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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그 후

그들이 면도칼을 휴지에 쌌다 “들키면 삼키고 죽갔습네다”

채널A 다큐 ‘특별취재 탈북’ PD 육성 증언

  • 구술·양승원│채널A 제작본부 PD swyang@donga.com 정리·남윤서│채널A 경영전략실 기자 baron@donga.com

그들이 면도칼을 휴지에 쌌다 “들키면 삼키고 죽갔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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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국경 8차례 넘나들며 탈북자들과 동행
  • ● 갓난아기 업고 칠흑 같은 밀림 속 밤새 뛰는 母性
  • ● 소시지와 콜라 잘 먹던 꽃제비 진혁, 남한 적응 잘 하길
그들이 면도칼을 휴지에 쌌다 “들키면 삼키고 죽갔습네다”

한국 방송 사상 최초로 집단 탈북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낸 채널A ‘특별기획 탈북’주요 장면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어느 날 밤, 나는 탈북 안내인 K씨와 승용차를 타고 압록강을 낀 도로를 달렸다. 불빛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도로 옆으로는 울창한 숲이 이어졌다. 낮에는 순백의 산과 강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 같지만 밤이 되면 탈북자들이 목숨 걸고 강을 건너는 공포의 땅으로 변하는 곳.

입이 자꾸만 바싹 말랐다. 수풀 어딘가에 일곱 살 꽃제비 진혁이(가명)가 몸을 숨기고 있으리라. 진혁이가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압록강을 건너온 지 3시간이 넘었다. 바깥 기온은 영하 25도. 그 어린아이가 혹한 속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당초 계획대로라면 진혁이는 사흘 전에 강을 건너 우리와 만나야 했다. 하지만 저쪽 상황이 여의치 않은지 날짜가 계속 미뤄졌다. 진혁이를 도와줄 북한 측 브로커와 연락을 주고받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진혁이가 강을 건넜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나는 K씨와 부랴부랴 국경으로 향했다.

“야! 빨리 나오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지만 진혁이는 보이지 않았다. 다급해진 K씨가 소리를 질렀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그때 멀리서 자동차 불빛이 보였다.

“차 온다! 숨어!”

K씨와 나는 차 시동을 끄고 풀숲에 몸을 숨겼다. 중국 공안이 “이 밤에 국경에서 뭐하느냐”고 물으면 뭐라 답한단 말인가. 다행히 차는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멀어졌다. 우리는 다시 북한 측 브로커와 연락을 하며 진혁이를 찾았다. 길 위에는 브로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시가 드문드문 있었다.

“저기 있다, 빨리빨리!”

거짓말처럼 어둠 속에서 진혁이가 나타났다. 다른 탈북자의 등에 업힌 채였다. 카메라를 든 손이 떨렸다. 진혁이가 타자마자 K씨는 급히 차를 몰았다.

“괜찮아? 이름이 진혁이 맞아요?”

온몸을 오들오들 떨던 아이는 간신히 “네”라고 답했다. 분명히 일곱 살이라고 들었는데 몸집은 서너 살로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팔다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입고 있던 꼬질꼬질한 옷은 압록강의 겨울을 버티기엔 한참 부족해 보였다. 다운점퍼를 벗어 아이의 몸에 덮었다. 추위와 공포에 시달렸을 아이는 곧 잠에 빠져들었다.

살얼음 낀 강 건넌 일곱 살짜리

진혁이를 만나기 두어 주 전, 나와 강태연 PD는 생생한 탈북 과정을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우리 두 사람은 다큐멘터리 프로를 만들며 잔뼈가 굵었다. 감시의 눈을 피해 탈북 과정을 촬영하는데 커다란 장비를 가져갈 수는 없다. 작은 핸디캠과 그보다 더 작은 몰래카메라를 챙겼다. 그리고 처음으로 진혁이의 사진을 봤다. 순간 PD로서의 감이랄까, 어떤 강렬한 느낌이 전해졌다. 만나본 적도 없는데 ‘이 아이를 반드시 한국으로 데려오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생겼다.

진혁이는 양강도 혜산시에서 유명한 꽃제비였다. 진혁이 어머니는 중국으로 도망쳤고 아버지는 진혁이가 보는 앞에서 자살했다고 한다. 꽃제비들은 보통 무리를 지어 다니지만 진혁이는 나이가 너무 어려 무리에 끼지 못했다. 낮에는 시장과 쓰레기장을 돌아다니며 땅에 떨어진 쌀알이나 과일 껍질을 주워 먹고 밤에는 남의 집 담장 밑에서 잤다. 기온이 영하 20도 밑으로 떨어지는 혜산의 겨울을 버티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좀처럼 하기 어려운 경험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흥분됐지만 걱정이 없진 않았다. 중국으로 떠나면서 우리 둘은 “현지 군인이나 경찰에 잡히면 어쩌느냐”는 얘기를 나눴다. 고민해봐야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잡히면 고생은 하겠지만, 그래도 죽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현지에 도착해보니 13명의 성인 탈북자 그룹은 이미 강을 건넌 상태였다. 강 PD는 이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 중국 모처의 안전가옥(안가)으로 향했다. 나는 압록강 근처에 남아 열네 살 소녀 윤정이(가명)와 일곱 살 진혁이가 넘어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윤정이는 예정대로 넘어왔지만 진혁이가 늦어지면서 압록강 인근에서 며칠을 더 기다려야 했다.

강 PD는 압록강에서 이틀 거리쯤 떨어진 안가에서 13명의 성인 탈북자와 함께 숨죽인 채 지내고 있었다. 근처 주민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창문은 커튼으로 가렸고 불도 거의 켜지 않았다. 집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나갈 수 없었고 목소리는 최대한 낮춰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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