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호

‘우발범’도 ‘확신범’도 비용·편익 계산부터

이혼의 정치학 <1부> 결심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4-08-21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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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번쯤 이혼을 고민하지 않은 기혼자는 드물다. 많은 사람이 홧김에 이혼하자고 말한 뒤 거둬들인다. 상당수는 실행에 옮긴다. 결혼과 마찬가지로, 이혼은 일생일대의 정치적 선택이다. 우선 이혼을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결정하는 게 중요하고 다음으론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이혼의 정치학을 1부 결심, 2부 실행으로 나눠 살펴본다.
    한해에 10만 쌍의 부부가 이혼한다. 4월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이혼 건수는 11만5300건이다. 청년층의 결혼 건수가 줄어드는 점을 고려하면 이혼 건수도 동반 하락세를 보여야 한다. 그런데 굳건히 버티는 이유는 뭘까. 황혼이혼이 증가한 때문이다.

    남자 60대 이상의 이혼 건수는 1982년 500건에 불과했다. 그런데 2013년엔 9700건으로 치솟았다. 결혼 20년차 이상 부부의 이혼이 전체 이혼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8.1%로 1위다. 결혼 30년차 이상 이혼도 10년 전에 비해 1.8배 늘었다. 그 결과 이혼 부부의 평균 혼인 지속 기간은 14.1년이다. 이혼 사유는 성격 차이(47.3%), 경제 문제(12.8%), 배우자 부정(7.6%), 가족 불화(6.5%), 정신적·육체적 학대(4.2%) 순.

    새 사람을 만나고 싶다

    중년이나 노년의 이혼이 늘어나는 것은 이혼에서도 우발범이 아니라 확신범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혼이 늘자 사법부도 감당이 안 돼 이혼숙려제도까지 도입했다. 충분히 생각해보고 결정하라는 뜻이다. 그래도 이혼 추세를 막지 못한다.

    중장년의 이혼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공존한다. 긍정적 측면으론 첫째,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에 부담이 없다. 더 이상 애정이 샘솟지 않을뿐더러 단점만 보이는 밉상 배우자와 얼굴 붉히며 사느니 차라리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불륜은 싫다. 그래서 이혼부터 하겠다! 납득이 간다.



    자유는 천부인권

    둘째, 더 이상 다툴 이유가 없다. 애정이 식으면서 다툴 일은 늘어나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자녀 문제, 생활비 문제, 성격 차이, 습관 차이. 다툴 일은 널려 있다. 이런 모든 다툴 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서 이혼하겠다. 이 또한 납득이 간다. 자유는 천부인권 아니던가!

    셋째,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다. 배우자는 의지가 되지만 부담이 되기도 한다. 아니, 많이 부담스럽다. 행동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외식할 때 메뉴를 정하는 일도, 여행할 때 갈 곳을 고르는 일도 일방적으로 정할 수 없다. 나도 그렇고 상대방도 그렇다. 그 결과 배려와 양보조차 스트레스가 되곤 한다.

    그러나 중장년 이혼엔 부정적 측면도 적지 않다.

    첫째, 외로워질 수 있다. 이혼 후에 곧바로 새로운 이성을 사귄다면 문제가 없다. 친구가 많거나 새 친구를 쉽게 사귀는 성격이라면 이 또한 문제가 없다. 그러나 혼자 사는 기간이 길어지는 가운데 새로운 이성도 사귀지 않고 친구와도 자주 어울리지 않는 편이라면 반드시 외로워진다. 특히 몸이 아플 때 돌봐줄 사람이 없다.

    나사가 자꾸 풀린다

    둘째, 생활이 방만해질 수 있다. 혼자 살면 편하다. 의식해야 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더 편한 걸 추구한다. 입는 것도 대충, 먹는 것도 대략. 이런 생활이 하루 이틀 쌓여가면서 ‘나사’가 점차 풀린다. 자기 통제 또는 자기 관리가 웬만큼 뛰어난 사람이 아니면 혼자 살면서 철두철미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여성이 남성에 비해 나은 편이지만, 그래도 근본적인 생활 기조에 큰 차이가 없다.

    셋째, 수입이 끊겼을 때 방법이 없다. 내가 실직을 해서 벌지 못할 때 배우자라도 나가서 벌면 생활이 가능하다. 맞벌이라면 더욱 든든하다. 혼자 살다가 일자리를 잃으면 살길이 정말 막막해진다. 처음엔 저축해놓은 돈으로 버티겠지만 마지막에는 정부에 실업급여와 생활보호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 다시 일자리를 찾기 전까지 참담한 상황이 나아지길 기대하기 어렵다. 영영 일자리를 못 찾으면 곧바로 극빈자다. 벌집에서 생을 마쳐야 할지도 모른다.

    ‘우발범’도 ‘확신범’도 비용·편익 계산부터


    이혼만큼 정치적인 게 없다

    중장년 이혼을 단행하는 사람은 대개 확신범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장단점을 충분히 비교한 상태에서 이혼을 결정하는지는 의문이다. 혼자가 되고 난 뒤에야 단점을 몸으로 뼈저리게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청춘이혼을 하는 사람은 더 그렇다. 이들은 대개 우발범이다. 나중에야 이혼의 단점을 깨닫고 후회한다.

    기혼자들이 평소 이혼에 대해 어떻게 마음속으로 정리해놓고 사는지 모르겠다. 정리는 무슨? 닥치면 그때 고민하면 된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무방비로 살다 정작 상황이 벌어지면 경황이 없어 정리할 여유를 찾지 못한다. 당연히 실수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결혼생활 중에 이혼에 봉착했을 때만큼 정치적이 되는 순간도 별로 없다. 청혼할 때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평생 전략을 모르던 사람도 이때는 전략을 고민한다. 우유부단한 사람조차 결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정치를 가까이 하려니 모든 것이 어색하다. 결국 손절매로 대충 마무리하고 후회한다.

    이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적이어야 하고 또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먼저 이해득실을 잘 따져야 한다. 앞서 말한 이혼의 장단점 6가지 외에 사람마다 추가할 고유한 장단점을 더 검토해야 한다.

    미성년 자녀의 스트레스

    예컨대, 이혼의 장점으로 상대방으로부터 폭행을 더 이상 당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술주정을 더 이상 받아주지 않아도 된다거나, 외도를 더 이상 참아내지 않아도 된다거나 하는 것들을 추가할 수 있다.

    단점으로 자녀에게 상처를 입혀야 한다거나, 이혼자로서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거나, 배우자에게 재산을 많이 떼어주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을 추가할 수 있다. 이들 이혼의 장단점에 대해선 그 하나하나를 사려 깊게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녀가 입는 상처와 관련해, 일부 연구는 “부모의 이혼으로 미성년 자녀가 받는 스트레스는 암 선고를 당한 사람이 받는 스트레스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들

    청춘이혼의 경우 더 소소한 이유,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추가될 수 있다.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잠버릇을 참기 어렵다거나 하는 따위다. 이것을 소소하다고 보는 까닭은 이렇다. 부부는 사랑 때문에 평생을 함께 사는 것이 아니고, 잠버릇이 나쁘면 각 방을 쓰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도 장단점 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양육권을 갖지 못하는 쪽은 자녀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데 따른 상실감을 단점으로 생각할 것이다. 양육권을 갖는 쪽은 자녀로 인해 자유가 제한되는 점을 단점으로 여길 수 있다. 어떤 경우이건 이혼을 고민 중이라면, 정부 부처나 국책연구기관이 국가적 사업을 결정할 때 사업의 비용편익을 산정해 비교하듯이, 이혼의 비용편익 명세표를 만들어볼 필요가 있다.

    명세표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생각나는 대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편익과 비용을 적어나간다. 그다음에 각각에 점수를 부여한다. 10점 만점도 좋고 100점 만점이라도 상관없다. 점수는 내 맘대로 적으면 그만이다. 특정 항목에 가중치를 둬도 상관없다. 주관적으로, 직관적으로 생각해 적으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용과 편익의 총점을 낸 다음 어느 쪽 점수가 높은지 비교해보기 바란다.

    이혼 과정상의 비용도 포함해야

    편익의 총점이 높으면 이혼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다는 의미다. 비용의 총점이 높으면 그래도 같이 사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혼을 원한다면 이혼을 해야 할 이유, 곧 이혼의 편익을 더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반대라면 물론 비용을 더 찾아봐야 할 것이다.

    이해득실을 따져본 결과 이혼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 더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 이혼 과정 자체가 주는 비용 부분이다.

    이혼 과정에는 적지 않은 정신적·시간적 비용이 들어간다. 상대방이 순순히 합의이혼에 응해주면 비용이 많이 준다. 반면 소송으로 가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발생한다. 최종 판결까지 1~2년 넘게 걸리기도 한다. 유명인들처럼 이전투구 양상이 밖으로 알려져 양쪽 모두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합의 못해” vs “갈 데까지 가자”

    지루한 소송을 거치면서 몸도 마음도 지치고 정신도 피폐해진다. 상대방으로부터 재산을 가져와야 하는 상황이면 소송 이후 실제 재산을 배분받기까지 다시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이혼 과정 자체가 주는 손실도 이혼의 비용 항목에 반드시 추가해 따져야 한다.

    우리는 악랄한 배우자를 만나 살면서도 고생하고, 이혼할 때도 애를 먹는 이들을 가끔 본다. 이혼 과정이 두려워서 포기하고 사는 사람도 많다. 과정상 치러야 할 비용이 크니까 이혼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참고 살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고려는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음속 계산기의 오작동

    만약 이혼당할 처지에 몰렸으나 이혼하기 싫다면, 이 과정상 비용을 부각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절대 합의이혼해줄 수 없다, 이혼소송으로 가자. 이런 식으로 상대방에게 다시 계산해볼 것을 종용하는 방법이다. 단, 이럴 때에도 상대방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혼소송을 하자면서도 ‘나는 그래도 당신과 살기를 원한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야 하는 것이다. 역으로 상대의 감정을 건드리면 상대는 ‘그래, 갈 데까지 가보자, 이젠 죽어도 같이 못 산다’라는 식으로 나온다.

    이혼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도 명세표를 만들어보는 것이 좋다. 막상 계산해보니 이혼이 답이라면 마다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전략을 급수정해 합의이혼을 하는 쪽으로 빨리 마무리하면 된다.

    하여간 명세표에 과정상 비용까지 포함해 따져본 결과, 비용의 총점이 더 높다면 이혼을 재고하는 것이 좋다. 이혼의 변수를 모두 이해득실로 환원시켜 계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적지 않다. 이들은 ‘마음이 떠났다’와 같은 감정적 변수를 어떻게 계량화하느냐고 지적할 것이다. 그러나 가능한 한 그 감정조차 마음속 계산기에 넣어서 따져볼 것을 권한다.

    뜨거운 애정, 요즘엔 1년?

    거꾸로 말해, 내가 보기에는 이 감정적 변수가 계산의 오류를 낳는 주요인이다. 그래서 이혼을 해선 안 될 부부의 이혼을 조장하는 측면이 크다고 본다. 이혼과 같이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마음속 계산기가 오작동을 일으킨다?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혼을 감정적으로 처리하려 드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결혼이 애정 때문이었듯이 이혼은 애증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증오한다’고 재단해버리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다. 애정이 식었다고 증오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부도 연애 시절의 그 뜨거운 애정을 유지한 채 죽을 때까지 함께 살지는 않는다. 그런 건 길어야 10년, 요즘은 1년? 애정이 식어도 그들이 함께 사는 이유는 결혼생활엔 애정 이외의 다른 중요한 요소들이 작용하는 까닭이다. 각 방을 쓰면서 그냥 정신적 동반자로 지내는 부부도 많다. 이들도 처음에는 사랑해서, 애정에 겨워서 결혼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같은 집에서 함께 살고 있을 뿐이다.

    잠자리 안 해도 잘 산다

    극단적으로 말해, 부부는 잠자리를 안 해도 잘 살 수 있다고 본다. 잠자리의 의미도 세월 따라 변한다. 신혼시절에는 그것이 함께 사는 이유의 전부에 가깝지만 10년 이상 지나면 애정을 확인하는 절차로 변하기 마련이다. 결혼 10년 차인데도 여전히 그것이 사는 이유의 전부라면 당연히 이혼하고 그것이 사는 이유의 전부인 사람을 찾아나서야 한다. 이혼을 하는 많은 사람은 잠자리 문제를 성격 차이라고 둘러말하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말하든 둘러말하든 잠자리 문제가 이혼을 결심하는 결정적 이유라면 그것은 감정에 휩쓸려 마음속 계산기가 오작동한 것일 수 있다. ‘속궁합 안 맞다’고 이혼하면 후회하기 십상이다.

    ‘情’으로 포장하는 그것

    이혼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달고 다니지만 결국 결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을 우유부단하다고 탓해선 안 된다. 어떤 면에서 이들은 마음속 계산기를 누구보다 냉정하게 잘 두드리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이혼에 따른 편익과 비용을 다 따져본 뒤 그래도 이 사람과 여생을 보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흔히 ‘정’이라고 예쁘게 포장하는 그것 말이다.

    ‘우발범’도 ‘확신범’도 비용·편익 계산부터
    이종훈

    성균관대 박사(정치학)

    국회도서관 연구관

    CBS 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 진행자

    現 아이지엠컨설팅(주) 대표, 시사평론가

    저서 : ‘정치가 즐거워지면 코끼리도 춤을 춘다’ ‘사내정치의 기술’


    마음속 계산기의 오작동엔 주변인의 책임도 크다. 불구경만큼이나 재미있는 구경이다보니 자꾸 부추긴다. 나는 못하는 이혼, 너나 하라는 식이다. 반면 무조건 찬물을 끼얹어 식히고 보는 이도 적지 않은데, 이 또한 오작동의 원인이 된다. 구세대 중에 이런 부모가 많았다. 이혼이란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막았다.

    주변인은 주변인일 뿐이다. 그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은 아니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세월이 지난 뒤 간섭한 것을 기억조차 못한다. 내가 결심하되,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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