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호

안철수는 실패했지만 ‘안철수 현상’은 진행형

‘안철수 현상’ 3년_ 얻은 것, 잃은 것, 남은 것

  • 패널 : 김호기 윤평중 이철희 | 사회·정리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4-08-21 16: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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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호기 - “정치인 安 좌절에도 시민사회 새정치 열망 여전”
    • 윤평중 - “安, ‘안철수 현상’의 정치 에너지 속절없이 탕진”
    • 이철희 - “정치권 녹아들며 자기 언어 잃어…실패는 필연”
    ● 일 시 | 8월 8일 오전 10시30분

    ● 장 소 | 동아일보 충정로사옥 회의실

    ● 패 널 |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 사회·정리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한국 정치사에 ‘안철수 현상’이 등장한 지 3년이 지났다. 3년 동안 총선과 대통령선거, 지방선거 등 세 차례의 전국 선거가 치러졌다. 의회, 중앙, 지방권력이 모두 교체된 것. 성공한 최고경영인(CEO)이자 대학교수로 폭발적인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낸 안철수는 그 사이 교수에서 대선 예비후보자, 국회의원, 야당 공동대표로 변신을 거듭하며 정치권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7·30 재보선 이후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넉 달 만에 당 대표에서 물러나 평당원으로 돌아갔다.



    3년 전 혜성처럼 떠오른 안철수 현상은 이대로 유성처럼 스러질 것인가, 와신상담 끝에 항성으로 다시 빛날 것인가. 3인의 논객이 파헤친 안철수 신드롬의 실체.

    사회 ‘안철수 현상’이 나타난 지 3년이 지났습니다. 안철수 현상 이후 한국 정치에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봅니까.

    김호기 안철수 현상에 담긴 핵심 가치는 기성 정치에 대한 시민사회의 거부, 새로운 정치세력 등장에 대한 열망이었습니다. 그런 열망이 안철수 개인에게 투영된 것이죠. 정치 전면에 나섰던 정치인 안철수가 (7·30 재보선 이후) 후면으로 물러나 상당한 어려움에 처한 건 분명하지만, 그의 나이로 보나 여러 가지를 고려할 때 정치인으로서 완전히 실패했다고 단언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기성 정치를 거부하고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는 시민사회의 흐름이 과거보다는 약해졌어도 여전히 존재하니까요.

    시대의 포르투나

    안철수는 실패했지만 ‘안철수 현상’은 진행형
    윤평중 안철수 현상은 크게 3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가 정치 무대에 처음 등장해 2012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사퇴한 시점까지가 1기, 2013년 국회의원 재보선에 출마해 제도 정치권에 진입한 이후 최근 7·30 재보선까지의 시기를 2기로 볼 수 있습니다. 안철수 현상은 이제 3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변화를 바라는 한국 민중의 열망이 안철수라는 상징기호를 통해 폭발해 나타난 것이 안철수 현상입니다. 시대의 포르투나(운명)가 안철수라는 상징기호 안에 축약됐지만 개인의 역량 부족으로 1기에 이어 2기까지 참담한 실패의 과정을 겪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철희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가 만들어낸, 안철수에 의한 현상은 아니었죠. 안철수는 하나의 매개였죠. 1971년 대선 때 김대중 대통령후보가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센세이셔널한 바람을 일으켰던 것과는 상황이 달라요. 그때는 정치인이 흐름을 주도했다면 안철수 현상은 (국민 사이에) 뭔가 웅크리고 있던 흐름이 안철수라는 매개를 만나 폭발한 것이니까요. 안철수 현상 이후 기득권 포기 등 여러 변화가 있었으니 한국 정치가 많이 바뀐 건 사실이죠. 그럼에도 안철수 현상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를 따진다면 저는 실패했다고 봅니다.

    (국민 사이에) 새롭게 분출한 흐름을 해석해서 특정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이 리더의 몫인데, 결정적으로 지난 대선 때 안철수라는 정치인이 보여준 (안철수 현상에 대한) 해석은 크게 잘못됐다고 봐요. 이후에는 기성 정치세력이 안철수 현상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왜곡하는 쪽으로 몰고 갔죠. 그러다보니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낸 에너지가 진취적 에너지로 전환되지 못해 결실을 보지 못했죠.

    이제 (안철수 현상의) 한 라운드는 끝났다고 봅니다. 지난 대선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한 라운드가 끝났고, 앞으로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열망이 어디로 투영될지가 2라운드의 관건이 되겠죠.

    정치에 투신하기 전, 안철수 의원은 한국 사회가 갈망해온 몇 가지 덕목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투명하고 깨끗한 성공, 공공성, 시대의 멘토로서 따뜻한 소통. 그런 의미에서 안 의원은 우리 사회가 배출한 귀한 인재였다고 봐요. 문제는 정치권에 투신한 이후죠. 의료인이나 기업인, 대학교수로 성공하는 것과 정치권에서 성공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거든요. 이철희 소장께선 정치인이 된 안철수가 안철수 현상을 잘못 해석했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가 잘못 해석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시민과 민중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선 정확하게 해석했는데, 현실 정치인이 된 후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했고 준비도 전혀 돼 있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사회 안철수 현상 이후 오히려 여당이 크게 변했습니다. 당명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상징색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꿨죠. 박근혜 비대위는 김종인, 이상돈, 이준석 비대위원을 임명해 노·장·청의 조화를 꾀했고요. 그런 점에서 안철수 현상으로 드러난 시대적 요구를 새누리당이 더 적극적으로 수용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과도한 해석입니다.

    안철수는 실패했지만 ‘안철수 현상’은 진행형


    박근혜 현상

    안철수 현상도 있었지만, 박근혜 현상도 분명히 있었어요.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단순히 아버지 박정희 모델을 재현하겠다는 건 아니었잖아요. 2007년 대선 때는 신자유주의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2012년 대선 때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로 터닝했죠. 박근혜 현상과 안철수 현상이 만나는 곳이 바로 그 지점입니다. 박근혜 후보가 안철수 현상의 에너지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렇게 했다? 꼭 그렇게 해석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안철수 의원이 안철수 현상을 잘못 해석한 것은 그게 자신을 매개로 한 에너지임을 몰랐다는 것이 아니라 안철수를 통해 시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잘못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시민들이 분출한 욕구가 그저 ‘새로운 사람으로 해보자’는 수준의 인물교체, 세대교체 요구는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가치,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이 더 컸죠. 특히 신자유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후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시민들이 정치를 발견하기 시작했거든요. 정치를 통하지 않고서는 삶을 바꾸는 게 쉽지 않겠구나 하는 자각이 생겼고요.

    그런데 현실 정치권 내에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 같으니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서 대안을 찾아보려고 한 것이죠. 그런 흐름을 안철수가 정치의 영역을 좁힌다든지,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는 식으로 좁게 해석한 거죠. 새 시대는 구체제와의 갈등을 전제로 형성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안 의원이 민주당에 들어가서 구체제와 싸웠나요? 낡은 민주당과 싸웠나요? 저는 별로 안 싸웠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구체제와 싸웠다기보다는 오히려 편입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편입되고 녹아들어 갔죠. 그때부터 안철수는 자기 언어를 잃어버렸어요. 당 대표가 돼서 한 모두발언을 보면 과거에 그가 쓰던 언어가 아니에요. 보통 정치인이 쓰는 언어가 등장해요.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고 그 부분에서 계속 역할을 했더라면 좀 더 다르게 갈 수 있었는데 그런 점이 약했죠.

    그가 정치권에 들어오고 민주당과 합당한 이후 ‘새정치’ 말고 다른 어젠다가 뭐가 있었죠? 새정치라는 큰 담론 아래 안철수가 ‘지금 시대의 과제는 이거다’라고 얘기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합당의 명분으로 내건 ‘기초선거 정당공천 배제’도 부정당한 건지 부정한 건지 모르지만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렸어요.

    결국 안철수 스스로 안철수 현상과 괴리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고 봐요. 그게 가장 큰 문제였죠. ‘안철수 대통령이 되는 길’과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개혁자의 길’ 두 가지를 한데 뭉뚱그려서 정치인 안철수를 봐선 안 된다고 봅니다. 대통령이 안 되면 무조건 실패한 건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안철수가 다시 한 번 대중적 에너지를 끌어모아 개혁자 내지는 변혁자 구실을 해줄 수 있다고 봅니다. 한 인물의 정치적 공과나 성패를 따질 때 ‘대통령이 됐느냐 아니냐’만을 유일한 잣대로 평가할 순 없습니다.

    안철수는 실패했지만 ‘안철수 현상’은 진행형
    서태지, 노무현, 안철수

    이름 뒤에 ‘현상’이란 수식어가 붙었던 대표적인 세 사람을 꼽을 수 있습니다. 대중문화 분야에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서태지 현상’, 2002년 대선 때의 ‘노무현 현상’, 그리고 안철수 현상이죠. 어느 분야에서든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열망이 함축돼 있어야 ‘현상’이라 할 수 있죠. 그런 점에서 안철수 현상에서 안철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현상’입니다. 현상이 현상으로 의미를 가지려면 구체적인 콘텐츠와 지지세력이 있어야 합니다. 콘텐츠는 기성 정치에 대한 거부로 나타났습니다. 기성 정치가 우리 사회의 자원과 가치를 합리적으로 배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지지세력도 2011년에는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무당층에다 합리적 중도층, 경우에 따라서는 중도 진보층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지지세력이 있었어요.

    그런데 안철수 현상이 명실상부해지려면 또 하나의 조건을 충족했어야 합니다. CEO 안철수가 정치인 안철수로 진화했어야죠. 막스 베버는 책임과 열정, 균형감각을 직업 정치인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제시했어요. 정치인 안철수는 이 점에서 미숙했죠. ‘새정치’ 이후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고, 섬세한 해법이 필요한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한 정책 대안도 내놓지 못했어요. 또한 지지그룹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데, 정치 입문 전까지 소통의 아이콘이던 CEO 안철수가 정치인 안철수가 된 뒤에는 오히려 소통에서 큰 문제점을 드러냈죠.

    정치인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에 걸맞은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요. 앞으로 이 소장 얘기처럼 비정치적 영역에서 새로운 역량을 보여줄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인으로서는 더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유권자는 오래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안 의원이 계속 정치를 할 생각이라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내용과 방법으로 정치를 해야 할 겁니다.

    안철수는 실패했지만 ‘안철수 현상’은 진행형


    시민과 민중의 열망이 역동적으로 분출한 안철수 현상에 힘입어 안철수는 대선에 출마함으로써 호랑이 등에 올라탔어요. 그런데 자진 사퇴로 호랑이 등에서 내려와버렸죠. 이후 지금까지의 과정은 호랑이에게 먹히는 과정이었다고 봅니다.

    리더십에 대해 첨언하자면, MB(이명박) 정부는 ‘경제를 살릴 것이다’는 CEO 리더십에 대한 기대를 안고 출범했습니다. 도덕적으로 하자는 있지만 ‘경제만은 살릴 거다. 좀 더 넉넉하게 해줄 것이다’는 기대가 MB 정부 출범에 큰 영향을 끼쳤죠. 그런데 안철수는 같은 CEO 출신이긴 하지만 깨끗한 성공, 공공성이라는 점에서 MB와 대척점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 기대가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죠.

    문제는 CEO 리더십은 깨끗하든 흠결이 있든 자칫 유아독존 리더십으로 흐르기 쉽다는 점입니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 토론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결국 혼자서 결정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거든요. 이 때문에 CEO 리더십은 공화주의를 근간으로 한 민주공화국 시대에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CEO 출신 안철수는 현실 정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7년만 바라볼 게 아니다

    사회 평당원으로 돌아간 안철수 의원의 재기 가능성을 어떻게 봅니까.

    보수가 미래지향성을 가진 진보진영이나 민주 인사들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속된 말로 재기 불가능하게 만들죠.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겁니다. 평화롭게 등장해서 대통령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죠. 1971년에 DJ(김대중)가 대선후보로 등장하고 나서 어떻게 했습니까. 현해탄에 빠뜨려 죽이려고 했죠. 극도로 싫어할뿐더러 사상적으로, 물리적으로 린치를 가하고 용공으로 만들었죠. 노무현은 얼떨결에 대통령이 됐지만 어떻게 됐습니까. 탄핵당했죠. 그리고 5년 내내 줄기차게 괴롭혔고요. 안철수든 문재인이든 이런 과정을 거쳐서 신속하게 진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봐요.

    안철수의 경우 내부 세력에 의해 패대기를 당했기 때문에 더 절망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저는 꼭 그렇게만 보진 않습니다. ‘준비가 덜 됐다’ ‘CEO 리더십으로 한계가 있다’는 두 분 말씀 다 맞습니다. 그런데 마치 천형(天刑)처럼 그 이유 때문에 절대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 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려운 조건이 있다는 얘기니까, 지금까지 이렇게 당해봤으면 지금부터 훨씬 더 잘해야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죠. 안 의원이 꼭 2017년 대선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더 멀리 보고 정치를 해야죠. 인기가 있다고 리더십이 검증된 것처럼 착각해서 단기간에 대통령이 되는 코스는 잊는 게 좋습니다.

    현실 정치인 가운데 안철수만큼 대중에게 사랑받아본 정치인이 어디 있습니까. 사랑받은 기억, 사랑을 줬던 기억은 남아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사랑을 받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건지, 꼭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뭘 지향할 건지를 분명하게 던져놓고 국민이 박수를 쳐주면 다시 한 번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의 재기 가능성은 두 가지가 관건이라고 봐요. 하나는 핵심 지지층인데요. DJ, 노무현과 안철수가 다른 점이 이 부분 같아요. DJ에겐 정치적으로 아무리 어려워도 DJ를 지켜준 호남 유권자가 있었고, 노무현에게도 이른바 깨어 있는 시민, 즉 ‘깨시민’이 존재했죠. 안철수 의원에게도 이른바 ‘안빠’들이 있긴 했지만, DJ나 노무현 지지그룹에 비하면 그다지 견고하지 않았습니다. 또 안철수 핵심 지지그룹은 시간이 갈수록 약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다른 하나는 안철수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를 보더라도 정치가들의 삶이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누구나 위기를 겪죠. 다만 위기 속에서 어떤 비전과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과 소통하느냐에 재기 여부가 달려 있죠. 결국 정치인 안철수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죠.

    ‘안철수 실패’의 수혜자

    정치인 안철수에게 지금의 시간은 일생일대의 반성과 성찰로 채워져야 합니다. 안철수의 행로는 2011~2012년 폭풍과도 같았던 정치적 에너지를 속절없이 낭비하고 탕진해온 과정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의 죄인이라는 자기 성찰이 전제돼야 비로소 안철수의 재기를 논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요즘 ‘회복탄력성’이란 말이 유행인데, 직업 정치인으로서 안철수의 진면목은 지금부터 검증돼갈 것입니다. 어떤 역량을 갖춘 어느 정도 크기의 그릇인지.

    또한 두 분은 한국 야당의 집권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는데, 저는 구도와 인물이라는 두 가지 큰 잣대로 볼 때 꼭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이 계속해서 균열돼가고, 그에 비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발로 뛰는 모습을 보이며 중도층에 대한 호소력을 확장해갑니다. 2017년 대선에서 균열된 박근혜 리더십과 발로 뛰는 박원순 리더십이 맞선다면 야당이나 진보진영에 결코 비관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물 경쟁력도 야당이 상대적으로 강해 보일 수 있고요.

    다시 안철수로 돌아와 얘기하자면 차기 대선에서 정치인 안철수가 그처럼 단기간에 회복탄력성을 보이기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길게 봐야 한다는 두 분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안철수는 실패했지만 ‘안철수 현상’은 진행형
    사회 안철수 현상의 최대 수혜자가 박원순 시장인 것처럼 들리네요. 시장후보직도 양보받았고, 이제는 차기 대선의 유력한 주자로 부상하고….

    안철수 현상의 수혜자는 아니죠. 굳이 따지자면 안철수 실패의 수혜자죠.

    서태지 현상이라고 해서 우리가 꼭 서태지만 얘기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새로운 대중음악 흐름의 맨 앞에 서태지가 있다는 뜻이죠. 마찬가지로 안철수 현상이라고 해서 안철수가 그것에 대한 100% 소유권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기성정치권에 대한 시민사회의 거부가 안철수 현상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안철수 현상의 주연은 안철수지만, 제도 정치권에 맞선 시민정치라는 면에서 박원순 시장을 포함한 여러 조연이 있는 거죠. 주연이 잘 못하니까, 조연이 주연으로 부상했다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2011년 10월)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이 당선된 것은 안철수 현상의 수혜가 맞죠. 그런데 2017년의 대안으로 박 시장이 거론되는 것은 안철수가 이렇게 단절되니까 대안으로 부상한 거죠. 안철수 현상이 아니라 안철수의 실패 때문에 안철수 현상의 주연이 바뀌는 과정일 수 있죠.

    안철수 현상이 만들어진 핵심적인 이유로 깨끗한 성공, 공공성의 헌신, 따뜻한 소통을 들었는데, 박 시장도 이 3가지 특징을 가졌어요. 거기에 재선 서울시장이 되면서 행정 능력이 더해져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단 셈이 됐죠. 앞으로 더 책임 있는 자리를 맡을 능력이 있는지 검증받게 되겠지만, 현재로선 가장 선두에 있는 잠재적 대선주자로 볼 수 있습니다.

    양 진영 개혁파 위축

    사회 안철수 현상 이후 한국 정치가 좀 달라졌나요.

    판단하기 쉽진 않은데, 객관적으로 보면 제대로 이뤄진 것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안철수의 퇴장과 함께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꼴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보수 내부에는 안보를 중심으로 한 세력과, 경제민주화나 복지 같은 걸 내세우는 개혁적 보수 사이에 노선투쟁이 있었어요. 지난 대선 때 개혁적 보수가 힘을 좀 얻는 듯하다가 대선 이후 다시 안보 보수가 주도권을 잡았죠. 진보도 진보 내부에 보수파가 있어요. 민주화 시대 때 활약했던 사람들이 진보진영 내 기득권 세력이 됐죠. 그걸 깨기 위해 안철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력이 등장해서 뭔가를 해보려고 했는데, 세력화하지 못하고 깨진 거죠. 그런 점에서 저는 보수와 진보 모두 개혁파가 깨졌다고 봐요.

    그 결과 각 진영의 주류가 기존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정치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겠습니까.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으로 향하면서 양 세력 간 치열한 노선 권력투쟁이 있겠지만, 누가 이길지는 아직 알 수 없어요. 사실 (보수 진보) 양쪽 모두 지리멸렬하거든요. 보수에서는 개혁파가 이번 지방선거 때 단체장으로 많이 나갔죠. 과거 민주당에서 안희정, 송영길이 단체장으로 나간 뒤 당내 개혁파가 위축됐던 것처럼, 지금 새누리당이 그래요. 남경필, 원희룡이 광역단체장으로 진출하면서 지금 새누리당 내 개혁파는 상당히 위축돼 있어요.

    새정치연합도 마찬가지죠. 안철수가 저렇게 깨지고 나서 개혁파가 두 손 다 들었다고 봐요. 야권 내 낡은 체제가 자신들의 체제를 공고히 하기 때문에 다시 도전받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 도전이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있을 것 같진 않아요. 외부에서 새로운 흐름이 형성돼서 새정치연합을 때릴 것 같아요. 누가 이길지는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보수든 진보든 완전히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거든요.

    우리 정치가 내용적으로는 사실상 양당제예요. 그동안 진보는 도전 세력 때문에 야권 분열이니 뭐니 해서 굉장히 흔들렸는데 이제 다 정리됐어요. 통합진보당? 완전히 망가졌죠. 정의당? 미미하잖아요. 안철수 세력? 거의 무너졌잖아요. 지금 야권 표를 갉아먹을 만한 도전 세력이 없어요. 새누리당이 보수진영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듯 새정치연합도 진보진영에서는 독점적 지위를 누려요.

    사회 기성 정치권에 대한 거부로 안철수 현상이 만들어졌듯이 현재의 양당제 구도가 고착화하면 제2의 안철수 현상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럴 수 있다고 봐요. 반(反)기득권 무브먼트는 분명히 나오는데…. 안철수 같은 사람으로 나타날지, 아니면 다른 형태로 나타날지는 잘 모르겠어요.

    현 시점에서 정치인 안철수는 실패했고 재기 가능성이 불투명한 것은 맞지만, 넓은 의미에서 안철수 현상의 동력까지 소진됐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안철수 현상을 추동한 정치적 에너지가 사라진 것은 아니거든요. 다만 지표면 밑에서 용암이 끓듯 수면 아래에 가라앉은 상황이죠. 우리 사회를 ‘3불(不) 사회’라고 얘기합니다. 안전 면에서 불안하고, 불만에 가득 차 있고, 집권 세력이나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기 때문이죠. 3불 사회는 분노 사회로 바뀌는 모멘텀이 축적된 사회예요. 그런데 현실 정치인들이 자꾸 초를 치죠. 2012년 총선과 대선 때 야권이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졌다고 얘기하는 배경이 그 때문일 겁니다.

    그럼에도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낸 공정과 복지라는 시대정신은 앞으로도 계속 확대 재생산될 겁니다. 정치인 안철수가 시대정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반면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은 부분적으로 담아내 집권에 성공한 것처럼.

    한국 정치의 이탈리아化

    이탈리아 정치를 보면 강한 보수정당이 하나 있고, 여러 진보정당이 공존합니다. 이탈리아에서 진보정당이 권력을 잡는 것은 이들이 총체적으로 연대했을 때예요. 그런데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보수정당으로 회귀했죠.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정치가 이탈리아화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수 세력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이익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물보다는 세력과 집권이 중요하죠. 그런데 가치를 중시하는 진보 세력은 나누어져 있어요. 그러다 막상 선거에 직면하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51%를 얻기 위해 연대하죠.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이 많이 약화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5~10% 지지는 확보하고 있어요. 다시 말해 우리 국민 가운데 최소한 5~10%는 가치를 중시한다고 볼 수 있죠.

    대통령중심제에서 권력을 잡으려면 어떤 형태로든 연대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우리 진보 세력의 집권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봅니다. 안철수 현상도 전 국민이 지지하는 건 아니에요. 핵심 지지 세력은 중도와 중도 진보 세력입니다. 중도적 유권자가 관심을 표명하고 조직화할 때 안철수 현상이 성공할 수 있거든요.

    제2의 안철수 현상보다는 오히려 한국 정치가 이탈리아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커 보여요. 강한 보수에 맞서 범(汎)진보 세력이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과연 제대로 연대할 수 있는 리더를 내세울 것인지의 문제죠. 지난해 이탈리아 총선에서 제3세력인 오성운동이 25% 가까이 득표했는데, 우리 사회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보수 대 진보라는 양대 구도가 다원화한 구도로 갈 가능성이 있죠.

    이탈리아와 한국 정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같은 사람이 20년 가까이 통치할 수 있었지만, 깨끗하고 능력 있는 최고 통치자를 갈망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또한 김 교수께서 한국 보수가 이익동맹이기 때문에 이익을 지켜내는 구조가 중요하지 인물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는데, 그런 측면은 물론 엄존합니다. 그럼에도 보수 쪽에서도 대표자를 낼 때에는 우리 국민이 소망하는 가치를 구현할 인물을 고르는 데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한국적 문화와 문법이 있어요.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얘기한 ‘변형주의’를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보수가 사실상 진보적 의제들을 끊임없이 가져다 스스로 변화한다는 겁니다.

    사회 자본주의가 수정자본주의로 바뀌듯이….

    그렇죠. 그런 변형주의가 2012년 대선 때 나타났다고 봅니다. 박근혜 당시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가져다 쓴 게 대표적인 사례예요.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보수 성향이 진보 성향에 비해 두드러진 사회입니다.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냉전 분단체제하에 있기 때문이죠. 보수 성향이 두드러진 사회에서 보수가 선거를 위해 변형주의적 전략으로 진보 의제를 자신의 정치적 의제로 만들면 진보가 이런 보수와 맞서 싸워 이기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한국 진보가 집권하려면 이런 한국적 현실에 대한 냉철한 자기반성이 필요해요.

    사회 선거 때 필요에 따라 힘을 합하는 느슨한 연대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보수의 상대로서 존재하는 진보가 아니라,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수권 능력을 가진 정치집단으로서의 진보가 되려면 그에 걸맞은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외면받는 ‘구호만 진보’

    사회 안철수 현상이 등장한 이후 2030세대가 정치에 관심을 갖고 주도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세대갈등이 부각된 측면이 있습니다.

    재보궐선거에서 특정 연령대가 과도하게 투표장에 나오는 것을 빼면 일반적인 큰 선거에서는 세대갈등이 여전한 것 같아요. 그런데 세대갈등은 우리나라에서 조금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에나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야권이 세대갈등을 보조전략으로 쓸 수는 있겠지만, 그것에만 기대서 뭔가를 해보려고 하면 안 된다고 봐요. 세대와 지역만 내걸고서는 집권하기 어렵습니다. 야권의 2012년 대선 전략은 후보만 바뀌었을 뿐 2002년 대선 때 것을 그대로 옮겨왔죠.

    인구 변화에 따라 진보 친화적인 2030세대는 줄고, 상대적으로 보수 친화적인 5060세대는 급속히 늘고 있어요. 그런데 2011년 말과 2012년 초 상황에는 40대의 이념적 지향이 2030 세대의 그것에 급속하게 가까워지면서 야권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됐죠. 그런데도 박근혜 후보가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5060세대의 압도적인 지지에 더해 40대에게도 ‘저 정도의 합리적 보수라면 집권해도 괜찮겠다’는 시그널을 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야권의 2012년 총선과 대선 행로를 보면 자멸한 측면이 강해요. 5060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가 경제와 안보 문제인데, 민주당은 선거 과정에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 단행한 한미FTA(자유무역협정)와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완전히 뒤집었거든요. 5060세대 눈에 ‘저 사람들을 어떻게 믿고 정권을 맡길 수 있겠나’ 하는 인식이 생겼죠. 그런 점에서 야당이 앞으로 보수 또는 중도적 의제를 적극적으로 발굴해서 중원을 향해 나가는 환골탈태를 하지 않으면 집권 전망이 희박하다고 봅니다.

    뭐든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죠. 진보를 앞세울 거면 우리가 지향하는 진보 정책이 뭐다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야죠. 행태를 보면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데, 구호로만 진보를 외쳐서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기 어렵죠. 김호기 교수 말씀처럼 하나의 해법만으로 안 되니 보수적 해법도 필요하고 중도적 해법도 필요하다면 그것들이 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죠. 말로만 진보니, 중도니 하지 말고. 국민이 새정치연합을 외면하는 이유가 진보라서가 아니잖아요. 말하고 행동하고 따로 놀고, 실제로 하는 건 없는데 말만 풍성하니까 신뢰를 얻지 못한 거죠.

    지금 새정치연합이 겪는 어려움은 노선의 문제라기보다는 행태의 문제가 더 크다고 봅니다. 행태를 바꾸려면 사람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봐요.

    이분법적 선악 논리

    사회 안철수의 실패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새정치를 주창했지만 끝내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새정치라고 뭐 새로운 게 있겠습니까. 새롭게 등장하는 사람은 으레 새정치를 얘기해왔죠. 문제는 실천이죠.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는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죠. 무슨 이야기를 해도, 어떤 정책을 제시해도 국민으로부터 반응이 별로 없어요.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無)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악플이 달리는 건 그나마 애정이 남아 있기 때문인데. 자칫 잘못하면 야당은 무플 정당이 될 가능성이 있어요. 정치는 이성보다 감성이 더 중요할 때가 있는데, 진보 세력은 보수 세력보다 국민의 마음을 더 못 읽는 것 같아요. 현 시점에서 야권이 바꿔야 할 1차적인 정치 덕목은 ‘태도’라고 봅니다.

    문제는 무능이죠.

    야권은 내부에 지나치게 퍼져 있는 이분법적 선악의 논리를 하루빨리 극복해야 됩니다. 자신들은 선의 상징이자 대변자이고 반대 정치 세력은 악이라는 태도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든요. 일반 국민 눈에 그런 모습은 생경할 수밖에 없어요. 나만 옳다고 떠드는 사람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거부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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