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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판의 안, 장기판의 밖

인간의 근원, 학문의 근본

  • 글: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원장

장기판의 안, 장기판의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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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적 사유양식에는 어떤 기본 특징들이 있을까.

첫째, 구조주의는 인간의 의식, 내면, 주체성, 정신/마음 등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장(場)/구조’에서 출발한다. 인간을 바깥에서 보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 그 장의 구조를 논할 때 관계의 사유를 구사한다. A, B, C 각각에 내재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A와 B의 관계, B와 C의 관계에서 의미가 나온다는 시각이다. 토템을 예로 들어보자. 거북·독수리·곰을 토템으로 하는 세 부족이 있을 경우, 그 각각에는 큰 의미가 없다. 거북이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과 거북이라는 동물 사이에 어떤 내재적/필연적인 관계는 없는 것이다. 의미는 이 세 토템 사이의 관계로부터 성립한다.

셋째, 이런 식의 법칙성은 표면에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그에 이끌려 사는 심층적 법칙성이다. 이 때문에 구조주의는 자연히 ‘무의식’을 중시하며, 무의식의 층위를 파고 들어가게 된다.

이런 구조주의적 사유양식에 입각해 자기 분야를 연구한 뒤, 그 연구 성과에 사상사적 의미를 부여한 사람이 레비-스트로스다. 과학은 사실의 확인, 법칙의 발견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어떤 과학적 성과를 토대 삼아 세계와 인간, 가치에 대해 넓은 사유를 펼치면, 그 과학적 내용은 ‘사상사적 함축’을 띠게 된다. 레비-스트로스는 일차적으로는 인류학자이지만, 자신의 인류학적 발견에 철학적 내용을 부가함으로써 사상사적 위상을 부여받았다. 구조주의적 사유양식은 레비-스트로스를 통해 처음으로 중요한 사상사적 전경(前景)을 차지하게 된다.



레비-스트로스에 대해 개괄하기 전에 우선 구체적 예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토테미즘이라는 현상은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에 대한 기존의 이론들과 구조주의 이론의 차이를 살펴봄으로써 구조주의적 사유양식이 무엇인가를 직관적으로 이해해보자.

먼저 토테미즘과 애니미즘을 혼동하면 안 된다. 애니미즘(物活論)은 세계 전체가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 신성한 힘으로 가득 차 있다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일반적 믿음을 말한다. 그와 비교해 토테미즘이란 특정한 한 씨족/부족이 특정한 어떤 존재(특히 동물)와 자신들 사이에 본질적인 관계가 있다고 믿는 현상이다.

토테미즘은 처음에는 그저 미개인들의 괴상한 면모라고 가볍게 치부했으나 인류학(anthropology), 민족학(ethnology)이 본격적으로 발달하면서 그 의미가 다각도로 파헤쳐졌다. 각 씨족들은 자신들의 토템을 먹거나 해치지 않는다. 이것을 ‘금기(taboo)’라 한다. 그러나 일정한 시점에서는(예를 들어 제의 때) 오히려 그것을 죽여서 먹는다.

프로이트의 실수 혹은 오만

기존의 이론들 중 몇 가지를 보자. 우선 토테미즘을 즉물적으로 해석한 경우가 있다. 거북을 토템으로 하는 씨족은 진짜 거북과 비슷하고, 늑대를 토템으로 하는 씨족은 진짜 늑대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후자의 부족은 보름달이 뜨면 늑대로 변한다는 황당한 해석까지 있다. 이런 해석은 토테미즘을 너무 즉물적으로 해석한 것이며, 거기에는 미개인을 동물과 유사한 존재로 보는 편견이 깃들어 있다.

이보다 좀 나은 것으로 토템을 일종의 ‘상징’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이런 생각은 오늘날 ‘OB 베어스’ ‘한화 이글스’ ‘삼성 라이온스’ 같은 표현들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앞의 해석이 즉물적 해석이라면 이 해석은 반대로 너무 현대적이다. 미개인들이 상징이나 문장(紋章)을 사용했다는 것은 현대인의 생각을 미개인들에게 투영한 것이다.

프로이트는 ‘토템과 타부’(1925)에서 토템 현상을 정신분석학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는 토템과 씨족 사이의 이중적 관계를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애증, 즉 ‘오이디프스 컴플렉스’로 해석했다. 토템은 ‘신(神)=아버지’에 대한 상징이며, 미개인의 토테미즘이란 유아의 신경증과 유사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현대인의 정신상태를 포착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신병리적 개념을 미개인들에게 투사한 전형적인 환원주의 시각이다.

인간과 사회를 모두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사회생물학’이나 지성사까지도 사회적 맥락의 결과로 설명하려는 ‘사회학적 환원주의’도 마찬가지다. 어떤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이론을 다른 분야로 무반성적으로 투사할 때 이런 무리가 발생한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미개인에 대한 실증적 연구와 독립적 사유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형성된 자신의 이론을 다른 영역에 투사한 것에 불과하다(그의 미학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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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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