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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연구

‘수재와 반골의 동거’ 원희룡 의원

탄로난 ‘지능적 좌파’? ‘한나라病’ 뜯어고칠 보수혁명가?

  •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3457@naver.com

‘수재와 반골의 동거’ 원희룡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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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희룡(元喜龍). 올해 42세의 한나라당 재선 의원. 연배와 경력은 아직 일천하지만, 그의 대중적 인지도와 정치적 무게감은 상당하다. 공식적으로 당 서열 3위의 최고위원. 여론조사에선 차세대 정치지도자 1위에 랭크된다. 그런데 가끔 초선 의원에게 면박을 당하고 출당 압박도 받는다. 한나라당 도처에 그의 안티(Anti) 세력이 득실거린다.
‘수재와 반골의 동거’ 원희룡 의원
그가 살아온 이력은 극과 극을 달린다. 그를 상징하는 두 단어는 ‘수석(首席)’과 ‘반골(反骨)’이다. 그는 대입학력고사 전국 수석, 사법고시 전체 수석으로 이어진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한 ‘수석 인생’을 살았다. 용모도 반듯하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어디서나 반골을 자임했다. 그는 거칠다. 끊임 없는 ‘개김’은 원희룡 이력의 또 다른 면이다.

역설적으로, 그에게 제기되어온 의혹들을 통해 원희룡 의원의 내면을 들여다봤다. ‘반전을 즐기는’ 정치인에게 어울리는 접근법인 것 같다.

1. 배신을 밥먹듯 한다?

2004년 2월8일 원희룡 의원은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 있었다. 한나라당 수도권 초·재선 의원 20여 명이 점심을 겸해 2시간째 마라톤 회의를 벌이고 있었다. 이윽고 원 의원이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 앞에 섰다.

“최병렬 대표의 퇴진을 공식 요구키로 했습니다.”

기자들이 되물었다.

“퇴진 안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는 한치의 머뭇거림이 없었다.

“타협은 없습니다.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한국 정당사(政黨史)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2004년 한나라당 소장파 쿠데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반란군의 한가운데에 원희룡 의원이 있었다.

불과 수개월 전 그는 최병렬 대표 체제를 떠받치는 한 축이었다. 당 기획위원장으로서 그는 최 대표의 개혁성을 보완했다. 그는 최 대표 체제를 옹립한 ‘공신’이기도 했다.

이회창, 최병렬, 박근혜와의 불화

“최 대표는 정통 보수지만 다원성을 존중하고 있고 합리적이란 느낌을 받았다.”

원 의원은 이렇게 최 대표를 치켜세웠다. 그런 그가 얼마 안 가 반최(反崔)의 선봉에 섬으로써 자신의 선택을 되물린다.

그로부터 5개월 뒤인 2004년 7월19일, 원 의원은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대의원들의 환호 속에서 박근혜 대표와 손을 잡고 있었다. 그를 비롯한 소장파 의원들은 최병렬을 내쫓은 뒤 박근혜 의원을 한나라당의 임시 대표로 추대했다. 그해 4월 한나라당은 박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렀다.

이어 7월에 열린 정기 전당대회 대표 경선에서 박 대표와 원 의원은 나란히 1, 2위를 차지하면서 대표최고위원과 2등 최고위원직을 맡는다. 원 의원은 당시만 하더라도 박 대표 체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는 환호하는 군중 앞에서 “박 대표를 잘 보좌해 대권(大權) 재창출의 기반을 다지겠다”는 인사말도 했다.

하지만 그해 겨울을 지내고 맞은 2005년 봄, 원 의원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박 대표에게 등을 돌렸다. 국가보안법 개폐논쟁, 4대 입법 국면, 7월 조기전당대회 논란 등을 거치며 둘은 갈라섰다.

남을 비판하는 데 신중한 박 대표지만 원 의원에게만은 예외였다. 지난해 4·30 재보선에서 완승을 거둔 직후 박 대표는 한 일간지와 인터뷰하면서 “당원들은 발이 부르트도록 뛰는데 인터넷 게임이나 하고 당에 악영향 끼칠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도 문제가 있다”며 원 의원을 정면으로 겨냥해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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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34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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