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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특집│노무현 시대

고비마다 승부수로 역전 홈런 날리다

‘노무현 대통령’ 300일 피말린 드라마

  • 글: 엄상현 gangpen@donga.com

고비마다 승부수로 역전 홈런 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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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당선자가 되기까지 후보 노무현의 여정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힘겨운 승리 다음엔 늘 예상치 못한 위기가 뒤따랐다. 그때마다 노후보는 특유의 승부수를 던졌고, 국민은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 민주당 국민경선,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 단일화, 그리고 마지막 관문 대선. 300여 일간의 길고 고달팠던 노당선자의 도전기는 ‘각본 없는 드라마’ 그 자체였다.
고비마다 승부수로 역전 홈런 날리다

12월6일, 부산 구덕체육관에서 노사모 회원들이 노무현 당선자를 후원하기 위한 ‘희망돼지 저금통’을 모으고 있다.

“이인제 후보 491표, 지지득표율 31.3%.”

“노무현 후보 595표, 지지득표율 37.9%.”

2002년 3월16일, 김영배 민주당 선거관리위원장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세 번째 권역별 국민경선 결과를 발표하는 순간, 광주 서구 염주종합체육관은 ‘노란 함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이변이었다. 노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이후보를 제치고 종합득표 1위로 올라선 것이다. 노후보에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을 선사했지만, 이후보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지역주의를 뛰어넘은 ‘광주의 선택’으로 평가된 이날 경선은 결국 국민경선 끝까지 이어진 ‘노풍(盧風)’의 발원지가 됐다. 한 달 반 전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노후보가 당내 경선을 위해 캠프를 차린 것은 1월 말. 지방자치실무연구소로 사용하던 서울 여의도 모 빌딩 사무실에 ‘개혁과 통합을 위한 국민후보 노무현 추대위원회’라는 현판을 내걸었다.

하지만 노후보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돈과 조직은 물론 당내 지지세력조차 없었다. 경선캠프에는 현역 국회의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장 선거운동을 함께 다닐 사람조차 없을 정도였다. 노후보가 경선 초기 이처럼 열악한 형편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당내 상황과 무관치 않았다.

동교동과 관계악화 피해

2001년 말. 개혁성향의 의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쇄신파들이 당 개혁과 함께 동교동계 퇴진을 요구하면서 당은 물론 청와대까지 한바탕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그 과정에서 당은 쇄신파와 이에 발끈한 동교동 구파, 그리고 중도 진영을 중심으로 결성된 중도개혁포럼 간에 극단적 분열 양상을 보였다. 여차하면 서로 갈라서는 사태로도 치달을 수 있는 위기상황의 연속이었다. 각 계파는 개헌론, 정계개편론, 조기 전당대회론 등 사안마다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간에 접점이 만들어졌고, ‘당 발전·쇄신 특별대책위원회’를 꾸려 타협안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그 최종 시한은 연말까지였다. 하지만 시한을 넘겨 2002년 1월5일에서야 ‘당 발전·쇄신 특대위 안(案)’이 일부 수정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4월 중 전당대회를 실시한다’는 조기 전당대회론을 사실상 받아들인 이 안은 이틀 후인 1월7일 당무회의에서 통과됐다. 이는 당내 각 대선주자들의 대권경쟁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사분오열돼 있던 당내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듯 대권 후보들이 속속 출사표를 던졌다. 이인제, 노무현, 김근태, 정동영, 김중권, 한화갑, 유종근 등 무려 7명이 대권 후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의원들은 각 계파별로 지지후보를 정하고 캠프에 속속 합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후보를 지지하는 의원은 없었다. 개혁성향인 쇄신파 의원들조차 노후보 지지를 꺼렸다. 당 쇄신을 위해 권노갑 등 일부 인사들의 인적청산과 동교동계의 퇴진을 요구했던 쇄신파 의원들의 행동에 노후보가 동참하지 않았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다.

실제로 노후보는 쇄신파의 입장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반대한 것도 아니었다. 노당선자의 오랜 측근 가운데 한 사람인 서갑원 의전팀장의 설명이다.

“노후보는 적대적 또는 비적대적 관계보다는 원칙을 중시했다. 당의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마녀사냥식’ 정치에 대한 반대였던 것이다. 정치인은 선거를 통해, 당직자는 전당대회를 통해 정상적으로 평가받는 것이 바람직한 타개책이라고 제시했다. 이것이 당내 쇄신운동에 반대하는 모양으로 비쳐졌다.”

노후보가 이같은 원칙을 고수한 것은 일정 부분 전략적 측면이 고려된 것이기도 하다. 노당선자의 또 다른 한 측근은 “당내 지지기반이 없었던 노후보 처지에선 동교동계와 굳이 적대적 관계로 돌아설 필요는 없다고 봤다”며 “하지만 국민경선운동이 시작되면서 동교동계에 중립을 지켜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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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엄상현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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