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기·전술에 집중해 이룬 4강
유럽式 무한경쟁 훈련, 한국에도 도입해야
유망주 해외 진출 적극 장려 필요
[+영상] 절실한 축구가 황희찬 같은 빅 리거 키운다
김은중 20세 이하(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박해윤 기자]
김은중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골짜기 세대’를 2023년 U-20 아르헨티나 월드컵 준결승 무대에 올렸다. 골짜기 세대는 유명 유망주가 하나도 없다는 의미로 붙여진 별명이다.
U-20 대표팀의 준결승 진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 U-20 폴란드 월드컵에서는 2위를 기록했다. 당시 대표팀은 지금과는 달랐다. 역대급 유망주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이 있었다. 2017년 U-20 대표팀에도 스타급 유망주는 있었다. 지로나FC에서 뛰던 백승호(전북 현대모터스), 이승우(신트트라위던 VV)가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당시 한국은 16강에 진출했다.
이번 대표팀은 달랐다. 국내 프로팀에 자리를 잡지 못한 대학생 선수도 있었다. 8강 나이지리아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한 최석현(단국대)이 그 주인공. 프로팀 선수 중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선수는 없었다. ‘잘해봐야 16강’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김은중호는 이 같은 평가를 실적으로 부쉈다.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4강 무대에 올랐다. 이번 대회 4강 중 무패 진출은 한국이 유일하다.
대회 거치면서 크게 성장
진흙 속 진주를 잘 찾아낸 것일까. 용인술의 승리일까. 6월 28일 만난 김 감독은 “대표팀을 꾸려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입을 열었다. 대표팀 선수들은 학창 시절 코로나19 유행 시국을 겪었다. 경기는 물론 훈련도 어려운 실정이었다.U-20월드컵은 2년마다 열린다. 해당 연령대 선수들은 국가대표 선발을 노리며 훈련과 경기에 나선다. 코로나19는 이 무대도 지워버렸다. 방역 문제로 대회는 2년 연기됐다. 당연히 대표팀 소집도, 훈련도 없었다. 한국 축구 유망주 육성 시스템이 그대로 2년 쉬게 된 셈이다. 당연히 어린 선수들의 경기력 관련 자료도 부족했다.
김 감독은 직접 선수를 찾아다녔다. 그는 “(선수를 찾으러 현장에 가보니) 패스, 슛, 헤딩, 체력 등 기본기가 부족한 선수도 많았다”며 “경기에 나가본 적이 별로 없으니 선수들이 자신의 강점이나 약점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손 놓고 있을 순 없었다. 프로 경기는 물론 대학 경기도 찾아가며 선수를 모았다. 대표팀에서 오래 일한 경력이 도움을 줬다. 김 감독은 2017~2020년 대표팀 코치를 맡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도쿄 올림픽을 치렀다. 두 경기 모두 23세 이하 선수들이 출전하다 보니 자연히 10대 후반~20대 초반 선수들의 데이터가 쌓였다.
스타급 유망주는 없었다. 프로팀 출신도 1군 경험을 가진 선수가 드물었다. 대표팀 주장이던 이승원(강원FC)도 1부 리그 출전 경력이 없었다. 김 감독은 이들을 기초부터 다시 훈련했다. 그는 “선수들이 전술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그에 걸맞은 체력과 기본기가 필요하다”며 “기본기를 다시 닦고, 전술을 몸에 익히는 데 1년 6개월을 썼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전략대로였다. 대표팀은 역습을 무기로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선수들은 약속한 대로 움직였고, 득점으로 이어졌다. 좋은 성적은 선수들의 위상도 바꿨다. 무명이던 이승원은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이번 대회에서 3골 4도움을 기록했다. 지난 대회 MVP 이강인(2골 4도움)의 기록을 앞섰다. 주축 수비수 김지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브렌트퍼드에 입단하며 15번째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김 감독은 선수들의 성장이 “대회 경험 덕분”이라고 이야기했다. “짧은 기간 세계적 선수들과 경합하다 보니 선수들도 몰랐던 잠재력이 눈을 떴다”며 “세계 각국의 우수한 선수들과 경쟁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전후반 모두 뛸 체력 가진 선수 드물어
김 감독의 이력은 U-20 대표팀 선수들과 닮았다. 김 감독은 유망주 시절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1998년 AFC U-19 축구선수권대회 대표팀으로 활약했다. 이후 소속팀 대전 시티즌으로 돌아가 2001년 FA컵 우승 1등 공신이 됐다. 이후 한국은 물론 일본(베갈타 센다이), 중국(창사 진더) 리그를 오가며 좋은 성적을 냈다. 대표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뒤 승승장구했을 것 같은 김 감독이지만, 그도 “프로팀 적응은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다.김 감독은 “월드컵을 준비하는 A팀 국가대표라면 몰라도, U-20 대표팀 선수들은 프로팀 적응에 부침을 겪는다”며 “프로 리그에서 수년간 경쟁하던 선수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어린 선수들의 프로 리그 적응을 유럽 유망주 육성 환경에 빗대 설명했다.
“선수 은퇴 직후 벨기에 AFC튀비즈의 코치로 일하며 유럽의 선수 육성 시스템을 자세히 보게 됐다. 이들의 육성법을 한 단어로 줄이면 ‘무한 경쟁’이다. 각 연령대에서 잘하는 선수가 있다면 이 선수를 그보다 위 연령대로 올려서 훈련한다. 몸이 자라는 시기인 만큼 동년배 사이에서 난다 긴다 하던 선수들도 고연령대에 오면 적응이 어렵다. 프로 리그 적응도 마찬가지다. U-20 국가대표라도 베테랑 프로선수들과 주전 경쟁은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김 감독은 젊은 선수들이 더 열심히 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젊은 선수들은 유럽 유명 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화려하고 정교한 축구를 동경한다. 하지만 일부 선수들은 유럽의 축구를 동경만 할 뿐 그들이 어떻게 훈련하고, 얼마나 노력하는지에는 관심이 덜하다. 여기에 코로나19로 훈련량도 부족하다 보니 체력, 패스 등 기초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이 소홀한 선수들이 생겼다. 전후반을 모두 뛸 체력을 가진 선수가 드물 정도다.”
김 감독은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이 같은 측면을 강조했다. 그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황희찬(울버햄튼 원더러스 FC) 선수의 하루 훈련 일정이 나온 적이 있다”며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이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선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뛰는 선수도 하루 일과가 훈련과 그 준비 과정으로 꽉 차 있다. 과연 여러분은 하루에 얼마나 훈련과 준비에 투자하는가. 이제 조금 더 열정적으로 욕심을 품고, 축구만 생각해 보자.”
김 감독은 유망주들의 노력만큼이나 육성 환경 변화를 강조했다. 그는 다시 한번 벨기에의 예를 들었다.
“인구 1000만이 조금 넘는 벨기에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 그만큼 걸출한 축구선수를 많이 배출한다는 이야기다. 그 비결은 자유로운 빅 리그 진출에 있다. 첼시에서 활약한 에덴 아자르, 토트넘 홋스퍼의 중심 수비수이던 얀 페르통언 등 유명 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 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가 프로 유스팀에서 훈련을 받았다. 한국도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국가의 축구를 경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면 좋은 선수를 양성할 수 있다고 본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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