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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 원류 탐험기 ④

‘프런티어 맨’, 대니얼 분 신화의 무대 컴벌랜드 갭

숱한 문명의 행렬 거쳐간 서부 개척의 관문

  • 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프런티어 맨’, 대니얼 분 신화의 무대 컴벌랜드 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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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티어 맨’, 대니얼 분 신화의 무대 컴벌랜드 갭

국립 대니얼 분 삼림원 입구.

그 첫 장애물은 미시시피 강이었다. 그러나 모험욕에 불탄 개척민들은 19세기 초반에 벌써 프런티어를 미시시피 강 너머로 밀어내고, 미주리 강을 넘어서서 19세기말에 이르면 로키산맥을 관통해 태평양 연안에 이른다. 1890년, 전국 인구조사를 마무리하면서 미국 인구조사 담당관은 인구밀도가 1평방마일당 2명 미만인 지역을 ‘프런티어’로 정의하고, 미국에 더는 프런티어 라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터너 명제가 담긴 터너의 에세이 ‘미국사에서 프런티어의 의의’는 실상 이 선언에 자극 받아 쓴 것이다.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미국의 학자’와 더불어 흔히 미국의 문화적 독립선언서로 일컬어지는 터너의 이 에세이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서부로 급속히 이동해간 프런티어 라인의 통시적 단면을 회화적인 이미지로 선명하게 보여준 다음 구절이다.

컴벌랜드 갭(Cumberland Gap)에 서보라. 그러면 문명이 한 줄로 행진해 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맨 앞에는 염분이 섞인 물을 찾아가는 들소떼가 있고, 그 뒤에는 인디언, 그 다음에는 모피 상인과 사냥꾼, 또 그 다음에는 목축업자가 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이주 농민이 뒤따른다. 그것으로 프런티어는 소멸한다.

컴벌랜드 갭은 북쪽 캐나다의 퀘벡에서부터 남쪽 앨라배마 주까지 장장 2600km에 이르는 험준한 애팔래치아 산맥의 아래쪽, 켄터키, 테네시, 버지니아 주가 엇물려 있는 접경지대에 뚫린, 서부 켄터키로 나가는 관문의 이름이다.

애팔래치아 산맥의 험준한 연봉이 이어지다 V자형으로 파진 이 산간 회랑을 발견하고, 버펄로떼는 동물적 본능으로 이곳을 통과해 물과 풀을 찾아 켄터키의 초원지대로 내려갔으리라. 인디언들은 버펄로의 뒤를 쫓다 이곳을 발견하고 사냥감이 풍부한 켄터키로 수렵을 나갈 때마다 이 관문을 이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터너가 말한 문명의 행렬은 또한 비운의 행렬이기도 했다. 이 관문을 통과해 서부로 나간 버펄로와 인디언들은 백인 문명의 내습에 밀려 두 번 다시 이곳을 밟지 못했기 때문이다.

밀려든 이주자들

미국 독립 당시 컴벌랜드 갭은 신천지를 찾아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가난한 이민자들에게 서부로 나가는 유일한 출구였다. 일찍이 모피상들과 사냥꾼들은 펜실베이니아 북쪽 앨러게니 산맥을 통과해 오하이오 강을 타고 서부로 나가기도 했으나, 이 지역은 한동안 영국에 가까운 적대적인 인디언들이 장악하고 있어 이용할 수 없었다. 통계자료를 보면 독립 무렵부터 1800년경까지 이 컴벌랜드 갭을 통해 약 30만명의 개척민이 서부로 이주했다고 한다. 이렇게 밀려드는 이주자들로 켄터키는 1787년에 제정된 서북영지법에 따라 1792년 미국의 14번째 주로 연방의 일원이 됐다.

서부 개척이 본격화되는 1820년대에 이르러 애팔래치아 산맥을 관통하는 다른 트레일이 개척되고, 이리 운하를 비롯한 펜실베이니아 북쪽 수로를 이용해 오하이오 계곡으로 진출하는 길이 열리면서 컴벌랜드 갭의 중요성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컴벌랜드 갭은 대서양 연안의 신생 독립국이 대륙 국가로 발돋움하는 길을 연 첫 관문으로서 오랫동안 미국 서부 개척의 상징으로 남아 있었다.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컴벌랜드 갭을 찾아 나선 것은 2002년 11월 초순 무렵이었다. 주간 고속도로 40번을 타고 길을 떠났다. 1956년에 제정된 연방고속도로법에 따라 연방정부 재원으로 건설된 첫 주간 고속도로 중의 하나인 I-40은 노스캐롤라이나 윌밍턴에서 캘리포니아의 바스토를 연결하는 대륙횡단 고속도로다. 도로의 양편 숲을 물들인 색색의 단풍이 참으로 현란하다. 여름 날씨가 유난히 더웠던 탓에 절기가 늦어져 단풍이 이제야 한창인 것이다.

이윽고 노스캐롤라이나의 애슈빌을 지나 애팔래치아 산자락에 들어서니, 만산을 수놓은 오색의 단풍이 장관이다. 어느 방향에서든 남북으로 길게 뻗은 애팔래치아 산맥을 끼고 달리는 도로를 탄다면, 가을날 자연이 연출하는 이 장엄하고 눈부신 풍경을 완상할 수 있으리라. 가령 뉴욕 주에서 펜실베이니아를 거쳐 버지니아로 내려오는 주간 고속도로 81번이나, 그 옆으로 약간 비켜서서 셰난도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며 나란히 달리는 스카이라인 드라이브, 그리고 거기에 이어지는 노스캐롤라이나의 블루릿지 파크웨이는 한층 더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할 것이다. 나는 애팔래치아 산맥 중에서도 가장 높고 험준하다는 그레이트 스모키 산맥을 관통하는 길을 타기로 작정하고 지방도 19번으로 들어섰다가 체로키에서 다시 441번으로 갈아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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