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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있는 풍경

화려했던 청춘은 갔다 그 즈음 우린 무얼 했던가

김광석 ‘서른 즈음에’

  • 글·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사진작가·신구대 교수 photocivic@naver.com

화려했던 청춘은 갔다 그 즈음 우린 무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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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른을 많이 넘지 않은 이는 노랫말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한다.
  • 하지만 ‘서른 즈음’의 사랑에 내동댕이쳐진 사람들은 안다.
  • 서른을 훌쩍 넘긴 사람들은 그 슬프고도 시린 노랫말에 잠을 뒤척인다.
  • 서른 즈음이 이토록 그립고 사무치는 건 황폐한 현실 때문일까.
화려했던 청춘은 갔다 그 즈음 우린 무얼 했던가

그림 속 김광석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행인.

민주화란 말이 낯설었던 1990년대 초, 나는 신촌의 한 여자대학 강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최루탄 냄새가 여전히 매캐하고, 그로 인해 강요된 눈물이 멈추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날 결혼식의 가장 큰 이변은 축가였다. 초대된 소프라노는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의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불렀다. 칼날 같은 목소리로 부른 노래가 “창살 앞에 네가 묶일 때 살아서 만나리라”로 끝나는 순간, 하객들은 숙연해졌다. 축가를 부른 소프라노는 아마도 ‘푸르른 솔’처럼 꿋꿋하게 결혼생활을 잘 하라는 의미로 그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적인 상황과 맞물리면서 결혼식 분위기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렸다.

나는 그 노래가 노래패 노찾사의 집단 창작곡이란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누가 만들고 불렀는지 알지 못했다. 이후 시간이 흐르고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노찾사의 노래들은 내 기억 속에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갔다.

절절이 녹아드는 휴머니즘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나는 왁자한 술자리에서 우연히 노찾사의 노래들을 다시 듣게 됐다. 그리고 ‘서른 즈음에’를 듣는 순간 불현듯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궁금했다. 이처럼 기막힌 노랫말의 노래를 이다지도 유장하고 간절하게 부른 가수가 누군지를. 그는 바로 노찾사의 김광석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김광석이라는 요절 가수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지금의 어머니 세대에게 매력적인 저음을 자랑하던 배호가 있었듯, 7080 또는 386 세대에게 광주 출신의 포크 가수 김정호가 혜성같이 나타났다 사라진 것과 같은 이치였다.

하지만 김광석의 등장과 사라짐은 배호나 김정호의 그것과는 분명 차별된다. 인터넷의 발달로 그의 죽음은 그의 팬들에게 동시대적인 리얼리티를 주고 있고, 엄청난 슬픔과 상실감을 안긴다. 그런 김광석이 이제 서서히 부활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유튜브로, 수많은 블로그로, 그리고 현실공간에서는 대구 시내 김광석거리와 서울 대학로의 김광석 부조물에서 그는 살아 숨 쉰다.

김광석은 자타가 공인하는 훌륭한 가객이지만 그런 그도 딱 한 가지 단점이 있다고 팬들은 말한다. 훌륭하지 않은 곡이 없다는 게 단점이라는 것이다. 그의 노래는 서정적이고 소박하고 인간미가 넘친다. 하지만 그는 가성이나 기교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노래에는 시대정신에 뿌리를 둔 휴머니즘이 절절이 녹아든다.

화려했던 청춘은 갔다 그 즈음 우린 무얼 했던가

벤치에 앉은 주름진 할머니의 서른 즈음은 어땠을까.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알려진 그는 1964년 1월 대구 신천변에 위치한 방천시장의 시장골목에서 태어나 시장통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 뒤 서울로 올라와 대광고를 거쳐 명지대에 입학하며 노찾사 창단 멤버로, 또 ‘동물원’의 멤버로, 그리고 김민기와 음반 작업을 하면서 ‘가객’의 길에 들어섰다.

가수보다는 가객이란 말이 그에게는 더 어울린다. 164cm의 작은 키, 50kg을 넘지 않는 소박한 몸집에다 건강 또한 좋지 않았던 탓에 그는 ‘반토막’이나 ‘파김치’ 같은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나는 그의 별명 파김치에서 문득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 담가본 사람이나 먹어본 사람은 안다. 빨간 양념에 버무려진 때깔 나는 파김치가 얼마나 빨리 싱싱함을 잃고 제풀에 지쳐 한순간 잦아드는지를. 가수 김광석은 강하지 않은 자아로 노래를 위해 살다가 상황이 주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파김치가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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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사진작가·신구대 교수 photociv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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