분 집단에서 직업윤리는 존재하지 않거나 매우 초보적인 것이어서 직업인의 의식을 지배하지 못한다. 또한 직업윤리를 준수하는지를 감시할 의무를 가진 기관도 없다. 공분(公憤) 외에는 제재 수단이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직업윤리는 각자의 의식에 아주 사소한 것으로 축소되고, 직업인의 활동은 의무의 자기절제 효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세월호 선원들은 직업윤리를 지키지 않았다. 하지만 기업가, 정치가, 관료, 전문가, 노동자 등 누구도 가릴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직업 활동 속에서 자기 이익 추구 외에 어떤 규칙도 따르지 않는다면, 선장과 선원이 그러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자신을 버리고 승객을 구하는 직업윤리 정신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각 직업집단에는 그들의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 말해줄 직업윤리가 있어야 한다. 기업가(고용자)에 대한 노동자(피고용자)의 의무. 노동자에 대한 기업가의 의무. 하도급 기업에 대한 원청 기업의 의무가 있어야 한다. 직업윤리가 형성되기 위해선 자발성이 우선돼야 한다. 정부가 모든 직업집단을 감시·감독하는 한 규제를 받는 당사자들은 감독기관과 유착을 통해 규제를 회피하려고 할 것이다. 국가는 각 직업 집단이 자율적으로 본인의 문제를 성찰할 수 있게 최소한의 여건을 조성하는 데 머물러야 한다.

    다양한 직업 집단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직업윤리를 형성하더라도, 이 모든 것이 국가에 복속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고도화하고,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될수록 직업인의 업무활동은 국가의 경계에 구속되지 않고 더욱 더 다양한 형태로 분화한다.

    기업가는 생태학적 부작용이나 노동자의 안전과 복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이윤만 추구하고, 정치가는 권력 획득 혹은 연장만 노린다. 이들은 이율배반적이며 다른 직업 집단을 배려하지 않는다.

    세계 사회 수준에서 다양한 직업집단을 통제할 수 있는 일반적 윤리 기준이 만들어질 필요성이 대두된다. 정부는 핵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정책을 경제성장의 지속적 유지를 위해 고수하지만, 핵발전소의 유지·확대 정책은 산업용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요구를 넘어서 세계적인 핵 재앙의 위험을 높인다. 화학·농약회사들이 제초제에 저항성 있는 유전자변형작물을 내놓으면서, 유전자 코드가 고도로 복잡해져 예상치 못한 질병이나 유해한 결과가 나타날 위험이 세계 도처에 상존한다. 이런 고위험 기술산업에서는 세계 사회 수준에서 전반적 규제가 필요하다. 이는 특정 집단의 과제일 수 없다.

    궁극적으로 대형 참사를 겪으며, 사회가 가치관과 규범의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신뢰의 회복이다. 신뢰는 누군가 감시하고 감독하지 않더라도, 사회가 자신들이 기대한 대로 작동한다고 믿을 때 생겨난다.

    따라서 정부가 성급하게 대책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직업 집단과 시민사회의 참여 요구를 정치적으로 수용한 범국가 차원의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이런 사고가 일어난 구조적 원인, 우리 사회가 간과한 잘못된 관행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 후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종합적인 재난 대응 대책안을 내놓는 것이 미래의 위험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합리적 대처 방안이다.

    Interview | ‘생명을 살리는 안전사회포럼’ 최열 공동대표

    욕망의 사회에서 살림의 사회로 비정규직 줄이고 직업윤리 회복
    -생명을 살리는 안전사회포럼을 창립한 이유는.

    “세월호 참사 이후 잠을 편히 자본 적이 없다.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백성이 움직이지 않으면 정부도 움직이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발생 100일이 지났지만 원인 규명이 미흡하고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두고 갈등이 빚어졌다.

    “지난 100일 동안 유가족은 아마 100년 이상의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원인 규명은커녕 대통령이 약속한 국가개조는 한 발짝도 못나간 상태다. 그럼에도 세월호 참사를 통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우리 사회는 그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포럼은 어떻게 운영하는가.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안전 문제, 갈등 문제 등을 다룰 것이다. 먹을거리, 치안 문제, 도덕 문제 등 우리 가족과 시민이 서로 믿고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성을 모으고 행동하는 단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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