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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 1946년 한국인 사유재산 ‘몰수’

한국 정부, 30년 뒤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보상

  • 글: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미군정, 1946년 한국인 사유재산 ‘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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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제도 주민 임춘남씨, “올해 중 미국 정부 상대로 첫 손해배상청구소송 제기”
  • ●미 군정청, 법령 제57호 공포해 한국인 소유 일본은행권 강제 예입
  • ●미 군정이 몰수한 재산을 일본이 준 ‘청구권 자금’으로 보상
  • ●보상받지 못한 이들의 예입금은 어디로?
  • ●“57호 관련 피해자 10만명 넘는다”
  • ●재정경제부, “강제 예입 맞지만 정확한 사유 몰라”
미군정, 1946년 한국인 사유재산 ‘몰수’

미 군정법령 57호와 관련, 올해 중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예정인 임춘남씨.

1951년 10월20일 시작돼 13년 8개월을 끌던 지리한 한일회담은 1965년 6월22일 한일협정으로 마침내 막을 내렸다. 올해는 이 협정의 체결로 한일수교가 재개된 지 40주년이자 광복 60주년을 맞는 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지난 1월17일 한일협정 문서가 1차 공개된 이후 이 협정을 둘러싼 재협상 및 개인 청구권 보상 요구 파문이 확산일로에 있다.

이는 회담 당시 일본측이 일제 강점기의 한국인 피해자 실태를 조사해 개별 보상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반면, 한국측은 배상금을 일괄적으로 받아 처리하겠다고 밝히는 등 협상 자체가 철저히 이뤄지지 않아 개인 청구권이 사실상 차단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2월 실무 차원의 ‘한일수교회담 문서공개 등 대책기획단’을, 3월엔 ‘한일수교회담 문서공개 대책 민·관공동위원회’(공동위원장·이해찬 국무총리, 이용훈 전 대법관)를 잇따라 구성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대한 각계 의견 수렴, 개인 청구권 소멸 여부의 법적 검토 등 문서공개 이후 상황에 대한 방안을 논의중이다.

‘인출 불허’ ‘무이자 거치’

이와 같은 한일협정 문서공개 파문과 관련, ‘신동아’는 한국인이 미국 정부에 대해 사유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손해배상청구소송 준비에 돌입한 사실을 최초로 확인했다. 대일 민간 청구권 관련 사안으로 한국인이 미국 정부에 직접 소송을 제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주인공은 임춘남(64·목사·경남 거제시 남부면 다대리)씨. 그가 소송하기로 결심을 굳힌 계기는 광복 직후부터 3년간 남한을 실질적으로 통치한 재(在)조선 미육군사령부 군정청이 1946년 2월21일 공포와 동시에 효력을 발생케 한 군정법령 제57호에서 비롯된다.

총 5개조(條)로 이뤄진 이 법령은 1946년 3월2일부터 7일까지 미 군정청이 지정한 7개 금융기관(조선은행, 조선식산은행, 조흥은행, 조선상업은행, 조선신탁회사, 조선저축은행, 금융조합연합회)에 남조선 내 자연인 및 법인이 소유 또는 점유한 1원권 이상 종류의 일본은행권과 대만은행권을 예입해야 하며, 예입한 뒤엔 어떠한 경우에도 해당 화폐의 수출, 수입, 영수, 지불, 고의적 소유 혹은 점유, 교부 또는 기타 이전 등 모든 거래를 금지토록 했다.

법령 어디에도 예입금을 상환해준다는 내용은 없다. 되레 ‘본 령에 의해 일본·대만 은행권의 예입 당좌는 인출을 불허함. 무이자 거치하며 현재 또는 장래의 대부 또는 부채의 담보로써 양도, 유통 사용치 못함’이라고 못박았다(제3조). 다시 말해 예입을 ‘강제’한 것이다. 더욱이 제4조는 ‘본 령의 조규에 위반한 자는 군정재판소 결정에 따라 처벌한다’는 벌칙까지 규정해 사실상 당시 조선인이 소지하고 있던 일본·대만 은행권을 모조리 ‘몰수’한 셈이라 할 수 있다.

광복 이전 일본에서 사업을 해 상당액의 엔화를 벌어들여 광복과 함께 귀국한 임씨의 부친 임상봉씨와 모친 박갑수씨도 군정법령 제57호에 따라 소지하고 있던 6만5200엔을 경남 진해시(당시에는 읍 단위)의 조흥은행 지점에 예치했다.

문제가 생긴 것은 넉 달 뒤였다. “양친은 예치한 엔화를 늦어도 3개월 안에 조선 돈(한화)으로 바꿔준다는 미 군정청측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가족의 목숨이나 다름없는 거액의 엔화를 예치했다”는 것이 임씨의 증언. 그러나 그 약속은 3개월이 지나도 지켜지지 않았고, 억울해하다 화병마저 얻은 임씨 모친은 치료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채 임씨가 6세 되던 1946년 6월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보상 명목은 ‘대일 청구권 자금’

임씨가 양친이 예치한 엔화를 원화로 돌려받은 때는 30년이 다 된, 박정희 정권 치하인 1975년. 상환받은 돈은 한화 195만6000원(1엔당 30원으로 산정)으로, 상환 명목은 엉뚱하게도 ‘대일 청구권 자금’이었다.

임씨는 자신이 돌려받은 돈의 출처가 대일 청구권 자금이라는 사실조차 뒤늦게 알게 됐다. 그는 의문을 풀기 위해 1997∼98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등 관계기관에 수차례 민원을 낸 끝에 1998년 5월 재정경제부를 통해 회신을 받았다. 곧 이어 상환받은 예입금 명세가 적힌 ‘대일 민간 청구권 보상금 지급 결정대장’ 사본(정부기록보존소가 관리)을 입수해 대장에 기록된 보상 사유가 ‘군정 57호’였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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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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