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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아름다운 퇴임’ 김영란 전 대법관

“소수자 억울함 풀어주고, 슬픈 사람들 눈물 더 많이 닦아주고 싶었는데…”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아름다운 퇴임’ 김영란 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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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저보고 고현정 같대요”
  • - 억지로 본 사법시험 합격기
  • - 판사이자 주부로 분주하던 젊은 시절
  • - 친절한 영란씨, 소탈한 영란씨, 현명한 영란씨
  • - “한국적 환경에서 정의의 의미 정립하겠다”
‘아름다운 퇴임’ 김영란 전 대법관
“승패를 떠나 당사자가 수긍할 수 있는 재판이 좋은 재판이다.”

“법의 혜택을 소수자에게까지 넓히는 게 법치주의다.”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대법관 경험을 살려 사회에 기여할 방법을 찾아보겠다.”

지난 8월 퇴임한 김영란(54) 전 대법관이 한 이야기들이다. 그는 재임 중 여성의 종중원(宗中員) 자격을 인정하고, 종교재단이 설립한 학교가 학생에게 종교행사 참여를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으며, 사형제에 반대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도입에 찬성했다. 퇴임 후에는 대부분의 대법관이 변호사로 개업하는 관례를 깨고 변호사 등록조차 하지 않은 채 ‘야인’으로 돌아갔다. 고위층의 비리와 부도덕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즈음,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을 울리는 이유다.

“여러 매체에서 한꺼번에 인터뷰 요청이 와서 좀 놀랐어요. 원래 신문은 한 곳에 기사가 나오면 더는 다루지 않는 게 관례 아닌가요. 아무래도 이상해서 인터뷰 하자는 기자에게 물어보니 ‘대법관님이 고현정이라서 그래요’ 하더군요. 제 이름이 들어가면 기사 조회수가 높아진다는 거예요. 저보고 고현정이라는데 어떻게 거절해요. ‘합시다’ 했지요.”

환하게 웃으며 얘기하더니 곧 “농담인 거 아시죠?” 덧붙인다. 2004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됐을 때도 그랬다. 당시 김 전 대법관은 막내 대법관과 사법연수원 기수로 9년이나 차이가 나는 4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성별과 기수를 깬 파격 인사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역시 그의 이름만 붙으면 기사 클릭 수가 높아졌을 터, 수많은 기자가 그를 찾았다. 기자도 그 무렵 김 전 대법관을 처음 만났다. ‘사상 최초’라는 무게와 높은 관심 때문인지 조금은 긴장한 모습이었던 게 기억난다. “대법관 생활을 대과(大過) 없이 마무리하고 퇴임하는 게 목표”라며 조심스러워했다. 6년 후 다시 만난 자리에서 우스개를 던지다니, 그때보다 조금은 여유로워진 게 분명하다.

억만년 전부터 이렇게 살아온 듯

▼ 예전에 뵈었을 때보다 훨씬 편안해 보이세요.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신문 보고 책 좀 읽다가 아침밥 차려서 식구들이랑 같이 먹고, 다 나가고 나면 10시부터 여기 아파트 안에 있는 헬스센터에 가요. 한 시간 요가하고 씻고 책 좀 보다 점심 먹고, 또 책 좀 보다가 약속 있으면 잠깐 나가고…. 얼마 전 전수안 대법관님이 어떻게 지내느냐고 문자를 보내셨길래 ‘억만년 전부터 이렇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라고 답장했어요. 기록 보느라 한창 바쁘실 텐데, 약이 좀 오르셨을 거예요.”

하하, 소리 내 웃는 품이 경쾌하다. 김 전 대법관은 경기도 화성에 산다. 나지막한 산과 논에 둘러싸인 아파트 꼭대기 층이다. 주위 환경으로 보나 집 크기로 보나 고급 주택과는 거리가 먼데, 그는 “집이 정말 좋지 않으냐”고 여러 번 자랑했다. 2008년, 이 단지에 사는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자연환경에 반해 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하늘이 맑고 공기가 좋은 건 분명해 보였다. 그는 주위에 아파트가 별로 없어 집 안에서 일출과 낙조를 모두 볼 수 있고 근처에 나지막한 산이 있어 2~3시간 코스로 산책할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더불어 난생 처음 그만을 위한 공간이 생기는 것도 설레었다. 현관을 열면 바로 보이는 문간방이 김 전 대법관의 서재. 라면 상자를 덧대 공간을 넓힌 책상과 네 짝의 목조 책장이 방 안을 채우고 있다. 활짝 열어놓은 창문으로 초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에서 김 전 대법관과 마주 앉았다. 책상 위에는 방금 전까지 읽고 있었던 듯 마종기 시집이 펼쳐진 채 놓여 있었다.

“살면서 이런 공간을 가진 게 처음이에요. 혼자 책 읽고 글 쓸 수 있는 자리가 생긴 게 참 좋아서 요새는 별일 없으면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아요. 밥 차릴 때만 빼고 종일 이 안에 틀어박혀 있지요.”

그러고 보니 2004년 김 전 대법관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부엌 식탁에서 판결문을 쓴다”고 했었다. “주부가 식당에 있어야 아이들이 뭐 해달라고 할 때 금방금방 해줄 수 있잖아요. 저는 식탁이 편하더라고요” 했다. 대법관이 된 뒤에도 그는 판사면서 동시에 주부였다. 지난 6년 사이 아이들은 다 자랐고, 고된 업무는 끝났다. 김 전 대법관은 비로소 찾아온 생애 첫 자유를 만끽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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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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