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밀착취재

아동 성폭행 피해가족들의 그 후

남자만 보면 숨는 민지, 이름 바꿔달라고 매달리는 윤아

  • 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아동 성폭행 피해가족들의 그 후

2/5
“2월 들어 밤에 자다 깨서 ‘귀신을 봤다’고 울거나 이불에 오줌을 싸는 일이 많아졌어요. 그러더니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것 같다’며 또 이사를 가자고 졸랐어요. 아마도 3월에 다시 학교에 갈 게 두려웠나 봅니다. 그래서 급하게 이곳으로 이사했습니다.”

경기도의 한 소도시로 이사 온 윤아는 또래 아이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잠도 엄마와 둘이서만 자야 하고, 엄마가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한다. 친구도 거의 사귀지 않는다. 방과 후엔 집에 돌아와 책을 읽고 컴퓨터 게임을 하다 잠드는 게 생활의 전부다. 오빠가 어쩌다 예전 이름으로 부르면 “난 ○○가 아니야”라고 소리를 지르며 덤벼든다. 다른 사람이 보고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빠에게 주먹질을 해대기도 한다. 아빠는 오죽 충격이 컸으면 그럴까 싶어 죄다 받아준다.

“지방으로 이사 오고 나니 근처에 전문의가 없어 정신과 치료도 그만뒀습니다. 이러다 사춘기가 되고, 성인이 되어서 자기 몸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까봐, 그래서 쉽사리 가출을 하거나 원조교제에 빠져들까봐 걱정입니다. 어떻게 키워야 할지 정말 막막해요.”

위축, 퇴행, 우울증, 성의식 장애…

2년 전 발생한 조카딸의 성폭행 사건 재판을 수습하고 있는 김모(43)씨는 “조카와 여동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고 털어놨다. 여동생 모녀는 지금도 불쑥불쑥 불안감과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김씨의 조카 민지(가명·6)는 2년 전 부모가 이혼절차를 밟느라 큰아버지 집에 맡겨졌다가 큰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민지는 아버지는 ‘아저씨’라고, 큰아버지는 ‘나쁜 놈’이라고 부른다. 길을 걷다가도 저만치에 건장한 남자가 보이면 얼른 외할머니 뒤로 숨는다.

민지 엄마는 한겨울에도 창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치밀어 오르는 화기를 식힐 수 없어 잠을 자지 못한다. 얼마 전에는 1년 남짓 사용해온 전화번호를 바꿨다. “이상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는 게 이유였다.

“할머니와 TV를 보는데 드라마에서 슬픈 장면이 나와 할머니가 눈시울을 적시니까 민지가 그랬대요. ‘할머니, 민지도 불쌍한데…’라고. 할머니가 ‘왜 민지가 불쌍해?’ 하고 물으니 ‘큰아빠가 찌찌 찢어서…’라고 해요. 그런 아일 지켜보는 제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2000년 5월 제주대 의대 곽영숙 교수(소아정신과)가 50명의 성폭행 피해 자를 연구한 뒤 발표한 논문(‘성학대를 받은 소아청소년의 정신의학적 후유증에 관한 연구’)은 성폭행 후유증을 잘 보여준다.

곽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가장 두드러진 증세는 우울증이며, 특히 어린이 피해자들에게선 야뇨증과 격리 불안, 퇴행, 학교 거부증 등이 나타났다. 또한 어린이들은 1년이 지났을 때 오히려 우울증이 더 심해지고 성 행동에도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는 경향이 있었다. 어릴 때 성폭행을 경험하고 청소년이나 성인이 됐을 경우 충동 조절의 어려움, 죄책감, 난교, 가출 등의 문제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폭행을 경험한 아이에게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문제행동은 위축감이다. 전문의들은 성폭행 피해 아동이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학업 수행에도 장애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성폭행을 겪은 나이가 어릴수록 그 피해는 크다. 곽교수는 “성학대를 받은 나이가 어릴수록 성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 성폭행에 따른 정신적 상태에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사춘기의 신체 변화 등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위험이 크다”고 진단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의붓아버지로부터 약 두 달 동안 성추행을 당한 한 어린이는 실제로 성의식 장애를 보였다. 이 아이는 상담과정에서 “처음에는 새아빠가 욕을 하면서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내쫓는다’고 해서 무섭고 싫었다. 그렇지만 조금 지나니까 괜찮았다. 새아빠를 보거나 목소리를 들으면 함께 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 아이는 부모와 떨어져 쉼터에서 생활하는 동안 상담원과 보모를 자기 뜻대로 이용하려 하고, 하자는 대로 해주지 않는 상담원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팬티 장난’을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울음을 터뜨리며 위축됐고 밤에는 불면과 악몽에 시달렸다.

2/5
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목록 닫기

아동 성폭행 피해가족들의 그 후

댓글 창 닫기

2019/08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