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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이오덕의 들판이야기

하나 할머니가 살아온 이야기

하나 할머니가 살아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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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한 뒤로는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고, 곧 오빠가 결혼을 하고 자기도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6·25의 난리판이 벌어졌다. 전쟁터에서 아버지가 죽고 오빠도 죽고 남편까지 잇달아 전사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어머니와 올케와 자신 이렇게 세 과부뿐이었다. 넉넉하던 살림도 아주 거덜나서 이제는 그날그날 입에 풀칠을 할 수도 없게 되었다. 어찌할 수가 없어 어머니가 아주 가슴아픈 결심을 하고는 딸과 며느리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대로 같이 있다가는 모두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 따로 헤어져서 저마다 살 길을 찾아 어디든지 가도록 하자.” 이래서 딸은 딸대로,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정처 없이 가게 되었다. 그 길로 딸, 곧 이 할머니는 이곳 저곳 떠다니다가 마지막으로 표착한 곳이 이곳 충북의 산골짝 무너미 마을이었고, 이 마을에서 다시 결혼을 하게 되었다.

재혼을 한 상대가 방앗간(정미소)에서 일하는 기술자였지만, 재산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가난뱅이라 온 마을 사람들이 먹을 것을 갖다주어서 혼례식을 치렀다. 그러고는 세월이 흘러 여섯 남매-아들 넷, 딸 둘을 낳아 길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시밭길로만 걸어온 할머니의 험난했던 삶은 이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나서도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그 길이 험악해서 사람으로 마땅히 지녀야 할 정신마저도 흐트러지게 될 정도였다. 그 방앗간 기술자라는 남편은 알고 보니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술고래였고 노름꾼 이었다. 맏아들이 좀 자라나서 농사일이라도 할 만하니까 남의 집 머슴으로 보냈다. 미리 앞당겨 한 해 새경(한 해 동안 일해준 값으로 주인이 머슴에게 주는 돈이나 곡식)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아들을 그렇게 머슴살이를 시켰다. 그렇게 해서 새경을 미리 받으니 제대로 온전히 받지 못했고, 조금밖에 못 받은 그 돈조차 아비는 술과 노름으로 다 날려버리곤 했다. 둘째아들도 셋째아들도 그렇게 해서 머슴살이를 시켰다. 그런 남편과 그렇게 남의 집에 팔려간 자식들을 두고 살았으니 그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애간장이 탔겠는가. 그러다가 맏아들은 이 마을에서 장가를 갔는데, 그 아버지를 닮아서 술주정뱅이로 살다가, 아이 셋을 남기고 끝내 술로 죽었다. 이 마을 윗돔에서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 세 아이를 키우던 맏며느리는, 이제 큰딸이 시집을 가고, 큰아들은 도시에 가서 공장 노동을 하고, 둘째아들은 군에 가버려서 혼자가 되어, 아랫돔에 역시 홀로 있는 시어머니인 이 할머니한테 와서 함께 지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의 둘째아들도 셋째아들도 그 아버지를 닮아 술만 마시고 살았다. 모두 장가를 갔지만 둘째아들은 술에 중독이 되어 사람 노릇도 못하고 죽었고, 그 며느리는 아들 하나를 데리고 어디로 가버렸다. 셋째아들은 술을 하도 먹어서 부인이 도망을 가버린 뒤에 역시 술로 죽었다. 바로 이 셋째며느리가 버리고 간 딸아이를 데리고 키웠는데, 그래서 하나 할머니가 된 것이다. 그 뒤로 그 딸아이(곧 손녀)마저 제 엄마가 와서 데리고 가버렸다.

할머니의 남편인 그 술고래가 아직 살아 있을 때였다. 맏아들 내외하고 한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며느리가 아들아이를 낳았다. 손자가 난 것이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또 딸을 낳게 되었다. 이 할머니는 부끄럽기도 하고, 그보다는 워낙 먹을 것이 없는 터라 아이를 키워낼 자신이 없어서 그만 자기가 낳은 그 딸아이를 부엌에 안고 나가서 목을 졸라 죽이려고 했다. 두 손으로 아이 목을 꼭 조르고 있는데 며느리가 달려가서 이래서는 안 돼요 하고 울면서 말렸고, 그래서 죽을 뻔했던 아이가 살아났다. 맏며느리는 자기 자식과 시어머니가 낳은 그 딸아이까지 같이 키웠다. 밭고랑에 엎드려 김을 매던 하나 할머니는, 그렇게 해서 자기 자식을 목 졸라 죽이려고 했다는 말을 하면서, 잡고 있던 호미를 거꾸로 돌려 그 호미 자루와 호미 날 사이의 목 있는 데를 두 손으로 꽉 움켜쥐는 시늉을 해 보이더라고 했다.



이 하나 할머니가 낳은 딸 가운데 막내는 이렇게 해서 죽다가 살아났는데, 맏딸 이야기가 또 있다. 맏딸은 처녀 때 집을 나가버렸다. 스무 해도 넘게 소식이 없었는데, 지난해 어떤 고등학생이 와서 이 무너미 마을에 우리 외갓집이 있다는데 하고 찾더란 것이다. 그래서 얘기를 해보니 그 옛날 집을 나간 이 할머니의 맏딸이 낳은 아들이었고, 그 나이가 열여덟 살이나 되었다. 그래서 뜻밖에 만난 그 외손자를 따라 딸을 찾아갔더니, 전라도 어느 바닷가 시골 마을이었고, 그다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바다에서 고기도 잡고, 농사도 지으면서 살고 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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