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호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에 벽 쌓기 ‘사생활의 역사’

  • 진중권 칼럼니스트, 중앙대 독문과 겸임교수 mkyoko@chol.com

    입력2007-02-12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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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에 벽 쌓기 ‘사생활의 역사’

    ‘사생활의 역사’(전 5권) 필립 아리에스·조르주 뒤비 책임편집, 성백용 외 옮김/새물결/각 1000쪽 내외/각 4만3000원

    20세기 후반에 ‘역사’는 더 이상 거창하지 않다. 프랑스의 아날학파는 정치, 권력과 연대기 중심의 역사에 반대하여, 인간의 일상에 주목하는 문화사적 관점을 역사연구에 도입했다. 이때 사학은 ‘인류학’이나 ‘문화사’에 가까워진다. 특히 아날학파 4기의 ‘포스트모던’에 이르러 이런 경향은 전면화한다. 마치 팝아트 이후 세상의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자격을 얻었듯이 빵의 역사, 치즈의 역사, 죽음의 역사 등 오늘날 사학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없어 보인다.

    “역사는 도처에 있다”

    역사에서 보편적 법칙을 구하던 시대는 지나고 개별적 사례들에 천착하는 미시사(微視史) 연구가 등장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아마도 ‘역사주의’ 의식이 쇠퇴한 것과 관련 있을 것이다. 계급해방의 서사든, 국가통합의 서사든, 과거의 이데올로기는 역사철학의 뒷받침을 받는 거대담론이었다. 문자문화의 종언과 더불어 그 거대한 이야기(grand recit)가 무너지자, 역사학 역시 미시사라는 이름의 자디잔 일상의 이야기들로 해체된 게 아닐까.

    비슷한 시기에 푸코는 거시권력에 대한 관심을 미시권력으로 돌려놓았다. “권력은 도처에 있다”는 그의 명제를 “역사는 도처에 있다”로 바꿔 쓸 수 있지 않을까. 푸코를 연상시키는 어조로 조르주 뒤비는 공(公)과 사(私)를 나누는 벽의 정치성을 얘기한다.

    “이 ‘벽’의 양편에서는 수많은 싸움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사적인 힘은 외부적으로는 공적인 힘의 공격을 견뎌내야 한다. 그리고 이 울타리 안에서는 독립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욕망을 일정한 한계 내로 억제시켜야 한다.”



    ‘공적인 것(les publica)’에 가려 있던 ‘사적인 것(les privata)’을 조명하려 할 때, 가장 먼저 문제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사생활’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 이 책을 읽기 어렵게 하는 혼선은 ‘사생활’이 ‘국가의 간섭으로부터의 자유’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 데서 비롯된다.

    가령 아리에스는 ‘공적인 것’을 주로 ‘타인에게 공개된 것’의 의미로 이해한다. 이 경우 현대적 의미의 사생활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확립된다. 여가를 공개된 장소에서 이웃과 더불어 보내던 사람들이 외부로부터 고립된 가정이라는 공간으로 돌아가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게 된 게 바로 그 시기이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학자들처럼 ‘공적인 것’을 ‘국가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할 경우, 현대적 의미의 사생활은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형성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바로 그 시기에 국가권력에 대한 개인의 투쟁이 가장 활발하고, 또 그 성과가 법적·정치적·문화적 제도로 침전됐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공적인 것’을 ‘공무를 담당한’이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공사의 구별이 있다고 해서 오늘날처럼 뚜렷했던 것은 아니다. 로마인들은 ‘청렴한 공직자’란 관념을 알지 못했다. 온통 뇌물로 점철된 그들의 공직생활은 공익의 추구와 사익의 도모가 혼재한 영역에서 이뤄졌다.

    중세문명을 담당한 게르만인들은 아예 공사의 구별을 몰랐다. 왕은 자신의 국가를 사유재산으로 생각했고, 때문에 왕의 사후에 왕국은 상속되기 위해 분할되곤 했다. 예를 들어 프랑크 왕국은 샤를마뉴 대제의 사후에 몇 개의 나라로 쪼개져야 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이라는 오늘날 유럽의 지형이 국가를 국왕의 사유물로 여기던 관습의 산물이라는 분석이 흥미롭다.

    근대적 의미의 사생활이 탄생하기까지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한다. 첫째, 근대국가의 형성과 더불어 근대적 사법체계가 도입된 것. 이로써 과거에 사생활에 속하던 결투, 복수, 전쟁, 재판의 권리가 국가에 양도된다. 둘째, 인쇄술의 발달로 낭독이 묵독으로 변한 것. 이때부터 개인은 독서와 사유를 위한 고독한 장소를 원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종교적 심성이 변한 것. 교회를 통해 신과 연락하던 인간은 이제 신 앞에 단독자로 서게 된다.

    노동자의 사생활

    ‘사생활의 역사’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노동자의 사생활이다. 19세기에 현대적 의미의 사생활이 형성됐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르주아 개인의 전유물이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작업장은 사회적 노동이 행해지는 공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지만, 과거엔 기업주의 사적 공간으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기업주는 직공에게 제 집을 청소하는 일을 맡기곤 했다.

    작업장에 마련된 숙소에 살던 노동자에게 사생활이란 있을 수 없었다. 공장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기업주의 사적인 영역이었다. 한국에서 공권력의 투입은 주로 자본가를 위해 노동자에 대항하여 이뤄지지만, 기업주가 공장을 자신의 ‘집’으로 생각했을 때만 해도 상황이 달랐던 모양이다. 그 시절에는 외려 노동자들이 사생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공장으로 공권력을 투입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부르주아들이 한때 귀족계급에게 인격적으로 예속되는 것을 거부했듯이, 19세기 말에 이르러 노동자들 역시 기업주에게 인격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노사관계가 국가적 사안이 되면서 공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시작된다. 공장은 이제 법의 지배를 받는 공적 영역이 되고, 여기서 할 일을 마친 노동자는 이제 가정으로 돌아가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노동자도 드디어 부르주아처럼 사생활을 누리게 된 것이다.

    “잘 만났네. 내 자동차를 저기에 두었으니 자네가 오늘 닦아주었으면 고맙겠네.” “죄송합니다만 사장님, 단체협약에는 그런 규정이 없는데요.”

    같은 서구라 하더라도 사적인 것에 대한 관념은 나라마다 다르다.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관계는 미국에서는 공적 검증의 대상이 되나, 유럽에서는 사적으로 보호해야 할 영역으로 간주된다. 언젠가 어느 방송에서 독일의 콜 총리에게 미국의 정치에서 대통령의 사생활을 건드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역겹다”고 잘라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서구라고 해서 모두 ‘사생활’을 불가침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것은 아니다. 한때 유럽에서 꿈의 나라로 여겨지던 스웨덴이 요즘은 ‘부드러운 전체주의’로 비판받는다. 공동체 전통을 사회민주주의 원리로 발전시킨 이 나라에서 모든 돈 거래는 완벽하게 공개되고, 모든 공문서는 투명하게 공개된다. 독신모나 이혼모는 사회복지 급여를 받기 위해 자신이 낳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국가에 밝혀야 하고, 체벌을 당한 아이는 심지어 제 부모를 고발할 권리까지 갖는다.

    ‘프라이버시’의 정치학

    한국어판 ‘사생활의 역사’ 5권은 현대 이탈리아, 독일, 미국의 사생활에 관한 세 개의 장을 포함한다. 원래 프랑스어판에는 없고 해당국가의 판에 첨부된 것을 번역해 수록한 것이라 한다. 거기에 한국의 사생활에 관한 장을 첨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의 독서는 언젠가 한국판 ‘사생활의 역사’를 쓰는 것으로 완료돼야 한다.

    “이 ‘벽’의 양편에서는 수많은 싸움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조르주 뒤비의 이 말에는 ‘사생활’이 갖는 정치적 함의가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기업문화에서는 주식회사마저 버젓이 한 가문의 사유물로 간주된다. 그리고 오로지 일본과 한국에만 존재하는 ‘회사인’이라는 표현은 일본과 한국의 노동자에게 아직 사생활의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벽’의 양편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다른 곳에도 있다. 얼마 전 우리의 법원에서 부부 사이의 강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거기에 반발하는 남성들은 부부의 침실을 국가권력이 넘볼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으로 두고 싶어 한다. 하지만 과거에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공권력의 투입을 요구했듯이, 여성들은 침실에서 자행되는 남성의 자의적 폭력에서 자유롭기를 원한다.

    전자주민증, 방범 CCTV, 인터넷 실명제 등은 디지털 영상의 시대에 들어와 새로이 제기되는 문제들이다. 공과 사를 나누는 ‘벽’을 두고 양쪽에서 끊임없는 삼투압 운동이 일어난다. 이 운동의 결과 공적인 영역에 속하던 것이 사적인 영역으로 넘어오기도 하고, 거꾸로 사적인 영역에 속하던 것이 공적인 영역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싸움’은 결국 요소들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속에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문제다. 바로 여기에 ‘프라이버시’의 정치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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