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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디로부터 와, 어디로 가는가

인간의 근원, 학문의 근본

  • 글: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

마음은 어디로부터 와,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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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디로부터 와, 어디로 가는가

‘마음을 가진 로봇’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 ‘A.I.’

이원론이란 정신과 물질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도대체 실체이원론이란 또 무엇인가? 이는 ‘실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만 이해하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 눈앞에 장미가 한 송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우리는 앞에 일정한 한 사물이 있고 이 사물은 여러가지 성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 있는 저 사물은 나무가 아니라 꽃이며, 진달래가 아니라 장미이고, 노란색이 아니라 붉은색이며, 길이가 1미터가 아니라 30센티미터 정도다.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은 하나의 대상과 그에 속한 여러 성질들(‘꽃잎’ ‘장미임’‘붉음’ ‘30센티미터 정도의 길이임’ 등)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대상은 그 자체가 성질이 아니며 성질들을 담는 그릇과 같은 역할을 할 뿐이다. 이러한 성질들을 담는 그릇을 철학자들은 기체(substratum) 또는 실체(substance)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이제 우리는 정신과 물질에 관한 실체이원론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다. 장미꽃의 예처럼 물리적 성질들을 담는 물리적 실체가 있듯, 정신적 성질들을 담는 정신적 실체가 있으며, 정신과 물질은 이러한 실체의 차원에서 다르다는 주장이다. 우리가 흔히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러한 정신적 실체에 해당한다.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어, 모든 정신적 사건들은 이 영혼의 영역에서 전개되며 영혼은 모든 정신적 성질들을 담는 그릇으로 그들의 존재론적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정신적 실체로 영혼을 받아들임으로써, 정신은 물질과 독립해 존재할 수 있다는 결론을 갖게 됐다. 정신적 성질과 물리적 성질은 각기 그릇을 달리하기 때문에 물리적 성질들이 모두 사라져도 정신적 성질들은 영혼이라는 독자적 그릇에 담겨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주장과 같은 실체이원론은 정신과 물질 사이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가장 편리한 방법이다. 정신과 물질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양자가 근본적으로 다른 대상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보다 쉬운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정신과 물질을 ‘대상의 차원에서 구분하는 방식으로’ 칼로 자르듯 나눌 때, 양자가 인과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을 설명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데에 있다. 정신과 물체가 근본적으로 다른 그릇에 속한다면, 내가 손을 들고자 하는 정신적 욕구가 손을 드는 물리적 행위를 야기하는 과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욕구는 정신적 실체에 속하며 손을 드는 행위는 전혀 다른 물리적 실체에 속한다고 할 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현대 물리주의의 반격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질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송과선을 그 답으로 내세운다. 우리 두뇌에는 송과선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정신과 물질이 만난다. 우리의 정신적 사건들은 물질적 농도를 갖고 있지 않으나, 송과선에서 정신적 사건이 농축화돼 물리적 사건으로 화한 후 물리계와 만난다. 그리고 물리적 사건은 그곳에서 희박화해 정신적 사건으로 변형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한 편의 공상과학소설을 연상케 한다. 그만큼 궁색한 설명이다. 실체이원론이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오늘날의 과학에 따르면, 물리계는 하나의 폐쇄되고 완결된 체계다. 이러한 생각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 물리계의 에너지 또는 운동량 보존의 법칙이다. 즉, 물리계 내의 운동량은 항상 일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체이원론에서와 같이 정신계를 물질계와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별도의 영역으로 간주하면, 정신에서 물질로 이어지는 인과적 작용은 결국 운동량 보존의 법칙을 위배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별도의 영역인 정신이 물질계에 인과적 영향을 끼쳐 특정한 사건을 야기한다는 것은 물질계에 있던 기존 운동량의 합이 증가함을 의미하며, 이는 운동량 보존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데카르트의 실체이원론은 정신과 물질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문제에 직면하여 붕괴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철학자들은 정신과 물질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설명을 추구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아직 마음에 관한 과학이 시작도 되지 않은 단계에서 마음과 물질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논의하였다. 이후 마음과 물질의 관계에 대한 본격적인 심리철학적 논의는 300년 이상이 경과해 마음에 관한 과학이 발전한 상태에서 다시 제기된다.

과학이 발전한 단계에서의 심리철학적 논의는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이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과학이론이 상당히 발전한 단계에서는 마음을 과학의 객관적 설명의 영역에 포섭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게 마련이며, 이는 결국 마음을 자연계에 포섭시키고자 하는 경향으로 드러난다. 즉, 마음을 물질계의 일원으로, 철학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물리주의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의 대표적 이론이 행동주의와 동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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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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