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호

이순신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명량’에 대한 몇 가지 시선

  • 노광우 │영화 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입력2014-08-20 17: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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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영화 ‘명량’(김한민 감독·2014)은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돼 고문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 자막이 흐른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했고 원균이 이끄는 조선수군은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해 거의 궤멸됐다. 이순신은 전라우수영으로 돌아가 패잔병과 무기를 수습했다. 그는 나중에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했다.

    이후 영화는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패잔병들을 이끌고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는 이순신의 고뇌를 보여준다. 이어 명량을 통과해 한양으로 진격하려는 왜군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 내용이 영화의 전반부다. 후반부는 한 시간 넘게 명량에서 벌어진 전투를 담아낸다.

    영화에서 이순신이 다시 호출된 때는 조선수군이 전함과 군사를 거의 잃고 난 뒤였다. 지휘할 대상조차 변변히 없었다. 영화는 이런 최악 조건을 극도로 부각한다. 명백히 지금의 사회상을 스크린에 반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세월호 참사에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리더십이 무너졌다. 그러니 이순신이 어떻게 하는지 보라”라고 말하는 셈이다.

    박정희의 시각으로 본 이순신

    이순신을 다룬 다른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는 어떤 시대적 상황에서 호출됐을까. 이순신과 관련된 영화는 1962년 영화 ‘성웅 이순신’(유현목 감독)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이순신을 국가 통합과 발전의 아이콘으로 제시했다.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웠다. 이때부터 이순신은 국민의 인식 속에 강하게 자리 잡았다. 이순신 관련 영화가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 직후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점은 이런 사회적 배경과 연결해 풀이될 수 있다.



    1971년 같은 제목의 영화 ‘성웅 이순신’이 이규웅 감독의 연출로 제작됐다. 이 영화에서 이순신 역을 맡은 배우는 김진규였다. 그는 1977년 ‘난중일기’라는 영화에서도 다시 이순신을 연기했다. ‘명량’을 관람한 40~50대 관객은 학창 시절 학생단체관람으로 이 ‘난중일기’를 봤을 것이다. ‘난중일기’는 당시로선 대작으로 불린 영화였다. 그러나 학생단체관람과 같이 많은 관객을 동원했음에도 수익이 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와 별개로 1970년대 초 KBS에선 ‘난중일기’라는 드라마가 방영됐다.

    1970년대 이렇게 영화와 드라마가 이순신을 다룬 것도 박정희 정권이 이순신 띄우기에 나선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이순신은 실존인물이면서 연전연승의 전설, 굴곡이 있는 삶, 장렬한 최후 같은 드라마적 요소를 갖췄다. 난중일기가 전해져오는 등 이야기로 풀어낼 거리도 풍부하다. 또한 이순신은 반일 민족감정에 호소하며 귀감이 될 만한 도덕적 성품도 지녔다. 한마디로 상당수 한국인이 매료될 수밖에 없는 흥행 요소를 고루 갖춘 인물이다.

    따라서 1970년대 유신 시절 이순신은 독재정권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혹은 대중문화의 총아로 등장한 영화와 텔레비전의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라도 동원될 필요성이 있었다. 이 시기 이순신 영화와 드라마는 실제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MBC는 1985년 10월 14일부터 이듬해 4월 15일까지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의 다섯 번째 편으로 ‘임진왜란’을 총 54회에 걸쳐 방영했다. ‘임진왜란’ 시리즈에서 이순신은 자세히 다뤄졌다. 이를 빼면 1980~90년대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이순신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이는 이 시기에 한국 사회가 민주화로 접어들기 시작한 점과 관계가 있다.

    당시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는 표현의 자유가 제약되던 시기에 만들지 못했던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일제강점, 좌우 이념대립, 베트남전쟁, 군부독재, 민주화운동 등)을 조명하는 데에 주력했다. ‘여명의 눈동자’ ‘장군의 아들’ ‘지리산’ ‘남부군’ ‘태백산맥’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하얀 전쟁’ ‘모래시계’ ‘꽃잎’ ‘박하사탕’이 대표적 사례다. 특히 1980~90년대 작품은 이순신과 같은 영웅이 아니라 억압을 겪으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역사의 격랑을 견디는 민초에 주목했다. 당시 가장 눈에 띈 사극 영화인 ‘씨받이’는 권력과 유교 관습에 억압된 평범한 여성을 그렸다.

    노무현의 시각으로 본 이순신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순신은 대중문화계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순신을 다룬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2001)는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1960~70년대 영화들에서 이순신이 ‘성스러운 영웅’인 반면, ‘칼의 노래’의 이순신은 때때로 분해하고 억울해하고 냉소하는 피로에 지친 중년의 남자였다. 고된 사회생활에 지친 남성이 자기 처지를 쉽게 투영해 동일시할 수 있는 ‘서민적 인물’이었다. ‘칼의 노래’는 이순신의 일인칭 화법으로 전개돼 이순신의 내면의 고민이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됐다.

    거기에다 이 책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애독서로 알려지면서 정치적 의미까지 입혀졌다. 1960~70년대의 이순신이 ‘박정희의 시각으로 본 이순신’이라면, 2000년대의 이순신은 ‘노무현의 시각으로 본 이순신’이라고 할 수 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사태 이후 KBS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방영해 경이적 시청률을 올렸다. 김명민이 주연한 이 드라마에서 이순신은 주류에게 핍박을 받는 인물인 동시에 어려운 시기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로 그려졌다. 특히 드라마 속 이순신의 백의종군 고난은 노무현의 탄핵과 어렵지 않게 오버랩됐다. 박정희 시대의 이순신이 주류적 가치를 현실 속에서 구현한 주류의 영웅이었다면 노무현 시대의 이순신은 주류에 핍박받으면서도 대안적 가치를 실현한 비주류의 영웅이었다.

    2014년 영화계의 큰손인 CJ가 배급한 영화 ‘명량’의 이순신은 박정희 식 이순신과 노무현 식 이순신을 절묘하게 버무려 양 진영 모두에 어필하려는 상업적 전략을 취한 것으로 비친다.

    ‘명량’은 이순신(최민식)이 아들이자 부관인 이회(권률)의 질문에 답하는 말 속에 자신의 고민과 결의를 드러내는 식으로 구성돼 있다. 이때 이회는 관객이 이순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내용을 대신 질문하는 것 같은 역할을 한다. 아버지이자 지휘관으로서 이순신은 이들 질문에 대답하는 식으로 자기 생각을 얘기한다. 즉 이 영화에서 관객은 이회를 통해 이순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또한 이회와의 관계를 통해 이순신은 자상하고 사려 깊은 아버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런 점은 2000년대의 이순신 해석을 반영한다.

    칠천량 해전과 세월호 참사

    동시에 ‘명량’은 성웅으로 신격화된 공적인 인물로서의 이순신의 면모를 장시간에 걸쳐 상세히 묘사한다. 이는 1960~70년대부터 내려온 전통적 이순신 해석을 반영한 것이다. 이때의 이순신은 실존 인물인 동시에 설화적 상상력과 염원이 더해진 인물이다.

    ‘명량’에서 조선은 칠천량 해전의 대패 이후 극심한 낭패감과 절망감에 휩싸인다. 이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국민이 국가적 리더십의 무능과 혼란에 크게 실망하고 있는 점과 유사하다.

    이순신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노광우

    1969년 서울 출생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박사(영화학)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연구원

    논문: ‘Dark side of mod-ernization’ 외


    관객이 현실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일들은 ‘명량’의 전반부에 해당한다. ‘명량’의 후반부는 13척의 판옥선으로 적함 330척과 용맹하게 맞서 대반전의 승리를 거두는 역사다. 이순신은 적함들의 연이은 공격에 그때그때 적절한 전술로 대응한다. 마치 프로게이머의 온라인 시뮬레이션 게임을 보는 듯하다. 이순신은 산업화 세력의 유능함과 민주화 세력의 애민(愛民)정신을 함께 구현한다.

    관객은 현실에서도 누군가가 이순신처럼 난제들을 통쾌하게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게 실현되기 어려운 일인 줄 알기에 더더욱 영화의 처절한 전투에 몰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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