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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내겐 표창장이 재산 봉사는 피로회복제”

강도 잡는 택시기사 이필준의 ‘남 먼저’ 인생

  • 박은경 |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내겐 표창장이 재산 봉사는 피로회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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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년째 ‘출근발이’ 포기하고 교통정리
  • ● 교통통신원, 자율방범대원, 명예소방관…
  • ● 절도범 등 13명 검거…표창장만 30개
  • ● 식칼 든 강도와 빗길 추격전
“내겐 표창장이 재산 봉사는 피로회복제”
지난해 12월 29일, 전날보다 수은주가 뚝 떨어질 거라는 예보에 단단히 무장하고 집을 나섰다. 신대방삼거리 전철역에서 내린 시각이 오전 7시50분. 인파를 뚫고 출구 계단을 올라가는데 우렁찬 호루라기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지상으로 올라와 사방으로 뻗은 도로 위를 살폈지만 ‘호루라기 아저씨’ 모습은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내버스와 출근 차량들이 뒤엉킨 도로 중앙에 파묻혀 사방팔방 ‘번개처럼’ 움직이다보니 170㎝가 채 되지 않는 ‘단구(短軀)’를 포착하기 쉽지 않았던 것. 검정 바지와 회색 점퍼 차림에 번쩍이는 검정 부츠를 신고, 등에 ‘모범’이라 적힌 연두색 야광조끼를 받쳐 입은 그는 하얀 면장갑을 낀 손으로 쉴 새 없이 차량을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도로 한복판에 있는 그에게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러시아워인 만큼 방해가 될까 싶어 잠시 동안 멀찍이서 그를 지켜봤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자 출근 인파가 한꺼번에 도로로 내려섰다. 그때 갑자기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자전거는 횡단보도에서 내려 끌고 가셔야 해요. 사고 나면 보상도 못 받아요!”

복잡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자전거를 타고 길을 건너는 젊은 남자를 그가 귀신같이 포착하고 소리친 것이다. 곧바로 그가 향한 곳은 정지선이 지워져 좌회전 ‘깜빡이’를 켠 채 어중간하게 도로 위에 멈춰 선 차였다. 그 운전자에게는 차를 앞으로 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20년째 출근길 교통정리

30분쯤 지났을까. 대로변에 있는 건물에서 한 남자가 종이컵을 들고 나와 그에게 건넸다. 바쁜 수신호 중에도 그가 깍듯이 경례를 붙이는 차량이 있었다. 경찰 순찰차와 영업용 택시였다. 한 시간 남짓 지켜보는 동안 대형 버스와 자동차, 오토바이가 쉴 새 없이 옆을 아슬아슬 스쳐 지났지만 그의 자세는 흐트러짐 없이 꼿꼿했다.

오전 9시 5분경, 마침내 교통정리를 마치고 인도로 올라선 그와 만났다. 어렵사리 얼굴을 마주한 주인공은 20여 년째 영업용 택시를 운전하는 ‘모범운전자’ 이필준(55) 씨였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조금 늦게 나왔다”는 그는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주머니에서 문구용 칼을 꺼내 들고는 인도에 세워진 철제난간 위로 올라가 현수막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선거 때는 물론이고 하루에도 수차례 새로운 불법 현수막이 내걸린다. 구청에서 일손이 모자라 제때 단속이 안 되니 누구라도 나서서 없애야 거리가 깨끗해지지 않겠나.”

불법 현수막 철거는 교통정리 봉사와 함께 20년째 그의 매일 아침 일상이다. 택시기사에게는 하루 중 피크출근시간대에 영업을 포기하고 말이다. ‘출근발이(손님이 많아 수입이 좋은 출근시간대에 일하는 것을 일컫는 택시기사들의 언어)’는 잊은 지 오래다. 현수막 상습 부착 지점이 혼잡한 대로변이다보니 위험한 상황과 맞닥뜨릴 때도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현수막을 철거하고 사다리를 내려오는데 장승배기 방향에서 달려오던 차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우회전하는 바람에 인도에 바짝 붙어서 돌았다. 그 순간 사다리와 나를 동시에 치면서 사고를 냈다. 통증이 심해 바로 병원에 갔더니 오른쪽 어깨 근육이 일부 파열된 ‘염좌’라고 했다.”

그는 생업을 접고 10일간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 후에도 20일가량 통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현수막 철거 후 그가 들른 곳은 대로변 건물 3층의 ㈜세원이엔피디였다. 교통정리하는 그에게 종이컵을 건넨 남자를 궁금해하자 그가 안내한 곳이었다. 이 회사 이왕종 사장은 “이 기사님이 추운데 교통정리하며 고생하니까 우리 직원이 커피를 갖다준 것”이라며 웃었다.

“신대방삼거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사무실이 있다보니 10년 넘게 매일 아침 교통정리를 하는 이 기사님을 지켜봐왔다. 처음엔 ‘돈 생기는 일도 아닌데 언제까지 할까’ 싶었는데 한결같이 수고하시더라. ‘저런 분이 많이 나타나면 이 사회가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는 받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기분 좋은 것 아닌가. 그런 진정에서 우러나는 봉사를 하는 게 마음에 와 닿아서 나와 직원들이 추운 날이면 커피를 타다드린다. 외투도 없이 얇은 옷을 입고 두 시간 동안 추위에 떨면서 교통정리를 하는데 커피 한 잔이 뭐 그리 도움이 되겠나.”

충북 옥천이 고향인 이 사장은 9년째 매달 고향의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아이들 20여 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한다. 옆에서 잠자코 이 사장의 말을 듣고 있던 이씨는 “커피 한 잔이 내겐 너무 감사하다. 종종 창문 열고 고생한다고 손 흔들어주고 인사해주는 게 내게는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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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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