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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의 인간탐구

권노갑의 숙명적 충성주의 정일성의 치열한 장인정신

  • 정혜신 < 정신과 클리닉 ‘마음과 마음’ 원장 > okopenmind@netsgo.com

권노갑의 숙명적 충성주의 정일성의 치열한 장인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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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널시야’는 다양한 시각을 차단하기 때문에 ‘자기합리화’를 재촉하여 모든 것을 자기 필터로 ‘끌어당겨’ 바라보게 한다. 민주당 권노갑 전최고위원과 정일성 촬영감독은 ‘터널시야’의 빛과 그림자를 잘 보여준다.
정신과에서 심리치료의 한 방법으로 사용하는 사이코 드라마에서는 ‘역할 바꾸기(role reverse)’라는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 부모와의 갈등이 심각한 청소년이 드라마 상에서 자신(청소년)에게 하소연하거나 호통치는 부모의 역할을 맡는 식이다. 한 심리학자는 금연학교에서 ‘역할 바꾸기’ 기법의 효과를 실험했다. 흡연자에게 흡연으로 인한 폐암 발병 사실을 통보하는 의사역할을 하게 한다. 실험에 의하면 금연학교에서 이런 역할극을 경험한 흡연자들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서 금연율이 훨씬 높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역할극을 경험한 흡연자는 한동안 담배를 피울 때마다 자신이 맡았던 의사의 역할이 떠올라 ‘담배를 끊어야 할텐데’ 하는 심리적 ‘태도’가 생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스스로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이 생긴다. 자신의 ‘태도’와 ‘행동’ 사이의 불일치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태도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긴장과 불안을 느끼면서 심리적인 부조화 상태가 되는데 그게 바로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현상이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긴장과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해 태도나 행동 중 하나를 바꿔 한 방향으로 일치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흡연과 폐암의 상관관계를 입증하는 자료들을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페스틴저(Leon Festinger)의 연구결과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서로 충돌을 일으키는 두 정보가 입력될 때 우리의 뇌정보시스템에는 긴장상태가 발생하고, 에너지 소모가 증가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뇌는 두 정보 사이의 부조화를 어느 쪽으로든 합치시켜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쪽으로 작동한다. 그건 뇌의 생리적 기능이기도 하다.

‘자기합리화’란 그런 과정을 통해 생겨난다. 그렇다면 ‘자기합리화’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는 가설도 성립된다. 특히 남자들인 경우에는 더 그렇다. 왜 그런가.

영국의 한 연구결과는 그 이유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길을 건너다가 사고를 당한 아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가 훨씬 많았다고 한다. 남자는 선천적으로 시야(視野)의 각이 여자보다 좁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의 시야를 ‘터널시야’라고 부르기도 한다. 앞만 보고 달리도록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의 질주를 연상하면 된다.

남성의 ‘터널시야’

‘터널시야’는 다양한 시각을 차단하기 때문에 ‘자기합리화’를 재촉하여 모든 것을 자기 필터로 ‘끌어당겨’ 바라보게 한다. 그런 현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민주당 권노갑 전최고위원과 정일성 촬영감독은 ‘터널시야’의 빛과 그림자를 비교적 잘 보여주는 사람들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정감독이 1929년생이고 권 전최고위원이 1930년생이니까 두 사람은 거의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셈이다. 그런데 만만치 않은 사회적 성취를 이룬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필터는 조금 다르다. 권노갑 전최고위원이 DJ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세상을 재해석한다면 정일성 촬영감독은 자신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세상을 재해석한다.

그런 자기만의 필터를 통해 정감독은 ‘만다라’ ‘태백산맥’ ‘서편제’ ‘춘향뎐’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영화를 만들어 대종상을 7번이나 수상한 한국영화 최고의 촬영감독으로 자리잡았으며, 권 전최고위원은 본인이 인정하든 안하든 국민의 정부 들어 당대 최고의 ‘막후 실세’로 불리운다.

일흔이 넘었지만 아직도 현장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두 사람의 삶은, ‘자기합리화’라는 삶의 코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 것일까.

먼저 민주당 권노갑 전최고위원에 대해서 살펴보자.

김대중 정부에서 ‘권노갑’이라는 이름은 한 개인을 일컫는 고유명사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다. 권노갑은 흔히 ‘DJ의 움직이는 심경 지도’, ‘DJ 본인과 똑같은 무게의 대리인’, ‘DJ의 분신’, 부통령이라는 뜻의 ‘권부(權副)’등으로 불릴 만큼 최고권력자 DJ와의 관계가 유별난 사람이다.

권노갑이 DJ를 처음 만난 건 두 사람이 목포공립상업학교 재학중이었던 1943년이니 지금으로부터 58년 전이다. 정치적 선후배이자 사제간의 관계를 맺게된 건 DJ가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 출마한 1961년이니 정확하게 40년 전이다. 함께 한 세월의 무게만으로도 두 사람의 관계를 추측하는 주위 사람을 압도할 만하다. 한 기자는 부부간에도 가끔씩 다투고 화해하는 법인데, 40여 년을 함께 하면서 이들이 다투거나 사이가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한번도 듣지 못했으니 두 사람의 관계는 연구대상이 될 만하다고 말한다. 필자가 보기에 그 연구의 결과를 빠르고 정확하게 얻기 위해서는 DJ보다 권노갑 쪽에 훨씬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DJ만큼 똑똑하고 존경받는 사람은 또 있을 수 있지만 권노갑처럼 ‘DNA적’으로 DJ를 추종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평생동지 김대중

권노갑은 자신을 ‘김대중 신도’라고 말한다. 나이는 다섯 살 차이밖에 안 나지만 DJ는 자신의 인생에서 또 하나의 아버지이자, 형님이자, 스승이었고, 자신은 그런 DJ란 인물의 그늘 밑에서 그를 닮으려 노력하면서 성장해 왔다는 것이다. 주님이 DJ에게 베푸셨다는 은총을 자신도 받고 싶은 생각에 교리를 배우고, 숨도 DJ가 쉬라고 하니까 쉬며, DJ가 찾으면 비행기에서도 뛰어내릴 사람, 그게 바로 권노갑이다. 비아냥거리자고 확인도 안된(?) 뜬소문을 나열한 게 아니고 권노갑이 주위사람들로부터 직접 들었다는 자신에 대한 평가다. 전설처럼 회자되는 권노갑의 ‘묘비명 신조’는 그런 인식과 평가의 집대성이다.

“내가 죽거든 다른 것은 필요없다. 김대중 선생 비서실장이라는 이 한마디만 비석에 써달라.”

권노갑은 자신이 정치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어느 정도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DJ를 일편단심으로 모셨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DJ나 권노갑의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그들의 권위주의적 관계나 맹목적 추종을 험담할 좋은 소재일 수도 있지만, 권노갑이 그렇게 아무 생각이 없는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다. 그런 반론조차 예상못할 만큼 어두컴컴한 ‘터널시야’의 소유자는 아니라는 말이다. 권노갑은 “세간에서는 내 생각과 태도에 대해 ‘종속적 인생’ 또는 ‘맹목적 충성’이라고 비판하지만, 나를 포함한 소위 동교동 가신들도 현대적인 교육을 받았고, 누구 못지않게 냉철한 이성을 가졌으며, 권위주의를 싫어하고 못 견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특정인에게 자신의 삶 전체를 담보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표현처럼 DJ에 대한 충성은 “옳은 것에의 복종”이며 “실증적 진실에 대한 복종”이라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해석이긴 하지만 지난 40년 동안 권노갑이 보여준 초지일관한 충성심과 그림자 보좌는 진지하게 따져볼 만한 가치가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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