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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오페라처럼

국가와 결혼한 여성의 비극 사익 추구하자 국민은 등 돌렸다

마리아 스투아르다

  • 황승경|국제오페라단 단장, 공연예술학 박사

국가와 결혼한 여성의 비극 사익 추구하자 국민은 등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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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영제국의 발판을 닦은 엘리자베스 1세, 혈족이자 정적이었던 메리 스튜어트. 왕족으로 태어나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여성들이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1세는 혼란기에 국가를 위해 노력했고, 메리 스튜어트는 개인적 사랑을 택했다.
  • 역사는 엘리자베스 1세를 택했고, 오페라는 메리 스튜어트를 택했다.
국가와 결혼한 여성의 비극 사익 추구하자 국민은 등 돌렸다

메리 스튜어트(마리아 스투아르다, 이탈리아식 발음)는 늘씬한 키에 아름다운
얼굴로 단연 돋보이는 여성이었다. ‘역사상 최초로 골프를 친 여성’으로 알려져 있고,
영어 프랑스어 라틴어에 능했으며, 문학 철학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구글캡쳐]

‘공주는 사랑하는 왕자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산다.’ 이것은 동화 속에서 예외 드문 규칙이다. 비록 국가 간의 불화를 끝내기 위한 정략결혼이어도 공주는 만족스럽게 행복한 삶을 영위했다.

그러나 공주가 왕이 되면 그 사랑은 비참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통치자가 된 공주가 열정적 사랑을 하게 되면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거나 피비린내 나는 절망적 말로를 맞이한다. 이런 사랑 이야기를 이탈리아 작곡가 도니체티의 오페라 ‘마리아 스투아르다(메리 스튜어트)’가 다루고 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교수형에

메리 스튜어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가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다. 영국이 변방의 나라에서 대영제국으로 가는 발판을 만든 이로 아직도 수많은 여성 정치가의 ‘롤 모델’로 꼽힌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사익보다 국익을 우선시했고, 통치자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녀는 노처녀 히스테리가 이글거리는 질투의 화신이었다. 또한 아버지에 의해 교수형 당한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로 아무도 믿지 않았기에 항상 견제와 감시를 늦추지 않았다. 그녀는 국가와 결혼했다고 하지만, 자기만족으로 외모와 치장에 지극한 관심을 가졌다. 왕국에서 자신보다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초상화는 최대한 ‘뽀샵(사진보정)’ 기법으로 젊고 아름답게 그려야 했다.

하지만 후세의 어느 누구도 그녀의 사치와 질투에 대해 불만을 표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 국정의 빛나는 성과로 인해 그녀는 단지 리더십의 표준이자 존경받는 군주로 기억될 뿐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사망한 지 200년이 흐른 19세기에도 여전히 온 유럽의 관심 대상이었고, 오페라 세계에서도 인기 레퍼토리였다. 이탈리아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체티(1797~1848)는 한발 더 나아가 그녀와 관계된 베일 속의 인물들을 발견해 3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인 앤 불린(‘안나 볼레나’ 1830년 작), 그녀의 가장 가까운 혈족이지만 영원한 정적이었던 메리 스튜어트(‘마리아 스투아르다’, 1834년 작), 그리고 여왕이 사랑한 연인의 의붓아들이자 총애하던 로버트 데버루(‘로베르토 데버루’, 1837년 작)다. 작곡자는 그녀 주변인물의 내면세계와 심리적 갈등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주변인물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니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엉뚱한 사랑 이야기를 전개하기도 하지만 각기 별도의 완성도를 지닌 작품들이다.

이번에 소개할 ‘메리 스튜어트(마리아 스투아르다)’는 독일의 대문호 실러의 희곡이 원작이다.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정치적 평판은 이해관계에 따라 상반되지만,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역사 속 인물은 언제나 새롭게 해석되는 신비한 매력을 지닌다. 세련되고 수려한 언어 속에 치졸하기 짝이 없는 국제적 음모와 정치적 배신, 그리고 범죄와 살인은 관객의 흥미를 자아내기에 손색이 없다.
메리 스튜어트(1542~1587)의 삶은 한마디로 롤러코스터 같았다.

아버지 제임스 5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태어난 지 6일 만에 그녀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됐다. 이 핏덩이는 할머니가 잉글랜드(이하 영국) 헨리 8세의 이복누이였기에 영국의 왕위계승권까지 갖고 있었다. 16세기 유럽은 종교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어린 여왕은 프랑스 왕세자 프랑수아 2세와 약혼하기 위해 프랑스로 향한다. 여섯 살 생일도 넘기지 않은 금발 소녀는 헨리 8세의 눈을 피해 4명의 대역을 만들어놓고 야반도주하듯 도버 해협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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