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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술 이야기 ④

‘찰리 윌슨의 전쟁’과 싱글 몰트위스키

오크통에 숨겨둔 증류주, 명품 위스키로 탈바꿈

  • 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찰리 윌슨의 전쟁’과 싱글 몰트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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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윌슨의 전쟁’과 싱글 몰트위스키

영화 ‘찰리 윌슨의 전쟁’

‘술 중의 왕’ 탈리스커

영화 ‘찰리 윌슨의 전쟁’에는 음주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찰리와 거스트의 첫 만남이다.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의 실상을 확인하고 미국에 돌아온 찰리는 예산 편성권을 무기로 CIA 고위층과 접촉하길 원한다. 그러나 정작 그의 사무실로 찾아온 이는 24년 근무 경력의 CIA 고참이긴 하나 하위직에 지나지 않은 거스트였다. 불만 가득한 찰리를 달래준 것이 바로 거스트가 들고 온 술 한 병이다. 거스트는 ‘탈리스커’란 술을 들고 와서는 대단히 우수한 싱글 몰트위스키라며 시(詩)에도 ‘술 중의 왕’으로 등장한다고 설명한다. 거스트의 등장이 못마땅하던 찰리는 일순간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구하기 어려웠을 텐데…”하고 태도를 우호적으로 바꾼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탈리스커(Talisker)는 과연 어떤 술일까? 간단히 소개하면, 스코틀랜드 서쪽 스카이(Skye) 섬에 있는 탈리스커 증류소에서 생산되는 싱글 몰트위스키다. 깊은 향과 맛으로 스카치위스키 애호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전통의 명주다. 그런데 탈리스커에 대해 제대로 알려면 스카치위스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수다. 먼저 위스키는 곡물을 원료로 한 증류주를 오크통에서 일정 기간 숙성시킨 술이다. 이 오크통 숙성 과정은 보드카나 진 같은 다른 곡물 증류주들과 위스키를 구별하는 중요한 차이점이다. 위스키는 오크통 숙성을 통해 특유의 색깔과 향, 그리고 맛을 얻는다.

위스키의 오크통 숙성은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합병으로 탄생한 대영제국이 재원 확보를 위해 주세를 올리자 이에 반발한 증류주업자들이 스코틀랜드 북쪽 고산지인 하이랜드의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간 데서 유래했다. 업자들은 정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세리와인(sherry wine)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빈 오크통에 증류주를 보관했다. 얼마 후 오크통을 열어보니 원래는 전혀 색깔이 없던 술이 매혹적인 호박색을 띠면서 깊은 향을 지닌 술로 변해 있었다. 맛 또한 훨씬 좋아졌다. 평범한 증류주가 위스키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후 오크통은 위스키 제조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됐다. 오늘날 스카치위스키는 법적으로 오크통에서 최소 3년의 숙성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스코틀랜드 내 증류소에서 만들어져 스코틀랜드 내 저장실에서 의무기간의 숙성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스카치위스키라는 이름을 얻는 것이다.

사실 위스키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생산되고 있다. 우선 스코틀랜드 미국 아일랜드 일본 캐나다가 세계 5대 위스키 생산국으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고, 그 밖에 프랑스 인도 브라질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도 지명도가 낮기는 하나 다양한 위스키를 국내외에 선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위스키라고 하면 세계 어디서나 가장 먼저 스카치위스키의 고향 스코틀랜드를 떠올리는 것은, 위스키 생산의 전통도 전통이려니와 아직까지 그만큼 우수하고 다양한 종류의 위스키를 생산하는 지역이 없기 때문이다.



출처와 내력이 정확한 싱글 몰트위스키



스카치위스키는 크게 몰트위스키(Malt Whisky), 그레인위스키(Grain Whisky), 블렌디드위스키(Blended Whisky)로 나뉜다. 몰트위스키는 글자 그대로 보리 싹을 틔운 몰트(맥아·엿기름)만 사용해 만든 위스키다. 맛이 다소 강하고 거칠다는 평 때문에 한동안 블렌디드위스키의 중요한 재료로 사용됐다. 그러다 1963년 유명한 글렌피딕(Glenfiddich)사의 개척적인 첫 몰트위스키 출시 이후 새롭게 조명받아 지금 그 자체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맛도 점차 개선되어 이른바 명품 몰트위스키들이 속속 시장에 나오고 있다.

한 증류소에서 생산된 몰트위스키를 싱글 몰트위스키(single malt whisky)라고 부른다. 현재 스코틀랜드에는 90여 개의 위스키 증류소가 있는데, 대부분 각각의 개성이 담긴 싱글 몰트위스키를 생산하고 있다. 일부 증류소는 이런저런 이유로 현재 폐쇄됐음에도 그곳에서 생산한 싱글 몰트위스키들이 시장에서 인기리에 유통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싱글 몰트위스키는 무엇보다 술의 출처와 내력을 정확히 알 수 있다는 데 매력이 있다. 영화 ‘찰리 윌슨의 전쟁’에 나오는 탈리스커도 바로 여기에 속한다. 반면 여러 증류소의 싱글 몰트위스키들을 혼합한 것은 배티드 몰트위스키(vatted malt whisky)라고 부른다. 어감을 좋게 해서 퓨어 몰트위스키(pure malt whisky)라고도 한다. 배티드 몰트위스키는 상업적 필요에 의해 생산되고, 품질도 나쁘지 않지만 아무래도 싱글 몰트위스키만큼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한편 그레인위스키는 몰트 외에 옥수수나 밀 같은 다른 곡물을 재료로 하며, 몰트위스키와는 다른 별도의 증류소에서 생산된다. 몰트위스키를 만들 때 사용하는 전통적인 단식증류법 대신에 연속 증류장치를 사용하기 때문에 대규모 생산이 가능한 반면 특별한 개성이 없는, 가벼운 느낌을 준다. 때문에 그레인위스키 자체가 제품화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 몰트위스키와 혼합해 블렌디드위스키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블렌디드위스키의 최고 원료



블렌디드위스키(blended whsiky)는 앞서 언급한 대로 몰트위스키와 그레인위스키를 혼합해 만든 것으로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스카치위스키가 여기에 속한다. 조니워커, 발렌타인 등 세계적인 브랜드뿐만 아니라 국내 브랜드 위스키들도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블렌디드위스키가 세계 스카치위스키 판매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는 블렌디드위스키가 소비자에게 보편적이고도 안정된 맛을 선사한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블렌디드위스키는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5~40종의 싱글 몰트위스키와 2~3종의 그레인위스키를 혼합해 만든다. 이때 싱글 몰트위스키의 비율은 20~60%로 다양한데, 몰트위스키 함량이 높을수록 고급제품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함량 못지않게 어떤 증류소의, 어떤 몰트위스키를 사용했는지도 최종적으로 위스키 맛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찰리 윌슨의 전쟁’과 싱글 몰트위스키
김원곤

1954년 출생

서울대 의대 졸업, 의학박사(흉부외과학)

우표, 종(鐘), 술 수집가

現 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영화에 등장하는 탈리스커는 블렌디드위스키 원료 중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싱글 몰트위스키 중의 하나다. 그러나 우리나라 애주가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렇게 비싼 술은 아니다. 그럼에도 위스키 애호가라면, 이런 선물을 받을 때 뭔가 좀 안다 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남다른 기분을 맛보게 마련이다. 그런 맥락에서 찰리 역시 값에 관계없이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장면은 아프가니스탄 비밀작전이 성공하고 나서 열린 축하파티에서 나누는 대화다. “모든 일이 잘되었다”며 술을 즐기는 찰리에게 거스트는 “세상일은 알 수 없으니 끝까지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비록 ‘새옹’이 ‘도사(Zen master)’로 변형돼 표현되고 있기는 하나, ‘새옹지마(塞翁之馬)’와 매우 유사한 내용을 인용한다. 이 충고가 술의 세계에서 더 절실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신동아 2009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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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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