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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미의 달콤쌉쌀한 스위스

탄탄한 노인복지 꽃보다 부부!

은퇴는 ‘새 황금기’의 시작

  • 신성미 | 在스위스 교민 ssm0321@hanmail.net

탄탄한 노인복지 꽃보다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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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간 연금 불입

탄탄한 노인복지  꽃보다 부부!

요들 축제에서 노년층 요들 동호회 회원들이 요들을 부른다. [신성미]

얼마 전 햇살 가득한 여름날 오후 나는 카를, 리니와 함께 보덴 호숫가의 딸기밭을 구경하러 갔다. 딸기를 무척 좋아하지만 딸기밭 근처에 가본 적도 없는 나를 위해 두 분이 자청해서 가이드에 나선 것이다.

광활하게 펼쳐진 딸기밭을 구경한 뒤 딸기를 한아름 사고 카페에 들러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면서도 ‘시댁 어르신’들을 대한다는 부담감이나 어려운 느낌은커녕 자상하고 행복한 노부부와 함께한다는 즐거움이 컸다. 두 분이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열린 마음으로 젊은이의 얘기를 잘 들어주시기에 그런 것 같다.

노인이 행복한 나라 1위로 스위스가 꼽혔다는 기사를 읽었다고 했더니 리니가 밝게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럼! 우리를 보려무나. 이렇게 행복하잖니!” 잠깐의 머뭇거림도 없이 자신의 행복을 인정하고 뿌듯해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서구의 여느 나라들처럼 스위스에도 자녀가 늙은 부모를 부양하거나 부모의 노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은 전혀 없다. 부모에게 다달이, 혹은 명절마다 용돈을 드리는 문화도 없다. 부모도 자식에게 그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은퇴한 부모가 자식과 한집에서 사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며, 늙어서 거동이 불편해지거나 치매에 걸리면 양로원이나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내는 게 일반적이다. 한국적 사고로는 차가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스위스에선 부모와 자식이 서로 금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기에 노년층의 품위와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스위스 노인들이 자식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는 건 탄탄한 연금제도 때문이다. 우리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국가연금(AHV), 퇴직연금 격인 기업연금(Pensionskasse), 개인이 추가로 드는 개인연금이 스위스 연금 체계의 세 기둥이다.





돈 걱정 없는 할아버지들

스위스인의 70% 정도가 대학 대신 직업학교에 진학해 실용 기술을 배우고 일찍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이르면 스무 살부터 연금을 붓기 시작한다. 스위스의 공식 은퇴 연령은 여성 64세, 남성 65세인데 20세부터 은퇴할 때까지 연금을 불입했다면 남성의 경우 45년간 연금을 납부한 것이니 비교적 넉넉한 연금을 받을 수 있다. 대학을 나왔든 직업학교에서 기술을 배웠든 자기 전공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괜찮은 보수를 받으며 평생 일할 수 있고 나라의 실업률이 낮으니 이 시스템이 유지된다.

물론 스위스에서도 젊은 인구는 점점 줄고 노년층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국가연금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그럼에도 한국과 비교하면 국가경제와 복지가 뛰어난 수준이다.

대기업에 다니면서도 언제 퇴직 당할지 몰라 불안해하거나 노후를 대비해 치킨집, 편의점 같은 자영업을 구상하는 한국의 현실은 스위스에선 남의 나라 이야기다. ‘은퇴 강국’으로 불리는 스위스에서 은퇴란 걱정거리라기보다 인생의 새로운 황금기로 여겨진다.

나의 시아버지 마르쿠스는 올해 만 62세로, 열여덟 살 때부터 보험회사에서 일을 시작해 한 회사에서만 44년째 일하고 계신다. 스위스에는 탄력근무제가 보편화해 시아버님은 올해부터 화·수·목요일에만 일하고 월·금요일과 주말에는 쉬신다. 이렇게 자신이 원하면 은퇴 전에 단계적으로 근무시간을 줄여나갈 수 있다. 내년에는 완전히 은퇴할 계획이다.

은퇴를 앞둔 시아버님에게서 금전적 걱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설레는 마음으로 은퇴를 기다리신다. 내 남편을 포함한 네 아들은 경제적으로 독립한 지 오래이니 자식 챙길 걱정은 없다. 한국과 문화가 달라 아버지로서 자식들 결혼비용이나 주택자금을 보태줘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시아버님은 10여 년 전 이혼하고 지금은 인생의 동반자인 프레니 아주머니와 함께 사시는데, 은퇴 후 프레니 아주머니와 등산을 다니고 세계 각지를 자유롭게 여행하실 계획이다.

시아버님은 매년 여름이면 이미 은퇴한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의 친구 세 분과 함께 이탈리아 움브리아 주에서 열흘쯤 휴가를 보내신다. 그곳에 시아버님 친구의 별장이 있기 때문이다. 일명 ‘남자들의 휴가’라고 이름 붙인 이 연례 휴가에서 네 할아버지는 이탈리아의 따뜻한 햇살 아래 수영을 하고, 책을 읽고, 야스(스위스식 카드놀이)를 즐기고, 움브리아 지방의 와인을 마시고, 직접 요리도 하며 모처럼 남자들만의 시간을 만끽한다. 시아버님은 이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모아 직접 앨범을 만드셨는데, 네 남자의 휴가 사진들을 보노라면 ‘꽃보다 할배’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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