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호

사랑하라, 오페라처럼

국가와 결혼한 여성의 비극 사익 추구하자 국민은 등 돌렸다

마리아 스투아르다

  • 황승경|국제오페라단 단장, 공연예술학 박사

    입력2017-04-10 17:39:48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대영제국의 발판을 닦은 엘리자베스 1세, 혈족이자 정적이었던 메리 스튜어트. 왕족으로 태어나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여성들이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1세는 혼란기에 국가를 위해 노력했고, 메리 스튜어트는 개인적 사랑을 택했다.
    • 역사는 엘리자베스 1세를 택했고, 오페라는 메리 스튜어트를 택했다.
    ‘공주는 사랑하는 왕자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산다.’ 이것은 동화 속에서 예외 드문 규칙이다. 비록 국가 간의 불화를 끝내기 위한 정략결혼이어도 공주는 만족스럽게 행복한 삶을 영위했다.

    그러나 공주가 왕이 되면 그 사랑은 비참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통치자가 된 공주가 열정적 사랑을 하게 되면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거나 피비린내 나는 절망적 말로를 맞이한다. 이런 사랑 이야기를 이탈리아 작곡가 도니체티의 오페라 ‘마리아 스투아르다(메리 스튜어트)’가 다루고 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교수형에

    메리 스튜어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가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다. 영국이 변방의 나라에서 대영제국으로 가는 발판을 만든 이로 아직도 수많은 여성 정치가의 ‘롤 모델’로 꼽힌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사익보다 국익을 우선시했고, 통치자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녀는 노처녀 히스테리가 이글거리는 질투의 화신이었다. 또한 아버지에 의해 교수형 당한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로 아무도 믿지 않았기에 항상 견제와 감시를 늦추지 않았다. 그녀는 국가와 결혼했다고 하지만, 자기만족으로 외모와 치장에 지극한 관심을 가졌다. 왕국에서 자신보다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초상화는 최대한 ‘뽀샵(사진보정)’ 기법으로 젊고 아름답게 그려야 했다.

    하지만 후세의 어느 누구도 그녀의 사치와 질투에 대해 불만을 표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 국정의 빛나는 성과로 인해 그녀는 단지 리더십의 표준이자 존경받는 군주로 기억될 뿐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사망한 지 200년이 흐른 19세기에도 여전히 온 유럽의 관심 대상이었고, 오페라 세계에서도 인기 레퍼토리였다. 이탈리아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체티(1797~1848)는 한발 더 나아가 그녀와 관계된 베일 속의 인물들을 발견해 3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인 앤 불린(‘안나 볼레나’ 1830년 작), 그녀의 가장 가까운 혈족이지만 영원한 정적이었던 메리 스튜어트(‘마리아 스투아르다’, 1834년 작), 그리고 여왕이 사랑한 연인의 의붓아들이자 총애하던 로버트 데버루(‘로베르토 데버루’, 1837년 작)다. 작곡자는 그녀 주변인물의 내면세계와 심리적 갈등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주변인물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니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엉뚱한 사랑 이야기를 전개하기도 하지만 각기 별도의 완성도를 지닌 작품들이다.

    이번에 소개할 ‘메리 스튜어트(마리아 스투아르다)’는 독일의 대문호 실러의 희곡이 원작이다.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정치적 평판은 이해관계에 따라 상반되지만,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역사 속 인물은 언제나 새롭게 해석되는 신비한 매력을 지닌다. 세련되고 수려한 언어 속에 치졸하기 짝이 없는 국제적 음모와 정치적 배신, 그리고 범죄와 살인은 관객의 흥미를 자아내기에 손색이 없다.
    메리 스튜어트(1542~1587)의 삶은 한마디로 롤러코스터 같았다.

    아버지 제임스 5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태어난 지 6일 만에 그녀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됐다. 이 핏덩이는 할머니가 잉글랜드(이하 영국) 헨리 8세의 이복누이였기에 영국의 왕위계승권까지 갖고 있었다. 16세기 유럽은 종교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어린 여왕은 프랑스 왕세자 프랑수아 2세와 약혼하기 위해 프랑스로 향한다. 여섯 살 생일도 넘기지 않은 금발 소녀는 헨리 8세의 눈을 피해 4명의 대역을 만들어놓고 야반도주하듯 도버 해협을 건넜다.


    초기엔 실패한 오페라

    오페라 ‘마리아 스투아르다(메리 스튜어트)’는 바로 이 상황에서 시작된다. 배경은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 피바람이 부는 것을 보며 하루하루 숨죽여 지내던 어린 시절부터 엘리자베스 1세는 레스터 백작인 더들리를 짝사랑한다(실제로 두 사람은 연인 사이였다). 극작가 실러는 드라마틱한 요소를 살리기 위해 레스터 백작이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니라 메리 여왕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오페라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들의 삼각관계 상황을 절절하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역설적으로 묘사한다.

    1막에서 메리 여왕은 계속되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욕적 언사를 참지 못하고 “불경한 앤 불린의 딸”이라는 금기어를 입 밖으로 낸다. 엘리자베스 1세 어머니인 앤 불린은 불륜 이단 등의 혐의로 사형당했다. 이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불같이 화를 내며 퇴장하고, 메리 여왕 일행은 사색이 된다.

    2막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주저하지만 가신들의 요청을 거부하지 못하고 메리 여왕의 사형집행 문서에 서명한다. 메리와 더들리는 하늘이 엘리자베스 여왕과 영국을 축복해주기를 기원한다. 더불어 애간장 녹이는 구슬픈 사랑의 이중창을 부른다. 이렇게 메리 여왕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친다.

    실제 형장에서 메리 여왕은 가톨릭 신자라는 표시로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최후를 맞이했다고 전해지는데 오페라에서도 대부분 붉은 색 드레스를 입는다. 이후 무대 위의 모든 사람은 숙적이 해결됐으니 영국에는 평화가 깃들 것이라고 합창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도니체티는 이 오페라의 성공을 기대했으나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야속하게도 프랑스의 영향력 아래 있는 나폴리,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밀라노 관객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더욱이 추앙받는 역사적 인물 엘리자베스 1세를 그처럼 냉혹하게 다뤘다는 점은 자칫 외교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나폴리 상카를로 극장 초연(1834)에서는 스튜어트 가문의 후손인 나폴리 왕비 때문에 제목을 바꾸고 배경도 피렌체로 바꿔야 했다. 원래 제목과 배경을 찾은 밀라노 스칼라 극장(1835) 공연도 참담한 실패로 이어졌다. 몇 차례 공연은 이어졌지만, 오페라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혔다.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작곡한 지 120년이 지난 195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악보가 출판됐다. 지금은 세계 무대에서 꾸준히 공연되는 레퍼토리다.

    추천 영상(유튜브)

    ‘장밋빛 햇살이 나를 비추고 있을 때’  www.youtube.com/watch?v=TMgO6vZnC1k
    1979 년 바르셀로나 극장 실황 공연에서 들을 수 있는 ‘장밋빛 햇살이 나를 비추고 있을 때’. 30년도 지난 영상이지만 도니체티의 해석에 탁월한 세계적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의 명불허전이다. 그녀의 음악적 해석이 차원이 다른 ‘마리아 스투아르다’를 세상에 내놓았다. 한 번의 호흡으로 소리를 실처럼 가늘고 애달프게 연결하는 테크닉은 시간이 흘러도 그녀만의 전매특허다. 특히 죽음을 앞두고서 과오를 참회하며 진정으로 전 남편에게 용서를 비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파란만장한 그녀의 운명을 대변하는 듯하다.

    2008년 밀라노 스칼라극장의 실황 공연  www.youtube.com/watch?v=QuKC36OC6Nw
    이 탈리아를 대표하는 벨칸토 성악가들이 총출동했다. 특히 메리 여왕 역의 이탈리아 소프라노 마리엘라 데비아의 열연이 돋보인다. 그녀는 음악적으로 완벽하지만 연기가 부족하다는 평을 들었었다. 그러나 데비아는 마지막 순간에도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품위 있는 격조를 유지하는 메리 여왕을 인상적으로 연기한다. 연출은 한국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공연한 바 있는 피에르 루이지 피치다.

    201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드레스리허설  www.youtube.com/watch?v=aKmOVN5_BOo
    현 재 ‘마리아 스투아르다’를 가장 많이 소화하는 소프라노는 조이스 디 도나토다. 부러질지언정 굽힐 줄 모르는 메리 여왕의 미묘한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 1막 마지막 부분으로 위기에 봉착한 메리 여왕은 당고모인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목숨을 애걸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럼에도 메리 여왕은 그녀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며 ‘불경한 앤 불린의 딸’이라고 하대한다. 그녀의 의지는 이토록 강하지만 관객은 뒤이어 불어닥칠 비극이 연상돼 가슴이 아려온다.
    장밋빛 햇살이 나를 비추고 있을 때’

    Quando di luce rosea              장밋빛 햇살이
    il giorno a me splendea,          나를 비추고 있을 때  
    quando fra lieti immagini        내 영혼이 행복한 꿈속에서
    quest’anima godea,                 기쁨으로 빠져있을 때
    amor mi fè colpevole,              사랑은 나에게 죄악을 가져다주었고,
    m’aprì l’abisso amor.               지옥의 문을 열어주었어요.
    Al dolce suo sorridere             달콤한 사랑으로 미소 짓고 있을 때
    odiava il mio consorte;            난 남편을 증오하고 있었어요.
    Arrigo! Arrigo! ahi! misero,     헨리! 헨리! 아! 불쌍한 사람,
    per me soggiacque a morte,    나 때문에 죽었어요.
    ma la sua voce lugubre            그러나 애처로운 그의 목소리가
    piomba in mezzo al cor,           내 가슴을 엄습하고 있어요.
    Ombra adorata, ah! placati,     사랑스러운 영혼이여, 아! 평온한 마음을
    nel sen la morte io sento.        난 가슴속에 죽음을 느끼고 있어요.
    Ti bastin le mie lagrime,           내 눈물과 고통으로 당신의 마음을
    ti basti il mio tormento.            충분히 위로해 드리겠어요.




    후세에 기억될 역사의 반전

    국가와 결혼한 엘리자베스 튜터와 메리 스튜어트라는 두 여인의 삶은 너무도 달랐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왕권을 거머쥔 남동생 때문에 어린 시절 철저하게 숨죽여 살아야만 했다. 자연스레 권력의 허무함과 강력함을 동시에 맛봤고,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다. 그녀가 최후에 선택한 온전한 사랑의 대상은 국가였다.

    반면 금지옥엽으로 자란 메리 여왕에게 권력은 노력하지 않아도 언제나 따라오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메리 스튜어트는 국가지도자임을 망각하고 공주 같은 사랑을 했다. 성인이 된 뒤 7년 만에 두 번 결혼했고, 모두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적당히 사랑하거나 타협하지도, 참을 줄도 몰랐던 그녀는 개인적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너무도 충실했다. 그 대가였을까. 그는 유럽 역사상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첫 군주로 기록됐다.

    역사에는 항상 반전이 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나 헨리 8세 자손들이 아니라 메리 스튜어트의 자손들로 인해 해가 지지 않는 초강대국이 됐다. 또한 현재에도 메리 스튜어트의 자손들이 영국 왕실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나라가 시끄럽다. 지금이 우리나라 역사에 어떠한 반전으로 기록될지 알 수 없다.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고 한 우리나라 지도자는 탄핵됐다. 일련의 사태가 오페라처럼 개인적 비극으로 종결될지라도 국가는 한 단계 더 성숙할 반전의 기회가 되기를 염원한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