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호

인권의 눈으로 본 이명박 정부 1년

인권위 반토막 내지 말고 제자리 찾아줘야

  • 김승환│한국헌법학회 회장·전북대 법대 교수 bamboo@chonbuk.ac.kr│

    입력2009-02-04 17: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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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수위 시절 인권위를 대통령 소속기구화 추진
    • 공권력의 폭력과 시위 참여자들의 폭력을 다루는 두 잣대
    • 모든 국민에게 ‘입의 자유’ 보장하는 헌법
    인권의 눈으로 본 이명박 정부 1년
    지난해 2월25일 이명박 정권이 출범했으니 이달로 만 1년이 됐다. 정권이 닻을 올린 지 한 달 보름도 못 되어 치른 4·9총선거에서 한나라당이 거둔 압승은 이명박 대통령의 진수식을 더욱 화려하게 꾸며주었다.

    그러나 집권 두 달을 넘어 5월로 들어서자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시작됐다. 직접적인 계기는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논란이었다. 문화방송 ‘PD수첩’이 미국 현지 취재를 통해 주저앉는 소와 도축현장을 보도한 것이 촉매가 됐다.

    촛불시위 국면에서 주목할 것은 이명박 정권의 시각이다. 정부는 촛불집회를 반정부 세력의 조직적 반발, 반미·불순세력의 준동,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을 동원한 반정부 시위, 집시법을 위반한 폭력시위, 방송과 신문의 무분별한 선동 등으로 바라보았다. 정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법질서의 엄정한 확립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경찰의 폭력과 검찰의 칼날

    우리나라에도 엄연히 법질서가 존재하고, 그러한 법질서는 모든 국민이 지켜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법질서는 동시에 국가권력의 담당자도 구속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경찰의 대응을 보자. 촛불집회는 연이어 방송사 9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관들이 젊은 여성의 머리를 군홧발로 차고 짓밟는 광경이 보도됐다. 다행히 그 여성은 재빨리 경찰차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이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그나마 깊이 안도했다. 검찰은 또 어떤가. 촛불집회를 불법폭력집회로 단정했다. 집회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집시법은 원칙적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법률로 구체화해 보장하는 법이어야 한다. 집시법에 대한 집행과 적용도 마찬가지다.

    경찰관의 폭력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체하던 검찰이 집회 참가자들의 일탈행위에 대해서는 서슬 퍼런 칼날을 뽑아들었다.

    집시법 조항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집시법 제10조는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하여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한 경우에는 관할경찰서장은 질서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도 옥외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야간 집회·시위 금지조항이다. 야간 집회시위에 대해 더 큰 제한을 가하는 것은 야간 집회·시위는 공공의 안전 및 질서와 충돌할 위험이 더 크다는 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하는 경우에는 그 집회·시위를 막지 말라는 게 입법 취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집회시위를 할 경우 ‘부득이하게 집회를 신고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주간에는 집회시위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야간에 집회시위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가 진 후에도 옥외집회’를 하려면 집회신고는 필수다.

    그런데도 경찰은 집시법 제10조가 경찰권에 야간 집회·시위에 대한 허가권을 부여한 것처럼 해석·집행하고 있고, 검찰 역시 그런 관행을 이어오고 있다. 이 같은 촛불집회에 대한 일련의 대응은 곧바로 국제앰네스티의 인권 감시망에 잡혀 국제적 비판을 초래했다.

    어는 정도가 허위 통신인가

    미네르바 사건에 대한 검찰의 태도를 보자. 미네르바는 미국의 경제위기를 예측했고 그것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필명을 얻었다. 이어서 이명박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과 향후 전개될 대한민국 경제상황을 전망했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미네르바에 대한 처벌가능성을 언급했고, 경찰은 올해 1월 미네르바의 IP 주소를 추적한 끝에 혐의자를 체포했다. 미네르바로 체포된 박 아무개씨는 지난해 12월 정부가 시중은행에 달러 매수를 중단하라는 긴급공문을 보냈다는 내용의 글이 문제된 것에 대해 “그런 내용의 글을 다음 아고라에서 보고, 블로그에서도 봐서 옮겨놓았을 뿐이며, 정부가 원래 환율을 관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보도됐다.

    검찰이 미네르바의 의사표현 행위를 형사처벌할 수 있다고 들이댄 근거조항은 전기통신사업법 제47조 제1항이다. 이에 따르면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마치 박정희 유신체제하에서 긴급조치를 발포해 유언비어 유포죄를 만들어냈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법 제47조 제1항의 입법사를 훑어보니, 그것은 전두환 정권 때인 1983년 12월30일에 제정돼, 1984년 9월1일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이 조항으로 처벌된 사례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 조항을 해석해보자. 이 조항에 따라 처벌하고자 하는 죄는 학문상의 용어로 ‘목적범’이다. 과연 미네르바가 그러한 ‘공익을 해할 목적’을 갖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을까?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란 무슨 뜻인가? 방송에 출연해 허위의 사실을 말하는 경우 또는 신문에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는 포함되지 않고, 오로지 인터넷에서 허위 사실을 유포해야만 처벌된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따라서 문맥상 전기통신설비에 의한다는 것은 네티즌이 아니라 전기통신설비를 관리할 수 있는 자가 전기통신설비를 이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조항이 처음 만들어진 전두환 정권 당시에는 요즘 유행하는 ‘네티즌’이나 ‘악플’이란 용어가 없었다는 점을 참고해보라.

    허위의 통신이란 무엇인가? 인터넷에 올린 글의 전체 내용 중 어느 정도가 허위여야 이 죄목에 해당하는가? 막연하다. 이런 식으로 처벌하면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상당수의 네티즌이 이 죄목에 걸린다. 한마디로 검찰이 칼을 잘못 뽑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어쨌든 법원은 미네르바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범죄 사실에 대한 소명이 있고 외환시장과 국가 신인도에 영향을 미친 사안으로, 사안의 성격과 중대성에 비추어 구속수사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 영장 발부 사유다. 구속영장 발부시 통상 사용하는 사유인 ‘도주 또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아니다. 미네르바의 행위가 과연 처벌받아야 할 범죄행위냐에 대한 법리논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법원은 과감하게(?) 영장을 발부했다. 앞으로 1심법원에서 대법원에 이르는 법원의 유무죄 판단과 이 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지켜볼 일이다.

    그럼에도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이 꼭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입의 자유(Freiheit des Mundes)’를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입에서 국정에 관한 사실, 의견, 비판, 대안제시 등이 나오고,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자유롭게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헌법적 순리다.

    나는 최근 어느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권을 가리켜 ‘인권 알레르기 정권’‘민주주의 알레르기 정권’이라고 말했다. ‘인권=민주주의=반정부=좌파’의 등식이 이명박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의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과거 박정희 유신 치하, 그리고 1980년 5월의 학살을 통해 등장한 전두환 정권 치하에서 득세했던 ‘반미=반정부=반국가=용공좌경’ 등식을 떠올리게 한다.

    인권위원회를 반 토막으로

    이명박 정권 1년 동안 인권 학살행위가 끝없이 저질러졌다. 그 하이라이트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손보기다. 인권위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인권위법이 효력을 발생한 2001년 11월25일 김대중 정권하에서였다. 그러나 유엔 총회는 이미 1993년 12월 파리원칙을 채택했다. 이 원칙은 국가인권기구 설립에 관한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기본준칙으로서, “국가인권기구는 다른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적 지위를 보장받기 위하여 그 구성과 권한의 범위를 헌법 또는 법률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부여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유엔 총회에서 파리원칙이 채택된 이후 무려 8년 세월이 지난 뒤 가까스로 인권위가 출범했다. 인권위 태동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입법·사법·행정기관의 인권침해행위를 조사하고 인권에 관한 정책을 수립·공포하며, 인권교육을 수행하는 독립적인 국가기관을 설립한다는 것에 대해 검찰을 비롯한 여러 국가기관이 반대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압력, 시민사회의 거센 요구에 굴복해 결국 국회는 인권위법을 통과시키기에 이르렀다.

    2008년 인권위에 접수된 전체 진정사건 6274건 중 인권침해 사건이 5067건으로(나머지는 차별사건) 약 81%를 차지하고 있고, 검찰·경찰·군과 교정시설 인권침해사건이 3490건으로 전체 인권침해사건 중 약 69%에 달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여전히 인권후진국의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상담·민원·안내처리, 직권·방문조사 등의 건수도 해마다 지속적으로 상당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 인권의식 향상은 그동안 당연하게만 여겨왔던 검찰·경찰·군·교정시설의 인권침해 관행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웠고, 새로운 인권문제, 즉 여성·장애인·비정규직·이주노동자·다문화가정 여성과 그 자녀의 인권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이런 조건에서 인권위 업무량은 대폭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고, 새로운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문성 강화가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그러나 인권위를 대하는 이명박 정권의 태도는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2007년 12월19일 대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가 구성됐고, 이듬해 1월 정부조직 개편안이 발표됐다. 개편안에는 인권위를 대통령직속기구로 전환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당시 개편안은 인권위가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태어났는지, 인권위가 유엔 및 국제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인권위가 헌법이 규정하는 국가권력의 기본권 보장 의무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이나 소양만 갖고 있었더라면 나올 수 없는 구상이었다.

    문제의 개편안은 최근까지 이명박 정권이 인권위를 압박하는 지침처럼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말 행정안전부가 작성한 인권위 개편안의 골자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행안부 개편안은 인권위 인원을 현재의 208명에서 106명으로 약 49% 감축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권위법 제18조가 위원회 조직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개편안은 이 위임조항의 의미와 한계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인권위법의 하위법령인 직제령(개편안)은 인권위의 독립성과 권한 및 기능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권위의 조직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해야 한다. 만약 직제령 개정을 통해 인권위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그 권한과 기능이 약화될 때에는 직제령 자체가 위법한 것이 된다.

    파리원칙에 따르면 국가인권기구의 기본적 책무는 인권정책에 관한 사항(법령정책 권고, 인권상황 및 개선사항, 국제인권기준의 국내이행, 국내외 협력업무 등), 인권침해 관련 조사업무, 인권교육 및 홍보업무 등이다. 그러나 행정안전부의 개편안은 명확한 기준이나 원칙도 없이 인권위 업무 중 인권정책 및 인권교육 업무와 관련된 조직을 업무수행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대폭 축소했다.

    또한 행정안전부는 인권위 조직 축소 사유로 인권위의 인권정책 기능을 최소화해 타 기관과의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인권위 설립 자체가 타 기관과의 건강한 갈등을 통해 인권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을 무시하는 것이다. 인권위와 갈등소지가 있는 국가기관 중 대표적인 것으로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와 검찰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권익위는 위법·부당한 행정처분에 대한 권리구제를 그 관할로 하는 데 반해, 인권위는 공권력 행사 등 국가기관의 업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와 차별행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두 기구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법적 지위에서도 인권위는 입법·사법·행정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이지만, 권익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구로서 독립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또한 검찰의 인권보장 기능은 형사사건과 관련해, 그것도 원칙적으로 범죄가 발생한 이후의 과정에서만 최소의 범위에서 이루어질 뿐이다.

    인권위는 독립성 확보가 생명

    오늘날 규범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독립성과 실효성을 갖추고 있는 인권위가 부재한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하지 않는 나라라는 낙인을 감수해야 한다. 인권위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인권국가의 외관을 갖추는 셈이다. 우리나라 인권위는 현재 세계 120여 개 인권기구 중 독립성과 활동력에서 매우 우수한 국가인권기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아가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의 부의장직과 ICC 승인소위 아태지역 대표까지 맡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미 한국 인권위의 2010년 제5대 ICC 의장 기구 수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위 조직이 대폭 축소되고 그 기능이 약화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권위의 독립성이 훼손된다면, 의장국 수임 실패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의 비난까지 예상된다.

    이명박 정권이 집권 초기 인권위를 대통령 소속기구로 재편하려다 국내외 반발에 부딪혀 실패했지만, 사실상 대통령 소속기구처럼 만들려는 시도가 행정안전부의 조직개편안으로 나타나고 있는 형국이다. 행안부 개편안처럼 인권위 인원을 반토막으로 줄인다면 우리 사회의 인권 상황이 악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인권의 눈으로 본 이명박 정부 1년
    김승환

    건국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고려 대학교 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졸 업(법학박사)

    독일 트리어 대학교 법과대학 객원교수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 원회 위원(비상임)

    전북평화와인권연대 공동대표

    전북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심판담당)

    한국헌법학회 회장

    現 전북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군의문사조직위원회 조직의 축소개편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러한 예측은 가능하다. 군의문사위원회는 전체 인원 중 현재 36명만이 남아 있다. 조사관 60여 명 중 잔존인원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보충될지 모르지만 대부분이 공무원들로 채워질 것이고, 그들이 권력(특히 국방부)과 일정한 긴장관계에 설 수밖에 없는 군의문사 조사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사실상 대통령의 직무상 지휘·감독을 받는 기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행안부가 광주, 대구, 부산 3개 인권위 지역사무소를 모두 폐지하려는 것도 인권위 무력화 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 지역사무소는 인권위 접근성을 강화하고 인권침해 구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됐다. 수년간의 활동 실적이 말해주는 것처럼 지역사회에 미치는 효과도 지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렇다면 줄일 게 아니라 오히려 키워야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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