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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목숨 건 전략싸움 대반전 이제 ‘한국 카드’는 없다!

북-미 20년 핵 억제 게임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목숨 건 전략싸움 대반전 이제 ‘한국 카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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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감히 미국에는 맞설 수 없다고 쳐도,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동맹국들을 핵으로 위협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이들에 대한 핵 공격 위협으로 북한이 미국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해내려고 시도할 때 워싱턴이 이를 막을 방법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그에 대한 답 역시 명확하다. 대표적인 것이 소련의 핵 능력이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던 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행보다.

자살특공대식 핵 억제 개념

이 무렵 소련은 서유럽에 대한 핵 공격 가능성을 들어 미국을 위협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 가능성을 최소화하려고 시도했지만, 미국은 오히려 당시의 일방적 핵 우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대량보복정책을 과시하고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등 공격적인 외교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결과적으로 소련의 시도는 도리어 서유럽에서 미국의 핵 능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었다. 이를 북한에 적용해보자면, 한국과 일본에 대한 북한의 핵 공격 능력이 미국에 대한 억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가정은 근거가 없다.

뒤집어 보자면 지난 20년간 북한이 벌여온 핵 게임의 골자는 바로 이러한 워싱턴의 억제 개념을 뛰어넘고자 하는 것이었다.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 탑재 대륙간탄도탄(ICBM)의 확보라는 목표에 절대적으로 집착해온 그간의 모든 노력이야말로 이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한국과 일본 같은 주변 동맹국들이나 이 지역에 주둔한 미군을 타깃으로 설정하는 정도로는 미국의 행보를 충분히 제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가장 어설픈 미사일로 미국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캘리포니아를 건드리는 게 가장 정밀한 미사일로 주한미군 기지를 타격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안보에 훨씬 유리하다고 믿는 고유의 억제 개념이 작용한 결과물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군사전략상의 ‘억제’는 크게 공격해봐야 별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거부(denial)에 의한 억제’와 공격을 하면 더 큰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두려워하게 만드는 ‘처벌(punishment)에 의한 억제’로 나뉜다. 그러나 북한의 억제 개념은 거의 전적으로 후자에만 경도돼 있고, 실제 북한은 오로지 이 목적을 위해 핵전력 구축에 주력해왔다.



북한의 목적이 유사시 미국의 대북(對北) 공격을 무력화하는 것이었다면 주한·주일미군의 주요 기지나 전시 병력 증원의 통로가 되는 남한 내 주요 항만시설과 공군기지를 핵으로 타격할 수 있는 수준으로도 충분하다. 또한 이미 보유한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의 정밀도를 높이는 작업은 기술적으로 훨씬 쉬울뿐더러 즉각적인 안보적 효과도 얻을 수 있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그러나 평양은 이들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 등을 실전 배치한 2000년대 이후에도 로켓 기술의 사거리 연장에 온 힘을 기울여왔다. 단거리 미사일의 정밀도를 높여 미국이 전개할 한반도 인근의 전력을 효과적으로 막는 데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정밀도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미국 본토를 핵으로 타격하는 능력을 확보하는 일에 매진해온 것이다. 유사시 자국의 대도시 민간인 희생을 우려하는 워싱턴이 쉽게 전쟁을 결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그 최종적인 목표였던 셈이다.

북한의 핵 개발이 플루토늄을 기반으로 먼저 진행됐다는 사실 역시 같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미국과 소련을 제외한 대부분의 2세대 핵 국가들은 기폭장치의 설계와 제작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해 핵 개발에 나선 뒤 일정 수준의 핵 능력이 확보된 후에야 플루토늄탄으로 넘어가는 기술적 경로를 택했다. 핵실험이 없어도 기술적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우라늄탄이 비밀리에 개발하기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라늄탄은 장거리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소형화하기가 쉽지 않다는 결정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본토 타격에 집착하는 평양으로서는 소형화가 용이한 플루토늄탄이 훨씬 매력적인 경로였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북한이 말하는 핵 억제가 자신들의 소멸을 각오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형태라는 사실이다. 보편적 개념과 가장 큰 차이다. 미국과 소련 사이의 억제전략은 물론 프랑스와 영국의 최소억제 개념, 심지어 인도나 파키스탄의 실존적 억제 개념조차 정교한 계산을 통해 상대와 자신의 피해를 정밀하게 계측하는 것을 논리적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내가 당한 피해와 유사하거나 혹은 능가하는 피해를 상대에게 줄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고 과시함으로써 상대의 행동을 제어하고 제약하는 것이 억제의 기본 작동원리인 셈이다.

핵 능력 동결 수준 타협?

북한의 경우 이런 메커니즘이 원초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미국에 줄 수 있는 피해는 어떠한 경우에도 그에 대한 미국의 보복공격이 초래할 수 있는 결과(정권 혹은 국가의 소멸)를 능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의 생존과 안보라는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핵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어떤 식으로든’ 상대에게도 해를 입히겠다, 내가 당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반드시 갚아주겠다는 의지의 과시 자체가 목적이다. 쉽게 말해 상대가 자신에 대해 죽음을 개의치 않을 정도로 ‘미친 국가’라고 믿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억제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 틀 위에서라면 내가 본 피해의 크기와 상대에게 줄 피해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미국과 북한의 억제 개념이 갈라서는 극명한 분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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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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