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호

사바나

“80년생, 90년생은 ‘최악’을 함께 견디고 있다”

88만원 세대 8人의 비명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19-11-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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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대 돼도 내 힘으로 서울 아파트 못 사”

    • “월급 얼마든 어떤 업무든 정규직이면 축하받더라”

    • “정규직 입사 소식 알리자 울음 터뜨린 부모님”

    • “10년 세월 흘러 급여 고작 47만 원 늘어”

    • “임원 자리는 우리 세대가 닿을 수 없는 곳”

    • “불합리한 일에도 ‘원래 그런 거야’라며 무기력 학습”

    • “왜 별안간 기성세대에 ‘짱돌’을 들어야 하나?”

    • “불안정 노동시장 버틸 테니 집 살 여건이라도 만들어달라”

    ‘사바나’는 ‘회를 꾸는 ,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컨버전스 뉴스랩(News-Lab)입니다. ‘사바나’ 기자들은 모두 밀레니얼 세대에 속합니다. 커보니 ‘취업이 바늘구멍’이 돼버린 경제 현실을 목도했습니다. ‘우리 때만큼 노력 안 한 탓’이라는 윗세대의 ‘꼰대질’도 감내했습니다. 이제는 청년의 삶을 주어(主語) 삼아 윗세대가 ‘불편할 법한 이야기’를 꺼내놓으려 합니다.

    한 사립대 졸업식에서 한 학생이 졸업 가운을 입은 채 꽃다발과 학사모를 들고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다. [동아DB]

    한 사립대 졸업식에서 한 학생이 졸업 가운을 입은 채 꽃다발과 학사모를 들고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다. [동아DB]

    시작은 한 권의 책이었다. 2007년 8월, 경제학자 우석훈과 사회비평가 박권일이 ‘88만원 세대: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을 출간했다. 책은 금세 지식사회에서 화제가 됐다. 그전에도 세대를 규정짓는 개념은 적지 않았다. 베이비부머 세대, 86세대, X세대 등. 하지만 월급을 외피 삼아 세대 개념을 잉태한 책은 처음이었다. 

    88만원 세대의 골자는 이렇다. 우석훈과 박권일은 20대(1980년대생)의 상위 5%만이 한국전력, 삼성전자, 5급 사무관 이상의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평균임금 88만 원 정도를 받는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 썼다. 2007년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인 119만 원에 성인들에 대한 20대의 평균임금 비율 74%를 곱해 나온 숫자가 88만 원이었다. 

    영·유아식품회사에서 대리로 일하는 김진희(가명 · 여 · 30) 씨는 ‘88만원 세대’가 출간되던 해 대학에 입학했다. 

    “경영학과를 갔는데 입학 첫해부터 교수님들께 정말 많이 들은 이야기가 ‘좁은 취업 시장’과 ‘막막한 앞길’에 관한 것들이었어요. 실제로 200명 넘는 과 동기 중 대략 5%만이 대기업, 공기업에 들어갔고 10% 정도는 중견기업에, 50%는 중소기업에 입사했습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우울한 민낯

    1980년대생들의 대학 생활을 탐구한 2007년 5월 26일 ‘동아일보’ 기사의 한 대목. [동아DB]

    1980년대생들의 대학 생활을 탐구한 2007년 5월 26일 ‘동아일보’ 기사의 한 대목. [동아DB]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 사이에는 보릿고개를 함께 넘었다는 동류의식이 있었다. 경제성장의 열차를 밀고 끌며 산업화를 일궜다는 자부심이 이들의 사고방식에 배어 있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막내들은 86세대(1980년대 학번, 1960년대 출생)의 일원이기도 했다. 86세대는 불의한 세상을 고발하고 뜨겁게 싸운 세대였다. 가치, 헌신, 희생, 투쟁, 민중 따위의 단어들이 86세대의 망탈리테(mentalit ·집합적 무의식의 총체)를 구성했다. 

    X세대(1970년대생)는 ‘신(新)세대’ ‘신(新)인류’로 불리며 1990년대 화려하게 출현했다. 세계적으로는 미 · 소 간 냉전이 종식되던 시기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Yoshihiro Fukuyama)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역사의 종말’을 써 자유민주주의가 “인류 최후의 정부 형태”라고 기세등등하게 선언했다. 

    한반도에서는 남북 간 체제 경쟁이 종료됐다.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을 읽던 운동권들이 ‘제3의 물결’을 설파했다. 이내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이어지던 경제 호황은 절정에 달했다. 휴대전화 보급과 월드와이드웹의 등장이 일상을 뒤흔들었다. 

    이런 분위기를 업고 등장한 X세대는 ‘집단 vs 개인’ 구도에서 처음으로 후자에 무게중심을 둔 세대였다. 1990년대는 대중 소비문화가 본격 개화한 시기이기도 했다. 앞선 86세대가 운동의 영역에서 전복을 꾀했다면, X세대는 문화의 영역에서 반란을 꿈꿨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X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다. X세대의 등장은 한국 자본주의의 장밋빛 미래를 예견하는 듯했다. 

    하지만 X세대가 탄 찬란한 불빛의 열차는 알고 보니 막차였다. X세대의 맏이와 막내 간 처지는 달랐다. 1997년 한국을 휩쓴 국가 부도의 위기는 이내 노동시장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얄궂게도 X세대의 뒤를 이은 세대에 ‘88만원’이라는 접두어가 붙었다. 말하자면 88만원 세대의 등장은 성장이 막혀버린 한국 자본주의의 우울한 민낯을 까발린 셈이었다.

    ‘뉴 노멀’과 산업화의 榮華

    88만원 세대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녀다. 성장을 거듭해 일가를 이루리라는 기대감이 88만원 세대에는 없다. ‘조금만 고생하면 더 나은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는 한국적 삶의 서사가 파편처럼 부서졌다. 그것은 열패감과는 다른 정서다. 자조(自嘲) 역시 아니다. 윗세대에 대한 질시라고 할 수도 없다. 당면한 현실에 적응할 뿐이다. 출판편집자로 일하는 문가영(가명 · 여 · 33) 씨의 말이다. 

    “앞선 세대는 월급이 비약적으로 뛰는 경험을 했지만, 그건 그 시절 그만큼 경제성장이 이뤄진 덕이죠. 거시 경제 변화에 대한 관점을 놓친 채 윗세대와 단순 비교만 하는 건 징징대는 걸로밖에 안 보여요. 노동시장에 대한 불안은 커지는데, 세계적인 변화라 한국만의 탓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입사 후에도 불안하니) 지인들은 첫 회사 다니다가 3~4년차쯤 되면 창업을 하거나 로스쿨을 갔어요.”
     
    문씨 말마따나 노동시장의 불안정은 글로벌 자본주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한국에서 ‘88만원 세대’가 출간되기 전 이미 이탈리아에서는 소설 ‘1000유로 세대’가 등장했다. 1000유로 세대는 불안정한 직업을 전전하며 월 1000유로 이하 소득에 의지해 살아가는 이탈리아 젊은이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1000유로는 소설 출간 당시 이탈리아 1인당 평균 소득의 절반 수준이었다.
     
    1000유로 세대와 88만원 세대를 공통으로 읽는 열쇳말은 노동시장이다. 88만원 세대는 정치적 경험, 문화적 동류의식을 기준으로 출현한 세대가 아니다.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조건의 그림자가 88만원 세대의 삶에 짙게 드리우고 있다. 즉 88만원 세대가 성인이 돼 마주한 한국은 저성장이 ‘뉴 노멀(New Normal ·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 부상하는 경제적 표준)’로 자리매김한 국가다. GDP(국내총생산)도, 성장률도, 연봉도 과거처럼 오를 일은 이제 없다. 산업화의 영화(榮華)는 막을 내렸다. 문화예술기관에서 일하는 박세희(가명 · 여 · 33) 씨가 말했다.
     
    “‘우리 세대가 아무리 돈 벌어도 부모 세대만큼 잘살기 힘들다’라는 말이 생각나요. 제가 중학생 때 부모님이 서울 강서구의 아파트 대출금을 모두 갚아 진짜 ‘우리 집’이 됐어요. 그때 엄청 기뻐하시던 부모님 모습이 생각나고…. 나는 50대가 돼도 온전히 내 힘으로 서울에 아파트는 절대 못 산다고 생각하니 조금 슬퍼지네요. 나도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게 그렇게 축하받을 일인가?”

    2007년 7월 8일 서울시 공무원임용시험이 실시된 가운데 서울 성북구 경동고등학교에서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정문을 빠져 나오고 있다. [뉴스1]

    2007년 7월 8일 서울시 공무원임용시험이 실시된 가운데 서울 성북구 경동고등학교에서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정문을 빠져 나오고 있다. [뉴스1]

    저성장은 88만원 세대의 출발선을 억지로 앞당겨 놓았다. 김정훈 CBS 기자, 심나리 전 CBS 기자, 국회 보좌진 김항기 씨가 ‘386 세대유감’에서 한국은행 통계 시스템을 활용해 추산한 바에 따르면, 1980년대생의 20대 후반 연소득은 2151만 원으로 같은 기간 1인당 GDP 대비 77.9%에 불과했다. 자산 증식의 꿈은 속절없이 바스러졌다. 같은 책에 따르면 ‘내 집 마련 기간’은 “1960년대생 10.1년, 1980년대생 16.0년”으로 확연히 갈린다. 

    88만원 세대가 마주한 노동시장은 앞선 세대가 사회생활 초기 마주한 그것과 사뭇 달랐다. ‘386세대 유감’에 따르면 1980년대생의 20대 후반 평균 실업률은 9.2%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 전체 실업률(7.2%)보다 2%포인트나 높았다. 

    설상가상 1980년대 출생 세대가 사회에 본격 진출할 시점인 2000년대 중반부터 비정규직 규모가 급증했다. 통계청이 2010년에 출간한 ‘한국의 사회동향(2010)’에 따르면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는 2004년부터 500만 명을 상회하기 시작해 2005년 548만 명, 2007년 570만 명, 2009년 575만 명에 이르렀다. ‘일자리는 당연히 정규직’이라는 앞선 세대의 상식이 안개처럼 사라졌다. 

    그러자 노무현 정부와 여당(열린우리당)은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대안으로 2007년 7월 1일 일명 ‘비정규직보호법’을 시행했다. 법은 기간제(계약직) 노동자의 고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사용자는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2년마다 해고가 잇따라 결국 비정규직 규모가 줄지 않으리라는 지적이 많았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난해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가 661만 명까지 치솟았다. 

    고로 88만원 세대는 노동시장의 출발선에서부터 보편적 고용 형태의 하나로 비정규직을 경험한 첫 세대다. 계약직으로 근무하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경험이 있는 문화예술기관 실무자 박세희 씨의 말이다. 

    “정규직 전환 후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정말 다행이다. 안 그래도 걱정하고 있었는데’라고 격려해주셨어요. 부모님이 근로조건에 대해 걱정하고 계셨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어요. 대학원 지도교수님은 그해 송년회 축배사를 ‘박ㅇㅇ 정규직 전환 축하’로 해주셨고요. 전 사실 이게 그렇게 축하받을 일인가 했었거든요? 연봉이 크게 오른 것도 아니고, 잘나가는 대기업에 입사한 것도 아니고, 그냥 18개월을 계약직으로 다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뿐이었는데 말이죠. 이때 비로소 ‘정규직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회사 업종이 뭐든, 월급이 얼마든, 어떤 업무를 맡든 일단 ‘정규직이면 축하한다’는 거잖아요.”

    “무기계약직조차 계급”

    정부 부처 산하기관 연구원으로 있는 김희연(가명 · 여 · 34) 씨의 말은 ‘웃프다’. 

    “대학 졸업 후 인턴 생활을 거쳐 대학원에 입학했고, 졸업할 때쯤 비정규직으로 취업했습니다. 그런데 별 문제의식이 없었어요. 관리자를 제외한 모든 직원이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이죠. 비정규직으로 2년 일하고 정규직으로 전환됐지만 (고용기간을 제외하고) 임금, 승진 등 모든 처우에서 전환 이전과 이후가 전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직장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영 · 유아식품회사에서 일하는 김진희 씨는 2007년 월 88만원을 받으며 학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김씨는 “2017년 또래보다 훨씬 늦게 진로를 변경해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한 기업에서 인턴을 하며 받은 급여는 월평균 135만 원이었다”면서 “10년 세월이 흘렀지만 급여는 고작 47만 원 늘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명문 사립대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장선예(가명 · 여 · 35) 씨는 지금 미디어 관련 연구소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일한다. 그는 ‘88만원 세대가 정규직이 계급임을 자각한 첫 세대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30대가 돼서야 비정규직으로 취직했습니다. 지금도 언제고 잘릴 수 있는 위치죠. 그럼에도 정규직이 계급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건, 주변 대부분이 소모적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제 주변엔 취직은 물론 경제활동하기도 힘든 상황에 처한 30대 친구가 너무 많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무기계약직조차 계급 아닌가요?” 

    문진혁(가명 · 남 · 33) 씨는 5년 전인 2014년 정규직으로 대기업 식품계열사에 입사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불문학을 전공해 남들보다 높은 어학점수를 갖고 있었지만, 1년 동안 100여 곳의 기업에 입사 지원서를 제출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단다. 

    그는 “대표이사 이름으로 입사 축하 화환이 집으로 도착했을 때 울음을 터뜨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던 부모님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같이 입사한 300여 명 동기 모두 비슷한 감정을 공유했던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회사 생활의 꽃이라 할 임원 자리가 저희 세대가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부연했다. 

    “완전고용 시기를 거쳐 지금 간부급으로 조직에 뿌리내린 이전 세대의 정규직과 과열된 취업 경쟁에 내몰린 후 입사한 우리 세대의 정규직은 의미가 다른 것 같아요. (대기업에 다니지만) 정년 채워 은퇴하는 삶은 저와 무관하단 생각이 듭니다.” 

    경제 전문 매체에서 기자로 일하는 김재일(가명 · 남 · 33) 씨는 “88만 원 직장인의 삶이 ‘제자리걸음’이라는 세간의 표현에 동의한다”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직장인은 회사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습니다. 지금은 과거보다 인풋(노동력 및 시간 투입) 대비 아웃풋(임금 혹은 임금의 활용가치)의 효율성이 현저히 낮아요.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출간된 지 10년도 지났지만 별 진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좁아진 것 같고요.”

    “과장도, 차장도 달 수 없다면…”

    출판편집자 문가영 씨는 노동시장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그는 “프리랜서가 노동시장의 주를 이루고 한 사람이 여러 직업을 갖는 시대가 곧 올 텐데 정규직이 크게 의미가 있을까”라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정년이 더는 보장되지 않는 사회죠. 과거 방송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정규직인데, 돌아보면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정규직은 계절마다 파리 목숨이고, 정규직은 1년마다 파리 목숨(연봉계약 시)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죠.” 

    ‘88만원 세대’를 쓴 우석훈 박사는 80년대생이 이와 같은 노동시장 앞에서 투쟁하길 원했다. 책의 부제는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였다. 그런 그는 2012년 책의 절판을 선언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 책(‘88만원 세대’)을 쓰면서 생각한 변화는 벌어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우 박사가 속한 86세대는 ‘전두환’이라는 거악(巨惡) 앞에서 끈끈한 유대를 과시했다. 전두환을 끌어내리면 세상이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그러나 88만원 세대 앞에 가시적인 거악은 없다. 저성장 시대를 상대로 싸울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건축설계사 유정혜(가명 · 여 · 33) 씨는 ‘88만원 세대’가 출간됐을 당시 대학교 1학년이었다. 

    “재수까지 하며 원하던 상위권 대학에 간신히 입학하고 나니 사회가 우리를 절망적인 세대로 규정짓기 시작했습니다. 경각심을 갖고 책을 읽었는데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에세이만큼 전혀 와닿지 않았어요. 왜 우리가 별안간 기성세대에 ‘짱돌’을 들어야 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영 · 유아식품회사 대리 김진희 씨는 “88만원 세대는 투쟁하기보다 기꺼이 사회에 순응하는 편을 택했다”며 말을 이었다. 

    “불합리한 일에 노출될지라도 ‘괜찮아, 원래 그런 거야’라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했고, 무기력함을 학습했습니다. 그렇다고 80년대 생이 특별 대우나 특별한 위로를 받을 필요는 없어요. 단, 적어도 사회가 80년대생들에게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버틸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국가라도 나서서 ‘인프라’를 제공해야 합니다. 과장도 차장도 달 수 없다면 국가가 집을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월급이 뛰지 않는다면 물가를 안정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요?”

    퀴즈쇼

    직장에서 80년대생은 어느덧 후배를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했다는 책(‘90년생이 온다’)의 주인공, 90년대생이다. 출판편집자 문가영 씨는 “80년대생은 90년대생과 비교해 좀 더 철든 시기에 IMF 외환위기, 세계경제 위기 등을 경험해서 조금 더 보수적인 반면, 90년대생은 머리가 트여 있고 보다 더 창의적이라고 생각한다”며 “70년대생과 80년대생 간 간극보다, 80년대생과 90년대생 사이의 간극이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건축설계사 유정혜 씨는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후배 몇 명을 실무 라인에서 접했을 때 느낀 공통적인 인상이 있었다”면서 경험을 담담히 회고했다. 

    “90년대생들이 우리 세대에 비해 ‘합리성’을 추구하는 문화가 더 강했어요. 자신의 권리를 더 잘 아는 것 같습니다. 경력 5~6년차 위인 저보다 노동법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고 ‘사장님 지금 (고용 형태에 대해) 이렇게 하시는 거 불법이에요’라고 표현할 줄도 알았습니다. 제 사회 초년생 시절이 떠올랐는데요. 현상공모전 준비를 하면 새벽 3~4시에 택시 타고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였어요. 그런데 실장급 선배들이 바로 집에 안 가고 꼭 술 한잔 하자고 했어요. 선배로서 술 한 잔 사며 후배 스트레스 풀어주고 싶은 ‘선의’였겠죠. 저는 새벽에 꼭 그들과 함께 포장마차에 들러 한 시간씩 소주를 마시고 집에 돌아갔습니다. 90년대생의 합리성은, 그런 ‘선의’를 물리칠 수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90년대생에게 80년대생은 꼰대일까. 정부 산하기관 연구원 김희연 씨는 “꼰대 짓을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꼰대적 인식’은 나이, 직급, 연차를 무기로 다른 사람을 규제하려는 거잖아요. 그런데 직장에서는 80년대생과 90년대생 직급이 같은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80년대생의 성장이나 승진이 정체돼 있기 때문이죠.” 

    ‘88만원 세대’가 출간되던 해, 김영하의 소설 ‘퀴즈쇼’가 등장했다. 책에는 이런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전자제품도 레고블록 만지듯 다루는 세대야. (… ) 우리 부모 세대는 그 중에서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여기서 ‘우리 세대’는 80년대생, 즉 88만원 세대를 일컫는다. 12년이 지난 현재, 소설 속 주인공을 90년대생으로 치환해도 어색할 문장은 단 하나도 없다. 그사이에 대통령이 3번이나 바뀌었지만 세상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미디어 연구소 연구원 장선예 씨의 말이다. 

    “(김영하 소설과 같은) 20대를 겪은 우리가 30대로 넘어왔지만, 여전히 비정규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20대가 어떤 30대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겠죠. 사회는 80년대생과 90년대생을 대결 구도화하며 서로가 다른 존재임을 규정짓고자 하더군요. 하지만 우리는 함께 최악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20대와 30대는 최악을 견뎌내느라 서로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미 서로 연대감을 더 많이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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